연구소'戰國시대'열렸다
  • 장영희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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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硏 · 금융硏, '실세'급성장 …개혁 핵심과제 맡고 KDI 아성 위협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한 연구의원은 최근 정책 연구를 둘러싼 연구기관 간의 물밑 경쟁을 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정책 연구라면 KDI였던 과거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밀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실 그동안 한국개발연구원은 경제기획원등 경제 부처의 연구 용역을 도맡다시피 했고 'KDI안'은 그 권위를 인정받아 왔다.

  한국개발연구원이 느끼는 상실감은 자기네 영역에 경쟁자가 출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기관 사람들은 이 경쟁자로 조세연구원과 금융연구원을 꼽는다. 두 두뇌 집단이최근 들어 개혁과제를 연구하는 '실세'로 떠오르면서 한국개발연구원에게 작지만 무시할수 없는 경쟁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설립한 지 1~2년밖에 안된 두 연구기관인이처럼 전면에 떠오르게 된 까닭으로는 이들이 굵직한 개혁 과제들을 연구하고 있다는점을 들 수 있다. 조세연구원은 금융실명제와세제 개혁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금융연구원은 금융 개혁에 대한 정책협의회를 주관하는 기관으로 돼 있다. 세제 개혁과 금융 개혁은 새 정부가 추진하는 핵심 개혁 과제이다.

  이들 두 연구소가 새 정부의 개혁 과제에 일정한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재무부가 정책적으로 밀어 주었기 때문이며 수장이 '거물급'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재무부의 한 관계자는 "재무부는 조세연구원을 의도적으로 키우려 하고있다. 조세뿐 아니라 금융 분야도 이 연구소에 정책 자문을 의뢰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전 재무부장관인 정영의씨가 수장인 점도 신생 조세연구원의 격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이에 힘입어 조세연구원은 재무부의 두뇌 집단으로서 재정 분야에서는 독보적 존재가 될것으로 보인다.

 

'거물급'원장도 위상 높이는 데 한몫

  민간 연구소인 금융연구원은 이미 정부의 정책 자문을 여러번 했다. 91년에 제7차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 중 금융부문 계획 수립에 참여했고 '금리 자유화 성공을 위한 연구'를 통해 금리 자유화 방안도 제시했다. 금융개방 계획은 이 연구원이 6개 부문 중 3개 과제를 해냈다. 연륜에 비해서는 정부로부터 꽤좋은 대우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금융연구원이, 국책 연구소가 할일이라고 여겨지는 개혁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점은 전적으로 원장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초대 원장인 박재윤 경제 수석과 2대 원장인 박영철씨(고려대 교수·경제학)가 워낙 금융 분야에서 비중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박영철씨의 경우 그가 금융산업 개편안을 연구하는 금융발전심의회 산하개편 소위원회의 위원장이라는 점도 덩달아금융연구원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두 연구소는 이제 막 신발끈을 매고 산을 오르려고 한다. 조세연구원은 지난해 9월 개원해 아직 이렇다할 연구 성과가 없지만 올하반기에는 적지 않은 연구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올해 이 연구원이 연구 과제로잡고 있는 내용들을 홅어보면 굵직한 것이 제법 많아 불모지였던 조세연구 분야가 개척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조세연구원의연구 과제 중에서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금융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 제도 개선 방안'인데 이는 금융실명제를 달리 표현한 것이다. 금융실명제에 대해 조세연구원이 어떤 정책자문을 할 것이냐는 점은 큰 관심거리이다. 또 말썽 많은 조세감면 등의 지원제도 개편방안과 토지 세제 평가 및 정책 방향등 연구중인 정책 과제도 눈길을 끈다. 이밖에 연구원이 자체 계획한 일반 과제로는 국제화 · 개방화와 조세 정책, 경제력 집중과 조세금융정책, 적정 조세부담과 적정 조세체계 연구등이 있다. 최 광 연구조정부장은 "재정 부문은 체계적으로 연구가 되어 있지 않다. 조세연구원은 이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아울러 동전의 양면인 금융에 대해서도 많이 연구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창립 두돌을 맞은 금융연구원은 금융 분야전문 두뇌 집단으로서 한층 특화된 연구 서비스를 할 계획이다. 금융연구원은 한국개발연구원과 한국은행 조사부 등 금융 분야를 다루는 연구소들이 이미 많이 있기 때문에보는데 그치면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금융연구원 양원근 연구위원장은 "금융제도 정비 따위의 정책연구와 함께 금융기관의 경영전략 수립 등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는 연구 활동을 목표로 하고있다"고 밝혔다. 그는 "은행의 대출가격 소유구조 등은 다른 연구소들이 다루지 않았던 분야다. 이렇게 미시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우리의 강점이 될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민간 연구소인 금융연구원은자체 힘으로 굴러가지 않으면 안된다. '은행권 연구소'라는 축소된 이미지도 부담스럽다. 따라서 경쟁이 격심한 금융 분야에서 살아남기 위해 차별 전략을 구사하지 않을 수 없게 돼있다. 박영철 원장은 "미시적분야로 특화하고 질 높은 연구를 통해 국제적으로 경쟁해 나가겠다"며 국제화를 강조했다.

 

"특화된 연구소 유망"

  흥미로운것은 조세연구원이 금융 분야에서 열성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조세연구원이 잃었던 영토를 되찾으려 하는 것인지 모른다. 당초 산하에 두뇌 집단이 없던재무부는 조세연구원을 재정금융연구원으로 출범시킬 작정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의지는 좌절됐다. 경제기획원 등 다른 부처와 한국은행까지 나서서 반대했기 때문이다. 기획원이 산하 두뇌 집단인 KDI의 약화를 우려하고, 한국은행도 자신들의 입지에 도움이 될 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재무부는 본다. 재무부의 한 국장은 "장기적으로 조세연구원을 재정금융 정책을 총괄하는 연구소로 발전시킬 구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속사정은 두 연구원이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이유를 일러 준다. 재무부의 또다른 국장은 "아버지(재무부)에게 자식 둘이있는데 서로 잘 보이려고 경쟁하는 것은 정책 수립에 좋은일"이라고 비유했다.

  하지만 두 연구소가 '두뇌 집단'으로서 본격적인 활약을 하기에는 좀더 시간이 걸릴것이다. 조세연구원은 국책연구소로서 재무부의지원 아래 빠르게 성장하겠지만 아직은 '엄청난 힘'을 겉으로 드러낸 상황은 아니다. 금융연구원은 중견 인력이 거의 없다시피 하므로 인적 자본의 구성상 문제가 있다. 그러나잘 훈련되고 참신한 감각을 가진 젊은 인력들의'잠재력'은 평가할 만하다는 지적이다.

  두 연구소가 전면에 떠오른 것이 곧 바로기존 경제 분야 두뇌 집단들의 약화를 의미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연구산업 부문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보여온 한국개발연구원의 위력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제기획원의 한 관계자는 "한국개발연구원은 앞으로도 국책 연구소로서정부의 정책 결정에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독과점구조가 허물어져 시장 점유율이 다소 떨어질 것이라고 보는견해는 타당할지 모른다"라고 지적했다.

  어쨌든 두 연구소는 앞으로다른 연구기관들에게 자극을 줄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 산업연구원(KIET),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등 국내의 대표적 두뇌 집단들은 그동안 서로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다기보다 '밀월'관계를 유지한 것처럼 보인다. 또 사회가 다원화하고 경제 규모가 커져 이제는 거시적으로 경제 흐름을 보는것보다 미시적으로 특화된 연구소들이 득세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큰 흐름을 짚어나가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지만, 미시적 분야는 연구가 취약해 부문간 정합성에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두뇌 집단의 경쟁력은 연구결과의 질에서 나온다. 질 높은 연구보고서를 내놓는 길만이 생존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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