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치기법'으로 이은 韓紙의 맥
  • 성우제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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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외길'한지연구가 김 경씨, 종이옷 등 전통 지공예품 전시



  지난 4월21일 서울 하이야트호텔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디자이너李英姬씨의'파리 프레타 포르테컬렉션 참가 기념 귀국쇼'마지막 무대에 하얀 색깔의 웨딩드레스가 등장했다. "종이 연구가 김경 선생이 닥종이 70여장으로 만든세계 최초의 종이 웨딩드레스"라고 사회자가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소개하자 객석에서는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일반 섬유로는표현할 수 없는 잠자리 날개 같은 종이옷이관객들에게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첫선을 보인 것이다.

  지난해 열린 도쿄 컬렉션에 종이옷 여섯벌을 출품한 디자이너 李信雨씨도 金 脚씨(69)에게서 재료를 제공받았다. 김씨는 지난30년 동안 韓紙를 만져온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한지 연구가이다. 4월21일~5월1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 서호(02-723-1864)에서 열리는 한지작품전〈한지의 예술세계〉에서 김씨는 한지를 수집 · 연구해온 결과물로 나타난 종이 작품 4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패션디자이너들이 만든 양장 스무털과 한복 여덟벌, 김씨가 대표로 있는 종이연구모임 한매제회원들이 만든 공예품의 재료는 장지(將紙) 잠견지(蠶繭紙) 옥충지(玉蟲紙)이다.  "삼국시대부터 우리 종이는 중국에서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고, 그 전통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대량 생산되는 양지에밀려 품질 좋은 우리 종이들은 이름만 남긴채 사라졌다"고 김씨는 말했다. 잠견지와 옥충지도 명성만 남은 종이들이다. 비단같이 곱고 매끄러운 잠견지는 이미 삼국시대에 만들어 사용한 것이고, 망사처럼 비치는 데다 군데군데 누에 벌레 비슷한 무늬가 들어 있는 옥충지는 조선시대 귀족들이 패물을 담는 데이용한 귀한 종이이다.

  두꺼운 한지인 장지와 더불어 이번에 선보인 두 종류의 전통 한지는 김씨가 옛 종이를 물에 담가 풀어보고 그 기법을 새로 개발해 만들었다. 잠견지는 닥나무를 맷돌에 갈아뜬 종이를 손으로 주물러 만들고, 옥충지는 박나무를 물에 삶아 두들기고 양잿물로 표백한 후 손으로 주물러 만든다. 김씨는 자기가개발한 독특한 방법에 '줌치(주머니) 기법'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 기법을 제대로 전수한 사람은 아직껏 한 명도 없다. 6개월을 가르쳐도 종이만 못쓰게 할 뿐 방법을 제대로 익히는 제자가 없다.

 

종류 다양하고 품질도 최고

  6년 전 잠견지를 만들면서 줌치 기법을 개발하기까지 김씨는 전국을 누비며 종이로 된 전통 공예픔을 수집해왔다. "30년 전에 안동 하회마을에 들렸다가 장롱밑에 있는 이상하게 생긴 요강을 보았다. 종이로 엮어 옻칠을 한 것인데시집 가는 신부의 가마 안에다 넣어준 것이었다. "그후 한점 두점 모은지공예품이 지금은 2백여점에 이르렸고 보온병 신발 죽관 손것(지갑)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 초기 것이라고 추정되는 흙받이이다. 선비가 당나귀를 탈 때 흙이 튀어도 괜찰도록 곁에입던 옷이다.

  김씨에 따르면, 만들기가 비단보다어려운 종이옷은 귀하고 값이 비싸궁중이나 대가에서만 입었다. 그러나 일반 장지는 서민들이 솜 대신 옷 속에 넣어 입거나병사들이 갑옷 대신 입기도 했다. 고려시대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이 종이를 대여섯겹물에 적셔 걸치거나 기름을 발라 두텁게 입으면 화살도 뚫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종이는 예로부터 종류가 다양할 뿐더러 품질 면에서도 중국과 일본에 널리 알려졌다. 중국 종이는 뽕나무 같은 나무 껍질이나 보리 밀 벼 같은 풀을 맷돌에 갈아 만들기 때문에 섬유가 짧게 끊겨 부드럽고 연한 반면 쉽게 찢어지는 결점이 있다. 그러나 한지는 닥나무를 방망이로 쳐서 만들기 때문에 섬유의 올이 길어 매우 질기다. 종이를 떠낸후에도 방망이질을 하기 때문에 매끄럽고 빛이 난다.

  현존하는 종이로 가장 오래된 것은닥지로 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으로 석가탑에서 나왔고, 호암미술관이 소장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沸華嚴經)은 신라 경덕왕 14년(755년) 때의 문서이다.

  한지의 우수한 전통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단절되었다. 게다가 그 연구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복식사에서는 옷의 재료보다는 디자인과 무늬에 더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에 종이는 소외되어 왔고, 종이 공예품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은 인식조차되어 있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지난 87년에는 소장 종이공예품전을, 89년에는 창작 공예품전을 개최한 적이 있는 김 경씨는, 설명문을 잘못 써도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에서는 전통 종이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88년 일본후지미술관에서 열린 김씨의〈한국전통의미-지공예전〉에는 38일간 2만5천명이 다녀갔으며, 우리 지공예품의 연대 추정도 일본인의 기록을 통해 알게 된 것이 많았다는 것이다.

  "89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종이대회에서도 우리종이의 우수성이 또 한번 입증되었다. 외국 종이는 닥이 좋지 않아 물에 넣으면 금방 풀어지는데 우리 것은 그대로 있는것을 보고 외국인들이 크게 놀랐다." 따라서 우리 종이는 세탁도 가능하지만 흡수력 또한 강해 물들이기도 쉽다. 김씨는 이번 전시회에 통도사 선운암의 성파 스님이 재배한 이꽃 물을 들인 황금색 종이와, 악귀를 물리친다는 쪽물 들인 종이를 선보였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종이옷을 선보인 김씨는 앞으로는 실용화가 어려운 옷보다 종이 스카프나 모자를 만들 계획이다. 그는 웬만큼 빨아도 찢어지지 않는 우리 종이의 우수성이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일반에 널리 알려졌으면하는 바람과 함께 몇년 뒤에는 '종이집(종이 박물관)'을 세우고자 하는꿈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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