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월남서 찾은 마지막 대사의 ‘캐딜락’
  • 한종호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지막 교민 수송선 전송한 뉴포트항 둘러본 김영관씨



 

 사이공 주재 한국대사관의 마지막 주인이었던 김영관씨(68)는 4월 하순 18년만에 다시 월남을 찾았다. 이번에는 월남전에 참전했거나 당시 월남에 거주했던 교민 가운데 기독교 신자가 중심이 되어 결성한 ‘기독교 국제 사회복지협의회’(회장 조주천 당시 백마부대 부사단장)의 고문 자격이었다.

 그가 사이공을 떠난 것은 75년 4월29일 오후 6시25분. 그보다 세시간 앞서 시작된 미국의 사이공 비상 탈출작전 ‘프리퀀트 윈드’에 따라 미국대사관 옥상에서 마지막까지 교민 및 공관원들의 탈출을 돕다가 자신도 치누크 헬기를 타고 이상훈 참사관(당시)과 함께 사이공을 떠났다.

 지난 4월21일 홍콩을 거쳐 하노이에 도착한 김씨 일행은 북베트남복음성회총회에서 예배를 본 뒤 베트남 보건부장관 구엔 트롱 난씨를 만나 한독약품에서 기증한 1만5천달러 상당의 약품을 전달했다. 호치민묘를 둘러본 김씨는 “비록 적장이었지만 대단한 인물이었음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4월24일 호치민시(사이공) 탄소누트 국제공항에 내린 김씨는 뜻밖의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월남 재직 당시 자신이 공관 1호차로 타고다니던 미제 캐딜락 자동차가 여전히 호치민시 시내를 굴러다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이공 함락 전날인 4월29일 오후 1시 대사 운전사 김만수씨와 안병찬 당시〈한국일보〉특파원(현《시사저널》편집인)이 한국 교민들에게 미국 대사관으로 집결하도록 비상연락을 취하기 위해 타고 나간 뒤 영영 잊고 있었던 차이다.

 최근 현대그룹 호치민시 지사에 근무하는 안경환 차장이 택시를 대절했는데 운전사가 이 한국인 손님에게 “이래뵈도 이 차는 왕년에 한국대사가 쓰던 차랍니다”라고 자랑한 것이 김대사의 귀로 전해진 것이다. 김씨는 마침 수리중이던 캐딜락을 보기 위해 정비공장으로 달려갔다. 내부를 개조하여 영업용으로 고친 것뿐 외양은 그대로였다. 그는 내친 김에 당시 이 차를 운전하던 월남인 운전사를 수소문해달라는 부탁까지 해놓았다.

 호치민시에서 김씨는 자기가 근무하던 대사관 건물과 피난민을 떠나보냈던 뉴포트항을 찾았다. 한국 대사관 건물은 그동안 고아원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한ㆍ베트남 수교와 함께 다시 한국 정부 재산으로 돌아오게 됐다. 내부 시설은 많이 바뀌었지만 겉모습을 페인트칠 한번 안한 채 그때 그대로였다.

 호치민시의 내항 뉴포트항구를 찾은 김씨의 감회는 각별한 것이었다. 월남 패망이 임박하자 한국 정부는 한국 교민의 안전한 탈출을 위해 ‘십자성 계획’이라는 비상 수송작전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해군의 LST군함 810ㆍ815호 두척이 뉴포트항으로 파견됐다. 김씨는 교민의 안전을 위해 구호물자 인도식을 핑계삼아 선박 운항이 금지됐던 뉴포트항까지 함정을 끌어들였다. 수송선이 어둠이 깔리는 사이공강을 빠져나간 몇시간 뒤 뉴포트항은 월맹 특공대의 포격으로 폐허가 됐다. 그가 마지막 교민 수성선 815함을 전송한 때가 75년 4월26일 오후 6시. 그로부터 정확히 18년 만인 지난달 26일 다시 뉴포트항을 찾은 것이다.

 김씨는 앞으로 베트남을 자주 찾을 생각이다. 북베트남복음성회총회의 투 목사와 함께 하노이 아동병원 건설 계획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