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찡꼬 태풍에 정치권 ‘자라목’
  • 서명숙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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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ㆍ야 30명 연루설… 사실로 드러나면 ‘제2 물갈이’ 예고


 

‘재산 공개’ 태풍에서 벗어나 겨우 몸을 추스리는 정치권에 또 다시 태풍 경보가 울렸다. 태풍 이름은 ‘빠찡꼬’. 정치권은 바짝 몸을 움츠린 채 태풍이 여의도 앞에서 소멸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본격 수사는 정작 이제부터여서 사태 진전에 따라서는 제2의 물갈이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실정이다.

 정치권에 ‘정치인 빠찡꼬 연루설’이 나돌기 시작한 것은 빠찡꼬 업계 대부 鄭德珍씨가 검찰에 구속된 지난 4일부터. 이때부터 국회의사당 주변에서는 “아무개 의원이 정씨와 친하다더라” “6공 실력자 ㅇ씨가 뒤를 봐주었다더라”는 유비통신이 유포되기 시작했고, “빠찡꼬 수사에 성역은 없다”는 청와대와 검찰측의 다짐성 선언이 되풀이되자 ‘유력 정치인 관련설’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이와 함께 ‘김대통령이 김종필 대표와의 주례 회동 중 빠찡꼬 연루 정치인 30명의 명단을 놓고 큰 우려를 나타냈다더라’는 미확인 소문이 흘러나왔다.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이름이 오르내린 정치인은 여야 합쳐 10여명선. 민자당에서는 예 민정당 창당 주역의 한 사람인 ㄱ의원을 비롯해 당 중진 ㄱㆍㅇ의원, 한때 금융계를 좌지우지 했던 ㅇㆍㄹ의원,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ㄱ의원 등이 정씨의 배후 혹은 관련 인사로 거론됐다. 야당도 예외는 아니어서 ‘주먹계의 거물’을 많이 배출한 호남 지역 중진인 ㄱ의원, ㄹ의원 등이 소문의 도마 위에 올랐다. 흑막과 배후가 도사린 음습한 사건이면 언제나 단골처럼 오르내리는 국민당의 ㅂ의원도 이 명단에 포함됐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 ‘연루자 명단’은 상당 부분 그 설득력을 상실하고 있다. 우선 양지를 지향하는 폭력조직의 생리를 감안하면, 야당 의원 연루설은 개연성이 희박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주당측에서는 이와 관련지어 민자당이 초점 분산을 위해 야당 의원들의 명단을 ‘고의적으로’ 언론에 흘렸다고 본다. 민주당 李基? 대표는 지난 8일 기자 간담회에서 “K,S,R 등 두문자로 거론된 5~6명의 의원이 오히려 자기들이 책임지겠다며 당에서 관련자가 없음을 공식적으로 밝혀달라고 주문하더라”면서 “야권 인사들을 언론에 흘리는 것은 정치권 전체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을 증폭시키려는 의도다”라고 민자당을 겨냥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서는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 할 수는 없다”는 조심스런 반론도 제시된다.

 

민자 중진의원, 겉은 태연 속은 불안

 여당 의원들도 한결같이 “말대꾸조차 하고 싶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며 완강히 부인한다. 실제로 ‘수사 진행을 가로막기 위해 거물급 인사를 흘리거나’‘정적을 제거하려 역정보를 퍼뜨리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게 정가의 관측이다. 국민당 ㅂ의원 진영에서도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라며 결백 증명에 자신감을 보인다. 눈덩이처럼 커져온 연루설과는 달리 10일 현재 검찰 수사에서 정씨와의 관련 사실이 구체적으로 포착된 정치인은 빠찡꼬 지분을 소유한 鄭周逸의원을 비롯해 민자당 ㄱ과 ㅇ 전 의원 등 세 명밖에 안된다.

 그러나 정치권은 겉으로 드러내는 자신감과는 달리 내심 초조감을 감추지 못한 채 수사 진행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7일 저녁 ㄱ의원과 또 다른 ㄱ의원, ㅇ의원과 또 다른 ㅇ의원 등 민자당 증진 의원 4명의 저녁 식사 모임은 정치권의 불안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 자리에서 두 의원은 “연루설이 어처구니없다”는 강경 반응을 보였고, 한 의원은 “정씨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는데 안 만났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ㅇ의원만 유독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진짜 관련된 것 아니냐’ 하는 의구심을 샀다. 정치인들 두셋만 모이면 목소리를 낮춘 채 수런수런 ‘빠찡꼬’이야기이고, 보좌관들은 풍문 수집하기에 바쁘다.

 검찰은 10일부터 정치인 관련 수사의 방향을 정씨의 재산 형성 과정으로 전환했다. 88년 이후 막대한 부를 형성한 정씨가 축재 과정에서 정치인이나 군 고위층으로부터 고급 부동산 정보를 얻어내고 대신 정치인들은 거액의 정보비를 받아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검찰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털어놓지 않으면 곤란하다. 나중에 터지는 사안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추가 기소하겠다”며 정씨를 설득하고 있다. 따라서 정씨가 심경 변화를 일으켜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 공산도 크다. 이럴 경우 정치권의 추한 모습이 다시 한번 국민 앞에 발가벗겨지고 대대적인 회오리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정치권에 몰아칠 ‘빠찡꼬 태풍’의 풍속을 좌우할 또 하나의 변수는 김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연루설’이다. 지난 8일 국회 본회의 사회분야 대정부 질의에서 李 協ㆍ朴啓東 두 의원이 터뜨린 이 문제는 일단 소문 차원으로 거론됐지만, 빠찡꼬 사건의 ‘뇌관’으로 잠복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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