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과학과 전통미의 만남
  • 성우제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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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 미술에 한국의 자연ㆍ풍물 도입

엑스포〈테크노아트전〉 작가 11명 공동 작업

 85평 전시실을 들어서면 4m 높이의 기념비가 보인다. 돌과 나무, 그리고 컴퓨터 모니터 7대로 만들어진 기념비 주변엔 푸른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 옆으로는 한국의 전통 토담이 세워져 있다. 토담에 붙어 있는 모니터는 한국의 갖가지 풍광을 보여주고, 담 중간에 박혀 있는 ‘비디오 창’에서는 해가 지고 달이 뜬다. 눈을 들면 물기를 머금은 무지개가 보인다. 나란히 놓인 세개의 우물에서는 물빛이 반짝이고 그 옆의 나무 상자에는 잘 익은 사과가 가득 담겨 있다.

 오는 9월13일~10월3일 대전 엑스포 기간에 열리는 〈테크노아트전〉의 전시실은 이렇듯 첨단 과학과 한국적인 것이 조화를 이룬 작품들로 꾸며진다. 엑스포 기간에는 백남준씨의 〈비디오아트쇼〉와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하는 〈리사이클링 특별미전〉〈미래 테마 파크 조각전〉〈촉각 조각전〉〈한국의 풍속화전〉등 10개의 크고 작은 미술전람회가 열리지만, 최근 그 구체적 형태가 드러난〈테크노아트전〉은 다음 두가지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경제ㆍ과학 올림픽’‘과학기술의 인류 축전’이라 불리는 엑스포의 과학적 성격을 미술 작품에 반영한 전시회라는 점 말고도 순수한 국내 작가 11명이 공동으로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외국 작가 혹은 큐레이터가 참여하는 전시회는 여러 차례 조명을 받았지만, 〈테크노아트전〉은 첨단 과학과 미술이 만난 전시회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소개가 덜된 편이다. 그것은 테크놀로지 미술이 한국에서 발돋움하기 시작한 것이 불과 3~4년 전부터이고, 따라서 이 분야에 대한 국내의 인식이 덜된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67년 파리 현대미술관의 〈빛과 움직임전〉이후 붐을 이루기 시작한 테크놀로지 미술이 지금은 세계 유수의 비엔날레에서 대세를 점하고 있다. 올 베니스 비엔날레(6월9일~9월25일)에서는 백남준씨가 대상을 수상할 것이 유력시될 정도로 과학 기술을 미술의 매체로 이용하는 경향은 세계적으로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 시대’‘우리 모습’ 표현에 초점

 〈테크노아트전〉을 주관하는 ‘아트테크 그룹’은 테크놀로지 미술 작품을 제작해온 작가들이 지난 91년에 결성한 모임이다. 그간〈과학+예술전〉〈테크놀로지아트, 그 2000년대를 향한 모색전〉같은 여러 작품전을 통해 쌓아온 성과들을 바탕으로 엑스포 ‘하이테크 미술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과학 기술을 모르면 이 시대에 적응을 못한다. 마찬가지로 미술도 과학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우리 시대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작가 김 윤씨는 말했다.〈테크노아트전〉은 바로 ‘우리 시대’와 ‘우리 모습’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작가들은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공동으로 작품을 연출한다는 점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부터 준비 작업에 들어간 아트테크 그룹은 이런 어려움 때문에 최근 작품 연출도를 발표하기까지 수십차례 토론을 해야 했다. 거의 매주 모임을 가지면서 확정한 내용은 ‘자연과 테크놀로지, 그 예술적 내일의 제안’이라는 제목으로 요약된다. 테크놀로지 미술에 한국의 자연과 풍물을 처음으로 도입한 8점의 작품은〈테크놀로지아트 기념비〉(김 윤 강상중),〈전자정원〉(심영철),〈비디오 창〉(김재권 조태병),〈모니터 벽〉(김재권 조태병 신진식), 〈매직 비주얼 터널〉(최은경 송주한), 〈인공 무지개〉(김재권), 〈빛의 우물〉(공병연), 〈홀로그램 사과〉(김재권)이다.

 아트테크 그룹 대표 김재권씨(조형예술학 박사)는 “이번 전시회는 국내 테크놀로지 미술을 총결산하고 21세기 미술의 방향을 짚어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테크노아트전〉에는 비디오 컴퓨터그래픽 레이저 홀로그램 광섬유 LED전광판 등 캔버스ㆍ물감 대신 매체로 사용해온 테크놀로지가 모두 동원된다.〈테크노아트전〉은 국내 과학 기술 인력과 작가가 처음으로 협력한다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난해 열린〈과학+예술전〉이 두 분야의 ‘맞선 자리’였다면 이번 전시회는 ‘결혼식’을 하는 자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엑스포 전시회에서는 첨단 영상ㆍ홀로그램ㆍ레이저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광전자 연구센터와 레이저 제작업체인 이오테크닉스 등에서 작가들에게 제공한다.

 〈테크노아트전〉은 ‘과학 기술과 문화의 접목’이라는 엑스포‘93문화행사의 기본 방향에 가장 잘 어울리는 전시회가 될 터이지만, 참여하는 작가들은 이번 전시회가 국내에서 테크놀로지 미술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테크놀로지 미술이 한국에서도 커다란 흐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런 믿음은 한국 수준이 질적인 면에서 세계 수준과 별 차이가 없다는 자신감에서 연유한 것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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