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유지 좋지만 피 흘리긴 싫다”
  • 도쿄ㆍ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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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파병 일본군 사망 계기 철수론 일어…일 정부“활동 계속”발표

 “캄보디아에 땀을 흘리려고 간 것이지 피를 흘리려고 간 것은 아니다.”  일본이 캄보디아에 파견한 유엔평화유지활동(PKO)부대에 첫 희생자가 발생함에 따라 일본 정부가 노력을 기울였던‘캄보디아의 일본화 정책’이벽에 부딪혔다.

 캄보디아 북서부에 있는 안필 지구를 순찰중이던 유엔 캄보디아 잠정통치기구(UNTACㆍ이하 잠정 기구)부대가 지난 5월4일 폴 포트파로 보이는 무장 집단의 급습을 받았다.  이들은 선두를 달리던 네덜란드군 보병부대에 박격포 공격을 한 데 이어 뒤 따르던 일본의 문민 경찰 부대에 자동소총을 난사했다.

 이 기습 공격으로 네델란드군 5명과 일본의 문민 경찰 5명이 부상당했다.  일본인 부상자는 병원에 올ㅋㅁ겨졌으나 그 가운데 1명은 끝내 사망했다.  지난달 8일에도 일본인 선거감시원 1명이 사살당한 사건이 있었지만 일본인 대원이 사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일본 정부는 성명을 발표해“극히 심각한 사태”라고 논평했으나 “일본인 대원 가운데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해서 부대를 전면 철수하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라고 계속 주둔할 방침임을 맑혔다.  일본 정부는 그 이유로 91년 10월에 조인된 파리평화협정의 정전 조항이 아직 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또 일본이 평화유지군 철수를 결정하면 캄보디아에 설치된 잠정 기구가 와해될 위험성이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자민당 일부와 야당은 작년 6월 국회에서 성립된 평화유지활동 협력법의 이른바 ‘참가 5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을 들어 즉각 철수를 주장하고 나섰다.

 참가 5원칙이란 △분쟁 당사자 간의 정전합의 성립 △일본 참가에 대한 전쟁 당사국의 동의 △중립적 입장 준수 △이상의 원칙이 깨어질 경우 일본의 참가 부대는 즉각 철수 △무기 사용은 자위권 행사를 포함한 최소한에 한정 등이다.

 즉각 처수를 주장하고 있는 이들의 근거는 바로 이‘참가 5원칙’중 하나인 캄보디아의정전 합의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즉 폴 포트파가 아직도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있으며, 최근 중국 북경에서 열린 캄보디아 최고국민평의회(SUC)회담에도 불참하는 등 캄보디아 정세가 작년 9월 일본이 평화유지군을 파견했을 때와는 크게 달라진 상황이라는 것이다.

 

“파병 속셈은 정치ㆍ군사 지출”비난

 자민당 소속 고이즈미 우정상은 이런 철수론을 공개적으로 발표해 일본 정부를 당황케 만들었다.  그는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국제 공헌은 피를 흘려가면서 해야 한다는 합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돈 대신 땀을 흘리라는 것이 작년 6월 성립된 협력법의 취지이다.  캄보디아는 실질적으로 내전 상태에 가까운데 자위대보다 문민 경찰ㆍ자원 경찰이 위험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지적하고, 이를 재검토하라고 요구했다.

 ‘캄보디아의 일본화’를 노리며 전후 처음으로 자위대를 해외에 파병한 지 1년도 채 못돼 철수론이 고개를 든 까닭은 고이즈미 우정상의 주장처럼 단순 명쾌하다.  그것은 작년 6월 성립된 협력법이 일본 국민 사이에서 충분한 논의와 검증이 없이 캄보디아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목적으로 서둘러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미야자와 총리는 작년 6월국회에서 자위대를 비롯한 일본의 PKO부대는 결코 위험한 지역에는 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이 시작된 48년 이래 지금까지의 사망자는 약 9백명에 이른다.  다시 말해서 PKO라고 해서 안전하다는 보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일본이 서둘러 PKO협력법을 성립시킨 것은 한마디로 ‘캄보디아의 일본화’에 그 목적이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일본 정부와 자민당은 이 법이 성립되기 전 1백일간 심의를 거쳤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실은 이 심의의 대부분을 자위대의 해외파병 구실을 억지로 뜯어 맞추는 데 썼다.

 또한 잠정 기구 최고 책임자에 일본인인아카시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가 임명되자 일본 정부는 잠정 기구의 총 활동경비 24억달러 중 3분의 1을 부담하겠다고 나섰으며, 작년 여름 도쿄에서 캄보디아 부흥각료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거기다 인적 공헌을 대의명분으로 내걸고 자위대의 첫 해외파병을 감행함으로써 캄보디아가 또 다시 킬링 필드가 될지 여부는 일본인과 엔화의 영향력에 놓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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