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 여파 ‘돈 가뭄’ 정치권이 쪼들린다
  • 조용준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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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균형’ 정치자금법 탓에 여야 빈부차는 여전

 국회의사당 146호실은 민주당이 의원총회를 열 때마다 단골로 이용하는 장소이다. 지난 10일 역시 이곳에서는 이틀전 (???) 총리의 12 · 12 관련 발언과 관련해 황총리의 해임권고 결의문을 채택하는 긴급 의원총회가 열렸다.

 그러나 사안의 심각성과 달리 이 날 의원 총회는 평소 볼 수 없었던 진기한 풍경을 보여 주었다. (???) 대표를 비롯해 95명 소속의원 전체가 손으로 도시락을 받쳐 들고 점심식사를 하면서 회의를 진행한 것이다. 이 날 주문한 도시락을 구체적으로 보면 3천6백원짜리 디럭스 불고기 50개, 3천2백원짜리 생선가스 20개, 3천원짜리 돈가스 20개, 햄버거 30개로 총 1백 10인분이었다. 제일 비싼 디럭스 불고기 도시락은 50개밖에 주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찍 회의장에 들어온 의원들은 이를 차지하는 행운을 누렸지만 늦게 들어온 의원들은 햄버거 하나로 만족해야 했다.

 여기에 들어간 경비는 모두 합쳐 36만원 정도. 비교적 싼값으로 거의 1백여명에 달하는 현역 의원들의 점심을 해결한 셈이다.

 돈은 비교적 적게 들어갔지만 총무실 쪽에서 보면 부담이 작은 것도 아니다. 계획에 없던 점심 의총 때문에 총무실 운영비 예산이 그만큼 축났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나오는 민주당 총무실 운영비(교섭 단체 운영비)는 한달 평균 약 8백만원이다.  총무실은 워낙 들락날락하는 사람이 많아서 이 정도 경비로는 어림도 없다.  더구나 민자당처럼 당에서 별도의 원내총무 판공비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돈을 받기는커녕 민주당 총무는 당직자라는 명목 때문에 특별 당비를 더 내야 한다.

 

민주당, 당직자 월급도 몇 달째 못줘

 민주당은 벌써 몇 달째 중앙당 당직자들의 월급을 주지 않고 있다. 급여를 주지 않고 있는 것은 지난 3월 전당대회를 끝으로 당직자 임기가 끝났기 때문이다. 원칙대로 하자면 전당대회 이후 곧바로 중앙 당직자들은 새로 임명해야 하나, 민주당은 당 기구를 개혁하기 위한 ‘당개혁발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기구 조정 문제를 최근에야 매듭짓고 14일 당무회의에서 확정지었다. 그러나 새 당직자를 임명하기 위한 인사위원회가 언제 구성될지는 아직 모르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1백여명에 달하는 부장급 이상의 당직자들이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민주당사는 거의 모든 당직자가 자리를 비우고 있어 당무가 마비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민주당은 매달 국장급 85만원, 부장급 65만원, 각종 위원회의 상근 부위원장 95만원선의 급여를 지급해 왔다. 그러나 새 당직자를 서둘러 임명한다 해도 급여를 줄 만큼의 돈이 없다는 데 깊은 고민이 있다. 민주당은 지난 전당대회 때 이미 당 금고가 바닥을 보였다. 전당대회 때도 원래는 오전 9시에 모든 대의원에게 5만원씩 활동비를 지급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돈을 마련하지 못해 오후 3시로 연기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안고 있는 빚은 지난 대통령선거 때의 것을 포함해 지난 3월에 이미 7억5천만원을 넘어섰다. 당시 전당대회에서 (???) 의원은, 金大中 전 대표가 7억원이라는 돈을 남겨놓고 갔는데 그가 당을 떠난 지 3개월 만에 당의 빚이 7억5천만원에 달한다고 이대표를 간접 비판했었다. 부채 액수는 앞으로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지는 않을 전망이다. 김대중씨가 당 대표로 있던 시절에 한달 평균 3억원의 당비를 충당해왔던 것을 염두에 둔다면 현재 민주당이 지고 있는 부채 총액은 거의 9억여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돈에 쪼들리기는 당 지도부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광명시 등 3개 지역의 보궐 선거 당시 최고위원회는 대표가 2천만원, 최고위원이 각 1천만원의 특별 당비를 걷기로 결정했었다. 당 금고가 바닥난 상태에서 선거를 치르기가 어렵게 되자 나온 고육책이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대표를 비롯해 최고위원 가운데 처음 약속대로 특별 당비를 전액 내놓은 사람은 한명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의원의 경우는 사정이 더 절박하다. 전체 95명 중에서 절반 가량은 지구당 운영비나 의원 자신의 활동비를 세비 또는 빚을 얻어 충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들은 몇몇 동료 의원이 축재와 땅 투기, 이권 개입으로 지탄받는 바람에 도매금이로 함께 넘어가 자금에 목말라하며 허덕이고 있다.

 대표적인 청빈 의원으로 꼽히는 (??) 의원(전북 이리) 경우만 보아도 이러한 사정은 여실히 드러난다. 이의원이 매달 받는 세비는 실수령액이 특별활동비를 받는 달에 4백만원 정도이고, 그렇지 못한 달에는 약 3백만원이다(이의원의 보수지급 명세서 참조). 공제되는 돈 가운데 당비 30만원과 도당 운영비 20만원이 포함된다. 이의원이 나머지 돈에서 떼어 지구당 활동비로 넘겨주는 돈은 2백50만원. 이는 개인 사정에 관계없이 무조건 지구당에 보내는 액수이다. 그러니 특별활동비를 받지 못하는 달에는 겨우 50만원 정도가 그의 손에 남는다. 집 생활비는커녕 개일 활동비에도 모자라는 돈이다. 그가 한달 동안 필요로 하는 경비는 지구당 운영비를 포함해 약 8백만원 정도이다. 그는 “정치가 잘 돌아갈 때는 사업하는 친구라든지 동창 · 선배들에게서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지만 요즘 같아서는 어림도 없다. 정치인들 얼굴도 보기 싫다고 면박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다”라고 말한다.

 후원회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야당 의원은 후원회도 ‘재주’가 있어야 만들 수 있다(18쪽 상자 기사 참조). 이 협의원은 “김대중 전 대표가 있었을 때는 당내 가난한 의원들에게 ‘억지로 돈 만들려고 하지 말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격려금(통상 2백만원 정도)을 1년에 적어도 4~5차례는 주었다. 나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먼저 요청한 적은 없지만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마저도 기대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민자당 의원들도 후원회 기탁금 줄어 울상

 돈에 쪼들리는 것은 야당 의원에게는 일상적인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최근 민주당의 경제사정 악화는 정치 개혁 바람으로 인한 정치권에 대한 불신감 심화와 겹치면서 상당히 위험한 수준까지 올라갔다. 이 같은 양상이 더 심해질 경우 민주당은 존립 기반마저 흔들릴 심각한 지경에 몰릴 수도 있다.

 민주당이 이번 임시국회의 정치관계특위 활동 중 정치자금법 개정에 거의 총력을 걸고 덤벼드는 것도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다. 최근 ‘깨끗한 정치 어떻게 실현할 것 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벌어진 민주당 정책토론회에서 이 대표는 “92년 선관위에 지정기탁된 정치자금 중 민자당에는 1백65억원이 간 반면 우리 당에는 1백65만원밖에 오지 않았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불공평하고 부적절한 정치자금법을 개정하는 데 모든 힘을 다 쏟을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번 임시국회에서 정치 자금법이 개정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치관계특위는 공직자윤리법 하나도 제대로 합의점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번 국회에서 정치자금법을 개정하지 못하면 정기국회 때나 가야 다시 거론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당의 정치자금 기근은 거의 1년 이상 지속될 전망이다. 여간 심각한 사태가 아니다.

 이런 민주당에 비해 민자당은 훨씬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올해도 선관위에는 민자당에만 지정기탁금 35억원이 기탁되었다. 물론 민주당은 단돈 1원도 없다. 그래도 민자당 의원은 못살겠다고 난리를 피운다. 왜 그런가. 여당이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달리 집권당인 민자당은 모든 의원들이 후원회를 가지고 있다. 후원회를 통해 모금할 수 있는 돈은 연간 1억5천만원. 선거가 있는 해는 두배로 늘어난다. 1억5천만원 정도면 빠듯하긴 하지만 1년동안 의정활동 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민자당 위원들이 불평하는 것은 사정 바람에 후원회 기탁금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朴明

( ? )의원(서울 마포갑)은 “작년에는 후원회를 통해 1억원 정도가 들어왔다.  그런데 올해는 형편없다.  아마 절반에도 못 미칠 거 같다”라고 말한다.  이런 사정은 (       ?      ) 의원등 초선이면서 재산이 많지 않은 위원들에게 공통된다.  이들은 박명환 의원과 함께 민자당 내에서 두발 쭉 뻗고 잘 수 있는 몇 안되는 의원들에 속하지만, 다른 의원들과 달리 별다른 재원이 없어 의정 활동에 곤란을 겪고 있다.

 

정치권 정상화의 한 단면일 수도

 여당 의원들에 대한 유권자의 의식이 아직 바뀌지 않은 것도 민자당 의원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정치 개혁은 밀어닥치고 있지만, 이 바람이 유권자들의 의식 개혁으로 굳어지려면 아직 멀었다는 증거다.

 민자당은 최근 당사 지하에 식당을 마련하고 당직자나 사무처 요원이 산값에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점심 시간이면 당사근처의 비교적 괜찮은 음식점마다 민자당 당직자들로 붐볐던 과거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이도 당에 대한 청와대 지원이 끊겼기 때문이 생겨난 모습이다.

 그러나 민자당 주요 당직자 사이에는 최근 고급 요릿집이나 호텔에서 당정회의 등을 하던 과거 습관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  ?  )총무는 14일 63빌딩 고급 일식집‘와코’에서 국회의장단과 총무단의 오찬을 주선했다.  (  ?  ) 국방위원장 등 상당수 민자당 상임위원장 역시 최근 호텔이나 고급 음식점에서 당정회의를 가졌다.  당사 주변 보통 식당에서 회의를 갖던 새 정부 출범 초기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여당과 야당은 여기서도 차이가 난다. 

 최근 정치권의 돈 가뭄 현상은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정상적인 돈의 정치권 유입이 어느 정도 차단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있다.  정상적인 정당 활동을 가로막는, 여와 야 사이에 너무 심각한 정치자금 불균형을 낳게 하는 정치자금법이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정치 개혁은 제도의 개혁이 먼저 뒷받침되어야 하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입증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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