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政 문란’보다 더 썩었다
  • 김동선(편집국장 대우)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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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기강을 바로잡을 부패척결에는 묘책이 따로 없다. 총체적 부패에는 총체적 척결운동으로 맛서야만 한다.”

 몇 해 전 중국 북경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한 토막을 소개한다. 아시안게임 기간이라서 북경의 호텔들은 한국 관광객으로 북적대고 있었다.  필자가 여장을 푼 호텔에는 한국 굴지의 여행사 중역 한 분이 장기 투숙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분과 단둘이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중국풍물에 대하 소감 피력으로 옮겨졌는데, 그분은 불쑥 무슨 무용담 늘어놓듯 이런 말을 했다.

 “중국 애들도 돈이라면 맥을 못춥니다.  우리와 거래하는 고위관리에게 1만달러를 먹였더니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더군요.  돈을 받은 즉시 입이 헤 벌어지더니 양말 속에 숨겼다가 다시 꺼내 사의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또 꺼내 바지 뒷호주머니에 넣어보고….  하여튼 공산주의자들도 돈이라면 사족을 못쓰더군요.”

 필자는 여기서 기분이 팍 상했다.  그는 적어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러한 ‘부패 관습’에 익숙해 있다고 여겼으므로 서슴없이 ‘뇌물 공여’라는 범죄 행위를 털어놓았는데, 듣기에 거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말속에는 ‘너나 나나 마찬가지이니까 이런 얘기를 해준다’는 식의 어떤 공범자 의식이 깔려 있었으므로 뭔가 모욕당한 기분까지 느꼈다.  그래서 필자는 침묵을 지켰고, 얼핏 장차 중국도 사회부패 문제로 골치를 앓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기풍 흐뜨러지면 경제 성공 무슨 의미 있나”

 아닌게 아니라 지난주에 들어온 외신에 따르면, 최근 중국의 당 중앙과 국무원은 당정기관과 공무원이 공무수행 중 사례금이나 유가증권을 받거나 주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각급 기관에 발송했다고 한다.  뇌물 수수 행위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데도 이러한 공문이 하달된다는 것은 부패만연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등소평도 수년 전 부패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경고한 바 있다.  “경제건설 분야에서 우리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고 상황은 매우 좋다.  그것은 국가적 성공이다.  그러나 기풍이 흐뜨러진다면 경제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기풍이 변질되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되며 그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탐욕과 뇌물이 횡행하는 세계가 형성될 것이다.”

 89년 천안문 사태 때 시위학생들이 관리들의 부정부패 엄단도 요구했던 걸 보면 중국도 오래전부터 이미 부패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 현상은 일당 독재의 폐단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외국 기업인들의 천민자본주의 행태도 일조를 했을 것이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 봇물 터지듯 드러나는 부패사건들을 지켜보며 사람들은“우리 사회가 썩어도 너무 썩었다”라고 개탄한다.  구조적 부패라는 말이 나오고 총체적 부패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작금에 드러나는 부패 상황은 학술적으로는 분명히 구조적 부패이다.  부패가 전사회적으로 만연되어 있고, 군 인사 비리나 부정입학 사례에서 보듯 부패에 일정한 시세가 형성되어 있으며, 사회구성원들이 그러한 부패에 죄의식이 없는 것 등등 구조적 부패 현상 요건을 고루 다 갖추고 있다.  비록 이국 땅에서였지만,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언론인에게 뇌물 공여 행위를 서슴없이 털어놓는 현상도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부패했다는 일단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기업도 부패 관행 벗어날 규범 마들어야

 그런데 역사는 사회가 이처럼 구조적으로 부패되어 있다면 필연적으로 멸망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왕조가 멸망한 것도 이 구조적 부패 때문이다. 

 ‘ 三政의 문란’이라는 조선 후기의 부패에 대해 역사책(( ? )의 《韓國史新( ? )》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세도 정치에 의한 권력의 집중은 저이의 문란을 가져왔으며, 그로 말미암은 피해는 농민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많은 뇌물을 바치고 관직을 얻은 관리들은 그 대가를 농민들에게서 염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국가의 재정 기구는 마치 관리들의 사재를 불리기 위한 협잡 기관으로 변하여 버린 느낌이었다.”

 이 시기에 지방 관리들의 악행을 규찰하기 위해 암행어사들이 파견되었지만, 그 ‘도도한 시세’를 막지 못했고, 조선 왕조는 끝내 멸망하고 말았다.  삼정의 문란은 국가 재정 기구뿐만 아니라 교육 기구까지 부패돼 있는 것을 보여줘 우리 사회 부패 정도가 조선왕조를 멸망케 한 삼정의 문란보다 더 심각함을 말해주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끝장이 아닌가 하는 위태로움마저 느껴진다.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는 부패 척결에는 묘책이 따로 없다.  부패연루자는 지위 고하는 물론이고 ( ? )유무를 가릴 것 없이 엄정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러면서 민간 부문에서도 부패 척결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이를테면 미국의 대기업들은 자체 윤리강령을 만들어 엄격하게 실시하고 있는데, 우리 기업들도 ‘부패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떤 규범을 만들 필요가 있다.  권력 주변의‘오염’을 청소했다 해도 기업 관행이 고쳐지지 않으면 권력은 항상 오염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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