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4인 특별 좌담 김영삼 정부 개혁 90일 중간평가
  • 정리·허광준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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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기대 높으나 성과는 미흡”

金泳三 정부의 개혁은 공직자에 대한 사정으로부터 출발했다. 새 정부의 개혁을 놓고 국민 지지율이 90% 이상이라는 일부 언론 기관의 조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사정 돌풍에 휩싸인 알맹이 없는 개혁이라고 비판하는 소리도 적지 않다.  국민들은 문민 정부의 개혁 조처를 기대와 우려의 두 시각으로 관심 깊게 주시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는 어디로 가는가. 새 권력의 기반은 과연 튼튼한가. 한기찬 변호사의 사회로 학계의 전문가 세 사람과 함께 김영삼 정부의 개혁 90일에 대한 중간 평가를 해보았다.  좌담 참석자들은 김영삼 대통령을 ‘시간과 싸움하는 대통령’이라고 입을 모았다.  임현진 교수(서울대?사회학)와 강철규 교수(서울 시립대?경제학) 김석준 교수(이화여대?행정학)가 좌담에 참석했다. <편집자>

 

한기찬 변호사 :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지 90일이 됐습니다.  이제는 중간 평가라고 할까 총론적 평가가 필요한 시기라고 보는데, 총괄평을 해놓고 그 다음에 구체적인 사안을 짚어보기로 하지요

김석준 교수 : 총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고 싶습니다마는 구체적으로는 미흡한 부분이 많다고 봅니다.  우선 새 정부를 맡을 경우에 대통령은 뚜렷한 통치 이념과 국정 지표, 정부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 데 그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당시 세 후보를 비교 평가하면 김영삼 후보는 상당히 보수적 성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취임후 출발은 개혁 방향으로 나갔으며 그것은 당초 공약보다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대선 때보다 높은 90% 이상의 지지율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 김영삼 정부가 약해 보이기 때문에 더 지지를 보낸 측면도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동정적인 측면보다는 구체적으로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임현진 교수 : 아직 돌도 안된 새 정부의 개혁 정책을 갖고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다만 지금 상황에서 보면 의욕에 비해 성과가 미흡하지 않나 봅니다.  개혁에 대한 원칙이나 방향, 기준이 전혀 설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뭔가 이루어지는 것 같은데 실제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국민의 기대 수준을 높였을 뿐 누에 보이는 성과는 미미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경제?정치 구조의 개혁 프로그램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단지 부정부패를 도려내는 사정 차원에 머무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나마 개혁적인 조처를 담고 있다고 하는 경제 정책도 과거 개발 독재의 성장주의를 답습하는 것입니다. 人治가 아니라 民治라는 것은 견강부회입니다.  법에 기초 하지 못한 개혁이므로, 여론을 경청하고 그에 따라 나가는 것이 아니고 여론을 이용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사정 차원의 개혁은 밑으로부터의 지지를 얻지 못합니다.  여론을 위한 여론 정치를 하다 보면 우중 정치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강철규 교수 : 철학의 빈곤이라고 할까요. 의욕은 있으나 뭘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한국병이란 비생산 부문에 의해 생산 부문이 구축되는 것이 그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비생산을 생산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 한국병을 치료하는 재용입니다.  부정부패 척결도 한 측면이 되겠으나, 그보다 경제질서 자체를 세워야 합니다.  기본적인 틀을 세우기 위해 디자인이나 프로그램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한기찬 : 국민의 절대적 지지는 공감의 차원일 뿐 동조나 참여를 보이는 적극적 지지는 아닙니다.  김대통령의 임기 내내 이러한 지지율이 뒷받침될지는 의문이며, 그런 의미에서 90% 이상이라는 지지율은 오히려 불안한 측면도 있습니다.

 

“지지 세력 결집이 과제”

김석준 : 우선 노태우 정권이 워낙 못했으므로 김영삼 정권이 반사 효과를 얻는 부분이 있습니다.  두번째는 새 정부가 개혁의 알맹이는 없으나 정치 감각을 바탕으로 한 언론 효과 등을 통해 위로부터의 개혁을 인식시키는 데에 성공을 거둔 것 같습니다.  국민들은 문민 시대 문민 정부의 주역이라는 자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중 정치에 대한 우려도 낳게 하지만 민주주의의 가능성도 보여줍니다.  이를 어떻게 지지 세력?기반 세력으로 결집시켜 기득권 세력에 맞설 대항 세력으로 대치할 것인가가 새 정부의 과제입니다.

한기찬 : 여하튼 90% 이상의 지지를 얻으면서도 개혁을 하지 못하면 정말 자격이 없다고 해야겠지요.

임현진 : 수치가 중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변화에 대한 열망이 우리 사회에 가득찼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사정이후 개혁이 계속되지 않으면 이 지지율은 반대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지지층을 상실하는 거죠, 따라서 이 지지는 위험이랄까, 경고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강석준 : 국민들은 항상 ‘윗물’에 부패의 근본이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부패 구조를 노출시키기는 쉬워도 바로잡기는 어렵습니다.

한기찬 :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개혁은 개혁주의자가 하는 것이 전제이고, 반개혁주의자가 개혁한다는 것은 매국노가 애국한다는 것 과 마찬가지입니다.  개혁 세력이 개혁을 이끌어가야 하는데, 현재 대통령만 목소리를 높이고 주변은 조용합니다.  대통령 주변 세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김석준 : 김대통령의 집권을 한국판 트로이의 목마라고 합니다.  합당으로 집권당에 들어가 대통령이 되는 데에는 성공했습니다.  문제는 2단계입니다.  기득권 세력 안에서도 성공할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군대’를 얼마나 많이 데려갔느냐 하는 게 성공의 관건이 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는 대통령의 주변 세력이 질과 양 모두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성향으로는 중도우익의 개혁 세력 , 지역으로는 부산 경남, 정파로는 민주계가 대통령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고, 그밖에 재야, 시민 단체에서 온 사람, 이른바 가신그룹 등인데, 이들의 성장 배경이나 사고방식과 이념이 다르기 때문에 성향에 차이가 있습니다.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데에도 합의를 유지하기가 어렵지요. 수효가 적으면서도 이질적인 셈이지요. 사회 시민단체로부터 충원하는 문제는 국가와 시민사회를 연결한다는 의미가 있으나 시민 사회가 뿌리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영업의 형태로 이루어졌습니다.  개혁 세력은 양과 질 모두에서 어려운 상태입니다.

임현진 : 우리 정치의 특징 중 하나는 사람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정당은 개인의 카리스마 중심으로 인맥이 형성됩니다.  그 속에서 온정주의의 틀이 짜여지게 되죠. 대통령 자신이 정말 개혁적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대통령의 인사는 온정주의의 틀에서 멀지 않습니다.  흔히 우리나라에 인재가 없다고들 하는데, 그건 인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주변 인물만 쓰기 때 문입니다.  편의상 개혁주도 세력이라는 말을 쓰지만 집합적 개념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제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봐야겠지요.  따라서 가능성도 있고 한계도 있습니다.

강철규 : 결국 사람의 문제입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개혁을 주도할 만한 집단이 아닙니다.  부총리나 경제부처 고위 간부들은 신경제가 뭔지도 몰라요.  지난해 대선 때 공약을 보더라도 민자당은 물론 보수적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젊은 공무원들은 개혁 성향을 상당히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단지 정책을 입안하더라도 위로 올라가면서 비개혁 세력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이 크죠.  회의적입니다.

한기찬 : 개혁 세력의 반대는 수구 세력인데 이들은 도처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개혁이 동력화되어 잠잠하지만 이들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개혁 과정의 실수나 자충수를 기대하며, 그럴 경우 반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들이 누구며 어떻게 좌절시켜야 하겠습니까.  이미 민자당에 대한 신뢰는 거두어들여졌습니다.  재산 공개 이후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다시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입니다.  이 국회로는 개혁이 안된다는 이야기죠.

김석준 : 과거 정치 군인을 중심으로 한 군부, 관료, 재벌, 기성 정치인, 언론이나 사회 지도층은 기존 사회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결국 이들은 개혁에 대해 소극적인 기득권층이지요.  개혁을 하면 피해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새 질서를 세우기 위한 시도는 있습니다.  군부에 대한 인사를 단행한 것이나 재벌과 정부와의 관계에 변화가 생긴 것 등이죠.  역대 정부와 재별의 관계는 재벌이 점점 커져 정부를 타고 앉아 있는 모습이었으나 지금은 재벌에 대한 상대적 자율성이라고 할까요, 대등성을 갖고 기존 재벌을 분할 통치하는 것이 제한적으로 가능해졌습니다.  관료의 경우 장?차관은 물론 국장 등 공무원이 개혁 세력이 되어야 하는데, 새 정부의 인사에서는 개혁 의지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전 병무청장이 그 같은 경우에 포함됩니다.  따라서 국가 관료에 대한 장악력은 거의 단절된 상황입니다.  관료 중에서 개혁 세력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정당의 경우는 개혁 과정에서 충분히 활용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어려운 상태입니다.  역대 선거는 대선 이후 국회가 구성돼 국회에 대한 대통령의 영향이 컸으나 이번은 거꾸로였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여론을 업더라도 국회를 이끌기 어려운 것이죠.  오히려 국회와 정당이 개혁의 대상이 되는 상황입니다.  대통령은 아마추어로서 통치하는데 기득권층은 프로입니다.  이 게임에서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개혁은 어력워집니다.

한기찬 : 개혁이란 어떤 의미에서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파괴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기득권층은 언젠가는 개혁 과정의 실수를 비집고 집단 세력화하거나 저항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은 이같은 시도를 어떻게 물리치고 개혁을 성공시킬 것인가 하는 데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개혁은 국민의 지지를 담보로 가득권층과 일전을 불사해야 합니다.  저항을 극복하는 길은 명확한 프로그램 제시로 국민의 지지를 뒤에 업는 것입니다.  그럴 때 군부?여당?재벌 등도 개혁 바람 앞에 다 후퇴할 것입니다.

 

“국민이 정치 감시자가 돼야 한다.”

임현진 : 김종필 대표의 5?16 관련 발언도 수구세력의 반작용 중 하나일 것입니다.  자신의 입지를 고려한 거죠.  김영삼 정권이 3당합당을 통해 탄생했다는 점을 5?16과 연결해 김영삼 정부의 성격과 본질적 위상을 격하시키면서 국민의 개혁 보조를 저지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습니다.  이같은 저항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말은 쉬우나 참 어렵습니다.  첫째, 국민의 정치의식을 높여 정치 감시자로서 힘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둘째, 사회 시민단체와 기층 운동이 연대해 압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셋째, 대의민주주의란 결국 정당이나 국회가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므로 잠재적 개혁 세력을 정치 세력화해 국회로 보내는 것입니다.

한기찬 :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대한 새 정부의 대안이야말로 지속적인 개혁의 관건이 될 듯합니다.  잠재적 개혁 세력의 정치 세력화에 대해 좀더 얘기해 보지요.

김석준 : 저는 세가지 전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첫째는 기득권세력에 대한 포위 전략입니다.  이는 곧 국민을 역사의 주인으로 돌리는 기본 전략이기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구체적으로 시민 운동의 활성화와 참여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지요.  두 번째는 개혁 대상 집단을 내부 균열시키는 전략입니다.  각 부분이 자율성을 회복하도록 하고 스스로 기본 질서를 잡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군의 경우 하나회 같은 사조직을 해체하면서 내부 질서를 회복하고, 재벌은 스스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가 재벌 내부의 질서를 개편하고 중소기업의 권위를 회복하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로는 개혁 세력 자체를 발굴해 결집하는 전략입니다. 동질성을 가지도록 만드는 거지요. 새 정부에 대한 참여를 놓고 시민 단체끼리도 경쟁을 했고, 일부가 입각하면서 동요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시민 조직 자체가 성장해가는 순간에 일단 주춤해버린 것이지요. 이 같은 부작용을 없애고 시민 단체끼리의 연대를 모색해야 합니다. 사회 단체가 뭉쳐야 무한한 인력 공급이 가능해집니다.

한기찬 : 개혁은 정치 개혁과 경제 개혁이 두 축이 되는데, 경제 쪽은 어떻습니까? 신경제 1백일 계획이나 신경제 5개년 계획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습니까?

 

“경제 개혁의 상징은 금융실명제”

강철규 : 신경제 개념이 추구하는 가치는 경제 개혁을 통해 경제 발전의 원동력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즉 신경제란 개혁과 경제 활성화로 요약할 수 있겠죠. 그런데 아직 개혁 부분은 나온 것이 없습니다. 1백일 계획은 완전히 경기 부양책입니다. 그것의 내용은 금리 인하, 가격 통제 즉 물가 동결, 통화 신축운영 등이 핵심입니다. 또 중소기업 육성과 규제 완화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규제 완화 조처만 빼고는 모두 거꾸로 가는 내용입니다. 모두 규제하는 방향입니다. 결국 신경제 1백일 계획은 ‘신경제 구정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말만 신경제인 셈이죠. 당국자는 아직 개혁안은 안 나왔으나 워낙 경기가 침체되어 있으므로 ‘보약부터 먹여야 한다’고 합니다.  6월에 제도 개현안이 나오므로 개혁 내용은 그때 봐야 알 수 있으나 개혁안 토의 과정에서부터 삐걱거리며 퇴색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어쨌든 실무안이 나오긴 나올 텐데, 이게 5단계 정도는 또 거쳐야 해요. 그 과정에서 현재 논의하는 수준보다 훨씬 후퇴할 것으로 봅니다.

한기찬 : 경제 구조 자체를 개혁해야 하는데, 거시적으로는 건드리지 못하고 미시적으로 끝나는 게 아닌가 우려됩니다.

강철규 : 청와대의 신경제 관련 회의를 보면 개혁과 무관하고 수출이나 물가 등 경기가 어떻게 되나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개혁은 비생산 부문의 자금과 인력을 생산 부문으로 끌어들이는 게 핵심입니다. 그러나 이 부문에 대해서는 언급도 안되고 있습니다. 그 상징이 바로 금융실명제입니다. 그런데 자꾸 연기하고 있습니다. 빨리 시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제도를 개혁할 의지가 없는 것입니다. 또 물가 안정 의지를 표명하면서도 정부가 나서서 통화 조정을 하려 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물가 안정은 중앙 은행의 독립과 비례합니다. 금리자율화도 3월에 하겠다고 하고 밀렸습니다. 하반기에도 할지 안할지 모릅니다. 안하면 사채 금리와 공금리라는 이중금리 구조가 계속 유지됩니다. 이렇게 되면 싼 금리의 자금이 재벌 등 기득권층으로 집중됩니다.  재벌이 문어발식으로 자꾸 확장하는 이유는 싸게 돈을 많이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석준 : 국가 운영의 기본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역대 30여 년간의 개발 전략과 문민 정부의 개발 전략이 달라야 하는데, 수출 위주 ·대기업 위주 등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노동 정책도 일하는 사람이 대우받아야 한다고 말만 하고 정책적으로는 전혀 없습니다.

한기찬 :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경제 정책의 기조를 선택할 때 경기 활성화가 정말 시급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 경제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구조적 개혁이 더 급한 거지요. 경기는 순환에 맡기고 구조적 개편에 주력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강철규 : 원래 자본주의의 경제 순환은 늦습니다. 불황 때 더 투자해서 준비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불황은 좋은 약입니다. 정부가 나서면 불황으로부터 빨리 벗어날지는 모르나 체질이 약해집니다. 우리 경제는 8차 순환기에서 금년 1월 가장 낮았다가 저절로 상승되는 국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독한 약을 쓴 셈이죠. 1~2년 뒤 더 큰 어려움이 올 수도 있습니다.

김석준 : 경제 민주화 구조에서 옛날 식의 정책 전략을 택해 혼란을 빚었습니다.

한기찬 : ‘고통 분담’이라고 말하지만, 가진 자들을 부추겨 경기 활성화를 하면서 구조적 문제에는 손을 못대니 ‘고통 전담’이 되는 아이러니가 나오고 있습니다.

강철규 : 고통 분담이라면 기업 ·노동자 ·정부 3자가 분담해야 하는데, 기업에는 떡 주고 노동자 ·공무원은 임금 동결하고 물가는 올라가고 있습니다. 새 정부가 진정으로 제대로 경제를 개혁하겠다면 고통을 딱 1년만 분담하자 하고 실명제 실시하고 금리를 자율화하고 중앙 은행에 통화량 맡기고 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한두 달은 충격이 있었겠으나 조금 기다리면 체질 자체가 강화될 것이고 그 뒤로는 큰 어려움 없이 운영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때를 놓친 것은 아닙니다. 6월에 나올 개혁안을 지켜봐야죠.

한기찬 : 정치 개혁은 어떻습니까? 대통령 자신이 깨끗한 정치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데요.

김석준 : 새 정부가 내미는 정치 개혁이란 투명한 정부, 민주정치 질서, 절차적 민주주의 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각종 제약을 제도적으로 개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노동 정책이나 교원의 정당 참여, 전교조 문제 등입니다. 무엇보다 국가 기구에 대해 민주적 통제가 가해져야 하는데, 안기부법?국가보안법?정보공개법?고발자보호법 등을 제정 ·개폐해야 합니다. 민주적 통제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특히 정보공개법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의회보다 행정부가 강력한 권한을 행사해 왔으므로 투명한 정부가 되도록 시민 통제와 정치권 통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존 정당은 정치적 독과점주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민전체의 이익보다 개인이나 집단 이기주의를 추구하는 것이죠. 각 정당은 분당이나 파당으로 전략하고 민주 정당과는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선거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개혁 주체가 되어야 할 기존 세력이 개혁 대상이 되는 판입니다.

한기찬 : 불구적인 지방자치도 문제죠. 경제 개혁은 그래도 프로그램이나마 있는데 정치 개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개혁 대상이 주체가 되고 있기 때문이죠. 대통령이 개혁을 몰아가야 하는데 이 점에 대해 침묵을 유지하고 있어 의문이 듭니다. 개혁 주창자가 아무런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은 구호와 언행이 표리부동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직자윤리법은 엄청난 충격을 주었으나 그 과정에서 민자당은 개혁적 의지를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경유착 해소, 공당화, 당내 민주주의, 선거 제도, 지방자치 등 할 일이 많은데 왜 침묵하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김석준 : 개혁 추진은 대통령을 비롯한 개혁 주도 세력이 이끄는 방법, 시민 운동이 국회에 압력을 넣는 등 시민 입법 운동을 벌이는 방법, 언론이 촉구하고 질책하는 방법 등이 있겠죠.

 

“영속적인 개혁 하려면 제도화가 중요”

한기찬 : 정치 개혁은 법 ·제도 개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두 국회를 거쳐야 하는 것이죠. 대통령은 개혁을 제도화 ·법제화하는 것이 오히려 개혁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영속적인 개혁을 담보하려면 제도화가 중요한데 인식에 잘못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도화 얘기를 꺼내면 ‘법 만들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반발해요.

임현진 : 남미의 경우 민주화를 10여 년 경험한 나라도 성과는 미미했습니다. 대의민주주의가 아니라 ‘대리민주주의’였던 거죠.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위임받으면 혼자 다 합니다. 국회를 통하거나 하지 않아요. 우리도 이 같은 면이 있지 않나 합니다.

김석준 : 청와대 비서진 구성을 보면 노태우 정권에 비해 정치 부문이 축소되고 경제나 홍보 부문이 강화되어 있습니다. 그건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부문이 많다는 것인데, 마음은 경제쪽으로 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참모들은 명예혁명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법과 제도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는 없습니다. 대통령과 보좌관들이 ‘운동 정권’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 않나 합니다. 사정이나 부패 척결 등은 한국적 운동 정권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운동 차원의 개혁 다음에 법과 제도를 정비한 후 행정으로 수용하는 순서를 잡고 있지 않나 추측됩니다. 그러나 운동만 갖고 성과가 좋을 수 없습니다. 빨리 제도화해야죠.

강철규 : 정치 개혁이 안되면 경제 개혁도 잘 될 수 없습니다. 정치는 생산 부문이 아니므로 경제에서 자원이 오는 수밖에 없는데, 정치 개혁이 안되면 각종 물밑 거래, 반대 급부, 특혜가 성할 것입니다. 따라서 정치 자금법?선거 제도?공천 제도?정보 공개 등이 빨리 이루어지고 고쳐져야 합니다.

한기찬 : 진정한 개혁은 과거를 청산해야 합니다. 개혁이란 미래지향적인 설계이고 틀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청산과 개혁은 동전의 양면이고 수레의 두 바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정부패 추방에 주력할 뿐 근본적인 청산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임현진 : 사정은 개혁의 정지 작업이지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개혁을 하려면 과거의 환부를 도려내고 미래의 청사진을 보여줘야 합니다. 지금은 단순히 외과적 수술을 하는 정도입니다. 그것도 철저히 하는 게 아니고 들쳐봤다가 안되면 다시 봉합하는 형편입니다. 정권 차원에서 방어적으로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개혁 수위가 미리 정해져 있고 정권 안정 차원에서 그 수위에 따라 표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죠.

한기찬 : 우리 국민은 좀 조급한 측면이 있습니다. 4 ·19 때 분출됐던 일시적 욕구를 자제했더라면 5?·16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같이 역사 속에서도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이 정부를 뒤흔들게 아니라 새 정부를 보호하고 감싸면서 12?12 나 5?17 등의 진상 규명을 하도록 견인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호흡을 길게 갖고 인내해야죠.

임현진 : 역사적 위상 속에서 개혁의 범위를 잡지 못하고 있다면 전술적인 것은 무의미합니다. 개혁 타이밍이 빨라야 합니다. 단순히 후일의 역사로 떠넘기지 말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이다’라고 확실히 보여주는 겁니다.

강철규 : 신한국이라는 새 집을 짓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정지 작업을 해야 합니다. 즉 과거를 청산하는 것인데, 그건 좀 미루어두고 집을 먼저 지을 수도 있다는 것 같습니다.

한기찬 : 전술적 후퇴는 타당하겠지만 의지가 없는 것이라면 비난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김석준 : 대통령이 혼자 하던 개혁을 국민에게로 끌어내려 국민과 함께 해야 합니다. 국민은 각자 스스로 처한 위치에서 개혁을 추진해야 합니다. 새 정부에 대한 비판은 건설적인 차원에서 아껴두고, 기득권층 ·보수 세력의 책동이나 저항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비판해야 합니다.

강철규 : 경제 개혁에서는 6월에 발표되는 신경제 5개년계획을 일단 기대합니다.

임현진 : 국민의 참여 통로를 국민 스스로가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노동 운동과 같은 밑으로부터의 참여와 환경?소비자?주민운동과 같은 옆으로부터의 참여로 함께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배운 사람들은 담론으로 그치지 말고 참여해야 합니다.

한기찬 : 지금까지 김영삼 정권의 개혁에 대해 평가하면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제언까지 해 보았습니다. 임기 내내 개혁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시기상 앞으로 1년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라도 개혁 세력은 정밀한 프로그램을 내놓고 국민의 중지를 모아야할 것입니다. 어쩌면 대통령은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1년 내에 성과를 얻지 못하면 다시 혼미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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