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없는 갈채’ 경계하라
  • 김 훈 사회·기획 특집부장 ()
  • 승인 2006.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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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 가져다 준 선풍적인 지지율에 정부가 자족할 때 도마와 칼의 악몽은 언제든 다시 살아날 위험이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매우 선풍적인 양상으로 전개된 개혁 조처들에 힘입어 김영삼 정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90%를 넘어섰다고 정부는 발표했다.  숫자를 전하는 정부 당국자의 표정은 행복감과 자신감에 넘치고 있었고, 김수환 추기경은 정부의 개혁 조처들에 대해 감격에 넘친 찬사와 희망을 피력했다.  당대의 고통 속에서 늘 정신적으로나마 국민과 가까이 지내왔던 추기경이 현대사의 정치·사회 현실에 대해 그토록 낙관적인 견해를 감격적인 어조로 분출시킨 것은 아마도 그 분 자신의 생애 속에서도 최초일 터이다.

 이 드높은 지지율과 성직자의 일생일대의 감격은 모두 뒤틀린 과거의 역사와 관련이 있을 뿐, 미래에 있어야 할 세상에 대한 실천적 희망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지금 개혁의 주체는 국회도 여론도 국민도 아니다.  ‘개혁’이라는 깃발로, 지난 수십년 동안 권력의 상층부에 거대하게 형성된 천민성과 권력 남용을 도려내는 과업을 밀어붙이는 핵심부는 검찰이나 감사원 같은 사정기관을 수족으로 부리는 대통령과 그의 몇몇 지밀 측근일 뿐, 국민과 국회의 여론은 자고 나면 고위층 천민들이 한 명씩 검찰에 불려가는 으스스한 풍경이 무더기 갈채를 보내며 심정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관객의 위치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수십 년의 군사 통치와 구조적 비리에 지친 국민들은 광복 후 처음이라고나 해야 할 이 신나는 관객의 위치에 스스로 매몰되어 박수의 강도를 점점 더 높여가고 있고, 갈채는 한동안 더 요란히 계속될 전망이다.

 

시대착오로만 볼 수 없는 구속 정치인 발언

 파헤치고 들어내야 할 비리들과 국민적 규모의 갈채를 신속히 유발시킬 수 있는 ‘건수’들이 얼마든지 축적되어 있다는 것은 아마도 김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인 동시에 정치적, 행운일 수도 있다.  검찰에 구속된 박철언 의원이 자기에게 밀어닥친 협의 전체를 오직 ‘승자와 패자’의 판세론이나 ‘도마 위에 오른 물고기와 칼’의 구도로 받아들이고 있는 인식 그 자체가 아무리 시대착오적이고 물가치한 권모술수적 현실 인식의 극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의 그러한 인식이 현재와 과거의 정치 현실에 대하여 시사하는 바는 어쨌든 의미심장하다.  김수환 추기경의 감격이 박철언의원의 ‘도마와 칼’이란현실 인식을 통과해서 나온 것이었다면 추기경의 감격은 더욱 현실적으로 유력한 감격이 되었을 뻔했다.

“국가, 생산의 지배적 구조, 과두적 엘리트의 지배구조가 구체제와 고도의 연속선상에서 상존하는 상태에서 구체제와는 상이한 일군의 민간인 정치엘리트 집단이 선거를 통하여 국가 기구의 장점을 장악했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을 민주화라고 말할 수는 없다”라고, 최장집 교수는 고통스럽게 현실을 성찰하고 있다(논문<1992년 대선과 한국의 민주적 이행>).  최장집 교수의 성찰은 지금, 갈채를 보내기에 정신이 없는 국민 대다수의 정치 정서와 크게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구체제와의 고도 연속선’이 새로운 지배 질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대통령과 그의 지밀 측근들도 부정할 수 없을 터이다.  대통령선거에서의 승리가 정치 절차상의 정통성, 정권창출 과정에서의 정통성을 보장하는 것이지만, 그 정통성이 역사와 미래에 대한 정통성까지 보장해 주기에는 미흡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현정권이 5?18 광주 항쟁의 도덕성과 역사적 당위성을 승계하고 있다는 대통령의 담화는 매우 안쓰럽게 들린다.  대통령과 그의 지밀 측근들은 광주 항쟁으로부터의 알리바이를 주장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들이 창출한 권력은 근저가 ‘구체제와의 고도의 연속선 위에’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척결로 얻은지지, 건설로 돌릴 차례

 12?12를 ‘쿠테타(?)’이라고 규정한 이 머뭇거리는 어휘선정의 배면에서 현정권이 어떠한 자기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그러므로 박철언 의원의 ‘도마와 칼’은 김영삼 정부에 가한 가장 치욕스런 모욕일 수도 있다.

 김대통령의 ‘개혁은 정권 자체의 운명으로 타고난 제한된 정통성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매우 센세이셔널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의구심은 정당한 근거가 있다.  도마와 칼은 그 위구심의 최악의 경우를 표현한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개혁과 사정은 현 정치 질서의 근거로 편입된 구체제의 일부에 대해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이 국민이 당하는 자에 따라서는 ’도마와 칼‘로 비치기도 한다.  거기에 대한 국민의 갈채는 요란할수록 불행한 것 일수도 있다.  역대 군사 정권에 제도권 언론보다 더 강한 충격을 주어 왔던 운동권의 목소리도 사회적인 존립 기반을 잃어가고 있다.  김영삼 정부는 반대 의견이 없는 재앙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해야 한다.  제한된 정통성을 바탕으로 온전한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개혁과 사정은 분배 구조의 개선, 국가 경영 자체의 민주화, 그리고 민족의 운명에 대한 진로 모색에까지 이어져야 할 것이다.  개혁은 ’척결‘이면서 또한 ’건설‘이 아니면 안된다.

 몇몇 선풍적 갈채를 몰고 오는 척결이 가져다 준 ’90% 이상의 지지율‘에 김대통령 정부가 자족하고 있을 때 도마와 칼의 악몽은 언제나 국민의 뒤통수를 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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