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기관 통제관행 깬 청주 ‘민초’들
  • 청주·김상현 기자 ()
  • 승인 2006.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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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로 ‘정보공개 조례’ 시행... “개인정보 보호할 조례도 제정해야”


 청주시청 민원실에 들어서면 ‘행정정보 청구서 접수’라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지난 92년 10월1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이 창구는 각종 공사,세무 조사,도시 계획 등 일반 시민이 알고 싶어하는 행정정보를 공개하는 통로이다. 접수처에서 일하는 임원섭씨는 “창구가 생긴 뒤로 지난 2월 말까지 모두 54건이 접수됐는데 이용하는 시민이 날로 느는 추세이다. 3월 한달동안에만 16건이 접수됐다”라고 말했다.

 주민은 이제까지 상.하수도 건설,건축 허가 등 생활과 밀접한 행정 정책이 불공정하게 집행될 경우 진정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을 뿐,그 정책이 어떻게 입안되고 결정됐는지는 알지 못했다. 청주시의회 박종구 의원(50)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행정 체질과 행정 환경은 주민의 입자을 무시한 행정편의주의로 일관해왔다. 시민이 필요한 정보를 얻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열린 행정’과 ‘주민 참여’가 가능하겠는가”라고 말한다.

4개월 동안 만반의 준비

 청주시의회가 ‘행정정보공개 조례’를 제정.시행하기까지의 과정은 공개보다 통제에 익숙한 행정기관의 그릇된 관행을 깨는 과정이었다. 91년 7월24일 제 108회 청주시의회 임시회에서 박종구 의원은 “시민의 알 권리를 더욱 존중하고 책임 행정을 이룩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동료 의원 29명과 함께 ‘청주시 행정정보공개 조례안’을 발의했다. 이어 청주시의회는 의원 14명으로 ‘정보공개조례 심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4개월여 16차례 회의, 세차례 공청회를 통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91년 11월25일 청주시의회는 마침내 정보공개 조례안을 의결해 11월27일 청주시로 이송했다.그러자 청주시는 재의결을 요구해왔다. 그 이유는 △정보공개 사무는 전국적으로 공통된 이해관계를 가지므로 통일된 체계를 가지는 모법(가칭 정보공개법)이 제정된 뒤에 조례를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례의 ‘정보공개심의위원회’ 설치규정은 사전에 내무부장관의 승인을 얻어 설치토록 한 지방자치법 규정에 어긋난다 △집행 기관이 의무적으로 정보를 공개토록 한 규정은 사무관리 규정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박의원은 “상위법 저촉 문제는 청주시측 의견이나 공청회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정이 났었다. 청주시가 상급기관의 ‘지침’을 받아 재의요구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다”라고 말했다.

 청주시의회가 12월26일 제112회 본회의에서 조례를 재의결하자 청주시는 92년 1월8일 대법원에 정보공개 조례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대법원 특별2부(주심 윤 관 대법관)는 6월23일 “행정정보공개 제도는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 각국에서 채택해 시행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보공개법이 마련돼 있지 않다 하더라도 이 조례가 국가위임 사무가 아닌 청주시의 지방자치 사무에 관한 정보만을 공개 대상으로 하고 있는만큼 주민의 알 권리를 위한 지방자치 단체의 조례권 행사를 국가의 입법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가로막을 수 없다”라며 이를 기각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청주시는 시정 업무 계획,지방세 부과징수, 통계연보, 세입세출 예산서, 택지개발사업 등 공개할 정보 목록5백70건을 작성하고 92년 10월1일 행정정보공개 창구를 개설했다.

 박종구 의원은 현행 행정정보공개 제도에는 개선해야 할 점이 맣다고 말한다.무엇보다 접수 창구를 독립된 계 또는 과로 확대하고 홍보를 강화해 주민의 이용 횟수를 늘리고 편의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주사보(7급) 밑에서 일용직 사무원 2명이 정보공개 처리 업무를 맡고 있다. 정보공개 청구서는 본인이 직접 청구하게 되어 있지만 정보 브로커나 토지투기꾼이 이 제도를 악용할 위험성도 없지 않다.

 청주시의회는 정보공개로 인한 사생활 침해 위험을 막기 위해 개인정보보호 조례를 제정하기로 하고 지난 2월 열린 제123회 임시회에서 ‘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박의원은 “주민의 알 권리 못지 않게 사생활을 보호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행정정보공개 조례와 개인정보보호 조례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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