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 높이기 위한 民族共存논리 생각할 때
  • 이원명 (서울대강사·국제정치학) ()
  • 승인 1989.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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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극복과 군사대치상황 타개가 남북관계 돌파구

1989년 11월9일 독일帝國의 古都 베를린에서 세기적인 大드라마가 일어났다. 동독당국에 의해 냉전의 상징인 베를린장벽을 완전개방하는 극적조치가 발표된 후 감격과 환희에 넘친 東·西 독일인의 해후, 독일의 人的통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戰後세계사의 전개에 있어 냉전시대가 그 幕을 내리고 新시대의 序章이 펼쳐지고 있음을 뜻한다.

 주지하듯이 유럽대륙을 東·西 양진영으로 갈라놓은 베를린장벽은 美·蘇 초강대국간의 이데올로기 대립에 입각한 냉전이 제3차대전 일보 직전의 상황으로까지 첨예화되었던 1960년대초에 소련의 인준을 받은 동독 당국에 의해 세워졌다. 동독측이 베를린장벽을 설치한 직접적인 계기는 자유를 갈망하는 동독인들의 대거 西獨行 탈출사태를 막는 데에 있었지만 보다 더 근원적 동기는 東·西 양진영의 경계선을 확고히 설정한다는 정치적 의도에 있었다. 베를린장벽 축조를 직접 담당했던 에리히 호네커는 그후 울브리히트의 뒤를 이어 동독 공산당서기장이 되었으며 재임중 그는 對서독 분리정책에 입각하여 무엇보다도 동독의 정치적 완전독립을 이룩하는 데에 주력하였는데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호네커 前동독 공산당 서기장은 금년초만 해도 여전히 “사회주의의 방벽인 베를린장벽은 앞으로 백년은 더 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東·西유럽 이어줄 베를린

 그런데 지난10월 호네커의 후계자로 등장한 에곤 크렌츠 새 서기장은 베를린장벽을 사실상 와해시키는 극적 조치를 단행했다. 도대체 무슨 동기에서 이런 엄청난 도박을 감행했을가?

 크렌츠 서기장의 베를린장벽 개방 배경으로서는 무엇보다 먼저 동독 시민의 민주적 개혁요구를 들 수 있다. 소련을 비롯한 폴란드, 헝가리 등 동구 공산권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난 페레스트로이카운동이 동독에도 전파되어 지난 10월 이래 東베를린,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슈베린 등 도처에서 시민들이 동독 사회주의체제의 구조적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시위를 벌였다. 이러한 시민들의 정치적 시위와 동시에 ‘노이에스포룸’(新廣場) ‘민주혁명’ ‘민주유신’ 등 재야 정치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조직되었는데 건국40주년을 맞이한 지난 10월9일에는 서독 녹색당을 모델로 하는 ‘사회민주당’이라는 새로운 정당까지 창당되었다. 이들 재야정치단체 및 新黨은 모두 한결같이 복수정당제 실현, 시장경제제도 도입, 선거법 개정 등을 요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동독사회주의통일당의 독점적 지위를 규정해놓은 동독사회주의 헌법 제1조의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러한 체제개혁과 민주화운동이 결국 베를린장벽 개방의 주요한 직접적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베를린장벽 개방의 보다 근원적 배경은 소련 공산당서기장 고르바초프의 ‘유럽一家’창설구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구상은 東·西유럽분할의 戰後 얄타체제를 대체하여 대서양에서 우랄산맥에 이르는 全유럽 新秩序, 즉 유럽인 모두의 ‘공동의 집’을 창설하는 것을 그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유럽분단을 상징하는 베를린장벽은 ‘살 속의 가시’가 될 수밖에 없다. ‘유럽 공동의 집’을 창설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을 나누는 베를린장벽보다는 東·西유럽을 하나로 묶는 끈으로서의 베를린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크렌츠 동독 공산당서기장의 베를린장벽 개방조치는 고르바초프의 유럽 一家 구상과 불가분의 상관성을 가지고 있다.

 냉전시대의 종식을 告하는 베를린장벽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동·서 兩獨관계의 質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兩獨관계는 1951년에 체결된 베를린협정과 함께 시작되었는데 소규모의 무역거래에 한정되었고 1972년 東·西獨 기본조약 체결 이후 비로소 새로운 각도의 협력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인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은 상호간의 이익을 위해 경제, 과학, 기술, 교통, 법률, 체신, 보건, 문화, 체육, 환경정화 및 기타 제분야에 있어서 상호협력을 증진시킨다”라고 규정한 기본조약 제7조에 의거하여 동·서 兩獨은 평화공존의 원칙에 입각, 체계적 협력관계를 형성해갔다. 즉 兩獨정부는 분야별로 많은 세부협정을 체결함으로써 兩獨간에 하나의 협정망을 창출, 이 협정망을 근거로 하여 점진적으로 인적·물적 교류 및 협력 그리고 도시와 도시간, 대학과 대학간의 여러가지 형태의 자매결연 등을 이룩하여 협력체제를 구조적으로 만들어나갔다.

 

정책협력 따라 再統一의 길 열릴 수도

 그러나 이 협력체제는 동독측의 對서독 분리정책으로 말미암아 엄격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서독측이 바라는 사회·경제적 통합단계에 이르기에는 아직도 전도가 요원한 실정이었다. 그런데 동독측의 베를리장벽 개방 조치와 함께 兩獨 협력체제의 발전에 새로운 돌파구가 열린 셈이다. 즉 兩獨관계는 동독에 의한 베를린장벽을 포함한 국경개방과 함께 새로운 통합단계에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

 이와같은 兩獨관계의 質的발전이 독일 재통일의 방향으로 이어지게 될지 어떨지 아직은 단언할 수 없지만 兩獨간의 정책적 협력 여하에 따라 독일 재통일의 길이 열릴 수 있다. 독일민족의 재통일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서독 연방정부 콜 수상의 입장에서 보면 베를린장벽 개방에 의해 필연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兩獨관계의 질적 개선은 곧 독일 재통일에로의 본격적인 진입을 의미한다 1민족 1국가 이론에 입각한 콜수상의 統獨정책은 兩獨간의 사회·경제적 통합단계를 거쳐 체제 차이를 극복하고 민족자결에 의해 통일민족국가를 창설한다는 것을 그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統獨정책에 입각, 콜 수상은 지금 동독의 自由化를 조건으로 대규모적인 對동독 경제원조를 제의하고 있다.

 이에 반해 동독측은 종래의 1민족 2국가이론에 입각, 사회주의적 민족국가로서 동독의 분리독립을 요구하면서 서독 콜 정부의 統獨정책을 동독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동독의 분리정책적 입장에서 보면 베를린장벽개방은 독일 통일문제와 전혀 연관성이 없이 취하여진 단순한 동독주민 여행자유화 조치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크렌츠 서기장의 內政개혁 정책의 일환일 뿐이었다.

 이처럼 공산주의자 입장에서 볼 때 사회주의적 민족국가인 독일민주공화국과 자본주의 국가인 독일연방공화국과의 국가적 통일은 몽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동독 공산당인 사회주의통일당이 東獨을 지배하고 있는 한 베를린장벽이 철거되고 兩獨간의 국경이 완전 개방되더라도 독일민족의 국가적 통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칸트, 헤겔, 마르크스 등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주장했듯이 역사의 본질이 自由의 실현에 있다면 독일민족의 장래는 아직도 열려있다. 독일이 재통일로 나아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분단의 지속이냐 하는 것은 독일민족의 自由意志에 달려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던 날, 西베를린시장 발터 몸퍼는 환희에 넘쳐 “오늘 우리 독일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민족이다”라고 외쳤다. 세계적 충격파를 일으킨 베를린장벽의 완전개방은 가까운 장래에 독일민족의 국가적 통일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독일민족의 人的통일을 휘몰고올 것이다.

 

‘하나의유럽’은 가능한 것인가

 물론 독일 통일문제는 유럽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독일의 지정학적 위치와 그 국력을 고려해 볼 경우 독일인 자신만의 문제는 아니다. 즉 독일민족의 문제인 동시에 주변국가들의 死活的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국제문제이다. 때문에 주변국가들은 독일인의 향배에 언제나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베를린장벽의 극적 와해를 맞이하여 주변 국가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희비가 엇갈리는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를테면 베를린장벽의 붕괴를 프랑스대혁명에 비길 만한 큰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동부유럽에 8천만 인구를 제4독일帝國이 등장할 것을 우려하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경제·문화적으로 통합된 느슨한 연방형태의 통일독일이 출현함으로써 유럽공동의 집을 창설하기 위한 터전이 이루어지는 것을 환영하는 국가도 있다. 이와같은 국제적 여건을 감안, 서독의 야당인 社民黨, 그리고 대다수 지식인들은 독일의 再統一보다는 두 개 독일국가의 共存이 보다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두 개 독일국가의 共存을 기초로 한 全유럽평화질서의 구축만이 동·서유럽 분할의 냉전적 얄타체제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빌리 브란트와 함께 東方政策의 실질적 창시자이자 협상가였던 사민당의 에곤 바르는 全유럽평화질서의 基軸이 될 중부유럽의 안전을 위해 국가적 통일보다는 진정한 의미의 兩獨 협력체제의 창설을 주장하고 있다.

 

兩獨 공존 위한 연방제가 이상적

 동서 兩獨주민의 복지향상을 지향하는 높은 단계의 兩獨협력체제가 창출되어 독일민족이 西歐 자유사회권과 東歐 사회주의사회권을 연결하는 교량역할을 다시 맡게 되면 이는 중부유럽의 평화지대화를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大유럽통합에의 길을 트게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독일의 외형적인 國家的 통일은 이루어져도 좋고 안 이루어져도 놓고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오늘날 유럽인 모두에게 매력을 주는 유럽공동의 집을 창설하기 위한 전제로서 두 개의 독일국가의 共存共生을 그 핵심내용으로 하는 연방 또는 연합식 해결방법이 현재로선 합리성을 가진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 하겠다. 물론 느슨한 연방방식에 의한 독일문제 해결논리는 반드시 중부유럽지대의 非군사적 완충화·中立化를 그 전제로 하고 있다.

 현재 비엔나에서 진행되고 있는 美·蘇초강대국간의 전략핵무기감축회담(START)이나 유럽 재래식군축회담 등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중부유럽지역, 즉 독일지역의 연방적 해결방식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동·서독연방 도는 동·서독연합이 이루어져 중부유럽이 平和지역으로 발전하게 되면 전후 유럽史가 지난날 유럽의 영광을 되찾는 도약으로 전진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방향으로 전진해가는 유럽史는 지난 세기처럼 또다시 세계사의 向方을 가리켜주는 이정표를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南·北韓도 민족공존 논리 찾아야

 독일민족이 벌써 東·西독일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공존공영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동안, 우리 한민족은 아직도 남북한 평화공존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남북한이 아직도 원시적인 냉전상황을 박차고 뛰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여기에 대해선 간단명료하게 답변할 수 있다. 즉 남북한 당국이 여전히 이데올로기 문제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측이 솔선해서 군사절대주의에 입각한 반공이데올로기를 청산함으로써 북한 당국이 民族共存의 논리를 받아들이도록 이끌어야 한다. 조국통일은 너와 나의 共生을 가져오는 민족공존의 논리에서 출발되어야 한다. 민족공존의 논리에 바탕을 두지 않는 통일주장은 자기 기만일 뿐이다.

 민족공존의 구체적 방법은 東·西獨평화공존을 성공적으로 성취한 독일문제의 해결 방법에서 많은 시사를 얻을 수 있다. 黨, 國家, 統一을 강조하기 이전에 민족의 ‘삶과 질’고양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東·西獨당국자의 실질주의, 脫이데올로기적 현실주의는 우리의 민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훌륭한 規準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민족이 수천년 살아온 생활터전인 한반도에는 국토면적의 비율로 따져보아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군대와 무기가 밀집돼있을 뿐 아니라 적대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치열한 군사적 대치상황이 남북간에 형성되어 있다. 이같은 한반도의 위기적 상황은 민족생존의 문제를 제기함은 물론, 더 나아가 동북아 정치질서를 흔들리게 하는 불안요소가 되고 있다.

 유럽 냉전의 초점이었던 베를린에서 이미 분단 장벽이 제거되고 이데올로기 대립이 사라진 지금, 이제는 한반도만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냉전지대로 남아있게 되었다. 남북간의 긴박한 군사적 대결상황을 극복함이 없이는 민족통일은 말할 것도 없고 남북한 평화공존의 문턱에 한발도 가까이 갈 수 없다.

 

韓半島 군사적 완충지역화가 통일 조건

 남북간 군사적 대치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족 공동이익의 영역을 찾아서 남북간 합의의 토대를 마련해야 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민족보전을 위한 공동안보개념의 개발이 요구된다. 민족 공동이익개념에서 출발하는 공동안보의 논리는 한반도의 긴장완화, 궁극적으로 통일을 위한 전제이다. 한반도내부의 남북간 군사정세로 보아 공동안보개념은 군비경쟁의 지양과 군축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현실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남북간의 군사적 균형을 깨뜨려서는 안될 것이며 군사적 균형개념을 고려할 경우에도 양적 관념이 아니라 질적 관념에 입각해서 생각해야 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한반도의 군사적 완충지역화 문제는 남북간 공동안보개념의 중심을 이루는 테마임에 틀림없다. 한반도의 군사적 완충지역화는 민족통일의 본질적 기본조건이 됨은 물론이거니와 전략적 측면에서 동북아 평화질서구축의 토대가 될 것이다.

 남북간 공동안보개념에 바탕을 둔 민족공존의 논리에서 출발해 족구통일을 위한 南北協商을 원점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시작해보자. “무기를 녹여 쟁기”를 만드는 민족공존의 논리만이 오늘날 우리민족의 초미의 과제인 남북관계 타결에의 돌파구를 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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