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위한 국제환경 한반도가 독일보다 유리
  • 표완수 편집위원 ()
  • 승인 1989.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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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洪九장관 인터뷰 “유럽과 달리 주변국 저항 크지 않을 것”

남북교섭에서 ‘획기적 양보’는 오히려 북한에 부담줄 수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東獨시민들이 구름처럼 西베를린으로 밀려오는 장면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감격을 안겨주었다. 獨逸과 같은 분단국인 우리의 감동과 부러움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최근의 獨逸사태는 韓半島상황에 전반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가.

  東獨사태 자체가 고르바초프에 의한 소련의 개혁·개방화정책에 따른 국제정치의 변혁과정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韓半島라고 예외가 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 따라서  東獨사태가 北韓에 대해 큰 압력으로 작용하리라는 일반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점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는 오늘의 獨逸사태는 최소한 20년에 걸친 끈질기고 인내력있는 노력의 결과라는 점이다. 東·西獨은 1970년에 정상회담을 열었고, 72년의 기본조약, 73년 유엔 동시가입 등 일련의 노력을 약20년 동안 계속해왔다. 그런 상황에서 西獨은 경제적으로  東獨을 직접 도와주는 한편 EC(유럽공동체)의 모든 혜택을  東獨에 건네주는 창구 역할까지 했다. 이런 경위를 거쳐 오늘처럼 고르바초프가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주니까 거기서 이같은 劇的인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또 하나,  東獨도 그렇고 西獨도 그렇고, 양측 모두 초점이 自由化에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東獨사회와 나라 전체를 民主化하느냐 하는, 말하자면 ‘東獨型 글라스노스트(개방)’인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욱 잘사는 獨逸민족을 만드느냐 하는 데 초점이 있지 하루아침에 정치적 해결을 시도하려고 하지 않는다.

●東歐변혁은 폴란드·헝가리에서 시작돼 東歐 전체로 확산돼가는 도미노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 여파가 北韓에까지 미칠 것으로 보는지.

 北韓은 공산주의세계에서도 일반적 현상이 아니라 예외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東歐는 30여년간 스탈린주의로부터의 탈피 노력을 계속해온 결과 小國 알바니아를 제외하고는 모두그 노선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北韓은 아직도 그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그동안 어려운 가운데서도 그런 체제를 간신히 유지해왔으나 고르바초프시대에 들어서서 국제정치가 개편되고, 공산주의체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도 그 체제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 커다란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단기적으로 볼 때는 東歐는 여러 나라들이 도미노현상적으로 움직이는 데 비해 이쪽에는 中國 한 나라만이 더 있다는 데서 상황이 다르다. 그러나 中國에서도 天安門사태 같은 것이 일어났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中國은 사태를 강력히 제어했으나 제어한 것은 개혁 자체가 아니라 속도 조정에 관한 것이었다.

 北韓으로서도 속도 조정의 필요성을 느끼겠지만 北韓의 특징은 中國의10분의 1도 개방돼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北韓에 대한 개방압력은 계속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번 사태에서 충분히 도출해낼 수 있는 결론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된 배경에는 民主化요구라는 정치적 요소와 東·西獨간 격차 심화라는 경제적 요소가 함께 작용한 것 같은데 변화의 직접적 발단으로는 어느 쪽이 더 강력했나?

 이번 사태의 경우 정치적 자유화 물결의 성격이 강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초기에 西獨으로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잘사는 사람들이었다. 이것은 그들의 東獨탈출 이유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西獨으로 넘어온 사람들은 대체로 젊은층이었는데, 이것은 그들이 미래지향적 思考에서 민주화·개방화를 갈망하는 것이지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결정에 의해 東獨을 떠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개방·개혁정책이 아니었어도 東歐변혁은 가능했을 것인가.

 오늘의 이런 형식으로 나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東歐변혁은 고르바초프가 두가지 결정을 한 데서 나왔다고 본다. 첫째 소련사회의 계속적 발전은 현재로서는 한계점에 도달해 더이상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소련사회를 구조적으로 바꿔야겠다는 기본적 결정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레닌 이후70년에 걸친 소련사회의 실험이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용기였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구조개편을 위해서는 현재의 東·西간의 경쟁체제, 즉 소련을 중심으로 한 위성국가체제를 해체시켜야 한다는 인식이다. 현 위성국가체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소련의 목적에도 역기능적 역할만 한다는 뜻에서 이를 해체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북방정책은 한편으로 크게 성공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사회에서 北韓을 지나치게 고립시키는 결과를 빚는 게 아닌가 여겨지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다. 북방정책은 北韓을 고립화시키자는 정책이 아니다. 지금 전체적 흐름으로 볼 때 우리가 그 흐름에 역행할 수 없다는 점이 전제가 된다. 韓半島만을 그런 큰 흐름의 예외지역으로 만들 수 없다는 뜻에서 북방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북방정책이 가능한 것도 사실상 고르바초프에 의한 사회주의국가들의 기본적 방향전환이 있고 거기에 우리가 적응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우리가 사회주의 국가들을 설득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美國을 포함한 우리 우방들의 北韓과의 관계개선을 방해하지 않겠다는점을 7·7선언을 통해 확실히 했다. 다만 北韓의 선택을 어렵게 해서는 안되겠다, 다시말해 北韓의 체면이 크게 손상되면 좋지 않다는 뜻에서 가급적이면 자극적 언사를 쓰지 않는 것이다. 남북대화에서도 사람들은 극적인 변화를 원하는데 극적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北韓 에 굉장한 부담을 가하는 게 되기 쉽다. 정부로서는 오히려 극적인 변화보다는 北韓이 적응할 수 있는 속도로 변화하도록 속도조절도 의중에 두고 있다.

●西獨은 東獨을 경제적으로 크게 지원하면서도 별 생색을 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우리는 北韓에 대한 작은 선심 하나도 너무 선전적으로 이용하는 게 아닌지.

 정반대다. 7·7선언 이후 정부의 정책은 北韓을 경제적으로 가능하다면 돕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그쪽 체면도 있고 해서 실현되기가 어렵다. 우리로서는 전혀 생색을 내지 않고 일을 하는 게 중요한데 여러 군데서 이걸 해라 저걸 해라 하면 교섭 전에 이야기가 먼저 나가 실제로는 교섭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결과를 빚게 된다. 이 문제는 정부에 맡겨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南·北韓 교섭은 지금까지 양측의 정치적 이유로 크게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측에서 뭔가 획기적 양보조치를 취할 의향은 없는가.

 회담 경위를 보면 우리가 모두 조금씩 양보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획기적 양보를 하지 않느냐는 의견들이 있는데 앞서 말한 대로 획기적 양보처럼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은 없다. 조금 모순된 이야기지만 회담을 성사시키기를 바라는 사람들일수록 우리측에서획기적 양보를 하라는 주문이 많은데 참 어려운 일이다. 회담을 게임으로 놓고 본다면 획기적 양보는 상대방에게 최강수를 두라고 강요하는 것이 되는데 그래서는 일이 되어나가기 어렵다. 어찌 보면 교섭은 ‘프로페셔널’(전문가)들에게 맡겨야지 훈수를 두는 사람들이 큰 소리로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양보하라고 하면 우리도 어렵지만 북한측이 참 어렵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北韓의 입장으로서는 궁극적으로 대화를 통한 개방을 하느냐 안하느냐 결정하는 데 있어서 우왕좌왕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첫째 이유가 고르바초프 이후의 국제정세변화, 특히 사회주의국가들이 개방화로 가는 거대한 이 물결 속에서 과연 北韓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점은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두번째로는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상대방을 인정하면 ‘남조선 해방’은 없어지는 것이 된다. 과연 ‘남조선 해방’을 없애고도 北韓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가. 이것은 근원적인 딜레마다. 지금 우리는 이런 모든 점들을 재조정하는 과정에 있으며 그 과정을 잘 넘어가야 한다. 그런 시기에 統一문제를 강요한다는 것은 역기능을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南·北韓관계진전을 가로막는 요인 중에는 양측의 국내정치적 이유도 있으나 상호불신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군사적 위협이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솔선해서 불신제거를 이끌어나갈 의향은 없는가.

 그것은 양보의 문제가 아니다. 南·北 당국자회담에서도 우리는 그 문제를 의제로 채택해도 좋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로 집약된다. 군사연습은 그 안의 작은 항목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은 南·北간에 마땅히 논의돼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가 그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北韓이 입장정리를 못하고 있다. 군사적 신뢰구축이나 군비통제 문제를 논의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상대방 정부를 인정해야 하는데 北韓으로서는 아직 그런 판단도 서있지 않은 것 같다는 이야기다.

●독일의 경우 프랑스·영국·소련 등 주변국들이 벌써부터 獨逸의 통일에 대해 은근히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데 우리의 경우 南·北韓관계가 매우 밀접한 양상을 보일 때 日本·美國·蘇聯 등 주변국이나 관계국들로부터 비슷한 반응을 받게 되지 않겠는가.

 두가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 그들이 우리가 통일하는 것에 대해 반대나 우려를 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다만 현상이 그냥 평화롭게 유지되면 당사자가 아닌 그들로서는 큰 불편이 없으니까 그냥 그런대로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獨逸에 비해 우리에게는 그렇게 큰 저항은 없으리라고 본다. 다시말해 우리는 中國이나 蘇聯에 대해 군사적·정치적으로 위협을 주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경제적으로는 오히려 상호보완적 역할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美國도 마찬가지다. 단지 日本의 경우 심리적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할 수 있다. 주변에 잠재적 ‘라이벌’이 나타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반드시 큰 장애요인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우리는 獨逸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본다. 北韓이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을 본받아 서서히나마 개혁을 해나가면 南·北관계는 상당히 호전될 수 있다고 본다.

●최근 시거 전 美국무차관보가 北韓을 방문하고 서울에 들러 정치지도자들과 만났고 그에 앞서 소련의 카피차 전 외무차관도 우리나라를 방문했었다. 이전에 南·北韓문제의 실무책임자들이었던 인사들의 교환방문은 뭔가 묘한 여운을 남기며 美·蘇가 韓半島문제 해결과 관련, 모종의 역할을 개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막후에 무슨 절충안이 있어서 교섭을 하러 다니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美國이나 蘇聯은 東·西간의 긴장완화가 호조를 보이고 있는 현재 어떤 의미에서 冷戰체제의 유물이라고 볼 수 있는 韓半島문제만 그대로 방치해둔다는 것은 부자연스런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東·西간의 대화·협조관계에 발맞춰 南·北韓과 여타 국제사회와의 관계도 마땅히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원칙하에서 움직이는 것이지 묘안을 만들어 뭔가를 당장에 타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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