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계획은 선언적 의미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89.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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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소련’ 국제학술대회에서 韓·日 학자들 주장

지난 달 4, 5일 양일간 서울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렸던 韓國슬라브학회 주최 제3차 국제학술대회에서는 韓·日·蘇 3개국의 학자가 각각 자국의 입장에서 시베리아개발에 대한 논문을 발표, 주목을 끌었다. ‘아시아와 소련 : 과거와 미래’라는 대주제에 딸린 제4분과회의에서는 ‘시베리아 : 과거와 미래’라는 소주제로 학술회의가 진행됐다. 소련과학아카데미 극동경제연구소장인 파벨 미나끼르 박사, 일본 홋카이도대학의 키이치 모치주키 교수 및 국내에서는 시베리아개발전문가인 세종연구소 鄭漢求박사가 주제발표를 하였다.

 소련의 시베리아개발계획은 지난 해 7월 소련공산당정치국회의가 〈2천년까지의 極東경제지구, 브리야트자치공화국 및 치타주 생산력의 종합발전계획〉이라는 긴 이름의 계획서를 발표하면서 서방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약칭 〈시베리아 2천년계획〉은 시베리아지역을 장래 소련 전체 또는 국제적 분업에 편입시키는 것을 전제로 자원과 생산 기반을 정비, 효율높은 대단위 종합산업단지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베리아의 산업생산고를 서기 2천년까지 현재의 2.5배로 끌어 올리고 발전량과 석유생산량, 천연가스 생산량을 최고 9.3배까지 높이는 등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놓고 있는 계획이다. 그 범위와 규모의 방대함 때문에 고르바초프 경제계획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일본 등으로부터도 크게 주목되고 있다.

 

시베리아, ‘산업발전지역’으로 전환

 파벨 미나끼르 박사는 국방대학원 이석호씨가 대독한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경제협력〉이라는 그의 논문에서 시베리아의 위상을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경제정책과 관련지어 설명했다. 미나끼르 박사에 따르면, 소련의 경제지역은 산업발전지역과 자원제공지역으로 크게 구분되는데 시베리아는 바로 자원제공지역으로서 지역 자체의 세입이 없고, 과거 지방정부의 결정권도 없었기 때문에 산업발전지역과 그 성장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집권과 더불어 시베리아라는 광대한 자원제공지역을 산업발전지역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2천년대 시베리아개발계획을 세움으로써 소련경제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발전 목표에 큰 어려움을 주고 있는 요인은 △연료·에너지의 부족△투자자금의 결핍 및 건설능력 불비△노동력, 특히 숙련공의 부족△이 지역 자원 수출상품의 국제경쟁력 약세 등이다. 미나르끼 박사는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대외무역에 대한 지방분권화 및 합작기업의 설립, 특수 경제구역의 설정 등을 내세우고 있는 것도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고 시베리아개발을 추진코자 하는 이유에서 비롯됐다고 덧붙였다.

 위의 사항에 대해서 3개국 학자들은 공통의 인식을 가지고 수긍하고 있으나, 한국측의 鄭漢求박사는 〈시베리아의 개발 : 한국의 시각〉이라는 논문을 통해 소련이 선언적 의미의 시베리아개발만을 내세우고 있을 뿐, 경제특구를 개설한다거나 하는 등의 계획에 따른 구체적 행동은 보이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소련이 이렇게 선언적인 면만 내세우고 행동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한 韓·蘇 시베리아 개발협력은 낙관보다는 비관적이라는 견해를 표명했다.

 〈시베리아의 개발 : 일본의 시각〉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일본학자 키이치 모치주키 교수는 소련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려 든다고 비난하고, 특히 일본의 경우는 북방4개 도서에 대한 정치적 해결의 진전이 없이는 日·蘇 경제협력이나, 시베리아개발에 대한 공동의 노력은 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일본은 소련에 가지 않아도 세계 다른 곳에서도 훨씬 더 편하게 이익을 많이 남길 수 있다면서 일본의 기업이 고생하면서 시베리아같은 악조건 지역에 구태여 들어갈 필요가 있겠느냐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韓·日 두 나라의 학자는 시베리아를 포함한 소련과의 관계에 대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경제적인 측면은 물론 정치적 장래를 위해서도 상호협조할 관계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경제협력은 급속히 이루어질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진전되리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와 같은 韓·日 양국학자의 견해에 대해 蘇聯측의 입장을 대변하여 토론자로 나선 소련과학아카데미 동양학연구소 보론쪼프 박사는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시베리아 개발계획은 결코 선전용이거나 선언적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면, 앞으로 빠른 시일 안에 여러가지 가시적인 조치가 나타날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한국, 내년초 본격 진출 희망

 우리나라에서 현재 소련에 진출한 회사는 韓·蘇 제1호 합자회사를 설립한 진도모피가 유일하다. 진도모피가 지난 3월 소련 인터링크사와 자본금 50만루블(5억3천만원상당)을 50대50으로 투자해 설립한 이 회사는 지난 10월12일 모스크바 인투리스트호텔에 첫 직매장을 개설, 업무를 시작했다. 한편 현대그룹의 李丙圭이사는 “현재 沿海洲산림청과 합작투자해서 원목, 제재목 등을 생산하여 전량 한국에 수출하기로 협의중이다”라고 밝히면서 내년 봄에 합작회사로 발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베리아개발이 한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인 반면, 일반인들은 기대치에 따라 갖가지 해석을 내린다. 그러나 소련은 국교 미수립국인 만큼 그 경제협력은 두 나라의 관계정상화에 얼마 만큼 기여하느냐에 촛점이 모아지며, 그 여파가 한반도 긴장완화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확산될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시베리아 개발문제는 또 對美무역종속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로 분석되기도 한다. 국제민간경제협의회 李昌材박사(소련경제전공)는 “70년대 중동경기가 우리 경제에 호황의 계기가 됐듯이 시베리아개발이 가능하다면, 이는 對美무역종속을 극복할 수 있는 조건이 될 것이므로 한국사회로서는 현재의 경제구조를 타개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이에 따른 사회적 여파도 엄청나게 클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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