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逸에서 배울 것 많다
  • 박권상 (주필) ()
  • 승인 1989.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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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게임이론에 ‘罪囚의 딜레마’라는 상황이 있다. 함께 범죄를 저지른 두 범인이 구속되어 따로따로 검사의 취조를 받는다. 그들은 둘 다 범행을 自白하지 않으면 두사람 모두 1년형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사람이 모두 자백하면 각각 7년형을 받게 되고, 한사람은 자백하고 다른 한사람이 자백을 끝내 거부하면 자백한 者는 풀려나되 자백을 거부한 者는 무려 12년형을 각오해야 한다.

 여기에서 두사람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어느 한사람이 자백하고 다른 한사람이 자백하지 않는 경우 자백한 자에게는 최선의 결과가 되므로 자백이란 그만큼 매력적이다. 상대방은 12년간 고생하겠지만 본인은 풀려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두사람 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다같이 7년형을 받는 위험부담이 있다. 상대방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의 이익을 極大化(석방)하려 할 때 다같이 비싼 손해(7년형)를 봐야 하는 것이다. 만일 서로를 신뢰하고 끝까지 협력해서 둘 다 자백을 거부한다면 비록 ‘석방’이라는 最善의 결과를 얻을 수는 없지만, 두사람 모두 1년형의 가벼운 손해에 그치고 만다. 次善의 방법이다. 그러나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罪囚의 딜레마’에 비유되는 分斷극복 문제

 獨逸과 韓國의 통일문제를 검토해보면 類似點도 있고 相異點도 있으나 적어도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罪囚의 딜레마라는 상황만은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동서독과 남북한이 다같이 分斷의 현실,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더불어 사는 기술을 익힌다면, ‘죄수의 딜레마’에서 볼 수 있는 次善의 시나리오인 상호협력형에 해당한다. 분단이라는 현실을 대담하게 인정하고 국제사회에서 두개의 단위로 사이좋게 행세하면서도 서로 남남이 아닌 특수관계를 선언하여 상호교류하고 협력한 것이 독일의 경우였다. 戰後 25년만에 빌리 브란트가 주도한 ‘東方政策’이 지닌 정치적 지혜였다. ‘정치는 현실’이다. 분단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분단의 장벽을 일거에 무너뜨리지는 못하지만 상대방을 인정·이해하고 상호접촉·교류함으로써 분단의 인간적 고통을 완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브란트는 ‘1민족 2국가’로의 협력관계를 다져감으로써 이데올로기가 갈라놓은 유럽대륙의 분단을 극복하는 데 앞장섰고, 동서화해가 이루어지고 ‘하나의 유럽’이 성립되는 먼 훗날에 동서독일이 재결합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원대한 비전이요 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독일의 경우 이데올로기를 떠나 주변국가들이 어느 한나라도 통일된 독일을 원치 않는다. 막강한 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의 炯眼, 그의 洞察力은 옳았고 적중했다. 마침내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생명력을 잃고 서독이 다져놓은 자유와 정의 및 번영의 체제에 동독사람들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소련에서 불기 시작한 ‘개방’과 ‘개혁’의 거센 바람 앞에 동독국민이 全面봉기하였고 마침내 동독 당국은 스스로 쌓아올린 추악한 장벽을 터놓고 말았다. 동서독 두체제가 多元的 民主主義와 사회정의 및 시장경제라는 몇가지 기본적인 원칙에서 상호수렴과정을 밟고 있다. 실로 革命的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사람들은 섣불리 ‘統一’이라는 명제를 내놓지 않고 있고 기존의 국제질서 속에서 두 민주주의적 독일의 연합 같은 것을 구상하고 있다. 서독이 서방진영에, 동독이 바르샤바조약에 남아 국제질서는 깨지 않는 가운데 같은 민족으로서의 상호협력관계를 두텁게 할 것이 분명하다.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되는 정도로 동서관계가 호전되고 통일독일이 주변국가에게 위협이 안된다는 보장을 줄 수 있는 상태에 이르면 아마도 中立化統一같은 시나리오가 21세기초까지는 가시권에 들어설 것 같다.

 한편, 우리 형편은 어떤가. 남북이 다같이 ‘통일이 지상과제’라는 명제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서로 상대방 체제에 흡수되는 사태만은 결사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여왔다. 당연한 일이다. 통일이라는 명분 아래 누가 죽음을 택할 것인가. 어느 한쪽이 최고이득을 얻기 위해서 물리적 힘을 동원할 때, 다른 한쪽도 여기에 대처해서 방어태세로 나설 수밖에 없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보여주는바, 어느 한쪽이 석방되고 다른 한쪽이 12년형을 살아야 하는 不均衡, 즉 어느 一方이 다른 一方을 지배하는 통일은 1950년의 6·25사변에서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불신의 골을 더욱 깊이 파놓고 휴전선이라는 장벽을 더욱 높여 놓았다. 그리고 40년이 흘렀다. 아직도 우리민족은 ‘죄수의 딜레마’에서의 相互不信型과 一方的 勝利型에서 맴돌고 있다. 분단 45년인데, 단 한통화의 전화도, 단 한장의 편지도, 단 한사람의 민간인도 자유롭게 교환될 수 없는 냉전의 극한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통일은 하루도 늦출 수 없는 至上課題”라고 주문처럼 되뇌이고 있다. 심지어 “모든 통일은 至上善”이라는 낭만적인 소리도 들리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이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가면 말이 막히고 만다. 전쟁을 통한, 물리적 힘겨루기의 통일이라면, 그것조차 至上善이라면 할말이 없다.

 

우리도 자유왕래로 냉전구조부터 벗어날 때

 그러나 냉철하게 따질 때 먼저 남북이 동서독처럼 평화적인 공존관계를 맺어야 한다. 저쪽처럼 분단의 장벽을 허물지는 못할지라도 우선 準戰時 대치상태에서 벗어나 서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고 서로 손잡고 경제적 합작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냉전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냉전심리에서 풀려나지 못한 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아직 북에서는 북 자체내의 여행의 자유조차 없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통제된 사회인데,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북을 적이 아니라 7·7선언이 지적한 대로 民族共同體로 보는 발상전환에서 대담한 화해조치를 시도해야겠다. 그럴수록 서독처럼, 정치적 자유를 확대하고 정의에 입각한 社會安定을 구축하고 勞使가 협동하는 바탕에서 경제적 성장과 번영을 누려야 할 다급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다. 統一이라는 지상목표를 향해 自由와 平和라는 두바퀴의 수레를 서서히 그리고 착실히 몰고 가야 하는 것이다. 西獨에서 배울 것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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