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실력자들
  • 박중환 편집위원대리 ()
  • 승인 1989.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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黨元老ㆍ기술관료ㆍ빨치산2세로 三分

“金日成은 건재하다. 平壤의 거리는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의 <로동신문>과 중앙방송에는 사회주의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보도가 부쩍 늘어났다. 平壤의 실력자들 사이에도 외견상 이렇다할 변화는 없다. ”북한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연구하는 기관ㆍ단체의 학자들은 최근 平壤의 동태를 이렇게 분석한다.

 그러나 머지않은 시기에 북한의 권력구조에도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러한 전망은 안으로는 평야축전 이후 그동안의 功過를 가리는 자리바꿈이 뒤따를 것이며, 밖으로는 東歐의 개방혁명 등에 따른 대외정책 전환에 대비해서 요직 변동이나 개편작업이 있을 것을 예상한 데서 나오 것이다. 이러한 변동이 있다면 이를 근거로 내년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제7차 전당대회와 제9차 최고인민회의 개최여부, 金日成-金正日의 권력승계의 시기와 개방으로의 정책전환이 과연 가능한가 등을 점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철저히 폐쇄적인 平壤의 권력내부를 정확히 들여다본다는 것은 어렵다.

 북한의 모든 권력은 黨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나온다. 상무위원은 金日成ㆍ金正日ㆍ吳振宇 순으로 3명, 사실상 金 부자가 좌지우지 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만72살인 吳는 인민무력부장으로 군부의 제1인자이며, 혁명원로세대와 보수세력의 代父와 같은 존재이다. 이 때문에 金正日을 축으로 한 신진그룹의 부상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북한의 개방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라는 평을 받는 인물이다.

 반면 그는 군부내에서 金日成 유일체제를 굳히는 데 앞장서 反金세력을 숙청한 공신이며, 권력의 흐름을 잘 타는 영리한 인물이기 때문에 일단 金正日에게 권력승계가 순조롭게 이뤄지면 父子세습에 협조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와 달리 북한의 일선 사단장급이 40대로 교체돼 고령인 吳의 군부내 영향력은 줄어든 반면 金正日의 파워는 강해졌을 것이라는 점에서 吳의 군부내 평가는 과장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북한의 실력순위를 나타내는 黨 정치국 서열은 金日成 金正日 吳振宇에 이어 朴成哲(부주석) 李鐘玉(부주석) 延亨?(총리) 徐哲(黨검열위원장) 金永南(외교부장) 桂應泰(黨비서) 許錟(黨비서) 金炳浩(黨비서) 徐允銀(平南도당책) 姜成山(咸北도당책) 순으로 이들 13명은 정위원, 이어 10명은 후보위원이 있다. 후보우원 중 1위는 군참모총장인 崔光이며, 韓成龍(黨비서) 玄武光(국가검열위원장) 洪成南(부총리) 金福信(부총리) 趙世雄(平北도당책) 洪時學(咸北도당책) 鄭俊基(부총리) 姜希源(부총리) 李善實(여) 순서다. 이 서열은 지난 9월9일 북한정권 수립 41주년 기념식의 ‘主席壇’명단에서 나온 것이며, 그 이후 변동은 거의 없다. 주목할 만한 것은 86년 10월 이후 3년여 동안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던 徐哲(82)이 지난 11월19일 도ㆍ시ㆍ군 인민대회에 참석, 보수원로로서 자신의 건재함을 확인시켰다는 점이다.

 이들의 성향을 보면 원로, 기술ㆍ전문직관료, 金正日체제를 주도하는 ‘빨치산2세’등 3개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혁명원로그룹은 吳眞宇 徐哲 朴成哲(73) 李鐘玉(78) 崔光(72) 玄武光(76) 등이다. 기술관료그룹은 桂應泰(71) 洪成南(65) 延亨?(67) 姜希源(68) 趙世雄(62) 鄭俊基(65) 등으로 비교적 개방성향을 많이 갖고 있는 편. 이들은 그동안 경제개발정책의 부진으로 서열이 뒤로 밀리거나 숙청되기도 했지만 계속 재기용되어온 사실로 미뤄볼 때, 언젠가 개방정책이 가시화되면 許錟(64) 김영남(64) 등 외교관료그룹과 함께 보다 실세화된 정치관료로 변신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보다 주목해야 할 그룹은 金炳浩(65) 徐允銀(60) 姜成山(63) 등 金正日 통치체제 구축에 앞장서온 이른바 ‘빨치산2세 핵심세력.’ 서열에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이 그룹에 속해있는 親 金正日세력은 金文變(68ㆍ대장ㆍ인민무력부 부부장) 金江煥(58ㆍ중장ㆍ黨군사부장) 金斗南(61ㆍ중장ㆍ포병사령관) 등으로 군핵심 요소요소에 박혀 있다. 金正日의 왼팔이자 萬景臺학원 1기로 ‘빨치산2세’그룹의 기수격인 吳克烈(60)의 향배는 金正日 후계체제의 앞날을 분석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는 지난해 2월 군총참모장 자리를 갑자기 崔光에게 내준 뒤 모습을 내보이지 않고 있다. 吳의 갑작스런 퇴장은 金日成이 혁명원로들을 안심시키고 신진세력의 급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취한 조처로, 金日成은 吳의 자중을 경고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와 반대로 吳의 서열이 32위 수준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외부로 노출되지 않은 중요한 직책을 갖고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 분석은 87년8월 李鎭洙 국가보위부장의 사망 이후 부장 자리가 비어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吳가 숙정됐다면 平壤의 핵심부는 소련의 개방정책, 中國의 天安門광장 사태, 東歐의 개방혁명 등 일련의 東ㆍ西정세의 급변과 관련해 위기감을 심하게 느끼고 그를 속죄양으로 보수화를 시도한 것으로 볼 수있다. 물론 吳에게 중대한 실책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반면 吳가 국가보위부장직에 있다면 아주 은밀하게 金日成의 생존시 金正日의 권력승계를 위한 圖上연습을 구체적으로 짜고 있을지 모른다.

 요즘 平壤의 실력자들을 두가지 유형으로 나눈다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소리와 東ㆍ西獨 국민들의 함성을 피부로 절감하며 개방에 대해 고민하는 그룹과 고르바초프 페레스트로이카가 빨리 무너지기를 기대하는 그룹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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