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걸음 딛는 臺灣경제
  • 타이베이ㆍ조용준 기자 ()
  • 승인 1989.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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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主化의 새벽 맞는 ‘붐타운’ 타이베이에서 번영과 갈등의 明暗을 본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중심의 번화가 敦化路에 호화롭게 우뚝 솟은 아시아 월드 호텔 주차장에는 밤마다 연회장으로 몰리는 흰색 캐딜락, 벤츠, 볼보 승용차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가까운 夜市場도 푸짐한 中國 음식을 즐기며 산더미같이 쌓인 물건을 고르는 인파로 밤늦도록 북적거린다.

 마구 뛰어오르는 대만 株價指數는 10,000포인트를 넘은 지 이미 몇 달이 지났고, 지난 3년간의 살인적인 대만달러 절상에도 불구하고 수출은 쾌조를 보여 무역 수지 흑자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1백억달러를 거뜬히 넘어선 1백40억달러 이상 기록될 전망이다. 지난 27년간 평균 9%의 숨가쁜 성장가도를 달려온 臺?은 수출 세계13위, 외환보유고는 일본 다음으로 많은 7백50억달러. 이것은 수입만으로 나라 살림을 1년 이상 버티어나갈 수 있는 액수로서 외환보유고 세계2위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지난 4년간 무려 2배로 뛰어 올해 7천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두툼한 지갑을 넣고 해외 여행길에 나가는 대만인들은 올 한해만도 줄잡아 70만명 정도. 경제 규모에 비해 대만은 분명히 지난 반세기 동안에 전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경제신화를 만들어냈다. 아울러 지난 40년간의 國民黨一黨 시대 종식이 예상되는 12월총선으로 정치신화도 만들어낼 듯하다. 경제적 풍요의 계절을 맞이하여 지난 반세기 도안 內燃하고 있던 정치ㆍ사회 문제 등을 해소하기 위한 일련의 정치민주화 조치가 경제성장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李登煇 총통체제 출범과 함께 시작된 위로부터의 개혁이 바야흐로 陣痛과 成熟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지난 3년간의 난관 슬기롭게 극복

 타이베이의 음식점이나 상점 그리고 길거리에 나서면 “메이유”(沒有)라는 말을 자주 듣게된다. “메이유”라는 말은 “안된다, 없다”라는 뜻으로서 얼핏 부정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그 말 속에는 넉넉한 여운이 있다. 상점에서 원하는 물건이 없을 때 주인은 처음에는 “메이유”라고 말하지만 대부분 적절한 次善策을 제시함으로써 그것이 최종적인 부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혼잡한 교통사정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질서가 잡혀 있고, 살벌한 끼어들기가 별로 없으며 간혹 있다 해도 그것을 굳이 안간힘을 써가며 막으로고 하지 않는 운전자들을 볼 때 그들의 여유있는 생활감정을 엿볼수 있다. “메이유”는 지난 85년 擡? 달러가 美달러화에 대해 급속히 절상되기 시작하면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擡?의 기업가들이 美國 정부의 통산압력에 굴복한 정부에 대해 쏟아부었던 비난과 원망의 悲鳴이기도 했다. 그러나 4年이 지난 지금 대만의 기업인이나 정부관리들은 어지러운 증시과열 현상, 심각한 주택ㆍ오염 문제 등 대만의 身熱을 인정하면서도 그 어는 때보다도 자신감과 활력에 차 있다.

 “커다란 추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형상이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錢得(프레드릭 첸) 행정원 건설위원회 의장 (우리나라 경제기획장관)은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과 비슷한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지만, 체제 자체에 대한 도전으로 보지는 않는다. 다만 열정으로 본다.” 기자가 찾아간 종합무역전시장에는 때마침 ‘89타이베이 섬유 전시회’가 개막되고 있었다. 개막 전 기자회장에는 현지 언론은 물론이고 관계기관이 초청한 20여명의 외국 기자들도 초청되어 있는 걸로 보아 이른바 사양산업으로 불리는 섬유업계의 활로를 마련하려는 당국의 세심한 배려를 읽을 수 있다.

 經濟部 국제무역국 吳慶黨 부국장은 “더이상 대만달러가 절상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지난 3년간 美달러에 대해 무려 58%나 평가절상을 했기 때문에, 우리 중앙은행은 물론 美정부도 더 이상 평가절상하라는 압력을 가할 처지가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한다.

 대만이 대내외의 많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수출 富國으로 성장할 수 있는 비결은 유연한 대응능력과 발빠른 수출시장 다변화 그리고 부가가치가 높은 수출상품 개발로 압축된다. “지난 3년간이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다행히도 기업들의 뛰어난 적응력 덕분에 그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우리 기업들의 적응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이 기쁘다”라고 덧붙인다. 미국의 통상 압력을 줄이기 위해 대만 정부는 과감한 수입개방과 대미 구매사절단 파견 등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통상외교를 폈다. 또한 미국에서 30억달러 어치의 금덩이를 사들이는 등 중국인 특유의 商術을 발휘해 대미 무역흑자를 작년에 1백억달러로 끌어내렸고, 수출비중도 30% 정도로 낮추어 워싱턴의 무역보복 銳鋒을 피했다. 그 대신 유럽지역의 수출을 상당부분 늘리는 데 성공했다.

 

성장의 ‘發電所’ 중소기업

 중소기업은 이 섬나라 경제력의 發電所다. 전체 기업의 90%에 해당하는 75만개 중소기업(유통업 포함)은 적게는 5~6명에서 많게는 2백여명의 종업원들을 둔 有機的인 조직이다.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수출산업과 연계되어 있는데 덩치 큰 대기업보다 오히려 유연성과 신축성이 더 잘 발휘된다고 한다.

 “대기업들은 노사분규 등으로 골머리를 앓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에는 노사갈등의 요소가 훨씬 적다”고 經濟部 中小企業處의 王覺民 處長은 말한다. “많은 중소기업이 친인척이나 친구들이 함께 운영하는데다가, 사장이 침식도 같이하는 등 열성적이므로 갈등의 요소가 그만큼 적다.” 大企業 사장의 風貌를 보이는 50대 王처장은 또 “중소기업 중심체제로 경제를 운용하고 있는 우리는 한국과는 달리 중소기업에 대한 선별적인 지원이 아닌 평등한 지원을 해왔다. 골치 아픈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그런대로 잘 굴러간다”라고 말한다.

 

평등사회가 갈등의 완충 작용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대만의 농촌은 잘 정돈된 농지와 곳곳에 볼 수 있는 널직한 저수지 등 발전된 모습을 곧 알 수 있다. 대만 행정원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몇 년 동안 부쩍 늘어난 副로, 소득분배가 왜곡된 점도 있긴 하지만, 상위 소득계층 20%의 소득이 하위 계층 20%가 차지하는 소득에 비해 지난 64년 5.3배에서 78년에는 4.8배로 떨어졌고 그 이후 5배 이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도시와 非 도시간의 가구당 소득 비교는 작년의 경우 중소도시는 대도시의 80%, 시골은 70% 수준. 계층간의 소득 분배가 비교적 고르게 되어 있는 나라임을 알 수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農家에서 농사로 벌어들인 수입이 전체 수입의 약 3분의 1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주택소유율을 보더라도 최근의 주택가격 폭등이 있기 전까지 78%를 보이고 있다. 주택보급률은 지방으로 갈수록 높은데 타이베이 일원에는 주택소유율이 5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대만의 노동 문제는 求人難이 특징

 “民族ㆍ民權ㆍ民生을 근간으로 한 三民主義에 입각, 많은 사람들의 생활 보장이 대만정부수립 이후 줄곧 강조되고 시행돼왔던 것이 우리의 상대적 강점이라 할 수 있다.” 중국文化大學 韓國연구소장 林秋山 박사의 진단이다.

 2년전 계엄령해제 이후 노사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공개적이고 적극적으로 대두되긴 했지만, 대만의 경우 8백만 전체 취업인구 가운데 불과 4분의 1 정도인 2백만을 조금 웃도는 수가 초기단계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과 비교한다면 우리는 노사문제가 없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업가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의 경우와 같은, 노사간의 증오에서 비롯된 전투적인 양상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곳의 노사 문제는 빠른 속도로 불어나는 국가와 기업의 재산에서 어느 정도 자신들의 몫을 키워가는 데 주력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지켜왔던 유교적인 근면성과 직업윤리를 버리고 보다 많은 것을 단기간에 얻기 위해 투쟁적으로 선회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분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러나 실제 모습을 좀더 들여다보면 지속적인 고도성장의 결과 현재 대만이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인력난이기 때문에 근로자들은 구인난이란 경제사정을 배경으로 노사협상에 있어서 굳이 투쟁적일 필요가 없다는 게 현지인들의 지적이기도 하다. 불법 체류 외국 노동자들이 약 20만에 달한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가 구인난의 일면을 보여준다.

 

올해 외국인 투자 최고치 기록

 폭발적인 대만 내수시장과 인근 아시아 지역 시장 진출을 노리는 외국기업의 對대만 투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올해 9개월간 외국인 투자인가 총액은 작년의 같은 기간에 비해 거의 2배에 가까운 18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외국인 투자가 허가된 지난 52년이래 최대 투자액으로 연말까지 20억달러를 쉽게 넘을 전망이다. 폭발적인 내수시장의 자동차 수요를 겨냥한 美포드사의 현지공장의 경우, 판매 실적이 지난 5년사이에 무려 5배가 늘어나 올해 10만대의 판매실적을 보였다. 포드 공장은 올해 초 상여금인상을 요구하는 근로자들의 노동쟁의로 한때는 공장 가동을 멈추기도 했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수익 덕분에 근로자들의 요구에 순순히 응해, 노사분규의 격랑에 휩쓸리지 않았다. 12년의 의무교육 과정을 마친 숙련공이 풍부하고 너무 아까운 황금시장이기 때문에 공장문을 닫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외국에서 돌아오는 투자만 활발한 것이 아니다. 대만 기업가들도 넘치는 외화를 기반으로 그 어느 때보다 해외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들은 주로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인근 동남아 국가들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투자당국에 따르면 올 10월까지의 외국신규투자가 작년의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3배가 늘어난 6억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에 1억달러, 말레이시아에 8천5백만달러, 태국에 3천만달러, 필리핀에 1천만달러 수준의 투자실적을 보이고 있는데, 실제투자액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 대만의 오랜 경쟁국

 우리나라와 함께 아시아의 4마리 龍으로 불리는 대만은, 문화적인 유사성, 식민지 경험, 그 이후 분단 상황, 빠른 경제성장 등으로 인해 자주 비교의 대상이 되곤 한다. “국민당이 대륙에서 이곳으로 이주할 때 많은 금과 고급 기술자들이 함께 왔기 때문에 경제적인 출발이 비교적 순조로웠다. 그러나 한국의 겨우, 일본이 물러가면서 기술과 자본이 함께 빠져나갔고, 그 후 전쟁으로 쑥밭이 되었다. 그것을 비교한다면 한국의 경제발전 속도는 우리보다 훨씬 빠른 것이다.” 林박사의 말이다. 그는 그러나 한국인이 외양과 형식을 더 중시해 그쪽에다 에너지를 쏟는 데 비해 자신들은 내용을 더욱 중시하는 실용적이고 검소한 일면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한다. 王처장은 “중소기업의 한계를 느끼곤 한다. 다각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고는 있지만, 특히 최첨단 산업으로 이전하기 위한 R&D부분이 취약하고 화학공업 등 중화학공업의 기반도 약해 기초재료의 안정적인 수급 불안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中華經濟硏究員의 丁豫嘉 박사는 “현재 대만이 소득소준이나 회환보유고 등 수치상으로 한국을 앞서 있긴 하지만 향후 5년이나 10년 동안 계속해서 그 위치를 고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내다본다. 대만의 정부관리나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의 자동차산업 등 중공업의 비교우위를 강조하는 동시에 그들이 겪고 있는 외교적 한계를 시인한다. 서울올림픽 이후 국제적인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에 대해 드러내놓고 부러워한다. 한국의 ‘잠재력’에 대한 찬사와 경계를 함께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개선으로 인해 韓ㆍ擡간의 우호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온다면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라고 政治大 國際關係硏究所의 鄭端耀 박사는 우려를 표시한다.

 

‘悲精城市’

 주말 오후 한 영화관에는 대만의 젊은이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悲精城市’(슬픔의 도시)라는 영화를 보기 위한 것이다. 이 영화는 민주화 조치 이전만해도 철저하게 禁忌視되어왔던 40여년전 2ㆍ28사건을 다룬 ‘電撮’(영화)이다. 2ㆍ28사건은 1947년 2월28일 밀수담배를 파는 女人에 대한 국민당 정부군의 가혹행위로 인해 수백년전부터 대만에 살아온 이른바 本省人들과 정부군이 충돌, 많은 주민이 살해되고 본성인 출신의 지식인 탄압을 시작하게 한 뼈아픈 사건이었다. 실세인 본토 출신과 대만 원주민들간의 깊은 갈등의 골을 이 영화는 흥분하지 않고 잔잔한 화면을 통해 보여준다. 지난 9월 빈(wien)영화제 수상작으로 국내상영금지 조치가 철회되어 10월14일 개봉한 이래 매일 표를 구하기 어려워 상영시간 전에 극장 앞이 혼잡을 이룬다. 本省人이 현재 擡?인구 2천만 중 80%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사실상 대만 정부의 5院 (행정원, 입볍원, 사법원, 감사원, 고시원)을 비롯해 각 지방의회 長을 대륙출신이 장악하고 있고, 큰 기업들도 대부분 대륙 출신 1~2세들이 거머쥐고 있다.

 지금 대만의 일류 호텔이나 식당가에서는 새빨간 천 위에 12월2일에 있을 총선 후보의 금빛 이름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대만에서는 입법원(국회)의 일부 改選과 省ㆍ市長, 대만성 의회, 타이베이ㆍ카오슝市 兩市으회 선거 등을 위한 투표가 12월 초 일제히 시작된다. 이번 선거는 대만정부의 계엄령해제, 야당의 합법화 이후 처음으로 실시되는 선거로서 그 어느 때보다 대만의 정치ㆍ사회적 장래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 중요한 선거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제1야당인 民主進步黨(民進黨)이 대만정부독립론을 주장함으로써 그동안 대만이 유지해왔던 對중국관계의 향방에 복잡한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집권國民黨의 ‘안정과 번영’인가 아니면 야당이 표방하는 ‘개혁과 변혁’인가라는 쟁점을 놓고 투표를 앞둔 타이베이 시내는 온통 들떠있다. 각 후보의 사진과 國民黨의 상징인, 蔣价石 생일 1백주년을 기념하는 ‘祈念先總統蔣公誕辰’이란 화려한 축하아치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번 선거는 그동안 쉴 새 없는 변화를 겪은 대만인들이 치르지 않으면 안되는 또 하나의 변화인 셈이다.

 

위로부터의 개혁

 최근 몇 년간의 변화를 보면 우선 蔣經國 總統이 사망(88년1월)한 뒤 ‘蔣家‘에 의한 실질적인 대만 지배가 끝났다. 대만 출신의 李登揮 총통이 國民黨의 총재로 취임한 것을 시작으로 行政院 수반으로 역시 대만 출신의 李煥 총리가 취임(89년 6월)함으로써 李ㆍ李체제가 확립됐다. 이에 앞서 국민들에게 중국대륙 방문이 허용됨으로써 대만인의 대륙 사정을 국민들이 직접 이해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번 선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입법원 일부의 개선과 省ㆍ市長의 선거라고 할 수 있다. 입법원에는 ’본토 수복‘의 명분을 내세워 선포된 계엄령하에서는 선거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47년 대륙에서 선출된 80세 이상의 고령 의원들이 약1백여명이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고령의 의한 사망과 함께 올 1월 자진퇴임 조례가 시행되면서 퇴진의 길이 열림으로써 이번 선거를 통해 대만 출신의 대표의석과 대륙 출신의 의석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뤄 대만 本省人들의 民意가 고르게 반영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런 점으로 이번 선거는 ’대만정치의 대만인화‘로 진입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대만의 2000년까지의 장기 전략을 보면, 총국민생산 6.5~7%의 고속성장, 1인당 국민소득 1만3천달러, 대폭적인 공공시설 확충 등 과감한 청사진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정치적 낙후성, 출신지에 따른 깊은 갈등, 10억인구의 중국을 대해야만 하는 심리적 압박감 등 고질적인 숙제를 안고 있는 대만은 민주화의 경제 성공에 따른 진통을 그 나름대로 겪고 있다. 한국과 대만 그 어느쪽이 진정한 龍이 될 것인가. 그 결말은 90년대 동아시아경제의 재편에 중요한 영향을 줄 것이다.

 

 

臺?의 外交ㆍ統一정책

고립의 외투 벗고 本土와 교류촉진

 작금의 臺? 外交는 이른바 ‘强性外交’ ‘柔軟外交’의 차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實用主義외교’로 규정될 수 있다. 몇달전 나이지리아 등 제3세계 3개국과의 국교수립은 지난 71년 10월 UN에서 축출된 뒤, 中國 붐의 틈바구니에서 길고 긴 고립의 시련을 겪어야 했던 擡?정부에게는 작은 승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20여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한 경제력을 기초로 국제무대로의 捲土重來를 노리고 있는 ‘타이베이政府’는 해협 건너 인구 10억의 거대한 ‘本土 中國’과의 이른바 ‘평화적인 경쟁’을 기본으로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중국’을 표방, 첨예한 敵對 관계에서 벗어나 人的 교류를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화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孤立主義에서 과감히 탈피한 중국과 국교를 맺고 있는 나라와의 二重修交 노력이 어느 때보다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외교문제와 통일문제는 별개의 문제로 추구되어야 한다.” 國民黨의 싱크 탱크인 政治大學 國際關係연구소 李明박사의 설명이다. “臺?은 한국과는 달리 정부간의 공식 접촉은 없다. 우리 정부도 몇 년전만하더라도 중국 당국의 민간교류 제의에 대해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통일 정책은 국민의 의견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민간 차원의 상호접촉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라고 李박사는 말한다.

 이곳에서 ‘深親’으로 표현되는 친인척 방문은 지난 6월 北京사태 이후 다소 주춤하긴지만, 계엄령해제 이후 2년전 本土방문이 공식 허용되자 양측의 인적ㆍ물적 교류는 급증해 지금까지 40만명의 대만인이 本土를 방문했고 상호 교역량은 작년 25억달러를 넘어섰다. 본토내 대만인의 투자 역시 상당 수준 진행되고 있다. 북경이 일관되게 제시하고 있는 ‘1國2體制’의 통일방안을 단호히 거부하고 있는 대만정부이지만 이제는 대만정부라는 지난 40년간의 그들의 주장이 허구라는 것, 그리고 대륙의 주권회복도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政治大學의 吳安家 박사는 臺?과 대륙과의 관계가 군사적인 대치 상태를 지나 평화공존, 평화교류의 단계로 접어들었고 궁극적인 통일은 ‘적어도 30~40년 이후’의 사건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吳박사의 시간개념은 臺?에서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로 받아들여진다.

 “통일에 관한 한 타임 테이블을 제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통일까지는 오랜 시간과 긴 진행과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우리는 인내심을 발휘할 준비가 되어있다.” 同연구소의 鄭端耀 박사의 입장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을 앞두고 현재로는 현재로는 위헌으로 규정되어 있는 ‘臺?獨立論’이 야당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제기되었고 민주화와 개혁을 앞세우는 야당세력이정치권 안으로 본격적으로 진입함으로써 對중국관계는 보다 본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臺?은 최근 일련의 社會主義체제의 개혁와중에서 자신들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조심스러운, 소리내지않는, 그러나 실질적이고도 과감한 ‘대륙 공세’를 취함으로써  지극히 현실적인 중국식의 手順을 밟아가고 있다. 2천만 인구 對 10억 인구가 말해주듯이 대만정부는 본토에서 쫒겨온 뒤 40여년간 巨人 골리앗을 상대로 다윗의 용기와 지혜를 짜모아 힘겹게, 그러나 성공적으로 대치해 왔다. 이제 다시 그 용기와 지혜를 바탕삼아 대외적으로는 二重修交의 정책과 대내적으로는 三不정책(不接觸ㆍ不交涉ㆍ不采協)의 폐기 가능성을 시사함으로써 對中國 관계뿐만 아니라 국제정치무대에서도 착실하고도 현실적인 토대를 쌓아나가고 있다.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 부각과 함께 과감한 북방정책은 臺? 정부에게는 그야말고 선망의 대상인 셈인데 따라서 한국은 국제외교무대에서나 한반도통일 정책에서도 좀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이곳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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