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獨에 極右세력 부상
  • 김승균 통신원(본) ()
  • 승인 1989.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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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득세 계기로 과격집단 난립ㆍㆍㆍ政街 긴장

東獨을 포함, 東歐圈 전체를 휩쓸고 있는 개혁ㆍ자유화바람과는 대조적으로 西獨에서는 활발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西獨의 극우파 정당인 공화당의 세력확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올들어 각종 선거에서 크게 성공을 거둔 공화당은 최근 대학에까지 세력을 팽창시켜 이미 뮌헨, 킬, 프라이부르크 등 13개 대학에 학생조직을 결성했다. 공화당은 올 겨울학기까지는 전국 모든 대학에 유산한 조직을 결성할 목표를 갖고 있다.

 89년 1월말의 베를린 市의회선거에서 공화당이 7.5%를 득표함으로써 전혀 예기치 못했던 성공을 거두자 서독의 여론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언론들은 며칠에 걸쳐 이 사건의 의미를 분석ㆍ보도했다. 보수정당인 기민당, 기사당, 자민당은 공화당의 정치적 성향과 향후 이 사태가 서독의 정치판도에 몰고 올 변화를 둘러싸고 입씨름을 벌였다.

 공화당은 그후에 실시된 헷센州, 잘를란트州, 라인란트-팔츠州 등의 지방의회 선거에서 7~8%를 득표함으로써 연달아 지방의회에 진출했고, 6월에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7.1%를 얻어 무난히 유럽의회의 의석을 확보했다.

 

“베를린의 경찰이 우리를 뽑았다”

 이처럼 상승세를 타고 있는 공화당은 중도우파를 표방하면서 83년에 창당되었고 86년에는 최초로 바이에른州 의회선거에서 3%를 득표함으로써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후 브레멘과 쉴레스빅-홀스타인州 선거에서는 계속 실패했기 때문에(각 1.2% 0.6%)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지난 1월 베를린에서 무난히 市의회에 진입하자, 8천명으로 헤아려지던 당원이 급속히 늘고 있는 것이다. “베를린의 모든 경찰은 우리를 뽑았다”고 쇤후버가 말할 정도로 당원 중 경찰의 비중이 높으며 경찰, 국경수비대원, 군속, 공무원이 당원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공화당 유권자는 실업자, 미숙련노동자 및 사무직 등 사회적 기반이 약한 계층이다.

 서독에는 현재 독일민족민주다(NPD), 독일인민동맹(DVU), 미족집회(NS), 방위스포츠단, 자유노동자당(FAP) 등 공화당보다 더 과격한 극우세력도 존재한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독일민족민주당과 독일인민동맹은 前者의 조직력과 後者의 자금력을 결합해서 ‘기호D’(D는 물론 독일을 상징)로 출마했다. 그들 스스로 ‘운명의 선거’로 보고 총력을 기울였으나 1.6%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이들은 “독일을 먼저 그리고 나서 유럽을”이라는 구호를 채택함으로써 “유럽에는 찬성하나 지금의 유럽공동체에는 반대한다”는 공화당보다 훨씬 더 강한 민족주의 성향을 보였다. 기호D와 공화당은 서로 상대방을 비방하면서 어떠한 형태의 상호협력도 있을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퀴네를 우두머리로 하는 민족집회는 히틀러의 이데올로기를 공공여하게 추종하는 세력이다. 이들이 지난 4월20일 히틀러 출생 1백돌을 맞이해서 전국적인 시위를 벌이겠다고 엄포를 놓자 외국인, 특히 터키인들 (독일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은 공포분위기에 휩싸였다.

 화폐위조, 폭행 등으로 6년간 감옥생활을 한 호프만이 이끄는 방위스포츠단은 의회민주주의를 거부하고 뮌헨의 10월 축제에서 폭탄을 던져 13명을 죽게 한 극우 테러집단이다. 5백명의 당원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자유노동자당도 폭력과 방화를 일삼는 테러집단이다.

 공화당은 물론 극우파들의 공통적인 목표는 서독에서 외국인의 증가를 막거나 감소시키고 소위 독일적 가치라고 하는 ‘청결성, 신뢰성, 정직성’을 보존한다는 것이다. 공화당이 지방의회와 유럽으회 선거에서 연달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외국인문제, 주택문제, 실업문제가 서로 맞물려 악화상태에 있었다는데 기인한다. 서독에는 현재 4백20만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고 실업자는 거의 2백만명에 달한다. 서독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이들 수많은 외국인들은 주택시장, 노동시장에서는 물론 구호금을 지급하는 관청 문앞에서도 서독인들의 경쟁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서독인들에게 전통적으로 잠재해오던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이 표출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외국인과 서독인 사이의 폭력사태로까지 발전했다.

 공화당의 득세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기민당과 그 자매당인 기사당이다. 각 지방의회 및 유럽의회 선거에서 기민당은 10% 내외의 표를 잃었고 바이에른州에서만 활동하는 기사당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거의 12%를 잃었다.

 

‘독일적 가치 보존’이 목표

 이러한 추세로 나아가면 내년말 연방의회 선거에서 패배할 것이 분명하므로 기민당, 기사당은 공화당의 공약을 일부 수용함으로써 공화당 유권자를 재탈환하고자 한다. “공화당은  물리쳐야 한다”고 발언한 가이슬러 기민당 사무총장을 보다 보수적인 뤼에로 교체한 것이나 정치적 망명이 거부된 외국인을 신속히 출국시키기 위한 법안을 준비 하는 것이 그 예이다.

 한편 공화당도 헌법수호부 한 간부의 협조를 얻어 헌법에 저촉되지 않고 기민당과의 연정수립을 가능케 할 강령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베를린市에서 녹색당과 연정을 구성한 사민당 역시 여타 지방의회 선거에서의 참패 이후 공화당에 대한 당초의 느긋하던 자세를 바꾸어 열세 만회에 부심하고 있다. 이들은 노조, 교회등 범민주세력과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국가에 의한 고용정책, 서민주택 건설, 사회보장제도의 확대 등을 정책안으로 내놓고 있다. 기존의 정치권에 대한 ‘불만세력’으로 불리는 공화당 지지자들이 공화당을 지지하게 된 원인인 주택문제, 실업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동시에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도 해소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공화당이 공화당 유권자들의 요구를 수용ㆍ해결할 수 있겠느냐에 대해서는 유권자들 스스로도 회의적이며 공화당에 기대를 걸기보다는 기존의 대중정당인 기민당과 사민당에 대한 항의표시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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