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꾼 몰리는 盆唐 내집마련 좁은 문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89.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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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ㆍ교육대책 시급ㆍㆍㆍ철거민 반발도 거세

이름도 특이한 분당(盆唐)이 우리 귀에 친숙해지게 된 것은 그야말로 하루아침의 일이다.

그것은 서울 강남지역의 아파트 값 폭등세가 ‘체제위협’의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우려되던 지난 4월27일, 건설부가 이를 ‘물량공세’로 잡겠다며 느닷없이 떠뜨린 ‘분당ㆍ일산 신도시개발계획’에서 비롯한다.

 “투기를 막기 위해서”공청회와 같은 사전 여론수렴을 전혀 거치지 않은 ‘밀실작품’이 전격 발표된 것이다. 그러나 정보가 미리 새나가 투기꾼들이 한바탕 쓸고 간 뒤였다. 그러나 정보가 미리 새나가 투기꾼들이 한바탕 쓸고 간 뒤였다. 분당 예정지는 재벌소유의 땅을 피해 금을 긋다 보니 <그림>에서 보다시피 강아지가 앞발을 들고 선 형상의 畸形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도 밝혀져 ‘혁명적’계획을 내놓은 정부의 체면이 이만저만 구겨진게 아니었다.

 졸지에 날벼락을 맞고 토지수용에 강제당할 수밖에 없게 된 원주민이나 세입자들은 경우기를 몰고가 고속도로를 막거나 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로 몰려가 시위를 벌이면서 “도시 중산층만 사람이냐, 우리도 사람이다”라며 생계대책 보장을 요구, 신도시건설계획에 격렬히 저항했다.

 

입주후 ‘교통지옥’예상

 보상문제가 해결이 안돼서 일산 개발은 아직 손도 못대고 있으나 외지인 소유가 많아 상대적으로 토지수용이 수월한 분당지역에서는 불씨를 그대로 남겨둔 채 일단 불도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정에 쫒긴 정부와 민영주택건설회사는 당초 예정보다 한달 가량 늦은 11월26일부터는 시범단지 1차분 4천36가구에 대한 분양신청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일반의 관심은 신도시계획 발표 7개월만의 분당이 과연 ‘서울의 중산층을 모시는 데’ 걸맞는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지, 주민들은 어떻게 이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지, 아파트에 대한 기대와 주민들에 대한 동정이라는 상충된 궁금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분당’하면 떠오르는 문제가 교통문제이다. 이는 ‘제2의 上溪洞화’를 우려하는 입주희망자들의 절대적인 관심사이다. 하지만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 지금 분당에서는 길은 옛길 그대로인데 집짓기가 먼저 시작되고 있다. 분당입구, 성남~수원의 좁은 2차선도로 옆에 세워진 모델하우스를 구경하러 온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경험한 극심한 교통체증은 입주후 출퇴근길의 교통지옥을 예상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정부가 91년말까지 신설ㆍ확장한다는 도로는 모두 서울 진입지점인 장지, 수서, 양재, 판교에서 끝나고 있다. 부랴부랴 서둘러 완공시기를 맞추고 제아무리 노폭을 8~10차선으로 늘려도 이 길은 겨우 서울 江南지역까지만 연결 시켜줄 뿐 더 이상의 기여를 못한다는 데 이지역 교통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도심까지 최고 1시간30분 이상 걸리는 강남지역의 체증악몽을 벗어나기 위해 오히려 강북지역으로 집을 옮기는 현상이 늘고 있는 현실에서 분당의 교통대책은 처음부터 한계가 명백해 보인다.

 93년말 완공예정인 전철계획도 아파트 입주 가구의 50% 이상이 승용차를 굴리는 추세 속에서 地上교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 지역에 대한 선호도를 끌어올리는데 크게 공헌하지 못할 것 같다. 전철이 있어도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上溪洞이 그 적절한 예이다. ‘先입주 後교통대책’의 악폐가 지금 분당에서도 되풀이 되고 있다.

 

名門학교 이전 협의조차 안돼

 名門私學을 유치해 이른바 ‘강남8학군’ 수준의 교육시설로 서울의 중산층을 흡수하겠다는 계획은 또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자녀를 “8학군 수준의 학교가 아니면 안보내겠다”는 부모들이 분당신도에 입주한다면 ‘자식 망치기’ 딱 알맞다.

 왜냐하면 이 계획을 발표한 건설부가 지금까지 이 문제를 학교이전 주무부처인 문교부와 공식협의조차 하지 않았음이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이전을 희망하고 있는 학교도 극히 드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근 이전을 검토하기 “전례도 없고 당분간 불가능할 것”이라는 당국의 입장을 확인하고 이전계획을 일단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교부측은 “건설부가 학교이전 문제와 관련 구체적인 협의를 해온 사실이 없으며 현재 각 市ㆍ道마다 학교가 부족한 형편이라 이전 허용은 어려운 입장”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건설부는 이에 대해 “워낙 시간에 쫒겨 신도시에 필요한 개략적인 학교수와 그에 해당하는 학교용지 확보만 신경썼다”며 명문사학 이전문제는 앞으로 본격적인 검토를 할 것“이라고 뒤늦게 밝히고 있다.

 최초 입주시기가 91년 2학기로 예정돼 있는데도 상황이 이렇다는 것은 분당의 ‘8학군’은 空約이 되기 직전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이 때문에 ‘제2의 江南건설’,‘중산층 유입’이라는 당초의 목표는 거의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이는 현상이 벌써부터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다.

 서울 般浦의 공인중개사 朴鐘國(34)씨는 “민영통장(주택청약예금)을 갖고 있는 아파트 매수자들이 분당에 꾸준히 관심을 보여왔다. 그러나 이들은 실수요자라기보다 적당한 투자대상을 찾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서울의 기존 아파트 값보다는 싸기 때문에 통장 가진 사람이라면 일단 분양신청을 하고 볼 것이고 그 때문에 경쟁률만 높여 무주택자나 집을 늘려 살아보려는 실수요자들이 당첨길을 좁히는 결과만 빚을 것 같다.

 

또 하나의 투기장ㆍㆍㆍ우려가 현실로

 분당지역 못미처 중간지점인 二梅洞 삼거리의 ㅅ 부동산소개업소에서 상담을 벌이던 40대 여자 4명은 “입주를 하더라도 애들이 졸업하는 3~4년후에 가능하다”면서 “채권입찰액을 상한으로 때려서라도 분양받아야겠는데 만약 당첨이 돼 전세를 내준다면 문제가 없겠느냐”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분양신청자, 당첨자, 최초입주자가 동일하지 않으면 당첨을 무효로 한다는 정부의 투기억제방침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전세는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는 소개업자의 말에 자신을 얻은 이들은 “여기까지 온 김에 이 일대 땅도 좀 구경해보자”며 지적도를 둘둘말아 들고서 우르르 빠져나갔다. ‘또 하나의 투기장’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모습이었다. 소개업자들의 말로는 분양신청 한달 전부터 하루에 2~5개팀씩 (이른바 복부인들은 1대의 승용차로 보통 3~4명이 뭉쳐 다닌다)이 찾아와 ‘현장답사’를 벌인다는 것.

 이들이 누비고 다니는 마을 곳곳의 담벼락에는 아직도 붉은색 스프레이로 갈겨쓴 “생존권 보장 없는 신도시건설 결사반대”의 구호가 지워지지 않고 있다. 모델하우스 개관으로 상징되는 아파트 건설의 구체화는 주민들에게 삶의 터전이었던 농토와 비닐하우스가 엎어지고 이제 불도저가 문 앞에까지 다가와 있음을 알리는 절박한 신호이다.

 

“정부 보상책 달갑지 않다”

 밭에 두엄을 내고 돌아오는 藪內洞의 禹盛菅(45)씨는 요즘의 사정을 묻자 담배부터 꺼내 물었다.“마지막 추수를 끝내고 도무지 막막해서 동네사람들이 요새 통 일도 안나갑니다. 논바닥에 버려진 짚도 걷어와야 하고 퇴비도 뿌려야 하는데ㆍㆍㆍ앞으로 살아갈 일이 걱정돼 이 궁리 저 궁리 하느라고 잠을 못자요.”

 농토라도 가진 사람은 그래도 좀 낫다. 보상이충분치 않더라도 이들은 안성이나 평택쪽의 땅값이 싼 농촌으로 이주해 가면 어떻게든 벌어먹을 수 있지만, 소작농 ‘집만 달랑 있는’사람, 집이라고 있어도 남의 터에 지었던 사람들은 보상금이 몇백만원에 불과해 홀랑 까먹고 나면 “거지가 될 판”이라는 것이다.

 상점 하나씩을 줘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정부대책에 대해서도 주민들은 반가워하지 않는다. 유리 끼우는 일을 업으로 하는 분당동의 深基采(61)씨는 “언제 어디에 세워질 아파트상가 몇평짜리를 줄지도 모를 일이고, 준다해도 제대로 장사가 될 수 있는 도시가 갖추어지려면 최소한 5~6년은 걸린다는데 지금부터 그때까지 먹고사는 게 문제”라며 “그 말은 곧 딱지인지 뭔지를 팔고 어서 떠나란 얘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방 한칸에 월 3만원씩 주고 살며 동네의 인형봉제집, 전자제품 조립공자 등에 다니거나 成南에 직장을 두고 출퇴근하는 세입자들도 사정이 막막하기는 마찬가지. 세입자들도 모두 2천4백여가구로 원주민 1천7백여가구보다 훨씩 많다. 成南시내에 비해 보증금도 없고 월세가 2만~3만원이나 싸기 때문에 이곳으로 옮겨와 사는 이들은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준다고 하지만 그것이 그림의 떡이란 사실은 주는 사람들이 더 잘 알 것”이라고 말한다. 전기세, 수도세도 제때 못내는 살림에 아파트 생활을 꿈이나 꿀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보상기준, 금액 등에 다소 불만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점차 지급에 응할 것으로 본다”는 토지개발공사측의 전망과는 다리 세입자들과 원주민들의 대부분은 현재 보상금 받기를 거부 하고 있다. 생계보장이 확실히 이뤄질 때까지 “드러눕겠다”는 각오라는 것.

 데모해봐야 소용도 없고 해서 ‘투쟁위원회’는 간판만 걸린 채 위원장이고 뭐고 오래전에 집에 다 들어갔다. 개발이 기정사실화되고 보상이 시작되고 보니 이제는 무슨 단체도 소용없고 “각자가 방문을 틀어 잠그고 철거반원들이 들이밀 때까지 죽기 아니면 살기로”싸우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주민들의 각오는 그러나 시간인 지날수로 맥이 빠지고 있다.

 들어와 살지도 않을거면서 아파트 분양신청을 하러 몰리는 ‘서울의 중산층’을 위해 건설되는 분당신도시. 그 개발에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주민들은 어느 해보다 이 겨울이 훨씬 춥고, 그들에 대한 배려가 중산층에 뒤처져야 할 아무 이유도 없는 똑같은 우리들의 이웃임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분당 신도시 건설편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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