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소재 소설의 성취와 한계
  • 임헌영 (문학평론가) ()
  • 승인 1989.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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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은 접근이나 미국의 실체 알게 해줘

분단 이후 첫 해외파병이었던 월남참전은 1964~1973년의 10년간에 이루어진, 6ㆍ25를 체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전쟁을 대리체험케 해준 사건이었다. 이로써 50년대의 6ㆍ25 소재 소설의 시야를 확대시켜, 국토분단이 지닌 세계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청년세대에게 50년대의 6ㆍ25의 상처를 안겨주었다면 60년대는 월남전의 상처를, 그리고 70년대는 투옥의 체험이 역사적 앙금으로 남은 것으로 말할 수 있다고 할 만큼 먼 남십자성의 울창한 밀림은 우리의 휴전선이 보호하고 있는 삼림과 그 역사적 맥을 통하고 있었다.

 31만여명이 참전하여 4만1천명을 사살하고 5천여명의 사상자를 냈다는 기록은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서 얼마든지 그 평가가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이 기간중 10억달러의 외화획득으로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필요했던 외자를 충당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전쟁은 우리에게 이념전이기에 앞서 경제전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젋은이들의 이 피값을 아까워하면서 약소민족이라는 공감대로서, 그리고 같은 강요된 분단의 아픔을 앓고 있는 처지에서 이를 소재와 주제로 삼아 소설로 형상화되는 데는 그 희생의 허망함을 일깨워준 월남통일(1975) 이후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승리’로 믿었던 참전이, 전연 반대되는 패망의 실체로 역사에 나타났을 때 참전자들은 참회하는 자세로 월남전 소재 작품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이것은 우리의 분단현실을 재조명하는 한 계기가 되었다.

 월남전 소재 소설의 주인공들은 한국에서 좌절과 실의, 방황의 젊음 속에서 일종의 도피처 비슷한 출구로 파병되는 형식을 취한다 (유일한 예외가《악어새》인데 까닭은 주인공이 월남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학생이거나 다른 신분일지라도 뚜렷하게 삶의 뿌리를 대지에 내리지 못한 방황하는 무리에 속한다. 이 사실은 곧 이 전쟁 자체가 대리전 또는 동원된 전쟁이었음을 상징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둘째, 이들 주인공은 월남에서 반드시 현지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무기의 그늘》만 예외다). 전쟁 소설의 공식처럼 그 사랑은 헤어짐이나 어느 한쪽의 죽음으로 끝난다(《악어새》는 예외).

 셋째, 현지에서 반드시 민족의식이 강한 인물들과 만나게 되고 그들을 통하여 민족적 각성에 약간씩 접근해간다. 여기서 작가들은 저마다 다른 역사인식의 편차를 보인다. 감상주의적 민족감정의 차원부터 (《악어새》 《머나먼 쏭바강》) 보수주의적인 민족주의(《황색인》), 민족의식보다는 국제적 연대의식(《하얀전쟁》), 그리고 진보적인 민족의식(《무기의 그늘》)까지 그 색상은 다양하다. 그러나 반전의식과 강대국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약소민족의 연대감에서는 일치한다. 이 점은 우리 문학에서 반미의식을 직접 수입해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넷째, 주인공들은 거의 예외없이 월남의 미래에 대하여 독재와 부정부패 때문에 공산화할 수밖에 없다는 예견을 안은 채 승전감보다는 파월 당시의 허망함을 능가하는 깊은 좌절감을 안고 귀국한다. 많은 선물보따리를 끼고 즐겁게 귀국하는 등장인물들과 대비해서 부각되는 주인공들의 이런 모습은 70녀대 후반기 이후 한국사회의 혼란을 예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월남전은 분단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6ㆍ25에 버금갈 만한 자화상을 비춰줄 좋은 거울이었으면서도 그 기회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왜 미국에서 이 분야의 작품들이 성행할 때를 기다려서 이제야 떠드는가. 1973년 철군 직후부터 그들이 지녔던 민족의식을 당시의 우리 문학에 접목시켰었다면 우리 문학은 미국이라는 실체를 훨씬 앞당겨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철 늦은 꽃도 꽃임은 틀림없다. 더구나 고작 양공주식 반미의식에 머문 우리 문학에서 월남전 소설은 미국의 실체를 경제ㆍ군사적으로 잘 파악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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