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그 전쟁은 우리를 異邦人으로 만들었다.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89.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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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 소설 《하얀전쟁》으로 美문단에 데뷔한 작가 安正孝씨

작가 安正孝(48)씨는 월남전 참전 이후 처음으로 국립묘지에 가본다고 했다. 왜 한번도 가보지 못했느냐고 작가에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는 월남전에 다녀온 그누구보다도 많은 시간을 월남전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1966년 백마부대 사병으로 참전했다가 67년 귀국한 이래 《하얀전쟁》을 20년 동안 개작해왔던 것이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5번 묘역. 작가 안정효씨는 그 묘역에서 어렵지 않게 知人들의 이름을 찾아냈고 그 故人들의 월남에서의 모습을 마치 어젯일처럼 기억해내고 있었다(그들은 이름에서 글자 한자씩만 바뀌어 안정효씨의 소설 속에 ‘살고 있다’). 전사순직 4천9백여명, 연참전인원 31만여명.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비석들의 차가운 사열, 오와 열이 비인간적으로 정렬되어 있는, 초겨울 해질녘의 월남전 묘역에서 작가의 긴 그림자는 잘 움직이질 않았다. 작가는 그 순간 다시 월남전을 치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 후에 작가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월남에서 여러 주검들을 보았는데 가장 보기 안쓰러웠던 것은 그 시체들이 자루에 실려 옮겨질 때였어요.”

 최근 고려원에서 나온 장편 《하얀전쟁》은 지난 여름 미국 뉴욕에 있는 소호(Soho)출판사에서 《화인트 배지》(White Badge)라는 영문판으로 발간된 것을 일부 개작, 우리말로 옮겨 펴낸 것이다.


 《화인트 배지》는 안정효씨가 지난 83년《실천문학》에 《전쟁과 도시》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것으로 그의 문단 데뷔작이다. 이《전쟁과 도시》를 작가는 87년 4월, 마지막으로 英譯하기까지(작가가 영어로 옮겨 썼다)20년에 걸쳐 완성했다. 한 잡지사의 장편 공모에 응모, 심사위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으나 잡지사측이 당시 상황에서는 발표하기가 어려운 ‘군대문제’를 다루었다면서 난색을 나타내, 심사위원이었던 李浩哲씨의 소개로 《실천문학》에 실리게 된 것이었다.

 이처럼 ‘복잡한 족보’를 가지고 있는 이 소설은 80년대 중반, 《전쟁과 도시》라는 단행본으로 나왔을 때 독자들로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끝나지 않은 전쟁’ 전쟁병징후군

 출판사에서 상식백과를 만들고 있는 한기주는 낚시를 다녀온 어느날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월남에서 한기주의 부하로 있던 변진수였다. 그 전화 한 통화로 한기주는 ‘끝나지 않은(는)전쟁’을 기억하기 시작한다.

 모두 22章으로 엮어진 이 소설은 서울의 오늘과 20년 전 월남전이 그려지고 있으며 수시로 주인공의 6ㆍ25체험이 끼어든다. 서울과 월남의 밀림 그리고 6ㆍ25가 서로 삼투하면서 이 소설은 전쟁이 한 개인을 어떻게 파멸시키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쟁병징후군’에 시달리는 변진수를 공원모퉁이에서 권총으로 죽여주는 장면에서 이 장편소설은 끝난다.

 ‘귀국선’을 타고 1년만에 고국땅을 밟은 준인공 한기주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쟁을 살다가 막상 귀국한 나는 소외된 이질감을 느꼈다. 내 나라에서 나는 타향사람이었다.” 그리고 “전쟁은 너무나 거센 타성처럼 엄청난 힘이어서 그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인간의 완전분해 되어 새로 조립하기가 힘들다.” 이와 같은 전쟁병징후군을, 지금ㆍ여기를 살아가는 40대들에게서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월남전은 문학 이외의 분야에서는 아직도 묻혀 있다.

미국 저널리즘의 극찬

 그의 미국문단에 대한 ‘노크’는 실로 30년만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월남전 참전 당시 국내의 영자지에 기고했던 전쟁꽁트를 묶어 미국에서 출판하려 했으나 번번이 ‘퇴짜’였다. 서강대 영문과 재학시절 ‘원고지가 아까워’ 영어로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그에게 미국문단에 데뷔해야겠다는 ‘야심’은 그때부터 그를 30여년간 괴롭혔다. 그는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못한 채 소설들을 쓰고 고치곤 했다. 《전쟁과 도시》기 나왔을 때 작가는 이렇게 말했었다. “이 작품을 탈고하는 순간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란 생각으로 20년간 이 작품에 매달려 왔다.”

 87년초, 미국문단에 도전하기 위해 그는 미국에 있는 동생집을 찾았다. 텍사스 동생집에 칩거하며 4개월간 《전쟁와 도시》를 영어로 옮겼다. 마침 연세대 강단에 섰던 출판 에이전트 데이빗 메스를 만나게 되었다. 미국은 모든 책을 출판 에이전트를 통해 펴내게끔 되어 있다. 마침내 그가 영역한 소설이 뉴욕에 있는 소호출판사와 계약을 맺었고, 2년만인 지난 여름 《화이트 배지》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金恩國, 김용익 등의 작가도 미국문단에 데뷔했으나 국내 거주작가로서 미국문단에 진출한 경우는 안정효씨가 처음이었다. 지난 여름 소호출판사 초청으로 미국에 갔을 때, 안정효씨의 효현을 빌자면, 기적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뉴욕 타임즈> <로스엔젤레스 타임즈> <퍼블리셔스 위클리>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등에서 인터뷰 신청이 들어왔으며 서평란에도 크게 소개되었다. 미국 전지역에 위성중계되는

 라디오 생방송 프로에서도 키 작은 한국작가를 초청했다. 미국 저널리즘들은 한결같은 극찬이었다. “너무 많은 고생 끝에, 너무 늦게 실현된 꿈이라 무슨 착각처럼 여겨지기도 했다”고 자가가 책 후기에 밝혔을 정도였다.

 한국인 작가의 뛰어난 소설 《하얀전쟁》은 한국과 월남에서 자행되는 미국의 신식민주의를 거부하는 민족주의적인 면모와 함께 전쟁의 광증과 타락상을 고발한다“(<로스엔젤레스 타임즈> 89.9.10). ”《하얀전쟁》은 점령지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고 있다“(<뉴욕타임즈> 89.6.3). ”미국의 우방국 가운데 한 나라에서 월남전을 다룬 최초의 작품이고, 미국에서 대규모로 판매되는 최초의 한국소설이다. 이 작품은 대담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89.8.10).

 

그 전쟁에 ‘모범답안’은 있는가

 우리들로서는 이유도 없고 명분도 없는 전쟁을 하느라고 죽음의 계곡에서 죽어갔고, 이제 변진수는 영혼의 가사상태에서 살아간다. 대리전쟁에서 우리들은 죽음의 손익계산서에 아무 것도 기록하지 못했다. 그것은 우리들이 백지 답안지를 낸 전쟁시험이었다.〔…〕‘정의의 십자군’은 아무 것도 눈에 보이지 않고, 아무자취도 남기지 못한 하얀전쟁을, 하얗기만한 악몽을 견디고 겨우 살아 돌아왔을 뿐이다.〔…〕전쟁에 대한 모범답안을 낼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한기주의 질문은 이제 풀려야 한다.

 작가는 미국에서 ‘저널리즘의 집중 조명’을 받고 돌아와 왜 미국인들이 이 소설에 그렇게 매달리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았다. “미국에는 월남전을 다룬 소설이 없어요. 월남전은 미국인들에게 부끄러운 기억입니다. 미국인들은 월남전의 도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월남전에 참전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공공연히 밝히지 못합니다. 그들의 월남전 영화에도 나와 있듯 월남전 참전 미국병사의 적은 다름아닌 미국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야자수와 꽁가이, 미제 녹음기와 커피’등으로 월남전이 낭만화되어 있으며 ‘월남에서 돌아온 새카만 김상사’처럼 영웅화되어 있다.

 톰 티디라는  종군기자의 <베트남 통신>을 읽고 월남전에 관심을 갖게 돼 스물다섯의 나이에 월남전 속으로 뛰어든 그는 다음과 같은 삽화로 자신의 월남전 체험을 말한다. “미국의 첫번째 에베레스트 등반 대장이었던 다이렌 훠드는 ‘첫번째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감상이 어떠냐?‘고 물은 어느 한국기자에게 ’아무도 에베레스트는 정복 하지 못한다. 그냥 올라갔다 내려올 따름이지‘라고 말했답니다. 월남전도 마찬가지지요.

 안정효씨는 70년대 후반 직장을 그만 둔 이래 지금까지 1백20여권의 번역서를 낸 ‘부지런한 번역문학가’이다. 당분간은 번역에서 그의 장편《갈쌈》이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그리고 아직 쓰여지지 않은 세번째 장편을 이미 계약했다. 그의 세번째 장편은 지식인의 눈으로 본 우리의 80년대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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