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죽이는 입시교육
  • 서명숙 · 김당 기자 ()
  • 승인 1989.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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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1백명을 넘는 중 · 고교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잇다

청소년들을 자살로 내모는 ‘비인간화’ 교육실태

- 어느 학생의 유서 -

“서로 매일 마주치지만 오가는 대화가 없었습니다”

막상 이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이제는 마음이 가볍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이곳을 떠나버린 친구들을 그 당시에는 경멸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그들이 왜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생각해보셨습니까.

어른들은 남들도 다 겪어온 길인데 왜 너희들만 그러냐고 늘 그들을 경멸할 뿐 이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 보질 않고

그렇게 죽어간 핵상들만을 욕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른들이 만들어낸 입시제도를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 단지 제가 남들처럼 거기에 적응하지 못했고

그 상황을 이겨보고자 하ㄴ는 의지와 결심이 부족했던 저 자신을 미워하고 증오할 뿐입니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톱니처럼 착착 끼워맞춰져 있는, 그렇게 항상 틀이 박혀있는 것이 싫었습니다.

이러한 생활을 잘 견디어내고 있는 현 입시생 여러분들이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상당히 긍정적인 면에서 하루를 생활해왔습니다.

하지만 한번 또 한번 시험을 치러나가면서 저는 너무도 자신감을 상실해버렸고 그때마다 말씀 없으신 아버님의 압박감과 주위 여러분들의 억누름이

제가 제 자신을 지탱하는 시간을 단축해버렸습니다. 명문대학이 왜 그렇게 내 가슴을 짓눌렀는지.

왜 나는 아버님께 제 점수에 맞추어 평범한 대학에 간다고 단호히 말씀드리지 못했는지

결코 전 실망시켜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길이 최선이냐고 묻는다면 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 이 길만이 나에게 쌓여있는 모든 고통을 잊고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엄마, 죄송합니다. 아침이면 새벽같이 떠나 밤늦게야 돌아오시는 엄마의 모습을 볼 때

무슨 일이 있어도 명문대학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이루어드리지 못하고 불효를

저지르게 됨이 정말 죄송스럽고 한스럽습니다. 하지만 엄마, 제가 없더라도 행복하게 사셔야 합니다.

아빠, 아빠에게는 죄송하다고 용서해달라고 하진 않겠습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불효를 저질렀으니까요.

그리고 누나, 누나는 올해에 나 대신 꼭 대학에 들어가세요. 이것이 나로선 최선의 부탁입니다.

막내야! 나는 네가 가장 걱정이 된다.

앞으로 형 대신 부모님 잘 모시고 건전하게 생활해나가라. 부탁한다.

저는 지금 막 교실을 뛰쳐나왔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지옥에서 부르는 소리 같았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묵묵히 그 소리에 귀를 귀울이고 있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이 친구들은 감정도 없는 사람 같고 다 똑같아 보입니다.

전혀 개성이 없어 보입니다. 이 친구들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어른들이 밉습니다.

저에게는 아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모가 떠나버린 후 제가 가장 믿고 좋아하는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서로 매일 마주치지만 오가는 대화가 없었습니다.

무엇이 우리의 사이를 이렇게 만들어버렸을까요. 이제는 모든 것이 다 끝났습니다.

반 학우들아, 너희들은 죽더라도 대학에 가서 죽어라.


나는 단지 죽음을 너희보다 빨리 불렀을 뿐이다. 잘있거라.

 

앞의 글은 지나 10월13일 저녁 서울 잠실대교 남단에서 한강에 뛰어들어 투신자살한 金孝俊(17 · 서울ㅁ고3년)군이 남긴 유서의 내용이다. 그는 선생님이나 학급 친구들이 두루 좋아했던, “조금 내성적이기는 하지만 어디 한군데 뺄 데가 없는” 모범생 반장이엇다. 자그마한 중소기업체를 운영하는 집안의 장남인 김군은 고교 입학 때부터 줄곧 상위권 담임 김경환 교사의 말을 빌리면,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했고 시험때가 되면 “못견디게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일이 잦았다. 주위 친구들에게는 “한번씩 시험을 볼 때마다 지옥에 들어갔다 나오는 지독한 기분이고 아는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더구나 10월초에 치른 첫 배치고사에서 컴퓨터로 나타난 성적은 평소 원하던 명문대학은커녕 서울 시내의 대학도 맘놓고 지원하기 어려운 점수였다. 그 직전 김군은 친구들에게 “추석 때 집에 온 친척들이 일류대학 못 가면 다시는 내 얼굴 안 본다고 하더라.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쳤다.

결국 김군은 배치고사 성적표가 나눠진 다음날, 수업중인 교실에서 뛰쳐나가 그로부터 서너시간 뒤 한강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학교는 학생을 버릴 수도 있다”

지난 11월6일 오전 11시쯤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21동 11층 베란다에서 투신자살한 김규태(17 · 서울ㄱ고3년 자퇴)군의 경우, 김군은 국민학교 때에 전교 부회장을 지낼 만큼 성격이 활달했고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반에서 상위권이었다.

그러나 ‘한다’하는 아이들이 모인 강남의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급격히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고3이 되어 급기야 내신성적이 중간 이하의 급수로 떨어지자 부쩍 초조감을 드러내던 김군은 자퇴를 해서 검정고시를 보면 떨어진 내신성적을 만회할 수 있다며 부모들에게 자퇴를 졸랐다.

1학기가 끝난 7월말 끝내 학교를 자퇴하고 서울 근교의 절에 들어가 혼자 공부하던 김군은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이튿날에 “혼자 공부하려니 역시 쓸쓸하다. 학교는 학생을 살리는 곳이지만 버릴 수도 있는 곳이다”라는 낙서를 남긴 채 자살했다.

이처럼 성격이나 가정형편, 학교생활 등 이모저모를 따져보아도 ‘평범한’ 학생들이 ‘비상한’ 선택을 감행, 부모의 가슴에 평생 못을 박고 자신의 장래를 던져버리는 일을 일으켜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대학입시에 쏠리기 시작한 지난 11월 한달 사이에만도 전국에서 20여명의 중고교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기집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거나, 방문 앞 창틀에 목을 매거나, 열차에 뛰어들거나, 농약을 마시는 등 죽는 방법은 제각기 달랐지만 죽은 이들이 남긴 유서나 낙서의 내용은 서로 너무나 비슷하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로그(log)가 나를 얽매고 영어단어가 나를 짓누른다” “이차방정식의 x를 구하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친구들, 선생님, 부모님들의 사랑을 잃었다” “새가 되어 시험 없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고싶다” 등 그들의 마지막 독백은 오늘의 교육현실에 대한 나름대로의 갈등과 좌절, 그리고 지향을 나타내고 있다.

 

중고생 20%가 자살충동 느껴

우리 사회에 중고교생 자살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3~4년전부터의 일이다. 지난 86년에 자살 학생이 처음으로 1백명을 넘어서더니 지난해에는 1백26명에 이르렀다.

문교부에서는 올해 9월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1백26명의 자살 원인은 주로 가정불화, 부모의 질책, 가정비관, 염세비관 등이라고 밝혀 학생 자살의 주된 원인이 입시 위주, 학력 위주의 교육에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문교부의 한 관계자는 올해 잇따라 일어난 자살은 “대부분 가정적 결함이나 가난 때문인 경우가 많고, 용모를 비관해 자살하려는 친구를 따라 함께 죽는 식의 사춘기 특유의 자살도 많다”고 분석한다.

사실 문교당국의 ‘해석’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살이란 사회 적응에 실패한 당사자의 ‘개인적’ 동기가 작용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문제는 최근의 청소년 자살이 ‘사회적’ 현상이 되고 있으며, 더욱이 자살한 학생의 수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학생들이 자살을 기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대 의대 李吉弘박사는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 중고교생의 20%가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으며 5%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음을 밝혀 충격을 주었다.

흔히 학계에서 인정하는 자살 실패율은 15대1. 이를테면 2백명의 학생이 자살했다면 3천명이 자살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형편이니 “지금은 멀쩡해 보이는 내 아이가 언제 어떻게 끔찍한 일을 저지를지” 걱정하는 학부모들의 불안도 자못 심각해진다.

 

출세위주 · 학력위주 교육풍토가 문제

일이 이쯤 되고 보니 자살을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무리한 적응을 강요하는 사회환경’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실 많은 교육전문가와 학자들은 염세비관 또는 사춘기 특유의 감수성과 고독감 때문에 빚어지는 선진국의 청소년 자살과는 달리, 우리 사회에는 성적이나 진로문제로 인한 자살이 많으며 그것은 교육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잇다.

이길홍교수는 “우리나라 중고교생의 자살은 우리나라 특유의 과열된 입시제도에서 오는 성적자살이 90% 정도일 것”이라고 말한다. 또 전국교사협의회에서 지난 4월 전국의 초중고 교사 1천여명으로부터 받은 설문조사에서도 45.2%의 교사들이 학생자살의 원인을 입시경쟁으로, 42.6%가 가치관 혼란때문인 것으로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타냈다.

입시경쟁이나 가치관의 혼란에서 생기는 문제란 결국 학생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그 안에서 보내면서 사고를 형성해온 ‘학교’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곧 설문에 응답한 교사들은 거개가 학생들 죽음의 원인이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학교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설문의 집계 · 분석에 참여한 한국교육연구소 심성보 기획실장은 “진로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학생들이 좌절하는 것은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일렬 앞으로 갓!’만을 외치는 출세 위주, 학력 위주의 현행교육 풍토에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모든 학생이 공부를 다 열심히 한다 해도 대학에 가는 수는 제한되어 있는데 대개는 가정이나 학교에서는 누구나 다 대학에 가야 하고, 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문제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경우 서울 강남의 학교에서는 한반에 15~20명, 강북의 ‘변두리 학교’는 한반에 10명 정도가 대학에 간다. 요컨대 잘해야 3명 중 1명만이, 실제 통계상으로 따지면 해를 거듭할수록 누적되는 재수생을 포함하여 4명 중 1명만이 대학에 진학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 교육은 처음부터 오로지 대학문에 이르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기술만을 가르친다. 그 사다리에 매달린 올해 고3들의 모습을 보자. 이들은 지난 78년 국민학교에 입학한 세대인데 당시 인원은 1백1만3천2백85명이었다. 그런데 올해 대학입학 정원은 19만9천명. 결국 5명 중 1명만이 바늘구멍을 뚫는 대학입시를 통과하고, 나머지 4명이란 절대다수가 12년동안이나 들러리로 희생되는 교육을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타율적으로 실시되는 자율학습

대학에 들어가는 20만명을 위해 나머지 80만명이 들러리를 서는 교육현장인 학교와 교실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대학에 가지 않는, 또는 못가는 아이들은 왜 재미없는 학교에 남아 있을까? 남아 있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어찌 지낼까?

고등학생들의 하루 일과는 대개 7시 전부터 개시된다. 아침 7시30분쯤에 시작하는 자율학습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늦어도 6시30분에는 일어나야 한다. 아침은 먹는둥 마는둥 ‘대충 굶고’ 학교에 오면 대개 일찍 닿는 순서대로 자리에 앉는다.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은 미리 와서 앞자리에 자리잡고 창가나 뒷자리는 못하는 아이들 차지.

자리만으로도 대학 갈 가망이 있는 주류와 별볼일없는 비주류 사이에 선이 그러진다. 앞에서 4번째줄까지가 그 경계선이다. 뒷자리는 우선 잠자기에 좋고, 몰래 잡지나 소설책을 보거나 옆 사람과 이야기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대학과 담을 쌓은 아이들에게는 창가도 ‘목’이 좋다. 밖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낱낱이 살피고, 특히 남학생들은 길 가는 ‘삼삼한’ 여자들을 눈요기 삼아 시간을 때우노라면 하루가 빨리 가기 때문이다.

자율학습이란 본디 정규수업을 끝낸 뒤 대학에 갈 만한 ‘우수생’들만 모아 학교도서관에 스스로 공부하게 했던 데서 비롯되었다. 교대로 남아 감독하는 선생들 ‘담배값’이라도 주어야 하니까 물론 소정의 돈을 받았다. 아무리 대학만을 생각하는 우수한 아이들일망정 이를 감독하는 선생이 있어야 덜 불안하고, 몽둥이를 쥔 선생이 곁에 있어야 한눈을 팔거나 조는 아이들을 자극시켜 ‘교육적 효과’를 거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런 도서관 자율학습이 얼마 안가 바뀌어 모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 교실 자율학습이다.

그러나 말이 좋아 자율학습이지 이미 국민학교 때부터 타율만 배워온 아이들이 자율을 알 턱이 없다. 입시 위주의 경쟁적 교육구조 속에서 타성에 길든 아이들은 선생이 있어야 마지못해 공부할 뿐 대개 아침부터 난장판을 벌이기 십상이다.

학교에 따라 자율학습을 오후에 갖기도 하지만 아침 저녁으로 자율학습시간을 두어 밤 10시까지 학생들을 붙들어앉히기도 한다. “아이들은 가능한 한 학교에 오래 붙들어놔야 밖에서 사고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지론’을 펴는 교장도 잇다. 그럴 경우 자율학습은 대학입학실적을 올리는 수단말고도 학생을 통제하는 긴요한 방편이 되는 셈이다.

 

시험에 안나오는 과목은 ‘찬밥 신세’

매주 월요일 첫시간은 이른바 애국조회 시간이다. 그중 매달 첫째주 월요일은 대개 운동장에서 하는데 그나마 안하는 학교가 많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운동장에 모아 정렬시키는 데 드는 시간도 아깝다고 여겨 자율학습으로 돌리는 탓인지 점차 조회 횟수가 줄고 있다.

줄어드는 것은 비단 조회만이 아니다. 고작 일주일에 한번뿐인 특별활동(CA)이나 학급회의(HR) 시간도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으로 돌리지 못해 안달인 학교도 있다. 지방자치제가 민주주의의 기초이듯이 이론상으로는 학급회의가 토론을 통해 민주적인 사고와 태도를 직접 체험으로 배우게 하는 중요한 시간이지만 실제의 입시과목 공부에 견주면 ‘쓸데없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저마다 소질을 계발하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입시공부에 찌든 심신의 피로를 풀어줄 수 있는 특별(서클)활동 시간도 다른 입시수업으로 대체되기 일쑤이다. 어떤 학교에서는 의식화 교육과 관련이 있다 하여 아예 민속반 같은 서클을 없애기도 한다.

음악 · 미술처럼 대학입학시험에 안 나오는 교과과목도 ‘찬밥 신세’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고3이 되면 시간표나 출석부는 배정이 되어있으나 수업은 없다. 학교에서는 장학감사용으로 아예 가자 시간표를 붙여놓는가 하면, 선생조차 헛갈리다 보니 출석부를 이중으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아이들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먼 교육이다. ‘합법적’으로 입시교육반을 강요하는 정규수업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교사에게나 학생에게나 무거운 짐일 수밖에.

 

자는 학생 깨울 명분 못찾는 교사들

교사의 처지에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교육인지 회의를 느낄 때가 많다. 수업중 조는 아이들이 있어 어쩌다 입시와 관계없는 이야기를 하면 이른바 우수한 아이들한테서 당장 “진도 나갑시다”는 말이 터져나온다. ‘갈길이 바쁜’ 아이들이니 그럴 수 있겠다고 넘기긴 하지만 가끔 그런 소리가 비수처럼 꽂혀 “내가 왜 이 자리에 서 있는지”라는 자책에 빠져들게 된다.

아이들의 그런 제안이 없더라도 양심있는 교사라면 두 갈림길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학력고사 문제를 잘 풀 수 있도록 가르쳐야겠다는 생각과 비록 시험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것만은 일으켜줘야겠다는 생가가 사이에서 헛갈리게 된다.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두고도 갈등이 있다. 예를 들어 사회과목 시간에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르치면 정작 시험에서는 틀린 답에 동그라미를 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어시간도 마찬가지이다. 서울 숭문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시인 정희성씨는 “내 식으로 시를 가르치면 아이들이 학력고사에서 정답을 못 내릴 것 같아 불안하다”고 한다.

순전히 대학 진학자를 위한 어려운 문제를 풀때면 이제는 대학과는 담을 쌓은 아이들이 잠을 잔다. 요령껏 자는 아이, 아예 드러내놓고 자는 아이… 고3 2학기쯤 되면 한반에서 15~20명이 잔다. 그 아이들을 깨워야 될까, 그냥 둘까. 그러나 망설임도 잠깐 뿐, 교사에게는 그 아이들을 깨워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보탬도 안되는 그 어려운 문제풀이 수업을 왜 받아야 하는지 설득할 힘이 없다.

7~8시간의 정규수업이 끝나면 이제는 보충수업으로 들어간다. 보충수업도 명목은 자율이지만 실제로는 반강제이다. 어차피 현재의 입시교육 제도에서 자율이란 구조적으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자율’이기 때문이다. 문교부 지침은 “원하는 학생들만을 대상으로”이지만 실제로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다 한다. 남들이 다 하는데 안하면 학생도 불안해 하고, 선생도 불안해 한다.

학교장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래서 교장들 사이에 보충수업을 둘러싼 ‘담합행위’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보충’을 안했을 경우에 생기는 불안감을 떨치고, 입시에서 저조한 성적을 냈을 때에 떠안게 될지 모를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이다. 한 교사의 표현을 빌리면 아무리 나쁜 짓도 여럿이 같이하면 괜찮다는 생각에 누구나 빠지기 때문이다.

 

교실에 남아 있어도 마음은 콩밭에

‘보퉁’이 끝나면 다시 밤 10시까지 자율학습으로 이어진다. 밤이 이슥한 시간에 차마 ‘자율’이란 이름을 붙이기가 멋적은 탓인지 심야학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2를 기준으로 해도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얼추 14~15시간.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어떤 재미가 있어 “공부를 대충 포기한” 아이들까지 이토록 오랫동안 학교에 남아 있을까?

아이들은 대개 아무런 까닭없이, 이유를 모르는 채 남아있다고 말한다. 학교에 ‘있는’ 아이들은 다만 길들여진 학교라는 제도 속에 무방비상태로 남아 있을 뿐이다. 부모가 학교에 보내고, 다른 아이들이 남아 있고, 선생들이 붙잡고 있으니 그냥 그렇게 머물러 시간을 죽이고 있을 뿐이다. 제도 안에 함몰된 채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스스로 왜 있는지, 무엇을 배우고 가는지를 모른다.

어느 교사는 “인간관계를 끊을 수 없기에 남아 잇다”고 말한다. 부모나 가족간의 혈육의 정이나 기대를 차마 저버릴 수 없어서, 선생(담임)과 맺은 친분관계나 의리 때문에 학교를 떠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남아 잇는 아이들은 몸만 교실에 둔 채 대개 마음은 콩밭에 있다. 조는 아이, 아예 자는 아이, 창밖만 쳐다보는 아이, 하루종일 잡지나 소설만 읽는 아이, 연애편지 쓰러 학교오는 아이, 이도저도 아니고 멍하니 할일없이 앉아만 잇는 아이….

그러나 학년이 높아질수록, 입시가 다가올수록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그 이유를 캐묻는 아이들이 늘어간다. 제도를 벗어나려 하고, 인간관계를 끊으려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이쯤되면 안면몰수한 채, 마음만 아니라 몸까지 교실밖으로 뛰쳐나가려 한다. 처음에는 이동수업시간에 ‘땡땡이’를 쳐 몇시간 쯤 근처 오락실이나 만화가게에서 놀다가 슬쩍 들어오던 아이들이 점점 밖에서 지내는 시간과 횟수를 늘리게 된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끼리끼리 모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혼자서는 재미도 없을 뿐더러 나쁜짓인 줄 아니까 아이들도 여럿이 ‘담합’을 해야 덜 꺼림칙하다. 자연스럽게 동아리를 만들어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환각제도 복용해 보고, 집단 패싸움도 서슴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겉도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입시위주교육 안에서는 선생들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대학과 무관한 그 아이들을 마음대로 학교에서 놀게 할 수도 없다. “빌어먹을 교육적 측면”에서 볼 때에 ‘사도’에도 어긋난다. 보충수업을 마칠 때까지 끝내 학교에 붙잡아놓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또 학교나 교장의 처지에서는 학생을 일찍 집에 보내면 뭔가 불안하다. 빨리 보낼수록 사고칠 확률이 높다고 여기기 때문.

교장은 교장대로 대학가는 학생이 줄거나 사고라도 치면 문책을 당할까봐 불안해 하고, 교육구청장은 관내에서 사건이 많으면 말썽이 일고 골치가 아프니 지침은 ‘자율’이지만 내심으로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오래 붙잡아 매놓기를 바란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을 대학이란 한 목표에만 몰두케 하여 교실에 붙잡아 두는 입시교육은 가장 ‘안전한’, 가장 돈이 적게 드는 ‘볼모교육’임에 틀림이 없다.

“지배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교육”이라는 ‘전교조 성향’ 교사들의 주장을 빌리지 않더라도 실제로 현재의 입시위주 교육은 적어도 가장 ‘값싼’ 교육임에 틀림없다. 입시교육은 교사하고 분필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특별활동이나 학급회의 시간은 이름뿐, 갈길이 바쁜데 한가하게 그런 것 할 시간이 없다. 학교장이 그런 식으로 거들어주니 선생들도 편하다. 입시과목이야 몇년동안 반복해서 가르쳐온 것이라 입으로만 풀어먹으면 되지만 그런 시간은 제대로 꾸려나가자면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입시지도라는 이름 아래 “가장 편하게 가는 방법”이 현재의 교육이다.

 

‘탈락자’ 위한 적극적 직업교육 아쉽다

그러니 학교에서는 잠자는 아이들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한 교장 선생은 “나는 교장의 입장에서 자는 아이들을 오히려 고맙게 생각한다. ‘입시공부’가 아닌 ‘진짜공부’를 시켜달라고 주장하는 아이들이 생기면 여러모로 골치아픈데, 말없이 자는 아이들은 적어도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 착하고 우수한 아이들을 방해하지는 않기 때문이다”라고 털어놓기도 한다. ‘너무나 인간적인’ 그 고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결국 현재의 학교(제도)교육, 적어도 인문계 학교교육은 아무런 기술도 배우지 못한 수많은 실업자를 양산하는 곳일 분이다. 그 수많은 제도교육 탈락자들은 자연스럽게 저임금구조로 편입된다. “입시교육은 일종의 ‘체제’교육”이라는 교사들의 주장은 그런 점에서 귀담아들을 만하다.

이런 교육 풍토에서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직장생활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나는 학교 다닐 때에 공부도 못했고 배운 기술도 없으니 돈을 적게 받고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체념에 빠지는 수가 많다. 실제로 부모들도, 선생들도 그렇게 가르친다. “대학 못가면 공돌이, 공순이 신세를 못면한다”고. “저 아이들은 다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그리 된 거”라고. 그러니 해마다 인문계 학교로 국비 직업교육 의뢰가 오지만 지원자가 없다. 3학년 전체를 통틀어 고작 5~10명쯤만 관심을 보일 분이다.

고3이 되면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도 이른바 취업반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취업반이라고 해서 수업방식이 다른 것은 아니다. 고작 상업부기 한 과목을 더 배울 뿐, 정작 취업에 보탬이 되는 타자니 컴퓨터니 하는 알짜과목은 학교 밖에서 제 힘으로 배워야 한다. 다만 취업반에 있으면 학교수업을 바지고 학원 같은 곳에 다닐 수 있는 ‘혜택’을 받을 수도 잇다. 그래서 자기 처지를 일찌감치 깨우친 여학생들은 “학교는 졸업장만 따는 곳”으로 적만 둔 채, 미용기술학원 같은 곳에 나가기도 한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교사에게 그런 아이들은 오히려 기특하기만 하다. 덕성여고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박정호교사는 그런 점에서 정부가 직업교육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적만 학교에 두고서 비싼 수강료 내며 기술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물고 있는 ‘이중과세’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직업학교를 졸업하면 고졸학력을 인정해줘야 한다.

그런 식으로 직업학교를 운영하라 분야는 많다. 시중에 널려 잇는 문화센터니 하는 곳에서 가르치는 것도 모두 그 직업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것 들이다. 예를 들어 전통공예반이니, 자수반이니, 지점토반이니 해서 수준 높은 강사들을 초빙해 가르친다면 학생들도 본인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박교사의 주장이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입시철이 왔다. 죄다 대학에 가겠다고 하는 이이들이 다니는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 학급의 경우, 대개 하루종일 비어있는 자리도 5~10석쯤이나 된다. 이동수업 시간에 땡땡이친 아이들도 너댓명이나 된다. 어떤 아이들은 숫제 책걸상을 들고 나간다. 아예 빈자리를 없애 선생님 눈을 속이기 위해서이다. 15~20명쯤은 선생님에게 인사를 마치기 무섭게 잠을 잔다. 마치 잠자려고 학교에 오는 아이들 같다.

 

12년 공부에 “원서나 한번 써보자”

아예 원서조차 안 쓴 학생은 5명 안팎. 결석한 아이들 중에는 이미 제 실력보다 훨씬 높게 지원을 해놓고선, 이른바 상향지원은 했으니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집 근처 독서실에서 공부하느라 안 나오는 학생도 있다. 막판에 다급해진 이 아이들에게는 등하교 시간조차 아까운 것이다.

5명쯤 되는 원서 안 쓴 아이들은 어쩌면 ‘현명한’ 학생이다. 이 아이들은 반에서 성적이 바닥인 편은 아니나 어차피 진학할 가망은 없으니 그렇다. 오히려 어느 반이건 성적이 맨 꼴찌인 아이들은 거개가 꼬박꼬박 원서를 쓴다고 한다. 이 아이들에게 원서 쓴 이유를 물은면 대개 “왜 압니까, 앞사람 잘 만나면”이란 되바라진 대답이 돌아온다.

그런 아이들이 많다 보니 사실 어찌보면 올해 전기대 입시경쟁률 4.5대 1이라는 수치도 무의미하다고 지적하는 교사도 있다. 그러나 학교는 원서 내보았자 안되는 것이 뻔한 아이들일망정 막을 수는 없다. 오로지 대학 가려고 허비한 교육 기간이 12년인데 졸업하는 마당에 “원서라도 한번 써보자”는 아이들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학교교육 과정에 추수지도라는 게 있다. 말하자면 졸업생들이 올바른 길로 가도록 졸업후에도 관심을 갖고 지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게 있다는 것말고는 실제 아무런 의미조차 없다. 학교를 일단 졸업하면 대학을 못간 아이들은 연락이 없고 학교에서도 굳이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다.

도대체 그 아이들이 어느 공장, 어떤 술집에 있는지 모르는 판에 ‘지도’라는 말은 가당치 않다. 다만 아직 대학이란 목표를 버리지 않은 재수생 졸업생들만 학교와 끈이 닿을 뿐이니 추수지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면 재수생 입시지도인 셈이다.

이처럼 대학과 관계가 없는 아이들은 한번 학교를 떠나면 잘되건 못되건 알 바 아니다. 모든 교육적 평가는 그 학교가 거둔 대입성적으로 판가름난다. 아무리 다른 교육은 잘못해도 대학에만 많이 보내면 다른 모든 잘못이 덮어지기 때문이다.

 

“제도를 깨부수지 않고는 고칠 수 없다”

교육현장의 교사들은 현재의 병폐는 “제도를 깨부수지 않고서는 고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변화를 가장 싫어하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계의 풍토이다.

보충수업을 예로 들더라도 현재와 같은 입시제도 아래서는 도무지 해결할 길이 없다. 보충수업을 없애는 길은 “웃기는 현실이지만, 문교부에서 보충수업을 무조건 없애라고 지시하는 수밖에 없다”고 어떤 교사는 말한다. 지금처럼 강요받은 자율 속에서는 아무리 “자율적으로 보충수업을 시행하라”고 문교부에서 지침을 보내도 그것의 시행은 우선 눈치부터 살피는 교장들에게 맡겨지는 것이니 해결될 수 없다는 말이다. 결국 학교에 몸담고 있는 모든 이들이 함께 나서지 않는 한 현재처럼 ‘학생을 죽이는 학교교육’은 바뀌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런 제안도 잇다. 문교장관이 한달에 한번씩이라도 학교에 나와 수업을 받으면서 학생들이 학교에서 겪는 하루일과를 그대로 체험해 보라는 것이다. 가끔 서울시장이나 교통부장관도 서민들의 교통지옥을 피부로 느낀답시고 버스나 전철을 타기도 하니 그리 무리한 주문도 아닌 셈이다.

새벽에 도시락 2개 싸들고 학교에 와 ‘자율 · 보충’받고, 2교시 끝나면 그중 하나 까먹고, 정규수업이 끝나면 ‘보충 · 심야’를 받고, 심야학습 마치면 사설 독서실로 직행해 새벽까지 공부하다 보면 장관이 피부로 느끼게 될까? ‘학교가 학생을 죽인다’는 표현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라는 그 속사정을.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이다. 육성회니 뭐니 해서 준비된 수업참관일랑 집어치우고 더도덜도말고 한달에 한번씩만 아이들과 똑같은 생활을 겪어보면 제 자식을 죽이려고 작정한 부모가 아닌 바에야 더는 아이들에게 “공부해라”하고 들볶지는 않을 것이다.

 

 

89년 하반기 중 · 고교생 자살 사례

● 7월17일 새벽 3시10분 경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5가 유원2차아파트 205동 12층 1201호 최승남(46 · 회사원)씨 집 베란다에서 최씨의 맏딸 최은선(16 · ㅈ여고 2년)양이 30m 아래 잔디밭으로 투신자살.

● 8월23일 새벽 서울 동부이촌동 현대아파트 12동 12층 옥상에서 이 아파트 11동 304호 김성호(46 · 악사)씨의 장녀 김정민(18 · ㅅ여고 3년)양이 투신자살.

● 8월24일 오후 7시40분경 충북 청주시 송절동 미호천 제방에서 배성식(17 · ㅎ고 2년)군이 농약을 마시고 자살.

● 9월18일 새벽 0시30분경 서울 목4동 신목로얄빌라 나동 302호 맹서영(44 · 회사원)씨 집 건넌방에서 장녀 맹규원(16 · ㄷ여고 1년)양이 “날이 밝으면 학교 가기가 불안하다. 꼭 일류대학에 가야만 하느냐”는 유언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남기고 목을 매고 자살.

● 10월2일 오후 6시경 경남 창원시 반송동 반송아파트 137동 505호 앞 옥상으로 통하는 사다리 계단에서 정승효(18 · ㅊ고교 3년)군이 노끈으로 목을 매 자살.

● 10월13일 오후 7시30분 경 서울 성동구 자양동 남단 잠실대교에서 김효준(17 · ㅁ고3년)군이 30여m 아래 한강으로 투신자살.

● 10월22일 오후 3시경 인천시 남구 주안3동 정낙현(45)씨 집 건넌방에서 장남 정준호(17 · ㅇ고 2년)군이 운동기구에 보이스카우트 포승줄을 연결, 목을 매고 자살.

● 10월27일 새벽 전주시 효자동에서 신모(ㅈ여중 3년)양이 자기집 공부방 문틀에 나일론 허리띠 두개를 연결, 자살.

● 10월31일 낮 12시20분경 서울 구로구 현대 연예인아파트 203동 1504호 노덕식(54)씨 집에서 둘째아들 노상윤(18 · 재수생)군이 아파트 거실 창문을 통해 투신자살.

● 11월6일 오후 6시40분경 경기도 오산시 원동 유모(39)씨의 과수원에서 유씨의 장남 유모(15)군과 같은 반 한모(14)양이 “공부를 잘할 자신이 없어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

● 11월6일 오전 11시경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21동 114호 김병갑(46세)씨 집앞 11층 베란다에서 장남 김규태(18 · ㄱ고3년 자퇴)군이, 이날 오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은희(17 · ㄱ여고 2년 휴학)양이 투신자살.

● 11월29일 오전 6시5분경 서울 강서구 화곡2동 화곡성결교회옆 공터에서 김장수(16 · ㅁ고교 1년)군이 극약을 마신 뒤 유리조각으로 동맥을 끊고 자살.

 

 

현직 교사가 보는 현실

교육의 비인간화가 자살유혹

부모의 ‘공부타령’이 학생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

우리사회에서는 대학(교육)을 통해서만 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 잇게 된다는 식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특히ㅇ나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과의 대화 시간이 가뭄에 콩나기 식으로 마련되어도 성적 얘기로 대부분이 메워질 수밖에 없다.

“야, 이녀석아 공부해서 남주니?” “공부는 안하고 책만 읽으면 누가 대학에 보내 주니?”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다”…. 이같이 집에서 가해지는 성적에 대한 압박이 비뚤어진 교육제도와 맞물려 학생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는다. 인간의 모습 자체도 성적으로만 평가되는 듯하다. 오랜만에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요즘 공부 잘 되니?” “전체에서 몇등이나 하니?” 따위의 성적에 관한 질문부터 던지기 때문이다. “공부도 못하는 것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모범생은 공부에만 신경을 써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학생이다.

도대체 성적이 나쁘다 싶으면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그 일그러진 마음을 달릴 수 있는 곳은 없지, 보살펴주는 사람도 없지, 그러나 술 · 담배 · 본드 · 오락실 · 유흥업소 등 기성세대의 저급한 쓰레기문화에 쉽게 젖어들게 된다. 성적의 압박, 학교생활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달아나고 싶어 한다.

시험성적이 낮아지거나 오르지 않을 때는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게 되고 자포자기의 상태로 떨어지고 심한 무력감에 젖어들어 무엇에든 자신없어 한다. 성적이 떨어지는 데 대한 불안이 강박관념을 만들어내어 허우적거리게 되고 결국 자기상실의 위기를 맞는 상태로 나타난다.

시험시간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 못하는 학생, 시험 도중에 견디지 못하겠다고 교실을 나가버리는 학생도 있다. 시험 때가 다가오면 위장병 등 내과질환이 악화되기도 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다가 시험이 지나면 빠르게 회복된다. 그리하여 신경이 악화되어 정신질환이 발생해 진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

몰가치적인 성적에 의한 평가로 가해지는 외부로부터의 압박, 대학말고는 제시되는 것이 없는 어두운 현실, 자기 속으로의 매몰, 이로부터 자유로워져 진실된 가치를 찾고자 하는 안으로부터의 욕구, 이런 것들 속에서 갈등하고, 이런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다가 좌절 끝에 선택하게 되는 것, 그것이 혹시 자살은 아닐까?

조은동 (성루 공학고등학교 교사)

 

 

고교생의 일기


지겨운 경쟁, 한번 웃고싶다

서로 위로하고 사랑 넘치는 학교생활 됐으면

오늘 아침에 학교에 가는데 지각을 해서 있는 힘을 다해 뛰어 학교에 도착하니까 학생주임 선생님께서 지켜서있고 지각생들이 쪼그려뛰기를 하고 있었다. 보충수업을 하고 있을 시간인데 아이들과 같이 쪼그려뛰기를 하고 운동장 청소를 한 뒤 몽둥이로 3대를 맞고 교실에 들어갔더니 이미 보충수업은 끝난 후였다. 그래서 아침부터 기분이 무척 나빴다.

담임선생님께서 들어오시더니 대입원서 접수가 마감됐는데 경쟁률이 4대1이라고 하시면서 윽박지르시고 나가셨다. 담임선생님 말씀이 끝나자마자 아이들 얼굴이 노랗게 떴다. 그래도 대학을 포기했다고 하는 아이들은 기분좋다는 듯이 무척 떠들어대고….

교실 분위기가 너무 차가워졌다. 겨울이 다가와서 밖은 영하로 떨어졌는데 영하 3도 이하가 아니면 난로를 때지 않기 때문에 더 더욱 추웠다. 수학시간에 너무 추워서 그런지 다리에 쥐가 났다. 앉아 있기가 힘들어 일어나서 책상을 짚고 다리를 풀려고 했지만 더 아팠다.

3교시 끝나는 종이 치자마자 거의 모든 아이들이 도시락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억지로 꾸역꾸역 처넣었다. 아침을 못먹고 학교에 애들이 많기 때문에 성인군자나 단식투쟁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점심시간가지 참을 수가 없다. 국사시간에 강의를 하시는데 모르는 부분이 생겨 질문을 했더니 진도에 지장을 준다고 나중에 교무실로 내려오라고 했다. 한시간 내내 질문도 하지 못하고 선생님께서 중요하다고 하시면 그냥 빨간색 볼펜으로 줄을 긋고 왜 중요한지도 모르는 채 “응 그렇구나, 외워야지”하는 생각밖에 안든다.

뒤에 앉아서 자는 아이들이 선생님께 걸려서 혼나고 따귀를 맞았다. 무척 안쓰러워 보였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한학급인데도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한 친구가 한명도 없고 아직까지 이름이 헛갈리는 친구도 있다. 서로들 너무 벽을 쌓고 있다. 사랑하고, 나누어주고, 서로 위로해주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잘못돼도 ‘그렇구나’, 안 나와도 ‘그렇구나’ 관심이 없다.

모든 생각과 관심을 끊고 공부를 해야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현실을 안고 있는 것. 우리들의 웃음을 점점 절망과 울음으로 변하게 하고 건강하고 활기차던 모습 역시 빌빌거리고 기죽어 사는, 그래서 교실 역시 웃는 모습보다는 서로 눈치보고 싸우듯이 으르렁대는 생활. 정말이지 지긋지긋하고 싫다. 사랑이 넘치고 모두 마음껏 즐겁게 웃을 수 있는 학교가 됐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이 일기를 쓰는데도 지금 공부하고 있을 다른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김동균 (서울 용문고등학교 2학년)

 

 

함께하는 교육 현장 · 경남 거창고

공부보다는 사람이 먼저

거름치기 · 김매기 등 통해 육체노동의 신성함 깨닫게 해

거창고등학교는 서부 경남의 한 모퉁이에 위치한 인구 4만의 거창읍에 있는 인문계 사립학교이다. 각 학년 4학급(남학생 3학급, 여학생 1학급)이니까 모두 합해 12학급. 도회지의 큰 고등학교의 한 학년 규모가 우리 학교 전체의 규모와 맞먹는다. 현재 총 6백81명의 학생에 24명의 교사와 3명의 서무직원이 거창고등학교의 식구이다. 같은 재단에 속하는 샛별국민학교와 샛별중학교가 한 자리에 있다.

1953년에 개교하여 올봄 서른여섯번째로 내보낸 학생들까지 합하여 총 5천1백9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956년에 제3대 전영창 교장이 부임했을 때 이 학교는 오스트레일리아 선교사들이 살던 낡아빠진 벽돌집 두 채와 천막 교실 하나가 그 건물의 전부였다. 그분의 헌신적인 노력과 그의 뜻을 따르는 많은 젊은 선생님들의 보리밥과 감자로 끼니를 때워가며 이 학교의 기틀을 세워놓았다.

우리 학교라고 해서 별다른 교육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인문고등학교이기 때문에 우리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빠짐없이 대학진학을 원한다. 요즘같이 대학의 문이 좁은 때에 누구나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지 않으면 대학에 갈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각박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대학 입시에 드는 과목 이외의 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비합리적이고 비능률저긍로보인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서는 육체노동 활동이나 서클 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개교기념행사 진행 책임 학생회가 맡아

학교에서 5리 정도 떨어진 야산에 학교 농장이 잇는데, 젖소와 사과나무가 있다. 사과나무 밑에 거름을 묻고, 김매고, 아카시아잎을 따고 칡넝쿨 걷는 일들을 우리 학생들이 한다. 한달에 한번꼴로 가서 대개 3~4시간 동안 교사와 학생이 어울려 일을 한다. 교실에서, 교무실에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공부하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뜨거운 햇볕 아래 가시에 손을 찔려가며 함께 아카시아잎을 따면서 아이들과 나누는 한두 마디가 훨씬 더 효과적이다.

그러나 학생들 전부가 이러한 교육적 가치를 이해하고 농장일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어서 우리 학생들 중에도 이 정도의 일을 몹시 힘들어하고 싫어하는 학생들도 있다. 학생들과 교실 밖에서 어울릴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로는 봄에 열리는 개교기념 축제와 1박2일의 봄소풍이 있다. 3일간에 걸친 개교기념 행사는 학생회가 모든 것을 준비 · 진행시킴은 물론 예산편성과 집행도 다 맡아한다. 그렇다고 교사는 뒷전에서 수수방관만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아이들과 같이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운동장에서 사흘을 지내고 나면 몸살을 앓는 선생님들이 많다.

 

토끼 · 노루 사냥은 큰 추억거리

1박2일의 봄소풍 때에는 전교생이 천막을 치고 하룻밤을 같이 지낸다. 규모가 큰 학교로서는 하기 어려운 일인데 우리는 작기 때문에 할 수 있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턱대고 큰 학교가 곧 좋은 학교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선생님들의 수고가 여간 아니다. 학생들은 신나게 놀지만 선생님들은 밤이슬 맞아가며 순찰을 돌아야 한다. 오뉴월에도 깊은 산골의 밤공기는 뼈속까지 스며들 정도로 차다.

겨울이 와서 발목이 ㅂ자질 만큼의 눈이 쌓이면 우린 한나절의 수업을 쉬고 농장 뒷산으로 토끼사냥을 간다. 토끼를 잡으러 갔다가 노루까지 잡은 해도 있지만 토끼구경도 못하고 오는 해도 있다. 모처럼 내린 눈 속에서 넘어지고 딩굴며 보낸 한나절이 학생들에게는 큰 추억이 되어 해마다 졸업식장에서 송사 · 답사를 통해 이 이야기가 언급된다.

영어 · 수학의 능력별 수업은 30년 넘게 해오고 있다. 그래도 기초실력 부족으로 못따라오는 학생들을 위해 특별수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에게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기울여보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우리의 능력 부족으로 아이들의 요구를 다 충족시킬 수도 없고 현재와 같은 잘못된 제도 교육 안에서 우리의 노력이라는 게 너무 보잘것 없음을 느낄 때도 많다. 그러나 없고 안되는 일을 탓하기보다 힘자라는 데까지 해보려는 것이 우리 학교에 모여 있는 교사 24명의 마음이다. 모든 것이 돈과 학력으로 계산되는 사회에서 사람다운 사람을 키워보려는 우리의 노력은 달걀로 바위를 부숴보려는 부질없는 몸짓으로 보일 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몸짓을 오늘도 내일도 계속한다.

전덕애 (경남 거창고등학교 교사)

 

 

외국의 입시교육

토론위주로 지성 · 교양 길러

다양한 가치관, 풍부한 사회진출 기회가 교육제도 뒷받침

오랜만에 귀국한 한 해외교포는 우리나라 대학입학시험 광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대학 정문의 문살 틈으로 학교를 바라보면서 기도를 하는 어머니는 하루 종일 자리를 뜨지 않는다. 수험생은 쉬는 시간이 되면 어머니가 보온병에 넣어 온, 인삼과 녹용 끓인 물을 문살 틈으로 받아 마시고 또 시험장으로 달려간다. 전쟁을 하는 것과 흡사해,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아프더라는 것이다. 자녀가 고3이 되면 온 집에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전시체제’로 들어간다는 말까지 없지 않다.

외국의 입시준비상황은 어떤가? 인간이 사는 곳엔 경쟁이 있게 마련이므로 입시경쟁 역시 어느 나라에나 없지 않다.

미국에서도 입학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학업적성검사(SAT)와 대학원 입학용고사(GRE)를 치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전국의 학교와 가정이 입시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고 여겨진다.

그러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부모들의 가치관이 자녀의 독립적인 생활을 좋아하기 때문에 부모들이 ‘입시서비스’를 하려고 하지 않고, 도 자녀의 진로나 공부에 강제적으로 간섭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국토가 넓고 삶의 이념과 목표, 방식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기회도 풍부하여 인생행로에서의 ‘병목현상’인 입시가 극성을 부리지 못한다.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나라는 또 다른 이유로 입시가 우리처럼 과열되지 않는다. 프랑스의 대학입학국가고사인 바카로레아에서 1등을 하면 대통령과 면담하는 영광을 얻고, 답안이 신문에 공개되는 등 우수성에 대한 프랑스인의 관심은 높지만, 시험문제가 주관식이어서 암기식 입시준비교육보다도 토론 등으로 지성의 개발에 힘쓴다.

예컨대, “선거는 왜 하는가?”라는 단 하나의 문제가 바카로레아의 어떤 시험과목에 출제되기도 했다.

주관식 시험과 구두시험이 필수로 되어 잇는 유럽식 시험에서는 대체적으로 폭넓은 교양과 사고력이 학교의 수업을 통하여 길러진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시험결과도 좋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역시 사회전체의 구조와 사람들의 일반적인 가치관이다. 프랑스, 영국, 독일 등이 모두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아동들이 국민학교를 졸업하는 10세 전후의 시기에 학업성적, 지능검사, 가정환경 등을 참고로 하여 인문계 중학교, 실업계 중학교, 직업학교의 셋 중 어느 하나에 진학토록 하는 3분체제(Tripartitesystem)를 가지고 있다. 사회계측구조가 엄격했던 시대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는 복선제의 교육제도(multi-track system)이다.

이 갈림길에서 한번 어느 한 곳에 진학하게 되면 다시 바꾸기가 어렵다. 말하자면 인문계 중학교(영국의 그래머스쿨이나 퍼블릭스쿨, 독일의 김나지움, 프랑스의 리세움 등)에 진학한 학생에게만 정규대학 진학의 문호가 열리게 된다. 학교에 진로위원회가 설치되어 이 위원회에서 학생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이 결정에 항의하는 학부모도 있으나 그 수는 많지 않고 대개는 이 결정을 따른다.

아직 피어나지도 않은 10여살 때에 장래에 판사가 될 ‘존’과 슈퍼마킷에서 일하게 될 ‘메리’가 다시는 한책상에 앉지 못하게 되는 이 제도는 잔인하고 계급적이라는 비판이 있으나, 어린이들이 능력과 가정환경에 맞게 진로를 결정하는 장점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진로의 기회가 단순하여 특정한 한곳으로 몰리는 병목현상 때문에 입시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생각된다. 입시교육은 학교만의 책임은 아닌 것 같으며, 우리사회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과제이다.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기회가 다양해지면 가치관도 다양화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입시문제도 다소 양상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그동안만이라도 인간교육의 실현에 우리는 노력해야 하겠다.

 차경수 (서울대 교수 · 사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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