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 끌어들여 민주화에 찬물
  • 표완수 편집의원 ()
  • 승인 1989.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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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노, 美 공군 지원받아 쿠데타 진압… 미군기지 협상에도 영향 끼칠듯

코라손 아키노 필리핀대통령이 집권 이후 6번째 쿠데타를 가까스로 진압하고 살아남았다. 자신에게 충성하는 정부군이나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던 ‘피플 파워’에 의해 반란군을 진압한 게 아니라 미국의 군사지원을 받아 겨우 위기를 넘겼다. 반란군으로부터의 정권탈취 위협은 일단 모면했으나 이번의 쿠데타 진압방법으로 인해 그녀의 앞길에는 더욱 큰 어려움이 가로놓이게 되었다. ‘무능한 정부’라는 기존의 오명 위에 ‘외세에 의존하는 정권’이라는 낙인이 하나 더 찍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번 쿠데타는 필리핀 군부내의 젊은 개혁파 장교그룹인 RAM(군부개혁운동) 소속 군인들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거사 당일인 지난주 금요일에는 반란군이 마닐라 인근의 빌라모르 공군기지와 국영 텔레비전방송국 등 주요 시설을 점거하고 대통령궁에 포격을 가하는 등 아키노정권을 극도의 위기상황으로까지 몰아갔었다. 미 공군의 개입이 아니었더라면 아키노정부를 넘어뜨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반란군 지도자들의 주장이다. 쿠데타 주도자 가운데 한사람인 에르가르도 아베니나 준장이 미국의 일간지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주장한 바에 따르면 당시 피델 라모스 국방장관과 레나토 데 비야 참모총장은 자신들의 집무실에서 달아났으며, 아키노 대통령도 말라카낭궁을 빠져나갔었다는 것이다.

 

대통령국 포격에도 정부군 팔짱

아베니나 준장은 87년 8월 4백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실패로 끝난 5번째 쿠데타에 호나산 대령과 함께 참여했던 인물로, 이번 쿠데타도 자신과 호나산 전 대령 등 개혁파 ‘민족주의자들’과 마르코스 지지자들이 주도했다고 밝혔다.

이번 쿠데타의 배경과 원인으로는 아키노정부의 무능과 부패, 경제정책 실패, 군부에 대한 통제권 상실 등이 일반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거기에 지난 10월 상원이 내놓았던 경찰군폐지안으로 인해 군장교들의 불만이 고조됐고, 전반적인 물가고 속에 11월29일 단행된 연료 등 석유제품가격의 대폭적 인상(21~34%)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는 것이다.

사실 필리핀 군부의 쿠데타설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가을 아키노의 미국방문때는 그의 방미기간중에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이것은 아키노정부가 약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피플 파워’ 이후 국민들의 아키노정부에 대한 지지가 크게 약화됐음을 말하는 것으로, 실제 이번 쿠데타에서 그같은 사실들은 그대로 노출되었다. 반란군이 대통령궁에 포격을 가하는 동안 정부군의 F-5 전투기들은 수수방관하고 있었다는 게 현지발 외신들의 전언이다.

 

미군 개입 국제적 논란 빚을지도


한편 미군기지 협상으로 미묘한 국면에 빠진 양국관계는 이번 사건으로 더욱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분석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필리핀의 신문들은 ‘부시가 아키노를 구했다’ ‘아키노, 새로운 외채를 끌어들이다’ 등의 제목 아래 아키노정부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미국이 자국의 해외군사기지를 주둔국의 정권보호를 위해 사용하는 예는 극히 드믄 경우라고 분석가들은 보고있다. 제3국에 대한 군사개입의 경우 대체로 자국 함대의 병력을 파견하거나 본국의 병력을 공수하는 방식을 택해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미국의 이번 역할은 필리핀 국내에서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논란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소련은 몰타 미 · 소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지난 1일 미국의 필리핀사태 개입을 ‘파괴적’ 행위라고 규탄했다.

필리핀 국내외의 이같은 반응을 의식했음인지 미국과 필리핀은 쿠데타 진압에 있어서의 미국의 역할을 애써 축소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키노 대통령의 안보담당보좌간인 라파엘 일레토 전 국방장관은 미국의 지원은 반란군의 공중공격을 사전에 방지키 위한 조치였을 뿐이라고 그 의미를 축소했다. 니콜라스 플리트 필리핀주재 미국대사는 미군기가 단 1발의 사격도 가하지 않았으며 정찰비행도 당일 뿐이었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양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파장은 간단히 끝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최대 해외군사기지인 클라크공군기지와 수비크만 해군기지 존속여부 협상을 진행중인 미 · 필리필 관계가 이번 사건으로 더욱 유동적이 될 것으로 보이며, 필리핀 주둔 미군기지와 베트남의 캄란만 주둔 소련 해군기지의 동시 철수를 주장하고 있는 소련측에도 이번 사건은 새로운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플 파워’에 의해 세워진 아키노정권의 민주화 실험이 ‘외세 의존’이라는 치명타를 과연 어떻게 견디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세계의 이목이 필리핀에 집중되는 것도 그런 관심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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