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浩中외무장관 인터뷰
  • 파리 · 김승웅 주간대리 ()
  • 승인 1989.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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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사외교는 내부검토 거친 결과”

동구 修交 서두르지 않을 것… 민간기업 시베리아 진출 적극 유도

盧泰愚대통령이 유럽순방을 마치고 귀국했다. 이번 순방일정에는 동구 사회주의국가인 헝가리가 포함돼 있어, 6공출범 후 정부가 외교의 기치로 내건 북방외교가 구체적 장소와 시간을 골라 어떻게 구현되고 얼마만큼 성과를 거둘 수 있는가를 예시한 시험무대가 됐다는 점에서 기존의 정상 순방외교와는 궤를 달리한다.

이번 순방외교의 마감 현장인 파리에서, 대통령의 입과 손 역할을 해온 崔浩中외무장관을 만나 북방외교의 결실을 가늠해본다. 귀로에 오르기 직전, 파리 영빈관에서 만난 그는 무척 지쳐 있었다. 그러나 표정은 어느때보다 밝았다. 북방외교에 관한 한 ‘밀사외교’다 ‘밀실외교’다 해서 외교 실무책으로 보낸 불편한 나날을 청산했기 때문일까. 그의 어조도 평소와는 달리 매우 힘차 보인다.

● 북방외교의 ‘북방’이라는 말이 잘못 쓰이고 있습니다. 동구나 소련 등 북쪽국가들을 겨냥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북방외교의 종점은 북한 아닙니까? 북한을 향한 문을 활짝 열어놓고 남 · 북한관계를 지금의 동 · 서독관계의 차원으로 승화시키자는 취지같은데…. 어떻습니까. 이번 헝가리순방을 계기로 정부의 북방외교는 1백미터 풀코스 가운데 몇미터 지점에 와 있다고 평가하십니까?

만사에 시작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온 듯한데…. 그 시작이 헝가리에서 시작된 건 정말 잘 된 일입니다. 동구의 개혁과 민주화가 제일 먼저 시작된 곳이 헝가리거든요. 또 한가지는, 우리가 잘 됐다고 평가하는 것 이상으로 헝가리측에도 이번 盧대통령방문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자기네 개혁과 민주화의 본보기가 이번 盧대통령의 초청방문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 시작이 반이라면, 50미터 지점에 와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고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지난 11월1일 폴란드와도 수교했는데, 우리가 아픙로 수교할 동구국가는 모두 몇나라나 됩니까? 또 다음번 수교국가는 어딥니까. 체코입니까, 유고입니까?

일단은 동구 모든 나라가 수교대상입니다. 그렇다고 서둘러 수교할 생각은 없습니다. 유고와는 연내에 수교하기로 이미 합의가 돼 있습니다. 여타 다른 나라, 예컨대 동독이나 체코 같은 나라는 현재 국내적으로 민주화의 홍역을 앓고 있기 때문에 그 나라들이 홍역의 고비를 일단 넘긴 다음 서두르지 않고 수교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그 중 가장 핵심적인 나라가 소련일텐데, 소련과의 수교는 언제쯤 가능하리라고 보십니까?

소련도 우리의 경제진출을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의 민간기업체가 소련에 발을 딛게 하기 위한 투자여건의 조성, 다시 말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분위기와 안전조치를 취해주는 것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역할입니다. 그러나 소련이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입장을 이해한다면, 우선 당장 수교관계로 치닫기보다는 영사관계부터 튼 후 서서히 몰아붙이는 것이 우리 정부의 복안입니다.

● 동구를 우회하지 말고 곧바로 모스크바로 직진해도 무리가 없잖습니까?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우리 북방외교의 모델이 서독의 동방정책인 듯한데, 동 · 서독 기본조약이 체결된 1972년과 17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다르거든요. 17년 전의 동구와 소련과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였습니다. 지금은, 소련은 동구를 필요로 하지만 동구는 소련을 필요로 하지 않는 관계입니다.

모스크바를 가기 위해 일부러 동구를 도는 게 아닙니다. 동구와 관계정상화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소련과도 관계를 개선토록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정책의 병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민간기업이 시베리아 개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소련과 접촉하고 있는 것이 그 한 예가 아닙니까? 정부로서는 그 접촉의 폭을 넓혀주고, 보다 많은 참여가 이루어지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소련의 삼림개발이나 자원도입이 활성화되도록 노력하고 있잖습니까.

● 거북한 질문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북방외교에 관한 한 외교의 주무부서인 외무부가 실무주역이 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언론이나 일부 국민들 가운데 그런 시각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무부서의 책임과 입장에서 볼 때, 외무부가 북방외교에 관한 자체의 목소리를 잃었다거나 역할을 빼앗겼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밀실외교다, 또는 특정 개인의 외교다 하는 말이 많이 떠돌았습니다만, 그건 어느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대외적으로 밝히고 싶어도 밝힐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외교란 현실입니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특정인물이나 특정채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특정인물이나 채널 활용은 당초부터 내부적으로 이미 검토를 거친 결과라는 말씀입니다. 적어도 그 단계에서는 그렇게 추진하는 것이 가장 현명했다는 얘깁니다.

● 서독방문 당시, 盧대통령 스스로 베를린 장벽 앞에 모습을 한번 나타내는 것이 좋았지 않습니까? 일반 관행외교와는 달리, 정상외교라는 차원에서 그런 순발력 넘치는 스타일은 퍽 필요하다고 보는데…. 또 대통령의 서독방문이 베를린장벽 제거와 타이밍이 딱 맞아 떨어졌는데, 결국 이 호재를 외교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던 것 아닙니까?

盧대통령의 서독방문은 2박3일의 짧은 일정이었습니다. 또 베를린의 벽이 허물어짐으로써 당시 베를린시가 무척 흥분된 상태였습니다. 대통령이 꼭 그곳에 가야만 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된 건 사실입니다만, 여러가지 여건을 검토한 결과, 안 가는 쪽이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겁니다. 우선 초청국인 서독정부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셔온 국빈에게 초청국으로서 당연히 신경을 써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만약 盧대통령의 베를린탐방이 이뤄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 서독정부는 盧대통령의 베를린방문을 만류하는 입장이었습니까?

서독체류 일정이 2박3일인지라, 만약 베를린방문이 이루어질 경우 이 일정 가지고는 약간 벅찬 일정이 되겠고, 또 국가원수의 방문 때는 여타 인사의 방문처럼 즉흥적이고 수의적으로 행동하기가 어렵게 돼 있습니다.

● 대통령의 일부 참모들 가운데는, 단 1시간이라도 좋으니 베를린방문이 유익하다고 제안했던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崔장관께서 평소의 ‘안전외교’를 주장, 그 계획을 만류시킨 것 아닙니까?

그런 측면도 좀 있었지요. 이를테면, 어느 개인이 베를린엘 가겠다 하면, 쉽게 갈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한 나라 국가원수의 경우에는 하루이틀 사이에 상황을 쉽게 바꿀 수가 없습니다. 외국의 관행이나 관례로 보아 쉽게 취해질 조치가 아님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盧대통령의 헝가리의회 연설도 좀 미흡하지 않았습니까? 현지에서 직접 듣고 느낀 점입니다만, 헝가리의회 사상 초유의 초청연설이었다는 점에서 뭔가 좀더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인 표현이나 문구가 아쉬웠습니다. 우리나라 국내문제나 헝가리 문제에만 국한하지 말고…. 헝가리 방문이 북방외교 구현의 첫 신호탄 아니었습니까?

그날 헝가리의회에는 국회의원들뿐만 아니라 쉬로쉬 헝가리 대통령권한대행을 비롯해서 여야 대통령후보 모두와, 각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매우 역사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대통령 연설 후 그 나라 외무장관은 “아주 감명깊은 연설이었다”고 격찬했습니다. 흔한 외교적 발언이 아니라, 진실된 평가로 들렸습니다. 물론 연설내용에 원대하고 장엄한 표현을 삽입할 수 있었겠습니다만, 盧대통령의 이번 헝가리방문이 어디까지나 수교에 따른 방문형식이 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한국 · 헝가리 양국관계에 치중해서, 우리의 경험을 그쪽 나라에 알리고 또 그 나라가 잘 되기를 바란다는 우리의 소망을 전하는 것이 바람직한 연설내용이라고 여깁니다. 또 연설내용에도 나타나 있습니다만, 한국 · 헝가리 양국관계를 모델로 삼아 이를 토대로 우리의 북방외교를 전개한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십분 표현된 연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지적한 것처럼 그렇게 보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저희 입장에서 볼 대는 매우 진지했고 내용면에서도 충실했던 연설이었습니다.

● 첫 순방국인 서독에서, 그 나라 바이츠제커 대통령과 盧대통령의 요담이 한국의 인권문제때문에 퍽 불편하나 대좌가 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의 인권문제를 놓고 서독대통령이 ‘범죄행위’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그 대담은 정식회담이 아니라, 오찬에 앞서 가진 환담이었어요. 이 환담 가운데서, 서독이 현재 동독문제에 관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자신감이랄까, 이런 자신감은 남 · 북한관계에서도 한국이 지녀야 하지 않겠느냐는 어조로 그쪽 대통령이 하신 말씀 같습니다. 동독사람이 서독을 자유롭게 내왕하고 있고, 서독사람도 아무 부담없이 동독땅을 밟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누가 북한 좀 갔다 왔다고 무슨 큰 죄나 지은 사람처럼 다스리느냐… 이렇게 해서 나온 표현으로 봅니다. 지금의 남 · 북한관계를 동 · 서독관계와 같은 차원으로 보고 하신 말씀 같은데, 盧대통령께서 이 말씀을 듣고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당신네들 지금, 옛날 얘기 하고 있는거요. 실제로 한국을 한번 와서 보세요. 우리가 지금 얼마나 민주화가 돼 있고, 인권존중이 어느 수준에까지 와 있는지를 직접 목격하시면 답을 얻을 것입니다.” 또 바이츠제커 대통령 스스로도, 몇몇 민간 인권단체나 종교단체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해왔기 때문에 관심을 표명했을 뿐, 뭐 인권문제를 굳이 거론하려던 의향은 없었던 걸로 압니다.

● 굳이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말씀은 아닙니다만,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은, 외국원수를 초청한 입장에서 상대국 내부문제의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것이 선진국에서는 관례로 돼 있습니까?

그분이 독실한 종교인이라서, 종교 차원에서 뭔가 얘기를 꺼내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盧대통령이 한국의 민주화는 결코 역행이 불가능한 흐름임을 강조하셨고, 바이츠제커 대통령도 이 점에 대해서는 인식을 같이했습니다. 그분이 예전에 한국을 방문 한 적이 있는데, 지금과 그때가 같은 줄로 알고 잘못 파악한 데서 비롯된 일입니다.

● 이번 순방은 헝가리를 빼면, 이렇다할 현안이 없는 순방, ‘현안 없는 것이 현안’ 정도의 순방으로 평가하는 관측도 있습니다. 이런 평가가 틀린 겁니까?

지난번 미국방문 때도, 현안없이 미국의회 연설에 나섰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습니다만 이 모두가 정상외교에 대한 인식이 잘못돼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현안이 있어야만 정상외교를 벌이는 것이 아닙니다. 외교는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입니다. 외교는 결코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의 북방외교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이 ‘관계’가 무엇보다도 중시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또 나라와 나라와의 관계를 뛰어넘어, 한국이 동북아에 있는 한 분단국가에 불과하다는 고정틀을 깨고 지금은 세계무대에서 동서화해라든가, 남북협력문제, EC통합 등 국제문제에 대해서 우리의 몫을 다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질 때입니다. 정상외교란 이런 총체적인 외교구현의 가장 이상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 盧댙통령의 다음 순방국은 어디로 계획하고 계십니까? 일설에는 일본이 될 것으로 알려져 있던데요.

일본방문은 날짜까지 확정됐다가 연기되고 연기되고 했어요. 일본은 지금 국내적으로 중요한 선거를 치러야 될 입장이고, 이 선거가 지나 국내안정이 된 다음에 방문일정이 결정될 것으로 봅니다. 이 말은 다음 방문지가 꼭 일본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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