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해운경기, 먹구름 도사려
  • 박중환 편집위원대리 ()
  • 승인 1989.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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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 고비…92년 정부의 면허제한 철폐 · 시장개방 여부가 초점

국민경제의 희생을 바탕으로 간신히 되살아난 한국해운산업이 뜻밖의 호황을 맞아 가쁜 숨을 돌릴 만하자 90년대의 해상에 먹구름이 다시 모여들고 잇다.

해운경기를 분석 · 전망하는 전문가들은 코앞에 다가와 있는 90년대 초 2~3년간 어려움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해운 船社들은 이러한 경고의 심각성이 3~4년전 최악의 불황 때에 비하면 하찮다고 보는지 안이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80년대 경제계의 ‘미운 오리새끼’였던 한국해운산업이 90년대에는 ‘백조’로 변신될 것처럼 미화되는 데 대해 최근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적잖은 우려를 보이고 있다.

 

갚아야 할 빚은 아직도 4조2천억원

빚투성이 해운산업이 갑자가 ‘백조’로 미화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80년대 들어 내리 7년간 계속된 불황과 통폐합이란 사상 최악의 진통을 겪었던 해운산업이 87년 말 찾아온 3低현상의 덕택으로 지난해 4백62억원의 흑자를 낸 데 이어 올해도 5백50억원의 흑자가 예상되기 때문.

올해 국내 대부분의 산업이 급격한 경기후퇴로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해운산업이 기록한 이러한 흑자는 주목할 만한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같은 흑자의 상당부분은 국제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 해운산업의 특성상 국내경기 부진의 영향을 비교적 받지 않은 데다가 해운의 대금결제가 美달러화로 이뤄져 그동안 국내 수출산업에 타격을 준 원화절상으로 인한 피해가 별로 없었던 덕택이었다.

그러나 국제경기가 퇴조하면 그에 따라 기반이 약한 해운산업의 흑자 기조는 쉽게 적자로 바뀔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지난해 흑자 4백62억원을 분석해보면 이 중 33%인 1백52억원은 汎洋상선이 낸 것이며, 나머지 3백억원은 汎洋상선을 제외한 34개 해운선사들의 것을 모두 합한 액수. 汎洋상선이 떼돈을 벌게된 것은 원자재 철강제품 등 대량화물이 장기계약되어 있는 상황에서 배삯이 3년 새 곱절 가까이 앙등되었기 때문이다(1972년 종합운임을 100으로 봤을 때 86년도 평균지수는 172.3이며, 최근에는 301선을 기록했다).

汎洋상선과 같이 운심시세가 좋은 부정기항로에 주력하는 홍아해운 등 근해 중소선사들도 재미를 톡톡이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반대로 컨테이너 등을 싣고 지정항구를 다니는 現代상선, 韓進해운, 조양상선 등 정기항로의 대형 원양선사들은 외국의 대형선사들과의 과당경쟁 · 운임덤핑으로 간신히 적자를 면했거나 적자를 봤을 것이라는 업계 관계자의 분석이다. 원양정기항로선사들의 대외경쟁력이 신통찮다는 결론이며,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다시 부실화될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이를 근거로 해운합리화 조치를 평가한다면 결국 4천억원의 부채를 탕감해주고 4조2천억원의 원리금상환을 장기유예시켜주면서 얻고자 했던 해운산업의 대외경쟁력 제고는 공염불이 아니었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물론 부실 선사의 통폐합과 노후선의 과감한 처분이 없었다면 3低호황이 왔다 해도 그만한 흑자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합리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미국의 경기전망 전문기관인 위튼경제예측그룹(WEFA)은 최근 90년 및 91년의 세계경제성장률을 前年대비 3.2% 및 3.4%로 각각 전망, 지난 88년 및 89년의 전년대비 각각 4.2% 및 3.5%에 비해 둔화될 것으로 보았다. 이런 둔화는 미국 일본 서유럽 등의 선진국에서 두드러질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의 해운사업연구원은 이같은 경제전망에 따랄 부정기항로의 경우 90~91년에 선진국을 중심으로 각종 원자재 · 원유 등의 물동량이 약간씩 감소하는 반면 이들 화물을 실어 나를 선박은 新造船 증가와 노후선 처분지연으로 다소 늘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지난 2년여 동안 누렸던 호황은 앞으로 2~3년간에는 주춤해 질 것으로 보았다.

한편 정기항로의 경우 컨테이너선박의 대형화와 증편으로 船腹量은 전년대비 90년 10.2%, 91년 5.2%, 92년 6.2%, 93년 22.4%씩 늘어나는 반면 주요국의 컨테이너물동량은 90년에 4.8%, 91년 5.0%, 92년 5.7%, 93년 4.5%씩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분석했다. 이 분석대로라면 정기항로 해운선사들은 내년부터 2~3년간 선복량 과잉에다 화물부족까지 겹쳐 과당경쟁이 불가피해 부정기항로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歐洲항로는 과당경쟁으로 出血운항 뻔해

극동~구주 항로는 선복량이 지난해보다 30% 증가한 반면 화물은 8% 느는 데 그쳤고, 특히 한국의 수출화물은 15%나 줄었다. 이 영향으로 이 항로를 정기적으로 다니는 韓進, 조양 등의 한국 해운사들은 TEU당(20피트짜리 기준의 컨테이너 1개 단위) 운임을 지난해 1천8백달러에서 최근에는 1천2백달러로 30%나 내렸어도 화물을 확보하는 데 쩔쩔매고 있다. 이 항로에는 92년까지 대형 컨테이너 신조선이 크게 늘 것으로 보여 해운사들간의 새로운 운임협정 등 대책이 없는 한 90년대 세계 해운업계에 심각한 파동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설사 새 운임협정이 맺어진다 해도 선복량 · 운항회수 등에서 영국 대만 홍콩 등 해운강국 선사들 사이에 끼어 얼마만큼 제몫을 찾을지는 의문이다. 여기에다 오는 92년 유럽의 경제가 EC로 통합되면 육로수송 증가로 해상물동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여 더 걱정이다.

한편 극동~북미 항로는 출혈경쟁 끝에 지난 10월 선사들간의 새 운임협정 체결로 일단 안정되는 듯하지만 협정 자체가 덤핑을 못하게 운임을 동결시키는 대신 싣는 화물을 서로 일정 비율로 줄이는 방식이어서 해운회사의 살림살이를 근본적으로 나아지게 해주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해운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 李炅淳씨는 “90년 초 한국해운은 정기항로와 컨테이너선을 중심으로 시련이 예상된다”고 신중하게 지적한 뒤 이 고비를 잘 넘기고 기름값과 운임이 현수준에서 유지된다면 90년대 중반기의 해운시장은 안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개방압력까지 가세돼 雪上加霜

반면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세계해운시장 동향을 조사하는 한 관계자는 오늘의 한국해운산업을 이렇게 비유했다. “4억2천만원의 은행빚을 지고 파산한 사람이 있다 합시다. 그는 1년에 5백만원을 벌게 됐습니다. 굉장한 벌이인 듯하지만 1달에 41만7천원으로 가계살림을 꾸려나갈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벌이로 저축도 해 빚을 갚아야 하는데… 어렵지요.” 그는 이어 “더욱 우려되는 것은 근해의 작은 회사보다 빚을 많이 지고 있는 원양의 큰 회사들이 더 취약하다는 사실이지요”라고 지적했다.

해운항만청은 그동안 허약한 국내 해운산업을 보호 · 육성한다는 취지로 묶어놓았던 외항면허사항을 오는 92년 모두 풀어 업체의 자율경쟁에 맡길 계획을 세워놓고 잇다. 90년대 초 세계해운경기 전망과 한국해운산업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정부가 이 계획을 강행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런 징후는 얼마전 現代상선이 계열 조선소에서 큰 배를 여러 척 지어 92년부터 극동을 중심으로 북미 西岸과 유럽간을 시계추철검 정기적으로 왔다갔다하며 운항하는 ‘팬들럼 서비스’체제를 도입하려 하자 해운항만청이 국내 경쟁선사의 타격 등을 우려, 전면자율화계획을 유보할 움직임을 보이는 데서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이 서비스는 세계굴지의 해운사인 미국의 APL이 이미 도입해 원양해운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새로운 정기항로 운용방식이다. 더욱이 국내해운시장의 전면개방시 한국해운산업은 사실상 태풍 앞의 촛불이 아니겠느냐는 것. 그렇다고 계속 묶고 막아놓는 정책을 고수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어쩌면 한국해운산업은 90년대에도 시련과 도전이 끊이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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