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반제 · 반군부독재 예술로 승화
  • 김문환(서울대교수 · 연극평론가) ()
  • 승인 1989.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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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민족극 대표들이 한데 모여 펼친 <아시아의 외침>

아시아민중문화협의회의 <아시아의 외침>이라는 공연을 무척 흥미롭게 보았다. 필리핀, 인도, 스리랑카, 파키스탄, 타이, 일본,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그리고 한국의 기량있는 민중극 운동 배우들이 모인 이 공연은 두가지 측면에서 아시아의 특징을 추출 · 종합해내고 있다. 하나는 이 광대한 지역에 속한 민족들이 모두 그 나름대로 유구한 문화적 전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세사에서 이른바 강대국가들의 국가이익에 의해 침탈당해왔다는 것이다. 이 <아시아의 외침>에 각국의 문화요소가 다수 동원되고 있는 것은 따라서 아주 당연하고, 그러한 요소들이 이른바 제국주의의 주구세력으로 지목되니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을 위해 활용되고 잇는 것도 또한 이해함직하다.

기본적으로 선동 · 선전에 들 수밖에 없는 공연이나, 그렇다고 단순히 생경한 구호들의 연속으로 시종된 것은 아니다. 그나름대로 예술적인 성과를 높이기 위한 양식적 노력이 뚜렷하다.

우선 이들은 이 지역의 신화를 소재로 선택하며 손질하고 잇는데, 필자는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온 사람들이 이 비슷한 소재를 기독교적으로 손질한 것을 본 적이 잇다. 여기에서는 앞풀이가 끝난 후 평화스러운 생활 속에 악마가 출현하는데, 그것이 지닌 마력에 배속된 사제로 인해 평화는 깨어지고 태양은 삼켜진다. 결국 누노라는 정신적 지도자와 수와나라는 의식있는 여인을 중심으로 민중들이 악마의 세력들과 일대 결전을 벌여 저들을 퇴치하고 태양을 되찾는다.

이러한 소재를 현대적 상황의 표출을 위해 활용하면서 이들은 악마와 결탁하는 세력을 군부로 보이도록 꾸며가는데, 흥미롭게도 악마가 건네주는 소도구 중에는 철모와 총(막대기)뿐만 아니라 십자가도 있다. 흥미롭다고 한 것은 이 단체가 성립되기까지는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가 주최한 워크샵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는 가톨릭신부도 들어 있다. 적어도 이들의 경우에서 본다면 기독교 역시 군부독재에 협력하는 한 악마의 세력에 속한다는 비판 내지 자기비판이 읽혀진다.

앞에 언급한 대로 이 공연은 기독교사회운동과 무관하지 않은데, 내년초로 예정돼 잇는 한국 기독교회협의회 주관의 ‘정의 · 평화 · 창조의 보존회의’ 문화행사가 이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워감직하다. 그 경우에 아시아, 특히 동남아시아의 연기요소들을 우리의 마당극형식으로 통합해낸 듯한 이번 공연의 장 · 단점이 좀더 면밀히 검토됨직하리라고 생각해본다. 필자에게는 이번 공연이 예컨대 89년 일본에서 출판된 《투쟁으로서의 연극 : 아시아민중극》이라는 영문책자와 일맥상통한다고 여겨지는데 그책은 김지하의 <진오귀굿>을 비롯해서 필리핀의 <민중예배>, 타이의 <추악한 자세안>(1977년의 ‘피에 젖은 수요일’과 연관됨), 그리고 오키나와의 <사람의 집>을 도판 또는 사진자료와 함께 수록하고 있다. ‘아시아의 정치극들’이라는 부제를 단 서문 ‘풍자의 돌맹이들’에서 추노 카이타로는 “주제만 강제할 것이 아니라, 극적인 기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번에 출연한 마사히코 우치자와도 그가 잇던 블랙텐트의 일원이었다.

민족극을 표방하는 한국의 민중극운동이 결코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이번 공연의 의의는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검토는 따라서 전혀 무맥락적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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