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의실천시면연합 邊衡尹대표
  • 김재일 편집위원보 ()
  • 승인 1989.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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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약자 편에 서야 한다”

고향 아저씨처럼 소탈하고 친근감을 주는 얼굴, 그러나 그 눈빛은 대쪽같이 강직한 선비답게 사뭇 날카롭다. 1927년 황해도 해주 출생으로, 경기고보, 서울상대를 거쳐 55년부터 모교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邊衡尹교수(62세). 청렴, 결백, 검소, 겸손, 강직 등의 단어로 묘사되는 그의 인품은 후학들로부터 크게 존경받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책과 도시락을 싼 보자기를 즐겨 들고다니는 그는, 야합하길 싫어하고 견해를 달리하는 제자에 대해서는 포용력이 큰 교수로도 유명하다. 격동의 80년 7월 ‘1백34인 지식인 선언’의 주모자로 몰려 강제해직돼, 강단 아래에서 진통하는 역사를 뜬눈으로 지켜보았던 변교수는 만 4년1개월의 ‘정치방학’을 끝내고 84년 9월 교단에 복귀했다.

92년 2월의 정년퇴임을 앞두고 요즘 그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공동대표로서 젊은 사람 못지 않은 정열로 경제정의 실현에 앞장서고 있다. 서울대학교 연구실에서 왜곡된 경제현실과 경제민주화에 대해 목청을 돋우는 변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한국경제가 위기냐, 아니냐에 대해 상당기간 논쟁이 있었고 이제 위기국면으로 파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잇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가?

위기의 내용이 문제지요. 노사분규, 통상압력, 고환율 등으로 수출이 부진하고, 전노협이 생겨 임금인상폭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경제위기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책임한 말입니다. 부동산 투기 등으로 불로소득층이 기승을 부리고, 사치 · 향락이 극심하며, 산업의 공동화로 인한 생산직 종업원의 구직이 어렵고, 기술개발이 행해지지 않으며, 농업이 제기능을 못하게 내버려두는 등, 이런 현상이 일반화되어 손을 댈 수 없는 지경이 될 때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위기가 아니라고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빨리 손을 써야 합니다.

● 지금 경제정책이 바른 방향으로 나가고 잇는 것입니까? 지난 11월14일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이는 그때까지 밀고왔던 정책기조의 변경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평가를 해주시지요.

방향선회가 심하냐, 아니냐의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힘있는 기업에 떠밀려 궤도수정을 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기본적으로 안정기조를 견지해야 한다고 봅니다만 경제현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가들의 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겠지요. 현실적으로 이해는 합니다.

● 물가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그동안 돈을 너무 많이 뿌렸고 지금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있을 선거와 기업의 요구를 감안할 때 더 많은 자금이 풀리겠지요. 다행히 원자재 값이 오르지 않아 통화량에 의해 물가가 좌우되는 형편이긴 하나 내년도의 물가에 대해서 대단히 불안스럽게 생각합니다.

● 교수님은 임금상승을 물가상승 율의 주된 요인으로 파악사기지 않고 있는데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임금상승 때문에 물가가 상승하느냐, 물가가 올랐기 때문에 임금이 오르느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입니다. 임금상승으로 물가가 오른다는 주장은 근로자의 감정을 악화시키는데 기여할 뿐, 실증이 안된 부분입니다. 임금은 제조원가의 10% 정도를 차지한다고 보는데 나머지 90%는 다른 갖가지의 것으로 구성되겠지요. 준조세, 접대비, 비자금 등을 기업측에서 줄인다면 임금상승분을 상쇄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 6공화국에 들어와 정치 · 사회의 불안정이 경기불황의 주된 요인으로 꼽힙니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인들은 5공시절에 대한 향수마저 느끼고 있다는 말까지 들립니다. 과도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하면서도 마치 정치민주화의 경제발전이 병행될 수 없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목소리를 한껏 높이며)나는 민주화하니까 경제가 어렵다는 주장을 제일 싫어합니다. 경제적으로는 5공 · 6공이 없어요. 6공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안되는 이유 중 절반은 5공독재에 기인합니다. 앞서 뿌린 씨 때문에 지금도 허우적대고 있는 셈이지요.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5공은 참으로 운이 좋았어요. 물가안정과 경제성장은 유가하락, 엔고 등 바깥바람이 좋아서이지 민주화가 안돼서가 아닙니다. 기업가들도 이제 노동조건 등 여러가지 기업여건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가야 뛰든 말든 기업만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하고 임금을 비용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노동자 입장에서 볼 때는 그것이 바로 수입이라는 인식도 새롭게 해야겠지요.

● 내년 1월 결성을 공언하고 있는 전노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업가들과 일부 국민들이 너무 과격한 단체가 아닌가 하고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만.

잘은 모르나 기존의 노총이 관제 노동단체라는 일반의 여론을 뒤에 업고 나타난 신생 노조이겠지요. 그런데 정부에서 불온시하여 ‘허용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안됩니다. 자본주의체제를 부정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정부가 그들을 가려내고 나머지 사람들은 활동하게 해야지, 과격한 사람을 배제한 단체의 실체를 매도해선 안되지요. 변신의 노력을 하고 있는 노총과 경합관계를 이루어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다 보면 통합이 될 수 있고, 또 통합이 안되어도 그만이지요.

● 교수님은 농촌문제, 빈민문제, 그리고 분배문제 등에 특히 관심이 많으신 걸로 압니다만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내가 농촌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내고향이 황해도에 있는 농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노동자 · 빈민에 대한 관심은 영국의 경제학자 알프레드 · 마샬의 영향이 컸지요. 마샬은 “경제학을 공부하려면 ‘이스트 엔드’(런던의 빈민굴)에 가보라”고 했지요.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관변 경제학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약자의 편에 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 뒤에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두시빈민이나 농촌의 문제가 결국 ‘없는 자’의 문제지요. 도시빈민의 대부분은 농촌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농업은 고용흡수 효과가 큰 산업이기 때문에 농촌으로부터의 인구유출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도시로부터의 인구역류도 가능하게 해줍니다. 농업을 사양산업으로 간주해선 안되고 적극 육성해야 합니다.

● 해직기간 동안 강단을 떠나 있으면서 새롭게 발견했거나, 학문방향에 영향을 받은 점은 없었습니까?

강단을 떠나 있는 동안 억울해도 흐트러짐 없이 살려고 노력했지요. 특히 마샬경제학에 몰두했습니다. 민주투쟁을 하다 감옥에 간 사람들과 밑바닥 인생들에 대해 이해가 깊어졌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과 고생하는 사람의 편에 서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혔습니다.

● 우리나라는 아직 분배문제에 신경쓰기보다는 생산증대에 더욱 치중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바로 그것이 문젭니다. (그는 여기서 두번째로 목청을 높였다.) 관리들이 그런 관변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기 입장을 합리화시키고 있어요. 분배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부분인데 심각한 문제는 일단 다루어야지요. 그것을 제쳐놓고 성장에만 관심을 보이는 지식인의 양식을 의심합니다. 분배를 내세운다고 성장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분배에 신경쓰면서 성장하자는 것이지요. 앞으로는 과거처럼 10% 이사의 성장은 무리입니다. 성장률은 조금 낮게 잡더라도 분문제에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할 때입니다.

● 경실련의 공동대표를 맡게 된 경위를 말씀해주시지요.

徐京錫목사, 정성철변호사, 그리고 40대 중반의 제자들인 姜哲圭교수, 李根植교수 등의 권유를 받고 12주일 동안 망설이다 경실련 운동의 방향에 공감하고 또 이 시점에서 꼭 필요한 운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의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경실련은 7월 초 명동 YWCA회관에서 학계, 종교계, 법조계, 여성계, 문화예술계 인사 5백여명이 ‘경제不正義 척결’을 표방하고 발기하여 11우러4일 문화체육관에서 회원 1천5백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대회를 열었다. 그동안 경실련은 토지 · 주택문제에 대한 공청회와 세미나를 개최해쏙 내년도 예산심의 가이드 라인을 내놓았으며 경제정의 실현에 기여한 의원과 역행한 의원 명단을 국민에게 폭로하기 위해 의정감시단을 발족시켰다. 또 11월5일에는 2천여명의 회원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토지공개념, 세입자 보호, 영구임대주택 건설 입법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 경제부정의란 무엇을 말합니까?

성실학게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당한다면 그것이 곧 경제부정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졸부가 되고 부동산 투기를 해서 큰 이득을 보는 따위도 경제적 부정의이지요. 그밖에 과소비, 사치, 독직에 의한 부정부패, 식품공해, 탈세, 과세불공정 등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지요.

● 경제정의 실현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까요?

첫째는 분배정의의 실현으로 있는 자와 없는 자, 불로소득자와 성실하게 노동하는 자, 도시와 농촌, 공업과 농업 중 약한 쪽에 유리하도록 분배가 이루어져야 하며 둘째는 앞에서 말한 부조리를 척결해야 합니다.

● 그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우선 소득분배의 악화를 막을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시켜야 하고 다음으로는 정책적인 뒷받침이 따라야 합니다.

물가를 안정시켜 각종 투기를 억제해야 하고 농업과 중소기업을 육성 · 강화해야지요. 절대로 불로소득을 허용해선 안됩니다. 그들에 대한 누진세를 강화해 그 재원으로 사회보장제도를 튼튼히 해야 해요. 또 한가지 현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일입니다. 경제민종화의 핵은 민주노조, 민주농민조직 그리고 민주소비자단체의 적극적인 활동이지요.

● 사회 전체에 팽배한 과소비풍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소비’란 표현 대신 ‘사치 · 낭비 · 향락화’란 말을 쓰고 싶군요. 우리사회에 이른바 ‘가진 자’들이 언제부터 생겨났습니까. 60년대 초까지 ‘가진 자’들이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70년대를 거치고 80년대 초에 이르면서 벼락부자들이 많이 나왔지요. 불로소득과 권력유착으로 횡재를 한 사람들이 사치스럽고 향락스런 생활에 빠졌습니다. 그들이 분수를 모르고 흥청망청하는 데 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사회의 일부 향락 · 퇴폐풍조가 사회의 몰락을 앞당기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우리사회에서도 벼락부자, 떼부자들이 각성하고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사회정의와 경제정의는 계속 멀어져만 갈 것입니다.

● 사치 · 향락풍조를 추방할 방법이 없을까요?

우선 돈이 있더라도 사람 눈을 의식해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사회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론을 이끄는 언론기관의 감시도 중요하겠지요. 다음으로 정책적 · 제도적으로 자금의 편재를 막고 불로소득과 탈세를 막아야 하는데 토지공개념제도와 금융실명제가 하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치 · 낭비를 하는 사람이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을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검소한 생활과 극기적인 노력이 요구됩니다.

● 토지공개념 도입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어떻게 보십니까? 그리고 이법화되면 그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요?

일단은 정부의의지를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자꾸 후퇴해 원래의 의도가 퇴색되는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입법과정에서 또 어떻게 변질될지 모를 일이지요. 이 정도의 법안으로는 별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벌써 투기조짐이 보여요. 과표현실화를 통해 자금이 제조업쪽으로 흐르도록 잘 잡아주어야 그나마 효과를 거둘 수 있겠지요.

● 경실련의 온건개혁 노선을 개량주의로 보는 운동권의 시각도 있습니다만.

그렇게 봐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경실련이 至善의 것은 아니니까요. 경실련은 양극단에서 비판을 받을 수 있고 또 비판은 자유입니다.

● 경실련 운동의 성공여부를 전망하신다면?

경실련이 빨리 없어져야겠지요. 경실련이 필요없도록 경제정의가 속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경실련은 정당도 아니고 힘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론을 조성하고 국민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시민운동단체지요. 성공여부에 대해서는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습니다. 차분히 가라앉은 상태로 화려하지 않게 지속적으로 나갈 것입니다. 설사 우리의 주장이 당장 실현되지 않는다 해도 국민 각자가 가진 소박한 생각들을 모아 정론을 펴면 되는 것입니다. 한가지 고무적인 일은 경실련 활동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굉장히 높다는 점입니다. 경제정의에 대한 일반의 바람이 얼마나 강한지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 분배정의 실현과 관련, 10년후의 한국을 어떻게 내다보시는지요.

10년후라면 21세기의 문턱에 서 있는 시점이군요. 지금 우리나라는 분배정의를 강조할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일반국민의 경제정의 실현과 不正義 시정 욕구가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위정자, 사회지도층이 가볍게 볼 수 없는 문제지요. 이대로는 안된다는 국민들의 여망을 위정자들이 싫든 좋든 실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꼭 전망을 하라고 한다면 ‘상당한 정도의 분배향상을 기대한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겠군요. 개선까지는 못간다 할지라도 분배문제가 더 나빠지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겠어요?

● 92년 2월 정년퇴임후의 계획은 세워놓으셨습니까?

정년때까지 성실하게 봉직한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하지 ㅇ낳고 잇습니다. 다만 지금의 ‘學峴연구실’을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고 연구소로 탈바꿈했으면 하는 바람이 이씃ㅂ니다. 독자적이고 알찬 연구결과를 책으로 내는 연구소 말입니다.

(그가 해직돼 이던 82년 5월 졸업한 제자들이 그를 위해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그의 아호를 따 學峴연구실을 마련해주었다. 복직후인 84년 11월에 ‘더이상 제자들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신림동 학교 근처로 연구실을 옮겼다. 매달 둘째 토요일에는 오후 2시부터 경제발전론팀이 모여 세미나를 연다. 경제발전론팀은 15명의 서울대 출신 전임강사 이상의 제자들로 구성돼 잇다.)

● 좌우명은 무엇입니까, 또 후학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좌우명은 ‘정차탁마’(切磋琢磨). 옥이나 돌 따위를 갈고 닦아 빛을 내듯이 학문과 덕행을 지속적으로 배우고 닦는다는 뜻이지요. 제자들에게는 성실하게 노력하라고 말합니다. 선진국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산다는 생각을 잊지 말고 항상 이웃과 경제적 약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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