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덜마셔 후회하는 법 없다
  • 박상기 편집위원대리 ()
  • 승인 1989.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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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남자 중 20% 이상이 알콜중독… 送年의 잦은 술자리, 1차로 끝내야

새벽 2시 무렵의 공항동파출소. 화가 잔뜩난 택시기사가 고주망태가 된 승객을 끌고 들어왔다. 술 취한 40대 남자는 마구 욕설을 퍼부으며 금방이라도 택시기사의 멱살을 움켜쥘 태세다. “한 시간이 넘게 이 동네 골목을 뒤지고 다녔지만 저 양반이 자기 집을 못찾았거든요. 전화번호라도 알려주면 연락해 주겠다고 해도 자기 혼자서 찾을 수 있으니 까불지 말라는 겁니다. 나참.”

시비의 자초지종을 털어놓는 기사의 말대로 사내는 ‘머리끝’까지 취한 것 같았다. 한참 동안의 실랑이 끝에 어느 중소기업의 부장으로 있는 그의 신원을 알아낸 경찰이 집으로 전화연락을 했다. 30여분만에 문제의 술꾼 金모(42)씨의 부인이 찾아와 경찰과 기사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집을 못찾을 정도로 취한’ 남편을 ‘인수’해갔다.

충무로에서 디자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尹모(38)씨. 손수운전을 하는 그는 거래처의 홍보실 직원과 저녁을 들며 2홉들이 소주 2병을 비웠다. 상대와 헤어진 후 일과를 마무리지으러 사무실에 들어오니 가깝게 지내는 대학동창이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부부생활이 원만치 못한 친구의 사정을 아는지라 윤시는 위로차 그를 술집으로 끌었다.

자정이 지나서 맥주 8병을 비운 뒤 카페를 나설 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동차를 놓고 가려고 했다. 취중에도 음주운전 단속에 걸리면 큰 망신을 당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다음날 아내한테 들어니까 내가 운전하고 왔다더군요. 희미하게 핸들을 잡은 기억은 나는데 어떤 길로 어떻게 충무로에서 서초동집가지 왔는지 전혀 기억이 안나요. 정말 큰일 낼 번했습니다.” 겸연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윤씨는 간밤의 범행(?)을 고백했다.

김씨나 윤씨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과음으로 말미암아 실수 · 奇行 · 일탈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정도에 따라 ‘한 잔 하면 그럴 수도 있지’하고 이해해줄 만한 사람, 눈꼴 사나운 주정으로 불쾌감을 일으키는 사람, 인사불성이 되어 장시간 격리 보호해야 마땅할 사람 등.

음주의 피해가 술 마신 본인에게만 국한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랄 수 있다. 알콜의 작용으로 음주자가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해치고 반사회적인 범행을 낳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앞서 예를 든 김씨의 경우 까딱하면 택시기사와 시비 끝에 폭행 · 상해죄를 저지를 뻔했다. 술은 하마터면 40대의 건실한 家長 김씨를 폭력사범으로 전락시켜 철장신세를 지게 할 뻔했던 것이다. 윤씨의 경우는 더욱 끔찍하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운전을 한 그가 사고를 일으켰다면 어떤 참혹한 사태가 벌어졌을지 모른다.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어 소위 ‘필름이 끊긴 상태’를 의학용어로는 ‘블랙 아웃 신드롬’이라고 한다. 이 망각현상이 반복해 나타나면 정신장애까지 일으킬 수 있다. 알콜중독은 대략 습관성 음주 단계, 알콜남용 단계, 알콜의존 단계, 禁斷증상 단계로 발전하는데,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는 일을 자주 겪는 사람은 알콜남용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서울과 농촌의 18~65세 남녀 6천1백명을 면접조사한 서울대 의대 李定均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8세 이상의 한국 남자 5명 가운데 1명이 알콜중독증(알콜남용 및 알콜의존 단계)에 빠져 있는 것으로 나타나 사회에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본격 술자리인 2, 3차행 삼가해야

연중사업으로 ‘술 덜먹기 캠페인’을 벌여온 대한주부클럽연합회측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술 마시는 남자 1백명 중 41명이 주 2~3회 이상, 그리고 16명은 매일 한번이상 술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53명은 1차에서 술을 끝냈지만 나머지 47명은 2차 이상을 가고 그중 3명은 술자리에 앉으면 횟수에 관계없이 ‘이성을 잃을 때까지’ 마신다고 했다. “왜 2차 이상을 가서 과음을 하느냐”는 물음에 40명은 “주위의 강요” 때문에, 30명은 “대회를 더 나누기 위해”, 22명은 “습관적으로”, 9명은 “부리뽑기 위해”라고 응답했다. 자신의 주량이나 형편상 2차행이 썩 내키지 않아도 ‘꾼’들의 극성을 차마 부리치지 못해 과음하는 사례가 아주 많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술 권하는 것이 미덕’으로 받아들여지고 술이 센 자가 술자리 분위기를 주도하기 십상인 우리의 음주 풍습에 적잖은 사람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류업계의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88년 술 소비량을 4천2백만 인구로 나누면 1인당 맥주 50병, 2홉들이 소주 47.2병이나 된다. 여기에 위스키, 포도주, 청주 등의 소비량을 더하면 우리나라가 세계 랭킹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술의 나라’임을 느끼게 한다.

서울 적십자병원의 정신병동에 한달째 입원해 있는 卓모(52)씨는 인상이 그렇게 유순해 보일 수 없다. 이미 손자, 손녀를 4명이나 두었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해 ‘술만 아니라면 속 끓일 일’이 없는 집안의 가장이다. 젊었을 때부터 목수로 일해온 卓씨는 건축일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힘든 노동 짬짬이 소주를 마셔버릇했다. 게다가 남보다 주량이 센 탓에 30년 넘게 저녁 술자리에서는 ‘술 무서운 줄을 모르고’ 호기롭게 마셔왔다는 것이다.

“술만 들어갔다하면 나도 모르게 헛소리를 하고 집안 난리를 피워대 자식들 보기도 창피하고…. 이번에 세번째 입원입니다. 다시는 안마시겠다고 작심하고 퇴원했는데 그것이 마음대로 안돼요.”

입원 직전에는 식사를 거른 채 하루에 4명 정도의 양주를 마셨다고 한다. 스스로 병원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정신장애를 일으켜 아내의 주선으로 ‘경찰 백차’ 신세를 진 그는 “나가면 절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과연 그가 정말 끝까지 알콜 금단현상을 이겨내고 술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게 될지 자못 걱정스러웟다. 담당의사 宋鍾浩씨는 “대부분의 너무 늦게 병원을 찾기 때문에 치료율이 매우 낮습니다. 알콜중독자들은 누구도 자신이 심각한 상태라고 생각지 않지요. 몸이 아파 병원에 오더라도 신체적인 부작용만 치료받고 나가서 또 다시 술을 마시지요”라고 말하며, 알콜성 정신장애자는 최소한 3개월 정도의 장기입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술은 百藥의 長”이라고 하고 이와는 반대로 “전쟁 · 흉년 · 전염병을 합해도 술이 인간에 끼치는 해악보다 더 크지 않을 것”이라고도 한다. 평가야 어떻든간에 술은 우리의 생활 깊숙히 자리잡고 있어, 각종 모임 · 경조사 · 사교 등에 꼭 끼어들게 마련이다. 특히 연말연시는 송년회 · 동창회 등의 모임과 가족상봉 · 친지방문 등으로 자연스레 술 마실 기회가 늘어난다. 그만큼 술꾼들이 술의 포로가 되어서 건강과 금전을 잃고 체면을 손상당할 확률도 높아진다.

평소의 주량을 반쯤 낮춰서 서로가 술을 덜 마시고 덜 권하며, 반드시 취한 동료의 귀가를 보살펴주는 것 이외에 ‘술의 덫’을 피할 신통한 방법이 없다. 누군가가 호기를 부려 2,3차를 강권할 때는 “다음날 과음을, 또는 과음 때문에 빚어진 일을 후회하는 사람은 많아도 만취하지 않고, 건강하게 술자리를 끝내고 제 정신으로 집에 간 것을 후회한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되새기며 단호하게 박카스신의 유혹을 거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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