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戰國시대, 패권은 어디로
  • 김동기 편집위원 ()
  • 승인 1989.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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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국민> <세계> <민주> <현대> 등이 기존 신문에 도전

6·29선언에 의해 열린 언론계의 자율시대가 2년여 지나면서 몇가지 주목할 만한 현상이 새로 자리잡고 있다. 첫째는 발행의 자유가 허용됐음에도 불구하고 신문기업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사업이라는 교훈, 둘째는 30년 가까이 지속된 한국 신문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심문카르텔(가격·지면 담합)이 깨어진 것, 셋째는 자율시대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신문들은 통제시대 때 굳어졌던 악습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문기업이 참으로 어려운 사업인 까닭은 여타 사업과는 달리 재력이라는 바탕 위에서 성향(이미지)이 성패를 가름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재력이 약하면 우수한 인력을 확보할 수 없어 좋은 신문을 만들 수 없게 되고, 재력이 좋아도 이미지에 결함이 있으면 독자를 확보할 수 없어 고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 언론개방 2년여 동안에 얻어진 교훈이다. 이것은 해직기자들이 주도하고 국민모금에 의해서 창간된 <한게레 신문> , 순복음교회의 종교적 기반과 재력이 뒷받침하고 있는 <국민일보>, 통일교의 막강한 재력으로 물량작전을 펴고 있는 <세계일보>등의 사세가 아직 기존 언론왕국에 위협적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잘 반증되고 있다. 물론 위 3개 신문과 89년 11월에 창간된 <민주일보>, 내년 1월에 선보일<현대일보>등의 등장으로 한국신문계는 외형적으로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신생 언론사들은 한국 신문업계의 구조적 모순과 나름대로의 취약성 때문에 적자경영을 면치 못하고 잇고, 특정 언론사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 마치 ‘깨진 독에 물 붓는 식’의 자금투입을 하고 있어 장래 운명이 비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신문업계의 구조적 모순은 수입의 70% 정도를 광고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판매수입(구독료)이 용지값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 때문에 신생 언론사들은 경영에 심대한 타격을 받고 있다.

 신문사의 구독료 수입이 전체수입의 3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나 흑자경영에 광고호황을 누리고 있는 기존의 <ㅈ일보>경우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이 신문사는 판매대금의 60%를 지국에 할당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계산대로 집행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반포보급소에 유가지가 1천부 나간다면 무가지 2%, 확장지 20%(경우에 따라서는 30%)가 더 지원된다. 따라서 1천부 유가지를 위해서 2백30부가 더 소요되므로 신문사에 들어오는 판매대금은 1천부의 40%에서 2백30부 대금을 뺀 액수가 실제 판매수입이 되는 셈이어서 신문사의 구독료수입은 전체수입의 30%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신문사들이 구독료보다 광고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 구조적 모순은 신생 언론사들이 대거 등장한 언론 춘추전국시대를 맞아 공고시장에서 언론사들끼리 피나는 사투를 벌이는 형국을 빚고 있다. 현시점에서는 이 사투 결과가 드러나 역시 기존의 강자들이 승리하고 있고, 이와 함께 여러 부작용도 낳고 있다.

수입의 70% 정도를 광고에 의존

 5공시절 <경향> <동아> <서울> <조선> <중앙> <한국> 등 6개 일간지와 <한국경제> <매일경제> <일간스포츠> <스포츠서울> 등을 상대하던 광고주들이 일간지, 경제지, 지방지, 주간지 , 월간지 등의 대폭증가로 ‘광고효과’가 뚜렷한 매체만 선택하는 경향을 보여 기존 언론사들의 광고수입만 더 좋아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5공시절 광고단가는 <동아> <조선>/<중앙> <한국>/<서울> <경향>/<매일경제> <한국경제>순이었으나 이 순위는 완전히 무너졌고 <동아> <조선>에 광고가 몰리는 소위 광고 수입의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언론 자율시대가 열렸을 때 광고수입 감소를 우려했던 기존 매체 중 <동아> <조선>은 오히려 호황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고, <중앙>은 보통수준, 나머지 기존 일간지들과 신생 언론사들은 극심한 광고수주난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신생언론사들이 <중앙> <한국> 광고단가수준에 맞춰줄 것을 요구하자 광고예산이 한정되어 있는 광고주들이 아예 광고효과가 높은<동아> <조선>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풀이되고 있다. 신생<ㅅ일보>는 무가지를 포함 1백40만부를 배포하고 있다며 광고단가를 <중앙일보>수준에 맞춰줄 것을 광고주들에게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광고시장의 ‘빈익빈 부익부’현상은 한편으로 여러부작용도 낳고 있다. 소위 대포광고(계약하지 않은 광고)가 만연하고,보복기사가 출현하고 있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ㄹ그룹이 4대 일간지에만 광고를 주기로 방침을 정하자<ㄱ신문>이 ㄹ그룹 관련 부정·의혹을 집요하게 보도하여 결국 ㄹ그룹이 월 1억5천만원의 광고를 주기로 하고 무마했다는 JF이 광고업계에 파다한데 여타 기업도 이 사실을 남의 일 같지 않게 보며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고 한다.

 광고수주를 둘러싼 피나는 싸움으로 광고업계에서 신문 발행부수를 공개하는 ABC제도(발행부수公査제도) 실행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는 가운데, <한겨레신문>이 지난 6월 갤럽의 마케팅조사를 기초로 자사가 구독률 4위라는 사실을 발표하여 언론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한겨레신문>은 창간 1주년 기념사업으로 지난 4월 한국갤럽연구소에 ‘독자여론’과 ‘마케팅 기초조사’를 의회하여 이 조사결과 중 ‘독자여론’을 5월16일 창간기념호에 게재한 뒤, 6월9일에는 마케팅 조사내용을 가지고 <한겨레>가 “창간 1년만에 43만부를 발행하여 시장점유율 4위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신문>이 언론계의 금기를 깨고 구독률을 발표한 배경은 광고수주의 불이익을 더 이상 감수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그리고 이 발표는 언론이 자유 경쟁시대에 돌압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어서 언론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보도가 나간 직후 <한국일보>는 6월22일 신임사장이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서 자사 발행부수가 1백25만부임을 밝혔다. 또한 경위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갤럽측은 <한겨레>관련 여론조사에 대해 6월29일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에 해명광고를 게재했다. 이 해명의 주요부분은 신문별 구독를 표본조사는 도사대상의 수가 5천명 이상은 되어야 오차가 적다는 점을 강조하고, <한겨레>측이 의뢰해서 조사했을 때는 조사대상이 1천8백14명이었기 때문에 ‘신뢰도’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갤럽측이 어떤 경위로 위와 같은 해명 광고를 냈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이 파문으로 일간지 시장점유율 4위 문제가 언론계와 광고업계에서 커다란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갤럽측의 주장대로 표본이 5천명 정도 되어야 오차가 없다는 점도 인정해야 되고, 발행부구사 공개되는 ABC제도가 실행되고 있지 않은 현실에서는 발행부수에 관한 한 어느 편 주장이 옳다고 판단할 수 없지만, 아무튼 이러한 발표로 일어난 파문은 한국언론이 안일한 긴 잠에서 깨어나 바야흐로 자유경쟁시대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것이어서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될 것 같다.

<한겨레>에서 <현대일보>까지

<한겨레신문>은 유가부수가 41만(가판 3만1천)을 돌파했지만 현재도 광고수주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겨레>관계자는 “<한겨레>도 유가부수가 50만부가 되어야 안정권에 들어섭니다. 그러나 광고수입에 의존해야 되는 한국신문계의 구조적 모순이 개선되지 않으면 경영이 순탈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신문은 광고주와 결탁할 수밖에 없고, 광고주에 예속된다는 것은 권력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신문사 재정이 일본처럼 광고수입과 판매수입이 5대5정도 되도록 신문업계 전체가 노력해야 됩니다”라고 강조했다. <한겨레>의 종업원수는 4백30명, 평균임금은 66만원, 정기보너스가 없다는 점 이외에는 임금수준이 대기업 못지 않다. <한겨레>는 지난 11월에는 최초로 2억9천만원의 흑자를 냈다고 밝혔다.

한국의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를 표방하며 88년 12월10일 창간된 순복음교회의 <국민일보>는 창간 때부터 가로쓰기 편집을 하다가 지난 9월1일부터 세로쓰기체제로 전환하고 편집책임자도 두 번 교체했다. 이러한 사실은 <국민일보>도 경영압박으로 방향설정에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항간에는 <국민일보> 한달 적자가 20억이라는 설이 있으나 <국민일보>관계자들은 이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OOO편집국장은 “내년에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밖에서 여러 말이 많은 것 같으나 우리는 지면으로 말해줄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국민일보>는 서울 신문로 임시사옥에서 마포구 신수동의 신축사옥으로 지난 16일 이전했다. <국민>측은 기자 급료수준이 국내 최고이며, 급료와 보너스가 제때에 지급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멀지 않은 장래에 기존언론이 두려워하는 신문이 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물량작전’만으로 버티기는 무리

용산구 구 철도고등하교 부지를 매입하여 사옥으로 쓰고 있는 <세계일보>는 지난 2월1일 창간 때부터 기본전략을 ‘물량작전’으로 세운 듯 공칭 1백40만부를 찍어내고 있다고 한다. 한국 신문업계의 판매수입은 30%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 창간초기부터 판매수입은 도외시하고 1백40만부를 발행한다며 광고주들에게 4대 일간지 수준의 광고단가를 요구하며 마치 ‘깨진 독에 물을 붓듯’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한때 한국을 성지로 여기는 외국 신도들을 자원봉사대로 활용하여 구독자 확보에 나섰으나 이제는 그 활동도 없다.

<세계일보>는 발행부수가 1백40만부라고 공언하고 있으나 정통한 소식통은 1백만부를 약간 상회하는 부수를 찍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세계일보>는 발행부수가 1백40만부라고 공언하고 있으나 정통한 소식통은 1백만부를 약간 상회하는 부수를 찍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세계일보>도 창간 편집책임자가 경질되어 신문제작과 경영에 일대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계 관측통들은 통일교의 재력이 아무리 막강하다고 해도 현재와 같은 ‘물량작전’을 계속 밀고나간다는 것은 무리라고 진단한다.

<일요신문>을 휴간하고 11월21일에 창간한 <민주일보>는 월구독료 2천5백원에 8면을 발행하며 주로 가판에 의존하고 있지만 반응이 기대에 못미쳐 편집국을 보강하는 계획을 세우는 등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급료수준이 기존언론사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기업은 무엇보다도 우수한 고급 전문이력 확보에 성패가 달려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민주일보>장래도 결코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예측이 나온다.

5공시절 KBS사장과 문공부장관을 역임한 이원홍씨를 영입하여 ‘우익신문’을 표방하며 12월에 창간될 예정이었던 <현대일보>는 이원홍씨와 편집책임자 전원이 12월초에 사임하여 창간에 차질을 빚고 있다. <공해안전>이라는 주간지를 발행하던 <현대일보>사장 OOO씨는 소문만큼 재력가는 아니라는 설이 유력하고, 이원홍씨 사퇴배경도 O사장의 재력 실체를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문의 자유경쟁은 지방에서 더욱 치열하다. 5공의 온론통제 구도인 1道1社 원칙이 깨진 뒤 10개였던 지방신문은 현재 28개지로 늘어나 광고유치, 구독확장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언론계에서는 신문발행의 물꼬가 터졌을 때 언론 방종시대의 도래를 우려했지만 이것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점차 증명되고 있다. 사이비 언론 등장으로 관폐?민폐를 끼치는 경향이 크지만, 발행의 자유를 얻은대가에 비하면 이 정도 부작용은 우려할 만한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자유경쟁을 통해 좋은 신문들만이 살아남는 풍토가 조성된다면 한국언론은 분명히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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