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의미없는 문단 편가르기
  • 박완서 (작가) ()
  • 승인 1989.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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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혁신 두 단체에 양다리 걸쳤어도 갈등 못느껴

문학하는 동네에 너무 여러 갈래의 끼리끼리가 있다고 걱정하고 흉보는 소리들이 더러 있는 것 같다. 그런 뜻의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회원이 돼 있는 문학단체도 서너개는 된다. 그러나 색깔을 의식하거나 동조해서 가입한 기억은 거의 없고 문인이나 소설가로 10여년을 행세하는 사이에 어영부영 회원이 돼 있을 뿐인 데가 대부분이다.

소위 보수적인 문학단체가 거의 다 친목 외에 어떤 이념을 가지고 뭉쳐 있는 건 아닌 듯하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민족문학작가회의인데 그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때부터 회원이었고, 색깔을 의식하고 가입한 유일한 경우이다.

그러니까 밖에서 보기엔 대립되는 두개의 색깔로 대별하는 보수?혁신 두 가닥의 문학단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셈인데도 그로 인하여 갈등을 느껴본 적도 거의 없다.

시국의 큰 변동기에 보수적인 문학단체의 이름으로 내 생각과는 정반대의 성명서 같은 게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그때마다 쓴웃음이나 짓고 말지, 탈퇴해야지 하고 혼자서 벼르는 정도의 적극적인 분노를 나타낸 적도 없다.

무의식 대중도 아닌 문학인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이상하게 볼지 모르지만 보수?혁신 또는 민중문학?순수문학 등으로 구별짓지 않고 동업자끼리의 모임과 같은 생각끼리의 모임으로 구별지을 때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양다리를 걸쳤다고는 하나 이름뿐이어서 각각의 자세한 내막은 모르기 때문에 별수 없이 나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 수밖에 없는데 색깔을 의식하고 자발적으로 회원이 된 단체에서조차 참여도는 미미하고 소극적이었다.

내가 심정적으로 민중문학쪽을 가깝게 느끼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그쪽이 보다 고통과 억업을 받는 사람들 편일 거라는, 자신이 문학을 하게 된 기본동기와의 막연한 일치감 때문이지 그쪽 이론에 대해 뭘 안다고 할 순 없다.

남을 윽박지르는 것도 싫지만 남에게 윽박지름을 당하긴 더군다나 싫다.

윽박지름으로부터의 자유는 나의 문학의 꿈이다. 심정적인 동의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이념을 가진 단체에 또한 열성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건 그 일사불란한 이념에 의해 윽박지름을 당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젊고 유능한 후배 소설가 한 사람은 노동문학쪽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데 보수적인 신문이나 잡지에서 자기 글이 한줄만 삭제를 당하거나 문구가 바뀌어도 노발대발한다. 당연하다. 그러나 같은 이념을 가진 동지끼리 내는 잡지에 실릴 소설은 반이상을 당초의 그의 의도와는 딴판으로 뜯어고치라는 편집자의 요청에 기꺼이 승복한다. 나는 그걸 이해할 수가 없는데 그의 설명을 들으면 그럴법도 하다.

‘정의를 위하여, 대의를 위하여’를 표방할 때는 우선 주눅부터 들게 된다. 이해한 것과는 다르다. 그럴 땐 나의 심정적 동의에 의한 참여에 한계 같은 걸 느끼에 된다.

그렇다고 친목단체는 마냥 편안하단 얘기는 아니다. 앞서 말한 내 생각과는 정반대의 성명이나 의사표시가 단체명의로 있을 때 말고도 친목단체라는 막연한 믿음에 문득 의혹을 품을 때가 있다. 펜대 놀려 먹고사는 사람들의 국제적인 친목단체라고도 볼 수 있는 펜클럽선거에 처음으로 참가했을 때다. 선거과열을 비판하는 소리가 높았지만 나는 투표장에 갈 때까지 그런걸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투표장에서 오랫동안 중풍으로 누워있는 것으로 알려진 문인이 동료문인의 등에 업혀 투표를 하러 단상에 올라가는 걸 보자 울컥선가가 싫은 생각이 났다. 그후론 한번도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사소한 견해차이, 미묘한 감정의 엇갈림에도 대범하지 못한 개인주의적 성향이 결국 어떤 문학단체에서도 언저리에 머물러 있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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