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건 충격 속 시민정신 돋보였다.
  • 김선엽 기자 ()
  • 승인 1989.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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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10대뉴스를 중심으로 뒤돌아본 소비자운동

올해는 그 어느해 못지않게 사건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해였다. 특히 소비자문제에 관한 한 더욱 더 그렇다. 연초부터 대형 백화점들의 사기 바겐세일 사건이 터져 온 국민의 비난을 샀고, 여름에는 미국산 자몽에서 농약이 검출되고, 그리고 초겨울의 문턱에서 라면에 비식용 우지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그야말로 소비자들을 두려움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 때문에 여성단체 중심의 소비자단체들의 활동도 유난히 활발했다.

최근 이들 단체의 모임인 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소협)에서 89년도 10대 소비자뉴스를 선정, 발표했다. 투표는 각 단체의 실무자들로 이루어진‘소협’의 정기간행물 월간 <소비자> 편집위원들이 했는데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컸던 문제들, 특히 안전과 관계된 사안들이 주로 꼽혔다”고 李誠玉간사(‘소협’조사연구담당)는 밝혔다.

 

백화점들, 소비자 신뢰 악용 ‘범죄’저질러

우선 이 가운데 대기업의 도덕성과 관련됐던 사건이 백화점 사기 바겐세일과 라면 등 식품에 대한 비식용 우지 사용이라고 할 수 있다. 백화점 사건은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가 88년 11월7일~15일 롯데, 신세계, 현대, 뉴코아, 미도파, 한양, 부산, 대구, 화니, 동양등을 불시조사, 불공정거래행위를 적발함으로써 시작됐다. 소비자들의 신뢰를 악용, 1년 내내 상설할인판매를 통한 가격조작으로 부당이익을 올려왔던 대형 백화점들이 정초에 철퇴를 맞았다.

이에 따라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은 이들 유명 백화점을 사기죄로 서울지검에 고발했고 소비자들로부터는 89년 1월13일~21일 신고를 받았다. 이때의 고발건수가 무려 2천2백84건,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시민의 모임’에서는 변호인단을 구성, 집단민사소송을 냈으며 파문이 커지자 서울시내 6개 백화점에서는 세일기간을 단축, 당분간의 광고중지 등을 알리는 사과문을 각 일간지에 게재했다.

실무자들이 구속되고 잠시 백화점측의 자숙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으나 고질적인 백화점의 불공정거래행위가 단기간내에 사라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백화점사건보다 더 경악스러웠던 건 11월에 터진 라면사건, 삼양식품, 삼립유지, 서울 하인즈, 오뚜기 식품, 부산유지 등이 미국에서 식용보다 값이 싼 비식용 우지를 들여와 라면, 쇼트닝, 마가린 등에 사용했다 하여 5개업체 대표와 실무책임자들이 전격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서민층이 주로 애용하던 라면이었던 만큼 온 나라가 ‘유해공방’으로 발칵 뒤집혔다.

결국 온갖 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보사부의 ‘완제품 무해 판정’으로 끝이 났지만 정부의 대국민보건행정의 구멍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소동이었다. ‘소협’에서는 사건발생 후 안전식품을 보장하는 법제 개선과 철저한 관리 감독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8월에 발생한 수돗물 오염 파동도 정부 부처간의 부조화와 무사안일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건설부가 서울 부산 등 전국 10대 도시의 상수도 수질을 검사.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물”로 판정했던 것이다. 중금속과 유독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했다는 발표로 온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건설부는 그러나 차후 발표를 통해 내용을 번복하는 듯한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깨끗한 물 확보를 위한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슬그머니 사태를 마무리지었다. 이를 계기로 ‘전국주부교실중앙회’에서는 8월28일 ‘수질오염 방지대책토론회’를 열고 가두행진을 벌였으며 ‘소협’도 9월 수질개선을 위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수입 농축산물 ‘무사통과’에 제동

해당부처의 조사에 의해 밝혀진 위 사건들과는 달리 소비자단체들이 왕성한 의욕을 가지고 주력했던 사업이 바로 시장개방에 따라 밀려들어온 수입상품?농축산물의 안전성 문제였다. 미국산 자몽에서 발암물질인 알라가 검출되었다는 ‘시민의 모임’발표는 예상밖의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측과 농약연구소에서는 ‘시민의 모임’이 분석표를 잘못 분석한 결과라며 반반했지만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자몽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해 판매고의 급락 현상이 일어났다.

소비자단체들은 간단한 서류심사와 형식적인 검사만으로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허용하는 현행제도에 대한 개선을 촉구하는 한편, 10개단체 공동명의로 9월19일 방한한 댄 퀘일 미국 부통령에게 미국산 농산물 문제와 관련된 공개서한을 보냈다. 또 지난 12월4일에는 ‘수입자 유화와 소비자의 안전’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던 약관을 개정토록 하는 데도 소비자단체들의 힘이 컸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덕분에 86년부터 시행되어 오던‘소비자피해보상규정’이 대폭 수정, 확대되어 지난 8월1일부터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방문?할부판매 약관의 경우 소비자가 구입 후 5일 이내에 서면으로 의사를 표시하면 계약을 철회할 수 있도록 했고, 가전제품 할부판매 약관의 경우는 할부금이 2회 이상 연체되었을 때 3주일 전에 소비자에게 서면으로 알린 후에야 계약을 해지할 수 있게 하였다.

 

향락?과소비풍조 몰아내기에 앞장

또 불로소득으로 인한 향락세태, 사치성 소비재 구입 급증 등이 초래한 과소비에 경종을 울린다는 의미에서 ‘소협’은 지난 11월15일 ‘과소비추방결의대회’를, 12월1일 ‘경제정의와 과소비’라는 주체의 심포지엄을 각각 개최하기도 했다. 과소비추방은, 전국 26개 도시에서 70여회에 가까운 캠페인을 벌였을 만큼 ‘소협’의 하반기 역점사업 중의 하나였다.

전국민 의료보험제도의 실시도 의료혜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면에서 주요 사안으로 뽑혔다. 하지만 보험료 분담, 행정 위주로 구성된 진료권 구분, 약국보험제, 의?약사간의 대립 등은 앞으로 개선돼야 할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공공 서비스요금,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인상도 소비자에겐 직접 피부에 와닿는 절실한 문제다. ‘소협’의 金正子 총무는 “소비자가 매일 기업에 투표한다는 자세로 신중하게 상품을 선택할 때 물가안정을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급증하는 소비자문제를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 소비자문제만을 전담할 사법기관의 설치를 요청하고, 소비자단체의 공표 자유를 인정토록 하는 현행 관련법의 개정안을 내놓은 점 등은 소비자단체들의 주요사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소비자 권리주장은 경제민주화의 한 방편

‘소협’의 李총무는 “소비자운동이 일개 상품에 대한 고발이나 보상 차원에서 벗어나 소비자가 진정한 의미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차원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전제, “내년엔 소비자들을 적극적으로 운동에 참여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소비자교육에 주력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또 소비자기구들의 엄무과 역할이 좀더 구분되고 특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대해 한국소비자연맹 姜正華 총무는 “소비자운동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소규모 조직이 많을수록 좋다”고 조직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제 소비자보호는 부각됐다. 소비자들이 얼마나 강력하게 자기 권리를 찾고 유해 상품이나 비도덕적인 기업에 대해 감시를 부지런히 하느냐에 따라 경제정의와 경제민주화의 진전도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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