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의 원칙인가 원칙의 타협인가
  • 박권상(주필) ()
  • 승인 1989.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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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특히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의 정치는 ‘타협의 원칙’이다. 어디 정치뿐인가.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이상 사람 살아가는데 거래와 타협은 필요조건이요 삶의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사람마다 시각이 다르고 생각이 같을 수 없고 입장과 이해관계가 대립한다는 것은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고 개성이 다른 것만큰이나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정치는 따지고 보면 그런 서로 엇갈리는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기능이고 사회적 공존을 실무적으로 구현하는 노력이다. 그것은 극단적으로 외교 교섭이나 상거래로 비유될 수 있고 따라서 협상과 타협이야말로 관계당사자들이 더불어 살고 더불어 득을 보는 인간의 찬조적 지혜라고 미화할 수 있고 민주주의의 장점이라고 찬양할 수 있다. 특히 쌍방이, 또는 당사자 모두 타협의 결과에 만족할 때에 그것은 쌍방의 승리이자 쌍방의 성공이며 나아가서는 그들이 대표하는 국민(선거민)모두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협상과 타협은 진정 국민과 역사의 편에 선 것이어야 한다는것, 거래당사자들간의 ‘상거래’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도덕적인 조건을 배제할 수 없다. 장사꾼의 세계와 정치인의 세계는 다르고 달라야 하는 것이다.

 

협상?타협의 정치문화 발전시키는 계기 되기를

가령, 명백한 진실과 허위간에 타협이 성립할 수 있을까. 분명한 정의와 불의 사이에 거래가 있을 수 있을까. 정의와 불의간의 편의적인 공준을 위한 교섭, 그리고 타협이라면 그것은 다수 국민의 지지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정치는, 특히 민주주의에서의 정치는 “타협의 원칙이지 결코 원칙의 타협이어서는 안된다”는 논리가 뒤따른다. 물론 두가지 명제가 대개의 경우 선명하게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사고의 혼란과 실천의 어려움이 있다. 또한 저의의 편이 약하고 불의의 편이 막강할 때, 과연 약한 정의가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강한 불의와 타협할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원칙을 고수하다가 깨끗이 OO할 것인가 하는 딜레마도 있을 수 있다.

원칙을 타협하여 불의에 영합해서는 안된다는 것, 그것은 말하기는 쉬워도 현실정치에서 행하기 쉬운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 5공을 청산하는 이른바 청와대 ‘대타협’을 지켜볼 때, 정치가 타협의 원칙이냐 아니면 원칙의 타협이냐의 실리론과 명분론에 심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1盧3金이 장장 7시간이나 마라톤회담을 진행하였고 명쾌하지는 않지만 어떤 타협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대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우리는 반대와 OO을 허용하는 관용성이나 그것을 토대로 하는 협상, 타협, 조화라는 민주주의적 정치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권위주의적 정치전통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주의를 국시로 받든이후에도 잇따른 군사통치는 이른바 ‘통치자’에의 굴종 아니면 극한 투쟁이 강요되었을 뿐, 독재체제하에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세력간의 대화와 타협은 성장할 수 없었다. 그런 뜻에서 이번 청와대회담이 이룬 ‘대타협’에 긍정적 가치를 부여하는 데는 별 이의가 없다. 1노3김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회고할 때 그들이 지루하고 고통스럽고 어려운 대화로써 어떤 타협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10년전 이맘때, 김대중총재는 노태우장군도 주측이 된 군사통치세력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여부가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었으며, 김영삼총재는 부당한 연금상태에 있었고, 김종필총재는 억울한 옥중행활에서 갓 풀려났었다. 2년전 이맘때 1노3김은 대권경쟁에 죽기 아니면 살기의 이전투구를 전개하고 있었다. 그 후 노대통령의 정부가 수립되고 이어3김이 다수를 형성하는 여소야대의 입법부가 출현하여 때로는 여야가, 때로는 3김끼리, 서로 다투고 싸우는 비생산적 정쟁이 되풀이되었으며 허위와 억압으로 요약되는 5공청산이 지난 1년간 답보상태에 빠졌었다. 이어 청와대 ‘대타협’은 그 내용보다 그런 타협을 끌어낸 정치기법과 절차에 있어 구시대를 일용 마감하고 새 정치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소망과 기대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원칙을 타협한, 기본원칙을 무시한 편의적 타협이었다는 취약성을 면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렇다면 5공청산에서 포기할 수 없는 기본원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 허위, 억압, 비리, 부패로 점철된 5공시대의 진실을 밝혀, 응분의 책임을 지워 다시는 그런 욕된 역사가 반복될 수 없도록 하자는 것, 그것이 곧 국회가 5공비리 및 광주사태를 조사하기 시작한 동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문제에 대한 조사활동은 작년 겨울의 청문회를 계기로 중단되었고 정치적 뒷거래로 정호용씨와 이희성씨가 공직에서 물러나고 전두화 전대통령의 제한적 마무리 증언으로 낙착되었다. 솔직히 어처구니없는 ‘원칙의 타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청산 아닌 청산’의 성격이 짙어

전씨나 최규하씨의 증언은 광주문제나 5공비리 등에 있어 그들의 증언 없이는 진실의 파악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요구된 것이 아니었던가. 더구나 전씨 스스로 그의 증언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기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도 그의 증언을 텔레비전으로 녹화중계하는 것으로 합의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최규하씨의 국회증언도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데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정씨의 공직사퇴만 하더라도 그가 광주문제에 어떤 책임이 있어서 그만두는 것인지 사퇴명분조차 분명히 밝히지 않은 ‘대타협’이고 보면, 뒷맛이 개운할 까닭이 없다. 진실을 밝혀내 바로 시비를 가리고 역사와 민족의 정기를 바로잡는 5공청산이라기보다 부분적 진실의 발견에 그친 채, 중도 하차하는 청산 아닌 청산의 성격이 짙다. 정치가 현실에 입각한 ‘가능의 예술’이라 하지만 원칙에 입각하지 않은 타협이 순조롭게 집행될는지조차 걱정스럽다.

이제 남은 것은 청와대 대타협이 생산한 11개 합의사항을 성실하게 시행하는 것이고, 청와대 대타협이 보여준 긍정적인 가치인 대화와 타협을 노사관계, 교직원노조 관계 등 정치권 밖에도 파급시키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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