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줄 모르는 차들 “차라리 걷자”
  • 김창엽 기자 ()
  • 승인 1989.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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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서울 차량수 2배로… 신도시 인구는 잠복성 체증요인

 현재 서울의 자동차는 1백여만대. 만 5년후인 95년에는 2백만대 이상이 될 것이라는 게 교통개발연구원 등 믿을만한 연구기관의 공통된 의견이다. 올림픽 덕분에 제법 명예롭게 알려졌던 ‘세계 속의 서울’이 곧이어 ‘교통지옥 서울’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외국의 영향력 있는 언론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교통사고율 세계 제1위라는 부끄러운 명성을 씻어버릴 가망도 당분간 없다.

 95년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89년의 노원구 상계동을 좀 들여다보자.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상계·중계지구를 편도 3차선의 동일로가 유일하게 관통한다. 남쪽을 향해 내려오다 동서로 난 첫 번째가 월계로, 두 번째가 화랑로, 세 번째가 망우로다. 지하철로는 비좁기로 악명높은 4호선이 서쪽으로 시내를 향하고 있다.

 서울시의 추산에 따르면 상계·중계지역의 하루 출퇴근 인구는 60만명선. ‘開戰’ 시간은 아침 7시경으로 4호선의 시발역인 상계역은 도보로, 마을버스로, 시내버스로 밀려드는 ‘戰士’들의 단단한 각오로 충만한다. 이 시간쯤 자가용을 운전하는 사람들은 첫 번째 갈림길인 백화점 ‘한신코아’앞에서 ‘두뇌전쟁’을 치르고 있다. 월계로로 빠지느냐, 직진해서 화랑로를 타느냐? 대부분의 사람들이 월계로로 ‘새어 나가보지만’ 1분쯤 차를 몰고 나면 드림랜드 못 미쳐 4거리에서 최소한 5분쯤은 기다려야 한다. 한편 이때쯤 미아나 길음역을 통과하는 4호선에게는 ‘각개전투’가 극에 달한다. 여자나 노약자들의 비명소리, 밀고 밀리는 가운데 터져나오는 짜증 섞인 불만, 내려야 할 역에 못내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마라톤선수보다 느린 차속도

 1995년의 교통상황 악화가 지금의 2배 정도가 될 자동차수의 증가에 비례하는 것이라면 그나마 미래를 낙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통체증을 앞서서 경험한 외국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1인당 통행횟수 역시 크게 증가, 좀 더 많은 차들이 ‘도로에 깔려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교통체증은 몇배 더 심화될 것이다.

 더욱이 체증을 완화시킬 도로율의 증가(95년)는 5%에도 못 미쳐 교통수요를 절대적으로 따를 수 없음이 분명해져가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출근시간대의 도심통행 평균속도 18.7㎞(마라톤선수의 평균속도에도 못 미친다)는 95년쯤이면 10㎞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어른의 보통걸음은 시속 5~6㎞ 정도) 이 정도면 도로의 주된 역할이 차량의 ‘소통’보다는 ‘주차’로 바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서울도 도쿄나 런던, 뉴욕 같은 도시의 전철을 밟을 것이 틀림없다. 문제는 서울의 교통사정이 다른 나라의 대도시 이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에 있다. 그것은 서울주변, 최근 개발의 삽질이 시작된 소위 위성도시들 때문이다.

 서울주변에는 얼마전 분양을 시작한 분당을 비롯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5개 도시가 인위적으로 조성되고 있다. 이들 도시의 건설이 서울의 교통난을 해소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될 경우 서울의 ‘교통 짐’은 그만큼 가벼워지게 되겠지만 그 반대 경우라면 ‘엉킨 실’을 더욱 엉키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은 불보듯 훤한 일이다.

 분당의 경우, 기존도로를 포함해 서울로 향하는 4~5개의 노선이 검토되고 여기에 1~2개의 전철이 병행 건설될 예정이다. 약 40만 세대가 입주할 예정인 분당은 ‘자족도시’로 키우겠다는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서울에 일터를 둔 사람들이 주로 살게 될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중산층 위주로 건설되는 주택이 말해주듯 많은 자가용이 도로를 메울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강남까지는 그럭저럭 속도를 죽이지 않고 온다 해도 강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넘어야 하는 한강다리 하단에서의 정체는 지금보다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설상가상으로 평촌이나 산본, 중동 등도 모두 한강 남쪽에 있기 때문에 병목현상은 상상을 초월할 지경에 이를 것이 쉽게 예견된다.

 또 수도권 주변에 집중건설, 분양되는 아파트는 지방에서의 인구유입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5대 신도시는 교통체증을 확대·증폭시키는 결정적 기폭제로 작용할 것이다.

 상계동에서의 실패가 5대 신도시에서 재현된다면 도합 약 2백만의 인구를 수용할 이들 변두리 도시들은 서울을 ‘소통’이 없는 ‘고립’의 세계로 만들 것이다.

 상계동을 중심으로 반시계방향으로 둘러서 있는 일산, 중동, 산본, 평촌, 분당이 그렇잖아도 허덕이는 서울의 숨통을 아예 끊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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