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차·정책 고른 3박자
  • 편집국 ()
  • 승인 1989.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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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順調”교통선진국들 꼼꼼한 지하철망…연계효율도 뛰어나

 뉴욕 항 입구에 우뚝선 자유의 여신상에는이런 말이 새겨져 있다. “피곤하고 짐진사람, 자유를 찾는 사람은 내 품에 오라.”

 그러나 오늘날 뉴욕사람들은 ‘걸을 때를 제외하고는’ 1백여년전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질 때 뉴욕을 찾은 선조들보다 조금도 덜 피곤하거나 자유롭지 않다. 하루종일 시달려야 하는 ‘교통지옥’때문이다.

 뉴욕의 교통체증을 대표하는 맨해턴 섬의 몸살은 동서남북에서 동시에 시작된다. 출퇴근시간이면 인근 뉴저지, 브롱크스, 퀸즈, 브루클린 등에서 시 중심부로 들어오는 19개의 교량, 지하터널은 ‘거북이’ 차량들로 만원을 이루며 ‘세계에서 가장 긴 주차장’을 형성한다.

 남북으로 뻗은 열댓개의 ‘애브뉴’(avenue)와 동서를 가로질러서 가는 1백여개의 ‘스트리트’(street)는 제각각 일방통행로(1·3·5번 스트리트가 동쪽으로만 통행한다면 2·4·6번 스트리트는 서쪽으로만 통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로 시내를 바둑판처럼 누비지만 육상교통을 이용해서는 약속시간에 댈 수 없는 것은 서울과 다를 바가 없다. 이 때문에 뉴욕시당국은 맨해턴으로의 차량진입을 억제하기 위해 섬으로 통하는 교량·터널 등을 유료로 하고, 일정수 이상의 사람을 태우지 않을 경우 벌금을 물리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차요금을 비싸게 책정하고 불법주차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견인하는 등의 억제정책을  취함으로써 ‘걷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을 유도하고 있다. 여기에 기차, 지하철, 버스 등의 훌륭한 연계는 많은 시민들을 대중교통쪽으로 불러들여 교통난 해소에 한몫을 하고 있다.

 지하철, 버스, 전철의 연계가 모범적이기로는 파리를 빼놓을 수 없다. 시내 어디서든 5백m 이내에 전철역이 있다고 할 만큼 지하철이 거미줄처럼 시내를 누비고 있다. 우리의 지하철과 비슷한 13개 노선의 ‘메트로’(metro)와 그보다 더 지하로 깔린 3개 노선의 ‘에르에르’(RER)는 각각 도심내·외에서 시민들의 편리한 발이 되고 있다. 더욱이 파리의 지하철은 쉽게 갈아타도록 설계돼 있어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대중교통수단 발달로 ‘지옥’ 면해

 12갈래길을 거느리고 있는 개선문을 향해 몰려드는 차량의 행렬은 단적으로 파리의 교통난을 대변하지만 그런 가운데도 차선이 엉키거나 경적소리 한번 들을 수 없다는 데서 그들의 높은 질서의식을 느낄 수 있다. 이 질서의식이 그나마 파리를 ‘소통’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서울의 4대문안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을 1시간내에 돌 수 있는 고속순환도로는 도심 교통체증을 더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도버해협 건너에 있는 런던 역시 ‘지옥’에서 예외일 수 없다. 약 2천년전에 도시가 형성돼 길 또한 여느 도시못지 않게 좁고 꾸불꾸불한 런던은 문화유산에 대해 손대길 꺼리는 보수적인 국민성 때문에 더욱 힘든 교통전쟁을 치르고 있다. 중세시대 마차의 빠르기와 비슷한 평균 18㎞의 도심 통행속도는 런던의 명물인 2층버스에 탄 관광객에게마저도 짜증스럽다.

 그러나 도심에서 열두방향으로 출발하는 기차, 세계에서 최초로 건설된 지하철, 운행질서를 잘 지키는 버스는 ‘그런대로 돌아가는’ 오늘의 런던을 있게 한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시민들의 철저한 질서의식과 정착된 자동차문화다. 구미의 선진국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그들의 자동차 가운데 태반이 운전석쪽에만 옆거울(사이드 미러)가 붙어 있다. 운전석 반대쪽으로 차선변경을 할때는 되도록 눈으로 직접 확인하라는 뜻이다. 도심내에서 빈발하는 교통사고가 교통체증의 또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는 우리의 실정으로는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교통사정 악화의 경로가 서울과 가장 유사하다는 도쿄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교통정책을 시행한 도시로 꼽히고 있다. 도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 전철망은 총 연장 2천2백㎞에 달하고 수송분담률 역시 78%로 승용차나 버스, 택시에 비해 월등히 앞선다. 대중교통의 해결만이 교통지옥을 벗어날 수 있다는 일본인들의 생각이 어느 정도 맞아들어간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교통문제에 관한 한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도시로는 싱가포르가 있다. 러시 아워에 도심통행제한구역에 대한 진입료 부과, 광범위한 일방통행제 실시, 자동차세 중과 등 종합대책이 성공, ‘교통천국’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건설한 전장 28㎞의 지하철은 훌륭한 시설과 뛰어난 연계효율로 ‘작은 몸집’과는 달리 톡톡히 제몫을 해내고 있다.

 뉴욕, 런던, 파리, 도쿄 등이 교통문제의 심각성에서 결코 서울에 뒤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들 도시의 대부분이 서울보다 훨씬 많은 차량을 소통시킨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결론은 분명해진다. 지하철·전철·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의 활성화와 올바른 차량문화의 정착,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책의 개발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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