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신 추기경 인터뷰
  • 마닐라 조용준 특파원 ()
  • 승인 1989.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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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우리나라 빛내줄 보석"

86년 시민불복족운동으로 마르코스 굴복시켜…이번 쿠데타에도 아키노 위기 수습 큰 몫

 필리핀 군사쿠데타를 취재·보도하기 위해 마닐라 현지에 특파된 본사 趙倫增 기자는 지난8일 필리핀의 정신적 지도자 하이메 신 추기경을 단독 인터뷰, 필리핀이 안고 있는 문제와 향후 정치 전망에 대해 들어보았다.

●필리핀은 최근에 비극적인 사태를 맞았다. 앞으로도 이러한 위기를 감당해낼 수 있다고 보는가.

 저들을 보라. 우리 국민들은 절대적으로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들은 정권을 탈취하려고 든다. 왜 1992년(차기 대통령선거)까지 기다리지 못하는가. 선거에서 이기면 대통령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지금 정치인들은 너무 서두르며 욕심이 많다. 그래서 기다리지 못하고 폭력을 앞세워 국민들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려 하고 있다. 그렇게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쿠데타에서 보았듯이 국민들도 폭력을 원하지 않는다.

●정부가 얼마나 안정적이라고 보는가.

 우리는 20여년간 독재정권하에서 살아왔다. 안정된 정부로 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정치인들이 솔직해질 때까지는….

?필리핀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제문제이다. 물가상승도 큰 문제이다. 무조건 대통령만 탓할 것도 못된다. 경제문제는 대외 의존적인 문제에서도 많이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이번 쿠데타를 어떻게 보는가.

 나는 오늘 이 미사(‘피플 파워’를 기리기 위한 대형 마리아상 제막 미사)가 있기 전에 쿠데타가 진압될 것으로 굳게 믿었다.

 나는 이미 두 번의 성명을 통해 폭력과 유혈을 동반한 야비하고 야만적인 정부전복기도를 규탄했다. 나는 분명히 합법정부에 대한 도전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번의 시련이 보다 커다란 영광의 길로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하느님의 시험이라고 본다. 86년의 영광에는 그만큼 아픈 고통이 함께 하고 있다. 사랑과 믿음으로 우리는 계속 노력해야 한다.

●이번 쿠데타에 미국이 개입함으로써 파급될 영향을 어떻게 보는가.


 우리 국민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미국을 찾는다. 미국대사관은 항상 미국에 가려는 필리핀인들로 붐빈다. 때로 그들은 미국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미국을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반군을 어떻게 보는가.

 그들이 반란군이지만 우리는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들을 미워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명령을 따랐을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쯤 그들은 상관들에게 속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필리핀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은?

 국민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 정부에게만 개혁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사회는 개개인이 모여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그 구성원 하나하나가 개혁을 이루지 않는 한 진정한 민주주의, 진정한 경제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이 나라의 장래는 무엇인가.

 사람들이다. 국민들이 우리나라를 빛내줄 보석들이다.

 

철저한 반독재 종교지도자

 하이메 신 추기경(61)은 1954년 사제 서품을 받고 1976년 추기경에 오른 이후, 필리핀 인구의 85%를 차지하는 가톨릭신자들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해오고 있다.

 그는 이같은 영향력을 배경으로 86년 2월의 필리핀 민중혁명을 승리로 이끌고 독재자 마르코스를 국외로 추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국민투표에서 마르코스가 개표조작등의 방법을 동원,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를 불법선거로 규정, 시민불복종운동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 신 추기경이 이끄는 필리핀 가톨릭세력이었다.

 이후 마르코스정권 붕괴의 직접적 도화선이 된 2월22일의 라모스·엔릴레주도의 군부반란 사건 역시 신 추기경의 도움이 없었다면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당시의 필리핀 언론 보도에 이하면, 마르코스정권에 의한 체포설로 신변의 위협을 느껴 긴급히 아기날도기지로 몸을 피한 엔릴레 전 국방장관은 신 추기경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신 추기경은 엔릴레와 라모스를 돕기로 결정, 가톨릭 주교·신부·수녀들을 비밀리에 자택에 불러 반군에 협력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는 또한 가톨릭계에서 운영하는 베리타스방송을 통해 시민들에게 “아기날도기지에 모여 엔릴레·라모스를 지원하라”고 호소, 시민들과 수녀들이 인간사슬을 엮어 정부군의 공격을 저지하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지난 12월1일 발생한 군부쿠데타 때도 신추기경은 라디오방송을 통해, 필리핀 국민들에게 위기에 처한 아키노정부에 충성할 것을 촉구, 아키노정부의 위기수습 과정에 도움을 주었다.

 평소 친아키노 입장을 보여온 그는 집권이래 아키노정권 내부 일각에서 나타나고 있는 구세력의 복귀 움직임에 대해서는 강력한 비판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철저한 반독재 종교지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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