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기금 ‘국회감시 입법’난항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89.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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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사업기금 등 올 예산보다 6조원 많아…‘돈놀이’·정치자금 유용설에 심사 여부 쟁점

종류 : 총 70개(정부관리기금37개, 민간관리기금29개, 기타기금4개). 규모 : 총 24조9천억원(정부기금 13조5천억원, 민간기금 11조 4천억원).

 이상은 89년 11월 현재 각종 관리기금의 외형이다. 이는 올해의 예산 19조 2천2백84억원보다는 약 6조6천억원 정도, 내년도 정부예산안 23조원보다는 약 2조원 정도나 웃도는 엄청난 규모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형국이다. 이같은 이유로 각종 관리기금은 흔히 ‘제2의 예산’이나 정부 각 부처의 ‘쌈짓돈’으로 불렸다. 더구나 외형상의 규모가 이미 한 해의 예산규모를 앞지르고 있어 오히려 주객이 뒤바뀐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정부기금 가운데 실제 사업에 운용된 규모만 보더라도 올해에는 일반회계사업비의 2.3배, 내년에는 2.4배에 달하고 있다. 이는 정부 각 부처가 국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친 다음에야 사용할 수 있는 사업비의 2배 이상을 각 부처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써왔다는 의미이다.

 이런 기금들이 지금까지 국회에 단 한차례의 보고만으로 그 사용 내역에 대한 추궁을 면제받았다면 이를 납득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물론 국회에서 세출세입예산 제출 때 각 관리공단은 기금운영계획서와 감사원 감사를 거친 기금결산보고서를 보고한다고 하지만 이는 다분히 ‘참고자료’의 성격을 지닌 것이고, 우리나라의 경우, 감사원도 안전기획부와 마찬가지로 대통령 직속기관이어서 감사원의 감사가 효율적인 견제장치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바로 이같은 제도상의 결함 때문에 일부 기금이 증권투기 등의 ‘돈놀이’에 이용되고 정부 여당에 대한 정치자금 조달창구로 악용됐다는 의혹이 꾸준이 제기됐던 것이다. 특히 그 규모가 5조2천여억원으로 각종 기금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석유사업기금은 정치자금으로의 轉用과 관련, 대표적인 의혹이 대상이 됐다. 5공시절 석유개발공사장이었던 李源祚의원이 민주당측에 의해 꼭 공직사퇴돼야 할 인물로 꼽히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공무원연금기금은 변칙 금융거래가 적발되기도 했고 신용보증기금은 원래의 목적인 취약한 중소기업에 대한 보증보다 대기업과 그 계열사에 대한 신용보증을 하는 등의 목적 외 사용 사례가 허다하게 지적됐다.

 각종 기금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겨우 13대 국회에 들어오면서부터이다. 작년 11월 민주당에서 처음으로 각종 기금이 국회심의를 골자로 하는 기금관리기본법을 마련하고 올 5월 임시국회 때는 야3당 단일안과 경제기획원안이 절충된 최종안이 작성돼 법안의 통과만을 남겨둔 상태까지 발전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막대한 여유자금을 예치받아 돈놀이를 즐기던 단자회사 등 제2금융권의 끈질긴 로비와 경제기획원을 제외한 행정부 각 부처의 반발, 야3당 단일안에 동의했던 공화당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 그리고 청와대의 비토 등 때문에 발의된 지 1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법이 되지 못한 채 원래의 상태로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기금관리기본법의 입법과 관련, 국회 經科委내에는 小委가 구성돼 있는데 이 소위에는 민정당에서 李慈憲·趙庚穆, 평민당에서 李海瓚, 민주당에서 金楠, 공화당에서 申鎭洙의원이 참여하고 있다.

 경과위의 柳晙相위원장(평민)은 기금관리 기본법의 입법취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가지 사항을 들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이 법안을 통해 각종 기금의 정치자금 유용의 의혹을 없애자는 것이고, 둘째는 일반회계의 정부예산보다 더 큰 규모의 돈이 예산의 바깥에서 운용됨으로 해서 기금이 목적 외 사용이나 낭비가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국회의 실질심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기금의 대부분이 준조세에 해당하는 국민분담금, 정부출연금, 채권 발행, 한국은행 차입금 등 결국 국가 재정으로 조성되고 그 사용처도 공공성이 강한 사업에 국한되는 특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국회의 심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기금관리법의 입법을 둘러싼 최대 쟁점은 기금의 사용에 반드시 국회의 심의와 승인을 거쳐야 한다는 것과 기금을 부동산이나 제2금융권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현재 정부와 여당에서는 정부관리기금과 정부출연 50% 이상의 민간기금에 대해 운용결과를 국회보고 및 국정감사의 대상이 되도록 한다는 등의 대안을 내놓고 있으나, 평민·민주 양당은 국회의 심의를 받아야 할 기금의 대상을 축소하는 방향에서 기금관리법을 이번 회기내에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물론 이에는 캐스팅 보트 역할을 즐기고 있는 공화당의 태도가 어떻게 변하느냐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柳晙相위원장은 공화당도 결국은 야3당 단일안에 다시 동의할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대통령 비토권을 배수의 진으로 치고 있는 정부 여당의 태도가 어떻게 변할지, 야3당 단일안이 통과됐을 경우 대통령으 비토권이 행사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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