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北美수출, 쾌주에 급제동
  • 김재일 기자 ()
  • 승인 1989.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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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6백달러 할인판매도 안 통해…핵심분야 기술 개발 시급

 쾌속질주하던 자동차 산업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급속한 신장세를 보여온 자동차 수출이 곤두박질하고 있는 것이다. 11월말가지 국내에서 팔린 자동차 총수는 승용차 43만4천대를 포함, 64만2천대로 8월 이후 국내수요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긴 하나 작년 한해 동안 국내판매 자동차 대수 52만대보다 23%가 늘어난 실적이다. 연말연시의 판촉강화로 업계가 목표한 75만대의 판매를 달성하면 내수는 작년대비 44%의 증가를 기록하게 된다.

 

60만대 수출목표 35만대로 떨어져

 문제는 수출이다. 작년 현대, 대우, 기아, 쌍용, 아시아 등 5개 자동차 제조업체의 총수출 자동차대수는 57만2천대인데 비해 올 11월말까지 수출실적은 30만3천대. 올해 60만대의 수출은 무난히 달성되리라던 예상이 무참히 깨어졌고 연말까지 35만대를 수출한다 해도 전년 실적의 61% 수준에 머물게 된다.

 자동차 수출이 본격화된 86년부터 수출이 내수판매를 앞질렀고 한때 수출과 내수의 비율이 6대4까지 갔었으나 올해에는 86년 이래 처음으로 3대7 정도로 내수가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86년에 전년대비 1백50%, 87년에 78%의 수출증가를 기록했으나 88년에는 5% 증가에 그쳤고 금년에는 전년동기와 대비 무려 40% 정도가 감소한 실정이다.

 한국의 수출차 중 특히 현대의 ‘엑셀’은 미국상륙 첫해인 86년에 16만8천여대를 판매, 수입차 첫 1년간 판매기록에서 신기록을 수립했고, 87년에도 26만3천여대를 팔아 단일 차종으로는 판매실적 1위를 고수했다.

 그러면 승승장구하던 자동차수출이 왜 곤두박질하는가? 한국 자동차의 수출부진은 ‘현대자동차’의 문제로 집약된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현대는 총 40만7천여대의 자동차를 수출, 총 수출물량의 70% 이상을 차지했는데 11월말 현재 19만1천여대를 수출, 작년 35만1천여대의 54%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물량의 수출로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현대는 이제 수출부진의 책임을 통째로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실정이 되었다.

 기아산업은 11월말 현재 8만3천대를 수출, 작년 한해 동안 수출한 7만8천대의 실적을 이미 넘어섰고, 대우는 올해 8만6천여대를 수출했던 작년 실적의 절반 정도를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대우자동차의 경우 미국의 자동차 안전규정이 내년부터 강화되어 안전벨트가 ‘강제착용식’(PRS)으로 바뀜에 다라 수출용 90년 모델에 PRS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설계변경과 부품조달이 몇 개월 늦어져 금년 수출목표 달성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다.

 자동차 수출이 잘 안되는 이유는 우선 가격경쟁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자동차 제품과 비교, 가격차이가 20% 이상은 나야만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데 최근 몇 년 동안의 급격한 임금·원화상승으로 한국산 차는 국제시장에서 이제 ‘低價의 매력’을 잃어버렸다. 또한 북미시장의 수요 자체가 줄어들고, 경쟁이 격화된 것도 수출부진의 요인으로 꼽힌다. 북미시장의 상반기중 수요는 9백70만대로 전년동기에 비해 12% 가 줄었고 특히 소형승용차는 20% 정도 수요가 줄었다.

 

‘폭발적인 인기’가 불신으로 변해

 더욱 큰 문제는 품질과 기술력이 뒤떨어지는 데 있다. 국제시자으이 급속한 변화에 발맞춰 늦어도 3년주기로 모델을 바꾸어야 하는데 현재 우리 기술수준으로는 무리이고, 이는 수출부진의 장기화를 걱정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한국산 자동차의 품질과 기술력의 빈약함은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현대 ‘엑셀’의 경우는 특히 심각하다. ‘5천달러시대의 자동차’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엑셀은 판매시점으로부터 1~2년이 지난 후 결정적인 하자가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산 자동차는 내구성, 엔진의 가속성, 제동력, 일정기간 이후의 소음과 잔고장, 그리고 안전도에서 동급의 경쟁차에 훨씬 뒤진다고 지적돼ㅣ고 있다. 1대당 딜러 인센티브(판매상에게 주는 장려금)를 포함하여 1천6백달러까지 할인, 한참 나갈 때보다 더 낮은 가격에 내놓아도 현지 판매상과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형편이다. 국제시장에서는 한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주는데, 현대의 경우 외국소비자들의 불신으로 인해 수출부진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업계에서는 걱정하고 있다.

 대우와 기아는 각각 제너럴모터스, 포드와 손잡고 르망과 프라이드(미국상표로는 페스티바)를 판매하기 때문에 그 위험이 훨씬 덜하다.

 외국의 유명 메이커에 모델개발과 판매망을 의존한다는 것이 자랑일 수는 없다. 그보다는 우리의 고유몯레과 독자적인 판매망으로 세계시장에 도전한 현대의 기업정신이 칭송받을 만하다. 그러나 진취적인 의욕만으로 선진국과 경쟁하기에는 아직 힘이 부친다는 것이 국제시장의 냉엄한 현실이며, 생산량 세계 10위, 수출 세계 8위인 한국 자동차산업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현대, 대우, 기아, 쌍용 등 자동차 업계는 내년도 판매계획을 수출 43만4천대를 포함 총 1백56만3천대로 잡고 있다. 내수는 올 연말까지의 예상 판매대수보다 47%, 수출은 24% 올려잡은 목표이다. 현대는 내년 수출목표를 올해 예상대수보다 10%가 증가한 23만5천대, 기아는 35%증가한 13만대, 대우는 75%가 증가한 7만대로 잡고 있다. 그러나 ‘심각한 조정기’를 맞고 있는 현대의 경우 올 수출 수준을 넘기는 어려울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외국기술 단순조립이 문제

 어떻게 하면 수출 주도업종으로 부상한 자동차산업을 계속 성장시킬 수 있을까? 기술력의 한계를 극복해 국제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핵심적인 과제이다.

 최근 상공부는 국내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와 1천여개 부품업체들이 대부분 일본, 미국 등의 기술을 비싼 값에 사들여 단순조립하는 데 치중하고 있으며 지나친 외국기술 의존이 국산자동차의 수출산업화를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자동차 업계는 작년에만도 13억달러어치의 자동차 부품과 4억8천만달러어치의 시설재를 일본, 미국 등지로부터 수입했으며 총 51건에 9천만달러의 로열티를 부담했다. 일본 등 선진국과 비교할 때 국내 완성차업계의 기술수준은 15~20년, 자동차부품업체의 기술수준은 20~30년 뒤져 있으며 특히 제품 및 부품개발기술과 설계기술 등 핵심분야에서는 기술격차가 해마다 커지고 있다고 상공부는 분석했다.

 국내 자동차업체는 현재 매출액의 2~3%를 연구개발비로 투자하고 있는데 일본은 4~5%에 달한다. 더욱이 투자비의 절대금액에 있어서 차이는 엄청나다. 전문가들은 연구개발 투자비율을 빠른 시일내에 5%수준으로 올리고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7~8%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노동현장의 안정이다. 노사문제는 곧 생산의 문제이기 때문에 수요자에 대한 납기내 공급, 향후 전망 등 독자적인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노사관계의 안정은 노동의 질을 높이고 이는 곧 품질향상과 직결되기 때문에 자동차산업에서는 필요불가결한 조건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대우자동차와 기아산업 근로자들의 노동쟁의 양상에 정부와 업계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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