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을 보호주의 물결
  • 조종화(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 승인 1989.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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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의 진입을 눈앞에 둔 지금, 지구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사태들은 앞으로 10년 동안 세계경제가 겪어갈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게 해준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동구 개방의 가속, 1992년으로 예정된 EC 통합, 1년 후로 다가온 우루과이라운드 무역협상의 마무리 등은 모두 90년대의 국제경제질서에 폭넓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80년대의 세계경제를 돌이켜보면 성장추세 면에서는 대체로 순조로운 항진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제2차 오일쇼크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난 83년 이후 7년 동안 선진국 경제는 별다른 인플레의 코스 없이 연평균 3%를 웃도는 성장률을 유지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80년대 초에 겪은 스태그플레이션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각국이 노력하는 과정에서 국제무역 및 금융질서는 적지 않은 구조적 문제들을 안게 되었다.

 

미국 대규모 무역적자 지속

 폴 볼커가 이끌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80~81년 당시 미국의 두자리수 인플레에 대항하기 위해 추진했던 강력한 금융긴축은 사상 최고 수준의 금리와 달러화의 초강세를 가져왔다. 한편 레이거노믹스의 기치 아래 미국정부가 추진했던 감세조치와 국방비 증액은 불가피하게 재정적자의 확대로 귀결됐다.

 달러화의 가치가 2백60엔에 이르고 재정적자의 규모가 한해 2천억달러를 넘어서자 가뜩이나 제조업 경쟁력의 약화 추세를 보이던 미국의 국제지수는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81년까지만 해도 흑자였던 미국의 경상수지는 그 후 적자로 돌아서서, 87년 적자규모는 1천5백억달러를 넘어섰다. 상대적으로 일본과 서독 그리고 아시아 신흥공업국(NICs)은 흑자 확대를 거듭함으로써 세계경제는 80년대에 ‘국제수지 불균형’이라는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90년대의 세계경제는 80년대에 야기된 국제무역·금융체제상의 불균형과 구조적 문제들을 타개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주요국간 국제수지 불균형은 최근 다소 개선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도 그러한 추세를 유지할 것으로 기대되나, 개선의 폭이 그리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세계경제의 긴장 요소로 남게 될 것이다. 경제예측기관들이 보고 있는 90년대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는 여전히 매년 1천억달러의 내외의 수준이다. 미국이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그들의 연방재정 적자를 줄여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은 국내법(G-R-H법)에 의해 오는 93년까지는 재정균형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이 목표가 달성될 것으로 믿는 경제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미국정부나 의회는 대폭적인 재정지출 삭감이나 세수증대와 같은 정치적인 비용을 수반하는 어려운 정책을 추진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정부는 무역적자의 책임을 교역상대국에게 전가해온 지금까지의 패턴을 유지하게 될 것이며, 미국이 앞장서는 보호주의와 통상마찰의 확산도 당분간은 크게 누그러지지 않을 것이다.

 무역마찰의 증대로 혼미해진 국제무역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각국의 노력은 우루과이라운드(GATT주관의 다자간 무역협상, 86~90년)의 진행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는 보호주의의 확산을 완화하고 90년대의 국제무역질서를 정립하기 위한 세계인의 노력이라는 점에서, 특히 세계무역에서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서비스 교역문제를 새로운 이슈로 부각시켜 이에 대한 국제규범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본격적인 협상국면에 들어서 우루과이라운드는 농산물, 서비스, 지적소유권 등 각 분야에서 국가별 또는 경제그룹별로 상당한 의견대립을 드러내고 있어서 국제무역질서의 획기적인 개선을 가져올 만한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세계적인 무대에서 국제무역의 문제들을 해소하기가 어려워진 만큼 90년대는 우선 이해를 같이하는 나라들끼리라도 호혜관계를 돈독하게 하려는 이른바 ‘지역주의’가 세계경제에 구체적인 형태로 자리잡는 기간이 될 것 같다. 대표적인 예가 ‘EC통합’인바 모두 선진국에 속하는 EC 12개국이 계획대로 92년까지 단일시장을 완성시킬 경우, 이는 인구 3억2천만과 세계 GNP의 20%를 점하는 세계최대의 시장으로 등장하게 된다. 더욱이 동독의 개방으로 템포가 더욱 빨라질 동구의 개혁은 EC의 위상을 더욱 높여줄 가능성이 크다.

 

세계경제 미국·극동아시아·유럽의 3대블록으로 재편

 EC가 단일시장으로 묶이면, 90년대의 세계경제는 △미국△일본을 비롯한 극동아시아 △유럽의 세 축에 의하여 주도되는 과두체제의 모습을 띌 것이다. 90년대의 국제무역 및 금융체제가 이 과두체제하에서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공동의 리더십과 보다 긴밀한 정책협조가 요망된다.

 80년대 후반의 주요국간 정책협조는 ‘플라자 협정’이나 ‘루브르 협정’등으로 적지 않은 결실을 맺었으나 환율의 불안정과 국제수지의 불균형 해소에는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90년대에는 지나친 환율변동에 따른 경제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갖추기 위해 국제통화질서의 개편 논의가 활발해질 가능성이 크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현행 변동환율제도의 골격을 유지하되 ‘목표환율대’(target zone) 등의 도입을 통해 현행제도를 개선하자는 주장이 우세한 쪽이지만 과거의 고정환율제도로 복귀하자는 주장도 또한 만만치 않다.

 결국 90년대는 70년대에 한차례 소용돌이를 겪은 국제무역·통화질서가 다시 한번 재편성되는 시기로 인식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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