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입양 목마른 ‘버려진 아이들’
  • 김선엽 기자 ()
  • 승인 1989.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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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부부들일수록 입양에 긍정적… 상품 고르는 듯한 풍조는 사라져야

전직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현재는 작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朴모(45)씨는 최근 새식구로 맞이한 4살박이 양녀의 재롱을 보며 첫딸을 잃은 슬픔을 잊는다고 한다.

 슬하에 자녀가 없어, 12년전, 갓난애이던 첫딸을 입양했던 박씨 부부는 유난히 예쁘고 공부도 잘했던 그 아이를 국민학교 5학년 때 교통사고로 잃는 불행을 당했다. 얼마 동안 넋을 잃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박씨 부부는 딸아이가 생전에 “동생 하나 데려다 키우자”던 얘기를 떠올리고는 다시 딸을 입양하기로 결심했다. 다해히 빠른 시일내에 마음에 쏙 드는 둘째딸을 만날 수 있었다. 첫딸 못지않게 영리하고 예쁜 둘째딸 덕분에 박씨 부부는 웃음을 되찾고 화목한 생활을 하고 있다.

 金모(52)씨도 남매를 입양해 훌륭하게 키우고 있다. 부부 모두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김씨의 경우는 큰아들을 입양한 후 미국에서 생활, 주위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신경을 썼다. 둘째인 딸을 데려올 때는 이미 귀국한 뒤여서 임신을 가장하느라 배도 불리고 병원에 입원까지 하는 등 치밀한 연극을 했다. 행여라도 주위에서 아이들이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챌까봐 염려한 탓이었다. 이처럼 세심한 주의를 한 까닭인지 현재 이들 남매는 별 탈 없이 어엿한 대학생, 중학생으로 성장,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어떤 이유에서건 남이 낳은 아이를 입양해 친자식 못지않은 정성을 쏟으며 키우고 있는 가정이 의외로 많다.

 아직 선진국처럼 내놓고 떳떳하게 밝히지는 못해도 비밀리에 입양기관을 찾는 불임부부들이 줄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신체장애아나 뇌성마비, 정박아 등도 마다지 않는 서양인들과는 달리 친부모의 학력, 아이의 외모, 지능 등을 유난히 따지는 바람에 국내입양이 그리 수월치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또 겨우 입양이 성사됐다 하더라도 입양기관 운영에 필요한 후원금에 인색하고 ‘친자를 낳았다’는 이유로, 또는 ‘아이가 말을 안듣는다’는 등 무책임한 사유로 쉽게 입양을 파기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입양기관은 입양에 보다 너그럽고 개방적이며 물질적 지원에도 적극적인 해외입양에 주력하게 된다.

 그러나 작년 초에 미국의 주요 일간지<뉴욕타임스>와 월간지《프로그레시브》가 한국의 입양실태를 비판하는 기사를 실어 충격을 던진 일도 있었다. “최대의 고아 수출국” “한국이 어린이를 만들고 미국이 어린이를 산다”등등의 자극적 표현이 동원된 이 기사들은 그동안의 경제성장과 올림픽 유치로 한껏 들떠있던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깔아뭉개기에 충분했다. 그러자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무관심했던 국내언론들은 연일 국내외 입양실태에 대해 보도하면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흥분했고 각종 사회단체들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한바탕 법석을 떨었다.

10명 중 7명이 여자아이 원해

 그러나 이 문제의 해결책을 시원스레 제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입양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정부가 기아나 사생아 발생예방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달라진 것이 아나도 없는 것이다.

 보사부 통계에 따르면 기아수는 85년에 1만4천2백30명으로 절정을 이룬 후 작년에 9천1백36명으로 감소해 매년 줄어들고 있다. 반면 미혼모수는 880년대 들어 해마다 증가, 지난해 1만2천5백4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는, 기아는 줄지만 사생아는 증가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며 한편으론 입양문제의 해결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입양파문’은 국내 입양을 활성화시키지도 못하면서 해외입양만을 위축시킨 결과를 빚고 있다. 올 10월 현재 해외입양 건수는 지난해 6천4백63건에 훨씬 못미치는 3천6백14건. 국내입양도 증가하기는커녕 계속 줄어 10월 현재 1천4백48건(작년 2천3백24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선에서 상담에 응하고 있는 관계자들은 국내입양이 비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적으로 이들 기관에는 국내입양을 신청하고 대기중인 예비부모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국내입양을 알선하고 있는 기관은 서울가톨릭복지회의 성가정입양회를 비롯 시?도 아동상담소와 홀트아동복지회 등의 사회복지법인들이다. 일부 영아원이나 보육원에서 간혹 개인적인 입양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전문성을 띤 입양기관들의 실적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미미한 편이다.

 이들 중 올해 3월 성가정입양원을 개원한 데이어 5월에 활동을 시작한 성가정입양회(774-5870)는 우리나라 최초로 국내입양만을 전담하기 위해 생긴 단체다. “젊은 부부들일수록 입양에 긍정적이죠. 그만큼 의식이 개선돼 있다고 할까요. 지금까지 50명 정도의 아이들이 입양돼 갔는데 조건에 맞는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가정도 약 5백 가정이나 됩니다. 특이한 것은 10명 중 7명은 여자아이를 원한다는 사실이에요. 10년전만 해도 대를 잇기 위한 남자아이 입양이 대부분이었는데 말이에요.”

 성가정입양원의 업무와 상담과정을 맡고 있는 趙鎔媛원장은 조금씩 변해가는 인식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자녀있는 가정이 입양을 원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덧붙인다. 결혼초에는 자녀 하나로 만족하던 부부가 경제적으로 안정되면서 둘째 아이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상담?가정방문으로 부모의 적격 여부 확인

 그러나 원한다고 해서 누구나 입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담을 통해 입양되는 아이를 책임지고 사랑으로 키울 수 있는지 알아본 뒤 적격자로 판정돼야만 입양이 가능하다. 부모의 연령이나 경제력도 중요하지만 입양동기, 태도 등이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입양절차는, 신청자의 경우 직접 방문, 입양신청 구비서류제출, 추천된 아동 선보기로 이루어지며 기관에서는 상담과정과 가정방문을 통해 입양을 확정짓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신청자가 준비해야 할 서류는 호적등본 1통, 주민등록등본 1통, 부부건강진단서 1통, 부부사진, 주택약도 각 1장씩이며 상황에 따라 다른 서류가 추가되기도 한다. ‘성가정입양회’를 통해 입양되는 아이들은 대개 미혼모가 낳은 사생아들로, 신생아들이다.

 임양기관 중 가장 규모가 큰 홀트아동복지회(이하 홀트)에서도 매달 50~60명의 신생아들이 국내입양되고 있다. 서울 외에도 전국적으로 11개의 지부를 운영하고 있는 홀트에 입양신청을 하고 대기중인 가정은 모두 합쳐 12월 현재 50여개에 이른다.

 “엄밀히 말해 우리나라에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닙니다. 요즘도 양부모가 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애를 먹는게 아니라 그들에게 보낼 예쁘고, 똑똑하고, 혈액형이 같은 이이들을 골라 연결시켜주기가 힘들어서 죽을 지경입니다.”

 홀트 국내결연부(336-3505)의 李鎭熙과장은 이렇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양태도를 꼬집었다. 물론 예전보다 다소 개선됐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주렁주렁 내거는 전제조건들이 까다로운 건 여전하다는 푸념이다.

 홀트의 올해 9월 보고서에 의하면 9월 한달 동안의 입양아동수는 44명.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각 22명씩으로 똑같다. 이들의 연령분포를 보면 3개월 미만이 43명, 3~6개월이 1명으로 역시 신생아들이 주로 입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입양가정들의 입양동기를 살펴보면 ‘불임’이 34건, ‘가정화목을 위해서’가 7건, ‘대를 잇기 위해’가 1건이며 ‘불우아동복지차원’에는 단 1건도 해당가정이 없어 우리의 입양 의식이 선진국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입양부모들의 연령은 20대가 2, 30대가 41, 40대가 1건으로 30대가 가장 많았고 세 가정을 제외한 나머지 가정이 자녀가 없는 가정이었다. 부부 합계 소득수준은 30만~50만원이 15, 50만~70만원이 13, 70만~1백만원이 11, 1백만원 이상이 5가정이었으며 직업은 자영사업가, 공무원, 사회사업가, 엔지니어, 사무직 및 서비스업종사자, 생산직 근로자 등으로 매우 다양했다.

 또 결혼기간은 3년 미만이 4, 3년 이상이 12, 5년 이상이 26, 10년 이상이 2이었으며 학력은 중졸 이하 8, 고졸 22, 대학중퇴 2, 대졸 12로 비교적 고학력이었다. 종교별로는 기독교 14, 천주교 6, 불교 12로 나타나 종교를 갖고 있는 가정의 입양률이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입양방법으로는 ‘부부만 알게’가 18건으로 가장 많아 여전히 비밀입양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양절차는 성가정입양회와 비슷하며 아이가 입양된 지 2개월내에 담당자가 가정을 방문, 부모와 아이가 서로 잘 적응하고 있는지를 조사하게 되어 있다. 또 6개월내에 출생신고서, 호적등본,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토록 해 아이가 입적됐는지 최종확인도 한다.

 이같은 절차들은 대부분의 입양기관들이 유사하며 입양이 성사됐을 경우 후원금이나 양육비조로 약 40만원 안팎의 사례비를 받는 게 상례로 되어 있다.

 

‘가상 임신쇼’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

 하지만,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서 입양이 철저하게 비밀로 지켜져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국내입양으로 ‘버려진 아이들’을 포용하기는 어렵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아직도 우리사회에서는 대체로 입양을 “온전치 못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입양희망자들은 결사적으로 갓난아이를 택해 ‘가상 임신쇼’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어느 정도 성장한 아이들은 일단 친부모의 호적에 올라 있는 상태여서 친자로 받아들일 수 없는 법적인 문제가 있다. 이 점이 신생아 선호를 더욱 부추기는 요소로 꼽히고 있다. 또 친부모가 1년안에 친권을 요구할 경우 아이를 친부모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규정도 공개입양을 저해하는 장애가 되고 있다.

 보사부에서는 95년까지 매년 10~20%씩 해외입양을 감소시켜 96년에는 완전히 금지시킨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국내입양 활성화 방안으로 양부모의 연령제한을 45세에서 50세까지로 늘렸으며, 입양가정에는 소득세 공제, 주택마련시 우선순위 부여, 공직자의 경우 수당?학비 등을 보조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관계기관과 협의중이다. 또 시설보호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가정위탁보호를 늘려갈 계획이며, 이의 추진에 소요될 90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20% 늘어난 2억원으로 책정해놓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 방침이 계획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며 또 그대로 시행된다 해도 효과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온국민의 입양에 대한 편견이 없어지지 않는 한 어떤 입양 활성화 정책을 편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 국민이 입양을 자선적인 차원에서 보는 오만함에서 벗어나 따뜻한 마음과 책임감을 가져야 할 때이다. 물론 ‘버려지는 아이들’의 수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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