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수가 대법관 된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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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대법원, 7월10일 인사 때 ‘학자 발탁’ 한마음
 
사법부에 한바탕 인사 태풍이 몰아칠 것인가. 오는 7월10일 바뀌는 대법관 다섯 자리에 어떤 인물이 적합한지를 놓고 사법부 안팎에서 벌써부터 논쟁이 뜨겁다.

이번에 대법관들이 새로 임명되면 고현철 대법관을 제외한 11명의 대법관과 대법원장이 노무현 정부 들어 모두 바뀌게 된다. 노무현 정부로서는 이번 인사가 ‘사법부 수뇌부의 지도’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분수령이 되기 때문에 특히 신임 대법관들의 구성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법관 임기는 6년인데, 이번 인사가 끝나면 2009년 3월이 되어야 신임 대법관이 탄생한다.

7월10일 퇴임하는 대법관은 강신욱·이규홍·이강국·손지열·박재윤 대법관이다. 대법원은 지난 15일 고현철 대법관, 장윤기 법원행정처장, 천정배 법무부장관, 천기흥 대한변협 회장, 이종승 한국일보 사장 등이 포함된 ‘대법관 후임자 제청을 위한 제청자문위원회(이하 대법관 제청자문위·위원장 서울대 송상현 교수)’를 구성하고 신임 대법관 선출 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대법관 제청자문위는 5월23일부터 29일까지 각계로부터 대법관 후보자를 추천받은 뒤 6월5일쯤 대법원장에게 후보자를 추천할 계획이다. 40세 이상으로 법조 경력이 15년이 넘는 사람이면 누구나 비공개로 추천할 수 있다. 대략 6월 초순이면 대법관 후보자들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19일,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가 들어선 뒤 처음으로 대법관 세 명이 바뀌었을 때 법원 안팎에서는 파장이 일었다. 대법관들의 인적 구성을 다양화한다는 명분으로 재야 인사인 박시환 변호사가 대법관이 된 것이 상징적이었다. 서울대를 나오지 않은 김지형 부장판사가 대법관이 된 것도 “대법관이 서울법대 동창회냐”라는 그간의 비판이 영향을 끼쳤다. 법원 내 요직을 두루 거친 판사 중에서는 김황식 법원행정처 차장만이 대법관이 되는 데 그쳤다. 당시 정권 핵심부에서는 ‘대법원장은 안정형, 대법관은 개혁형’이라는 구도를 갖고 있었고, 이것은 현실이 되었다.

양창수·윤진수·김일수 교수 등 물망

결론을 말하면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해온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 방침은 이번에도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형태다. 지난번 대법관 인사의 백미는 박시환 변호사의 대법관 임명이었다. 판사 시절부터 사법 개혁을 강조해 왔고 말뿐이 아니라 행동과 연구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아온 박변호사가 대법관 문턱을 넘은 것은 어떻게 보면 시대 변화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이번에도 법조계 일각에서는 ‘재야파’ 변호사들이 대법관에 진출하리라고 점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인 이석태 변호사, 문흥수·김형태·조용환 변호사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법원 안팎의 상황을 볼 때 이들이 이번에 대법관에 임용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개혁 성향인 한 부장판사는 익명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기본적으로 ‘재야’에 사람이 없다. 구성도 다양하지 못해 인권·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만이 재야로 비치고 있다. 지금 법원 이번에는 기존 법관들이 대법원으로 많이 진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이런 상황이나 구조를 보았을 때 재야에서 들어오기가 어려울 것이다.”
대법원 사정에 정통한 한 판사 출신 변호사도 “재야에서 대법관이 나올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만약 강행한다면 법원 안팎에서 큰 논란이 일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이용훈 대법원장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라고 내다보았다.

그렇다면 이번 대법관 인사에서 ‘다양화’는 어떤 양태로 나타날까. 이 대목에서 주목되는 것이 학자 출신 인사가 대법관에 진출할 것인지 여부다. 박정희 정권 이후 학자 출신이 대법관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학계에서 대법관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지금까지의 관행에 비추어보았을 때 상당한 변화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학계 인사 가운데는 서울대 법대 양창수·윤진수 교수, 고려대 법대 김일수·채일식 교수 등이 거론되고 있다. 양교수는 대법관들이 많이 다루는 민법에 밝다는 점에서, 윤교수는 부장판사 출신인 점이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는 양교수를 대법관 후보로 선정했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출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향이 중요하다”라며 ‘학계’라는 분야에 주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른바 ‘성향론’과 ‘출신론’의 쟁투다. 그러나 큰 흐름은 이미 정해졌다. 법원 안팎의 흐름을 종합해보면 이번에 학계에서 대법관이 배출되는 것은 확정적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미 지난 1월 한국법학교수회 회장단과 신년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와 관련해 긍정적인 논의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 핵심부 사정에 밝은 한 법조계 인사는 “청와대와 대법원 모두 학계 출신 인사 한 명을 대법관에 임용한다는 데 뜻을 같이한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검찰 출신 중에서도 한 명이 대법관으로 진출할 것이 확실시된다. 7월10일 퇴임하는 강신욱 대법관이 검찰 출신이기 때문이다. 검찰에서는 강대법관 후임이 검찰 출신이어야 한다는 데 이론이 없다. 대검찰청 강찬우 공보관은 “강대법관은 대법관으로서 충실히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법원 내부에서도 검찰 출신이 대법관으로 가는 데 별 이의를 달지 않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검찰 출신 안대희·김희옥·이종백 각축

검찰 인사 가운데는 노무현 대통령과 사시 17회 동기인 안대희 서울고검장과 이종백 부산고검장, 그리고 사시 18회인 김희옥 법무부차관 등이 유력하다. 특히 김차관의 경우 비서울대 출신인 데다가 대구·경북 지역에서 태어난 대법관이 없는 상황, 학구파라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2002년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널리 알려진 안대희 고검장은 시민·사회 단체 등이 대법관 후보자로 거명하고 있다.

 
학계·검찰에서 한 명씩 대법관이 되면 세 자리가 남는다. 법원 내부에서는 법원 내 요직을 두루 거친 정통 법관들로 이 자리를 메워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여성 몫을 안배해야 한다, 임용 후 지방에서만 근무한 이른바 ‘향판(鄕判)을 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어떤 결심을 하느냐에 달렸다. 정권 후반기로 가는 상황, 집권 세력의 인기가 바닥이라는 측면에서 사실상 이대법원장이 이번 대법관 인사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법원장은 ‘안정형’ 구도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통 법관들 다수가 대법관으로 진출하기를 바라는 내부 정서를 반영하겠다는 생각이 강하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은 대법관 후보자 인선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대법원이 갈등을 빚을 가능성을 거론했으나 표면화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와 대법원은 정통 법관 가운데 사시 17회까지 대법관 후보에 포함시킬 것인가, 아니면 사시 16회 선에서 끊을 것인가를 둘러싸고 시각 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노대통령의 동기인 사시 17회까지 내려간다면 특히 노대통령과 친한 ‘8인회’ 구성원인 김종대 창원지방법원장이 대법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경남 지역에서 주로 근무한 향판이다. 사시 17회는 조대현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배출했으나 아직 대법관에는 오른 이가 없다.

이대법원장이 법원 조직의 안정을 우선한다면 김진기 대구고등법원장, 이홍훈 서울중앙지방법원장, 박일환 서울서부지방법원장 등에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경북 출신인 김진기 법원장과 이홍훈 법원장은 지난해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가 선정했던 아홉 명의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었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김영란 대법관에 이어 여성 대법관이 또 한 명 탄생할 것인가이다. 특히 청와대가 이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 몫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은 전수안 광주지방법원장과 김덕현 변호사다.

여성 발탁하면 전수안 광주지방법원장 유력

여성 판사들의 언니 격인 전수안 법원장은 정통 법관인 반면 김변호사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이다. 김변호사는 대통령 탄핵 사건 때 노대통령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인 가운데 한 명이다. 지금 상태라면 이대법원장은 여성과 법원 내부를 아우르는 ‘전수안 카드’를 쓸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 사정에 밝은 한 법조계 인사는 “정통 법관 중에서 두 명, 여성 중에서 한 명을 대법관으로 하는 구도가 유력하다”라고 분석했다.

 
이대법원장은 이번 대법관 인사에서 9월에 있을 헌법재판소 재판관까지 염두에 두고 구도를 짤 것으로 보인다. 9월에 윤영철 헌법재판소장과 권성·김효종·김경일·송인준 재판관이 퇴임하는데 이 가운데 이대법원장이 한 명을 지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 주변에서는 이홍훈 법원장이 헌법재판소 소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치고 있다.

시민단체와 법원 유관 단체들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법원공무원노동조합과 환경운동연합·인권실천시민연대 등으로 구성된 ‘대법관 범국민 추천위원회’는 지난 5월18일 이홍훈 법원장, 안대희 고검장, 전수안 지원장 등 15명을 ‘사법개혁을 추진할 적임자’라며 대법관 후보자로 추천했다.

한편 대법원이 대법관 후보에 대해 강도 높은 검증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탈락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고위 법관 두 명이 임대 소득세를 탈루한 사실이 발견되어 후보군에서 빠졌다. 대법원은 국회 청문회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흠결이 발견되면 전체적으로 법관의 권위가 손상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철저하게 자체 검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대법관 인선 문제가 의제로 떠오른 것은 ‘법이 사회를 바꾼다’는 의미를 국민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것과 맥이 닿아 있다. 새만금 사업 등 굵직한 국책 사업이 법원의 결정에 의해 하루아침에 중단되거나 재개되는 일들을 보면서 법이 사회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에 새삼 눈뜬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 진보와 보수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정치적인 시각에서 재단하려는 시도도 여전하다. 5·31 지방선거 이후 대법관 추천 문제가 한국 사회를 달굴 ‘핫 이슈’가 될 공산이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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