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옛 대문에서 듣는 새소리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6.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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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선택] 숙정문

 
수십년 간 비경을 간직했던 한양 도성의 북문 숙정문(肅靖門)이 일반에 공개된 지 한 달 보름째를 맞던 지난 5월14일, 아이들과 조카를 데리고 처음 숙정문 구경에 나섰다. 모처럼 황사가 가신 화창한 날씨 때문인지 상춘객들이 유난히 많아 보였다.

출발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어디에선가 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그밖에도 구구 멧비둘기 소리와 꿩 울음 소리 등, 얼른 셈 쳐보아도 예닐곱 종의 새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생태론자 레이첼 카슨은 농약 살포로 새가 사라진 봄을 일컬어 ‘침묵의 봄’이라 했지만, 봄을 맞은 북악산은 침묵하지 않았다.

출발 장소인 삼청각에서 숙정문까지의 거리는 약 1km. 가파른 곳도 없고, 거리도 짧아 산등성을 타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싱겁다고 여겨질 만한 오솔길이었다. 하지만 서울 시내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오랜 세월의 무게를 짊어지고 당당하게 늘어선 장관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숙정문 관광 코스의 최대 위안 거리다.

숙정문을 오르다 보면, 꼭 풍수가가 아니더라도 ‘음기’를 느낄 수 있다. ‘옛날 왕조 시대에 가뭄이 들면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 숙정문을 열어 음기를 불러들였다’는 안내원의 말이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숙정문은 원래 1968년 1월 ‘김신조 일당’ 침투 사건이 발생한 뒤, 서울 시민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청와대 특정 경비 구역으로 지정되어 군인들의 땅이 된 것이다. 이 숙정문을 시민의 품으로 돌리기로 한 결정은 지난해 9월에 이루어졌고, 마침내 문이 열린 것은 올 4월이었다.

일반에 개방되었다고는 하지만 청와대에 인접해 있다는 특수성 탓에, 숙정문은 여전히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숙정문을 가려면 미리 사람 수대로 예약을 해야 하고, 현장에 가서도 별도 표찰을 달아야 하며, 안내원보다 앞서 다닐 수 없고, 사진도 아무데서나 찍을 수 없다.

하지만 바로 이같은 ‘제한’ 덕분에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을 덜 탄 은밀함과 서울 도성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작지만 극적인 스케일은, 숙정문 관광에 따르는 불편함을 충분히 보상해주고도 남는다. 이미 숙정문 코스는 ‘서울 관광’의 단골 코스가 되었다. 안내원의 말에 따르면, 짧은 코스에 감질내는 관광객들의 성화가 벌써부터 빗발쳐, 관계 당국은 아예 성균관대 후문에서부터 출발해 숙정문(촛대바위)에서 끝나도록 코스를 연장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 중이다. 코스 연장이 결정되면, 오는 7월에 시행한다.

숙정문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개방된다. 따라서 ‘호젓하고 한갓진 분위기’라는 숙정문 관광 특유의 묘미를 맛보려면 되도록 주말이 아닌 평일로 예약하라는 것이, 안내원이 살짝 흘리는 정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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