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망명 공작’은 황당한 작전인가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6.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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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네그로폰테 미국 국가정보국장이 ‘민간 탈북자 망명 기획·실행→북한 고위급 인사 포섭·망명→김정일 사생활 등 폭로’로 이어지는 모험주의적 대북 정책을 펴고 있다. 그의 노림수는

 
탈북 망명 후폭풍이 워싱턴에서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 5월17일 뉴욕 타임스가 보도한 ‘젤리코 보고서’는 탈북자 6명의 망명 허용을 계기로 대북 정책을 한 축으로 몰고 가려는 미국 행정부의 시도에 대한 반격의 성격이 강하다. ‘젤리코 보고서’란 라이스 국무장관의 핵심 측근인 필립 젤리코 자문관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새로운 대북 정책안. 그러나 난데없이 북·미 평화협정 체결이 주 내용이라는 젤리코 보고서의 등장은, 그 내용보다는 탈북 망명 허용 이후 워싱턴 내에서 전개되어온 치열한 파워 게임이라는 맥락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강경파들의 ‘모험주의적 대북 정책’ 시도에 일격을 가하고, 6자회담과 북·미 회담을 병행하는 라이스 장관의 해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최근 국면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탈북 망명 허용 이후 워싱턴 인사이드에서 전개된 긴박한 흐름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탈북 망명 허용이 불러온 파장:탈북자 6명에 대한 미국 망명 허용 사건(5월5일)은 워싱턴 내부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왔다. 사건 초기에는 ‘도대체, 누가, 왜?’라는 의문이 제기되었고, 배후 세력과 그들의 최종 목표가 뚜렷해지면서부터는, 그에 대한 우려와 반발이 심각하게 전개되어 왔다고 한다. 이같은 반발은 주로 부시 행정부를 뒷받침하는 의회의 공화당 내부와 CIA 등의 정보기관 인사, 국무부 등 그동안 한반도 문제를 전문으로 해온 전문가 및 이른바 ‘꾼’들의 세계에서 제기되어 왔다고  한다. 이들은 ‘탈북 망명을 배후에서 주도한 세력’들이 ‘매우 엉성하고도 위험한 계획’을 추진 중이며, 결과적으로는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서 미국의 입지가 매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는 것이다.

누가 왜? : 5월5일의 탈북자 미국 입국은   두리하나선교회의 천기원 대표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대표는 지난 5월7일 기자 회견에서 “3월31일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미국측’으로부터 탈북자를 난민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제의를 받았다”라고 밝혔다. 여기서 문제는 그 ‘미국측’이 과연 누구냐는 것이다.  4월27일 한국 국적 탈북자 서재석씨에 대한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의 정치 망명 허용, 4월28일 납북자 요코다 메구미 씨와 탈북자 김한미양 가족의 부시 대통령 면담 따위 이벤트에 이어 탈북자 6명 망명 허용, 대북 인권 공세가 조직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면서, 주로 의회 등을 중심으로 배후 실체에 대한 의문이 빠르게 확산되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보국(CIA)를 비롯한 정보기관 정보가 유입되기 시작했고, 비로소 몇 겹의 껍질 뒤에 숨은 실체가 밝혀지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일련의 탈북 망명을 기획하고 각종 비정부 기구(NGO) 등을 동원해 이를 실행하게 한 배후 실체로 떠오른 곳이 바로 2004년 12월 통합정보조직으로 출범한 국가정보국(DNI)이었다고 한다. 자연히 존 네그로폰테 국가정보국장(66)이 실질적인 배후 인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쪽 기사). 또한 이를 계기로, 지난해 9월 발생한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대한 금융 제재와 위폐 문제, 마약 문제 그리고 최근의 인권 문제에까지 이르는 일련의 ‘총체적 대북 압박’ 역시 네그로폰테 국장이 지휘하는 국가정보국이 실질적으로 주도했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즉, 위폐 문제의 경우 그동안 미국 재무성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것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재무성은 합법적인 간판이었고,  실제로는 국가정보국의 국가대테러센터(NCTC)가 총괄하는 구도였다는 것이다.  NCTC는 그동안 CIA에서 담당해온 테러 관련 정보 수집과 작전 수립 활동을 이관해 국가정보국 내에서 담당하는 조직으로, 장기적인 위장 침투 임무를 비롯해 각 정보기관을 통합 조정하는 권한도 갖고 있다고 한다. 
네그로폰테 정보국장은 지난해 4월 상원인준청문회에서 북한과 이란을 정보 수집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겠다고 선언한 바 잇다. 그 이후 북한과 이란의 대량살상무기(WMD) 자금 이동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BDA 은행에 대한 금융 제재, 위폐 문제, 마약, 인권으로 이어지는 최근의 대북 공세까지 배후에서 진두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 망명의 종착지는? : 워싱턴 내부가 들끓기 시작한 것은 네그로폰테 국장이 배후에서 총괄하는 일련의 탈북 망명의 궁극적인 목표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워싱턴 내부에 ‘확산’된 네그로폰테 국장의 계획은 이렇다. 앞으로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더 지난 5월5일과 같은 북한 일반 주민에 대한  탈북 망명을 허용한다. 대상은 지난번과 같이  주로 어린이나 여성·노약자 등을 중심으로 함으로써, 어디까지나 인도적 견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실질적인 목표를 가리기 위한 수단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앞으로 탈북 망명의 실질적인 대상은 정보 가치가 높은 북한 고위급 인사에 대한 망명 공작으로 중점이 전환해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북한 고위급 인물은 가급적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측근 인사로서 김 위원장의 자금 및 사생활, 그리고 특히 이란에 대한 북한 노동미사일 판매와 판매 대금의 행방 등에 대한 최신 정보(recent information)를 증언해줄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 비슷한 사례가 바로 1997년 미국으로 망명한 장승길 이집트 대사였다. 장대사는 이집트를 거점으로 한 북한 미사일 수출의 실질적인 책임자였다는 점에서 정보 가치가 매우 높았다는 것이다. 결국 제2, 제3의 장승길을 기획 탈북시켜 워싱턴에서 적절한 시기에 폭로전을 펼치겠다는 것이 네그로폰테 계획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계획의 실행 시점과 구체적으로 노리는 바는 무엇일까. 정보 소식통들에 의하면, 시기적으로  6, 7월 한반도 정세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즉 김대중 전 대통령(DJ) 방북과 6·15를 둘러싼 남북 간의 움직임, 중국의 대북 진출, 그리고 6월 중 상하이에서 열릴 상하이 협력회의(SCO) 5주년 기념 행사 등에 찬물을 끼얹고, 주도권을 되찾아 오는 것이 바로 단기적인 목표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2002년 상황과도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도 남북 관계 북·일, 북·중, 북·러 관계가 급속도로 전개되고 미국은 그 가운데서 배제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불시에 핵 카드를 꺼내들어 이 모든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주도권을 장악해 버렸던 것이다.
이번에는 지난해의 9·19 공동성명을 계기로 6자회담이 미국에 불리한 구도로 전개되고 있음이 드러나면서, 네오콘 세력이 다시 결집하기 시작했고, 위조 지폐 카드로 일단 6자회담 진행은 중단시켰으나, 그 이상의 후속 작업에 한계가 드러났다. 한편으로 위폐 문제에 대한 북한의 반발은 결국 김정일 위원장의 전격적인 방중과 함께 북·중 관계를 심각할 정도로 밀착시켜, 미국의 입지를 더욱 좁히는 결과로 이어졌다. 마지막 수단으로 지난 4월20일의 후진타오 주석 방미 때 대북 정책에 대한 중국의 협조를 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탈북자 망명을 주 내용으로 하는 인권 카드를 앞당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진행 경과로 보면 이미 동남아의 미국 대사관 등을 통해 대상자에 대한 선별 작업이 진행되어왔고 몇몇 유력 후보자에 대한 압축 작업도 끝나 있다고 ‘주최측’에서는 자신하는 것 같다.

내부 반발의 확산: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우려와 반발이 확산되어온 이유는 한마디로 ‘너무 엉성하다’는 것이다. 첫 시작이었던 한국 국적 탈북자 서재석씨 망명 허용에서부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서씨 망명에 대해 미국 정부측은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의 단독 결정일 뿐 연방 정부와는 무관하다고 설명해왔다. 그러나 그동안 국가정보국의 망명 공작 대상에 ‘한국 내부의 상황을 증언해줄 국장급의 전·현직 관료’ 등도 포함되어 있다는 얘기가 나도는 것을 보면, 우연의 일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이다. 한국 내에서 인권 탄압을 받았다는 서씨의 주장이 나름대로 ‘활용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서씨 사건에 대해 ‘격앙’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한국에서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는 서씨의 주장이 터무니없을뿐더러(    쪽 기사 참조), 한국 국적자의 정치 망명 허용은 결국 한국과의 동맹 관계를 무시하겠다는 뜻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일련의 복합적 상황을 배경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5월3일 청와대를 예방한 민주평화통일 미주지역 자문회의 인사들 앞에서 “언제까지 (미국에) 기대서만은 살 수 없는 것이다”라며 포문을 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에만 해도 워싱턴은 노대통령의 발언을  ‘5·31 지방선거용’쯤으로 격하하는 으로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5월9일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할 생각’이라는 울란바토르 발언이 알려지고,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행정부에 대해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측근인사들의 친절한 주석까지 알려지면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햇다. 정보 소식통은 “이때부터 한국 정부가 과연 어디까지 결심하고 있는 거냐며 당황하는 목소리가 워싱턴 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지금이야말로 전환점(revolutionary point)인 것 같다”라며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가 ‘워싱턴 본사(국무부)’의 호출을 받고 급거 날아갔다. 곧이어 국무부 내에서 최근 일련의 상황에 대한 대책회의가 열렸고, 라이스 장관이 총대를 메고 부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수뇌부와 담판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바로 ‘젤리코 보고서’라는 약간 바뀐 형식으로 뉴욕 타임스 지면을 타게 되었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노대통령의 울란바토르 발언과 한국 정부 관계자들의 결연한 태도가 나름대로 사태 전개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미 그 전부터 내부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워싱턴 내부, 즉 공화당 의원들조차 일련의 탈북 망명 계획에 대해 ‘황당’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서씨 사건도 그렇지만, 이른바 ‘김정일 측근 인사에 대한 망명 공작’을 핵심으로 하는 네그로폰테 계획의 내용이 이미 알려질 대로 다 알려질 정도로, 최소한의 보안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는 분위기다. “동남아 대사관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일을 우리가 알 정도라면 북한이 모르겠느냐. 중국이 북한에 알려줄 수도 있는 노릇이다. 북한이 역으로 ‘미국이 비열한 망명공작을 벌이고 있다’고 치고 나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열린 의회 내부의 한 비공개 회의에서 공화당 소속 의원들이 이같은 문제를 제기하며 황당해했다고 한다.

의원들뿐 아니라 국무부나 CIA 등의 정보기관, 그리고 그동안 한반도 정세를 지켜봐왔던 전문가 그룹 등에서는 북한이나 중국의 단속이 강화될 게 뻔한 상태에서 과연 고위급 망명 공작이 성공할지도 의문이고, 성공한다 해도 이같은 낡은 수법으로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한다. 그 정도의 이벤트로 6월의 남북 행사와 상하이 협력기구 5주년 기념회의(SCO) 등에 찬물을 끼얹고 동북아 정세를 주도할 수 있겠느냐, 실패할 경우 미국 외교가 설자리는 과연 어디냐 등 반발이 계속 이어져 왔다고 한다.

워싱턴 내에서 네그로폰테 국장과 그 주변 인물에 대한 다양한 형식의 공격이 최근 빈발한 것도 이같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 예로, 지난 5월11일자 워싱턴 포스트에 대표적 보수 논객인 로버트 노박이 그를 겨냥한 칼럼을 썼다. 워싱턴에서 최근 핫이슈가 된 피터 고스 CIA 국장의 갑작스런 사퇴와 관련해 “CIA의 개혁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온 피터 고스보다 처신에만 능할 뿐인 네그로폰테가 더욱 문제다”라고 맹공격을 퍼부은 것이다. 그의 갑작스런 네그로폰테 공격  이면에는, “정보를 다루는 의회 내 관계자들은 네그로폰테가 문제의 중심에 서 있다고 판단한다”라는 말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공화당 내부에서 일고 있는 그에 대한 반발이 깊게 깔려 있다는 것이다.

네그로폰테가 최근 심혈을 기울인 것이 바로 후임 CIA 국장에 자신의 심복인 마이클 헤이든 국가정보국 부국장을 앉히는 일이었다. 그가 그 자리에 앉게 되면 북한과 이란을 겨냥한 정보 공작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얘기가 떠돌기도 했다. 그런데 5월18일의 상원 인준 청문회를 앞두고, 그가 책임자로 있던 국가안보국(NSA)이 9·11 테러 직후부터 미국 통신사들로부터 수천만 명의 통화기록을 몰래 수집해왔다는 사실이 USA 투데이에 폭로되어 미국 정가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 들끓었다. 워싱턴 내에서는 이와 관련해 “CIA 국장 임명을 앞두고 이상할 정도로 진통이 심하다”라는 얘기가지 나올 정도였다.

국가정보국이 지엽적인 일에만 몰두하면서 정작 북·중 간에 전개되는 중요한 흐름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최근에 제기되었다. 북·중 양국이 지난 5월14일 압록강에 수력발전이 가능한 댐 두 곳을 공동으로 건설하기로 합의했다는 5월15일자 <신화통신> 보도와 관련한 내용이다. 위싱턴 내 정보 관계자들은 이는 곧 북한에 대한 미국의 에너지 통제를 약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합의라며 긴장했지만, 정작 정보 당국의 뚜렷한 대책은 듣지 못한 상황이라고 한다. 기껏 중국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겠다며, 얼마 전 보도된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은행에 대한 제재’ 수준의 얘기를 거론했다고 한다. 그러나 북·중 관계에 밝은 전문가들은 이런 얘기에 갸우뚱해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북한은 중국과 현물이나 현금으로 주고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은행 거래가 거의 없고, 그나마 미국과 거래가 많은 대형 은행은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에서 무얼 가지고 제재하겠다는 것이냐는 얘기다.

결국 네오콘의 힘이 재결집되면서 네그로폰테가 주도하는 국가정보국의 공작이 힘을 받은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공작이 과연 성공할 것인지, 성공한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미국의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에 대해 불안감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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