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거품 붕괴는 없다”
  • 김은남 · 이철현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6.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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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연발하는‘부동산 버블 탄’은 위력적인 실탄인가, 공포탄인가. 전문가 설문 조사로 그 실체를 알아보았다.

 
  “자고 나면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다. 날마다 깜짝 놀랄 발언들이 쏟아져 나온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부동산 시장을 겨냥한 정부발 ‘5월 대공습’의 포문은 청와대가 먼저 열었다. 5월4일 정문수 대통령 경제보좌관 발언이 시작이었다. 이어 5월15일부터는 정부 관료들이 등장해 본격 공습에 나섰다. 무기는 ‘버블(거품)탄’이었다. 1990년대 이웃 일본을 초토화시켰던 이 위력적인 무기가 한국에서도 조만간 터질지 모른다며 비중 있는 정부 관료들이 연일 발언 수위를 높여가자 시장은 숨을 죽였다(발언 릴레이 표 참조).

5월 대공습의 일차 공격 목표는 이른바 ‘버블 세븐’으로 정해졌다. 5월15일 <국정 브리핑>은 서울 강남 3개 구(강남구·서초구·송파구)와 목동·분당·평촌·용인 7개 지역을 ‘버블 세븐’이라는 신조어로 칭하면서, 이들 버블 세븐이 최근 3년간 아파트·집값 급등의 핵심이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이번 대공습의 명분 및 승률을 전문가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5월17~18일 부동산 전문가 열 명을 상대로 긴급 앙케트 조사를 벌였다. 앙케트 대상에서 제외된 정부와 정치권·시민단체 관계자에 대해서는 따로 심층 인터뷰를 실시했다.

 
             
 
■버블 세븐이 집값 급등의 핵심인가?  앙케트 조사 결과 전문가들은 “버블 세븐이 집값 급등의 핵심”이라는 정부 주장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열 명 중 여덟 명이 이에 수긍했다. 지규현 주택도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2001~2002년 저금리와 양호한 주택 여건 때문에 집값이 오른 것은 정상적인 경제 현상이었지만, 현재는 비정상적일 만큼 이들 지역 집값이 폭등했다“라고 지적했다. 

나머지 두 명도 이들 일곱 개 지역이 집값 급등의 진원지라는 데에 동의한다는 반응이었다. 단 서춘수 신한은행 PB사업부 재테크팀장은 이들 지역 외에 동부이촌동·여의도·과천 역시 집값 오름세가 만만치 않음을 지적했다. 사실상 지방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서울·수도권 지역의 집값이 올랐다는 것이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들 지역 집값에 거품이 끼어 있다고 단정짓기는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지역 집값이 단기간 급등한 것은 인정하지만, 이것이 거품이라고 단정할 증거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거품인가, 아닌가? 거품 여부를 판단하는 데는 많은 논란이 따른다. 이론적으로는 주택 가격이 현재 경제의 기초 여건(펀더멘털)을 반영한 균형 가격(적정 가격)을 웃돌게 되면 그것이 바로 거품이다. 문제는 적정 가격을 어떻게 산출하느냐인데, 이에 따라 거품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진다.

먼저 전세가를 적정 가격으로 놓고 이것과 실제 가격 간의 격차를 따지는 방법이 있다. 전세가가 현재의 주거 가치(내재 가치)를 드러낸다고 판단해서이다. 그런데 강남의 전세가 대비 매매 가격 비율은 2001년 1.6배에서 2006년 2.4배로 크게 높아졌다고 주택도시연구원은 분석했다. 

적정 주택구입 가격(AP) 기준치도 크게 벗어났다. 2005년 근로자 가구 평균 소득과 융자를 함께 감안한 적정 주택 구입가는 3억3천6백61만 원이다. 그런데 버블 세븐 지역 31~33평대 아파트 값은 9억~13억 원대이다. 평균 소득 근로자는 고사하고 최상위 봉급 생활자조차 구입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정부가 이들 지역에 거품이 끼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거품 여부를 판단하기는 부족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윤석 교수(숭실대·행정학)는, 거품이 끼었다고 보려면 단순한 가격 상승 폭을 뛰어넘는 폭발 직전의 과잉 인상 양상이 나타나야 하나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주거 가치(전세가)만으로 적정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자산 가치는 희소성에 의해 좌우되는 측면이 있으므로 주택의 투자 가치 또한 적정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강수 교수(대구가톨릭대·경제학)는 현 상황이 거품임을 인정한다 해도 이것이 팽창 단계의 거품인지, 붕괴 직전의 거품인지를 가리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거품 붕괴론에 동의하나? 거품 자체를 인정할 것이냐에서부터 이렇게 의견이 갈리는 만큼 정부가 제기하는 거품 붕괴론에 대해서는 더더욱 논란이 분분하다. 전문가 열 명 중 일곱 명이 거품 붕괴론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부동산 가격이 조금만 상승하면 버블론, 조금만 하락하면 버블 붕괴론이 대두하는 등 지나치게 극단적인 시각이 국내 시장에 팽배해 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부동산 시장의 거품 붕괴가 이미 지방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의 발언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지방에서 거품 붕괴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은 지방 집값에 거품이 끼어 있었음을 전제로 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고 우윤석 교수는 지적했다. 전강수 교수는 지방 부동산이 하락 추세인 것은 맞지만, 이는 거품이 꺼져서라기보다 건설사들이 과다하게 책정한 분양가 때문에 형성되었던 이중 시장 구조가 조정 단계에 접어든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추장관의 거품 붕괴론에 대해서는 정부 내부에서도 손발이 맞지 않는 모양새가 연출되었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5월18일 강남 3개 구 집값이 버블 붕괴 직전에 와 있다면서도 “강북이나 지방은 버블이라 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거품 붕괴론을 앞장서 제기하는 것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 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최근의 집값 하락 조짐은 집값이 하향 안정화 추세로 진입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를 정부가 거품 붕괴로 부풀리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일본 상황에 한국을 빗대는 것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부정적이었다. 안명숙 우리은행 PB부동산 팀장은 1990년대 거품 붕괴 당시 일본은 주택 가격 대비 담보인정 비율(LTV)이 1백20%에 달했지만 한국은 현재 50%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집값이 현재보다 40% 이상(땅값은 50% 이상) 떨어지지 않는 한 부동산발 금융 위기로 촉발되는 거품 붕괴 상황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박상언 유앤알컨설팅 대표는 정부의 거품론 드라이브로 인해 소비 심리가 위축되는 상황을 경계했다. 이로 인해 경기 불황이 오면 오히려 없던 거품도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거품 붕괴에 따른 위험성을 높게 보는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이와는 다른 각도에서 정부를 비판했다. 주택 시장이 매우 취약해져 있는 상태에서 정부가 과다하게 구두 개입해 불을 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6월부터 시행될 각종 부동산 세제 때문에 시장이 주춤하고 있는 데다 국제 금융 시장마저 불안정한 상황에서 정부가 앞장서 자산 거품 경고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은 섣부르고 위험한 행위라고 그는 지적했다.

 
  ■거품 붕괴론 제기 배경은? 이런 위험성을 모르지 않을 정부가 거품 붕괴론을 퍼뜨리는 배경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해석은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위기 예방설’이다. 정부가 시장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피해 예방에 나섰다는 것이다. 윤호중 열린우리당 의원은 “정부는 3·30 후속 입법이 마무리되고 6월에 보유세 등 과세 영향권에 드는 만큼 5월 정도면 부동산 매물이 나오고 집값이 하락세에 접어들 것으로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5월 초가 되었는데도 집값이 꺾이지 않고 상승세만 둔해졌다는 것이다.

연말 집값 폭락설이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버티고 버티던 개인들이 연말쯤 매물을 내놓게 되고, 이것이 한 시점에 몰려버리면 결국 가격 폭락, 거품 붕괴 사태로 이어질 것이라는 염려 때문에 경고음을 낸 것이라고 윤의원은 말했다.

8·31 부동산 정책 입안 당시 주무 국장이었던 서종대 건설교통부 건설선진화본부장 또한 최근 나타나고 있는 단기 유동성의 급감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주택담보대출금리가 최저 4%대에서 6%대로 상승하는 중이고,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상자는 여기에 연 2.5% 정도 추가 금리 부담 효과를 안게 되는 만큼 고금리 및 유동성 감소로 인한 부동산 거품 붕괴가 예상보다 더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위협을 과장하고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 동기에 따라 해석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심리전용(用) 전술설’이다. 우윤석 교수는 “주택 시장은 주식 시장과 마찬가지로 심리적 요인이 많이 작용한다. 정부가 투기 세력에 맞서 심리적 기선을 제압하려는 정책 의도가 엿보인다”라고 평했다.

박재룡 수석연구원은 “정부가 나름의 정책적 확신을 갖고 시장 안정을 위해 당연한 노력을 하는 것으로 본다. 이를 위해 시장을 달래고 또는 호통치면서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려는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정부가 이른바 ‘당근과 채찍’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박상언 대표는 여기에 5·31 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가 작용한 듯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달리 ‘책임 회피설’도 제기된다. 앞서 익명을 요구한 국책 연구소 연구원은 “온갖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는데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니 정부 당국이 답답한 마음에 한마디로 ‘오버’하는 것이다”라고 폄하했다.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장은 “잘못된 부동산 정보로 3년간 대통령을 속여온 경제 관료들이 시장에 별다른 변화가 없자 자신들의 잘못이 발각될까 두려워 실체도 분명치 않은 버블 세븐 지역 주민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공범이라 할 정부·여당과 청와대 참모까지 합세했다는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잘못된 정보의 핵심은 집값 상승이 버블 세븐 등에 국한된 국지적 현상이 아니라 전국적 현상이라는 것이다(상자 기사 참조).

  ■앞으로 집값 전망은? 거품 붕괴까지는 아니더라도 집값이 조정 국면을 거칠 것이라는 데는 전문가 대다수가 동의했다. 서춘수 신한은행 팀장은 “하늘 끝까지 자라는 나무는 없다”라며, 집값이 거의 꼭짓점 가까이 이른 만큼 신규 진입자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부동산 시장이 1990년대 말 거품 붕괴 직전의 코스닥 시장과 유사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조정 국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김찬호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집값이 장기적으로 하향 안정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 버블 세븐 지역 내에서도 낙차가 있어 강남 지역은 집값이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안명숙 우리은행 팀장은 정부가 앞으로 5년간 강남권 아파트 보급률을 40% 가량 늘릴 것이라고 하나 만성적인 수급 불균형 때문에 이 지역 집값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안팀장은 2기 신도시 입주가 완료되는 2010년께나 이같은 현상이 해소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주택 시장이 당분간 관망세를 유지하다 하반기 들어 다시 꿈틀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박상언 대표는 부동산 시장에도 ‘월드컵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2002년 월드컵 기간 잠잠하던 시장이 7월 들어 들썩이면서 8·19, 9·5 부동산 대책을 불러들인 전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이 시기 판교 중·대형 분양(8월)까지 겹쳐 있다.

 
새 지방자치단체장 선출도 변수이다. 서울의 경우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나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 둘 중 누가 되더라도 재건축 규제가 완화되고 각종 개발 붐이 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해 있다고 서춘수 팀장은 말했다. 오후보는 “강남 집값을 잡겠다고 개발 이익 환수로 가면 강북 재건축도 위축된다”라며 재건축 정책에 변화를 줄 것임을 시사했다. 강금실 후보는 “개발 이익 환수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라면서도 강남권의 저항을 감안해 강·남북 종합 발전 계획을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상황이니 누가 매물을 내놓으려 하겠느냐고 서팀장은 말했다.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노무현 정부의 위상이 다시 한번 손상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전강수 교수는 “부동산 투기는 끝났다”(8·31 대책 발표시) 같은 ‘과도한 발언’이 정부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음을 상기시켰다. 더 본질적인 것은 부동산 정책의 내용이 되어야 하는데, 거품 붕괴론 같은 곁가지로 정책에 대한 신뢰를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2~3년 내에 10·29 대책 이전 수준으로 집값을 회복시킬 것이다”라고 건교부와 재경부가 밝힌 로드맵에 대해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강수 교수는 정부가 왜 집값을 기준 삼아 정책 목표를 밝히는 무리수를 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집값은 정책이나 의지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정책 당국자가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라는 것이다.

박재룡 수석연구원은 “10·29 이전으로 집값이 돌아갈 수 있을지 현실성은 차치하고라도 10.29라는 수준이 왜 생겼는지, 과연 10·29 이전 수준이 적정 주택가라고 판단하는 것인지, 그렇게 판단한다면 어떤 정책 수단을 통해 3년 이내 정책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인지 명쾌한 설명이 없다”라고 비판했다. 

안명숙 우리은행 팀장은 “10·29 수준 이전이라면 버블 세븐 지역의 경우 현재보다 집값이 20~30% 떨어져야 한다는 얘긴데, 외환위기 직후에도 집값이 그 정도까지 떨어지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더욱이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집값이 떨어진다면 몰라도 단기간에 이 정도로 집값이 폭락한다면 복합 불황이 엄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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