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부패’를 해부한다
  • 김동선 편집위원 서명숙·정기수·김 당 기자 ()
  • 승인 1989.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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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아무리 썩어도 ‘깨끗함’으로 사회건강을 지켜야 할 고등전문업-종교·학문·교육·언론·법조·의료계의 오염도를 측정한다.

 한국 憲政史를 되돌아보면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5·16이후에 조사·처리된 자유당정권의 부패는 ‘부정축재’, 朴正熙정권의 부패는 ‘권력형부패’, 全斗煥정권의 부패는 ‘5공非理’라는 용어를 낳으며 국민의 분노와 빈축을 샀다.

 이렇듯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 내부와 그 주변의 치부가 드러나자 국민들도 이제는 ‘으레 그러려니’하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대 정권이 독재로 일관되었기 때문에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명제를 역사적 체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마르코스가 해외에 엄청난 재산을 빼돌려 놓았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우리 국민들은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교훈까지 얻었다.

 개발도상국가에서 권력의 부패는 관리·軍뿐만 아니라 국가의 모든 조직을 부패로 얼룩지게 한다. 그 부패현상은 ‘권력의 핵’에 가까운 위치에 있을수록 더욱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패란 과연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부패란 不正에 물질적인 이익이 동반된 개념이며, 한 사회에 구조적으로 만연된 현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유형별로 보면 권력부패·경제부패·인사부패로 나누어볼 수 있다.

 《시사저널》이 ‘한국형 부패’라고 개념 규정을 내리고 이 특집을 꾸민 것은 권력의 썩은 물이 온 사회에 흘러내려 넘치더라도 절대로 썩어서는 안될 분야, 이를테면 종교계·학계·교육계·언론계·법조계·의료계 등마저도 부패에 오염되고 있는 것은 다분히 ‘한국적’현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분야에서 종사하는 이들까지 부패로 얼룩져 있다면 우리 사회의 건강은 위험상태에 빠져 있다고 단언할 수 있고, 또 그것을 치유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 국민들의 절반 가량이 종교를 갖고 있다. 이중 개신교 신자는 1천만명에 이르며, 천주교 신자는 2백46만, 불교신도는 1천만명에 달한다. 특히 70년대말부터 개신교와 천주교 신자는 놀라울 정도로 증가했다. 그 증가요인이 급속한 사회변화에 따른 불안감 때문인지 또는 ‘祈福’심리의 만연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종교는 국민생활의 주요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가 ‘소금과 빛’ 역할을 한다면 우리사회는 건강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종교인들은 ‘소금과 빛’이기는 커녕 사회의 지탄을 받은 지 오래됐으며, 심지어 종교 지도자들에 속하는 인사들까지 국민들의 경멸을 사왔다.

 우리는 이 특집에서 불교계는 전통사찰보호법에 의해 사실상 관권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自淨’될 수 없다고 판단되므로 제외시켰다. 일제 때 승려들의 저항을 막고, 불교계를 총독부에 예속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寺刹令’은 5·16 후 ‘불교재산관리법’이라고 이름이 바뀌었지만, 내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불교재산을 불교인 스스로 관리·보호할 수 없게 함으로써 宗權은 관권에 놀아났고, 이 와중에서 종권 다툼에 폭력까지 난무하는 사태가 끊임없이 발생했던 것이다. 6共에 들어와 ‘불재법’이 전통사찰보호법‘으로 개정됐지만 불교재산을 관에서 관리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말하자면 불교계는 현재도 구조적으로 종교 본연의 자세를 확립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천주교는 조직체계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부들은 부양가족이 없으므로 부패의 소지가 적기 때문에 취재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그러나 이 혼탁한 사회에서 모든 천주교 성직자라해서 반드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도 있다. 그리고 “無錢有罪 有錢無罪“라는 말이 부패의 심각성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지만, 법조계의 판·검사는 우선 공무원이므로 취재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기획의 궁극적인 취지는 諸분야의 부패현상을 폭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난 세월 ‘개발독재’에서 비롯된 비인간화 현상을 극복하고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찾기 위한 것임을 밝혀둔다.

 

종교계

牧者와 낙타바늘 구멍

 지난 8월 서울 오류동00교회의 ㅅ목사는 미아리 XX교회 부흥회의 부흥강사로 초빙되어 설교를 하고 관례대로 사례비 봉투를 받았다. ㅅ목사는 봉투가 두툼하여 얼핏 ‘천원짜리가 들어있는 봉투이겠지’하고 생각하며 그것을 호주머니에 넣고 집에 돌아왔다. 요즘은 생활수준이 향상되어 현금 최저단위가 천원짜리이기 때문에 ㅅ목사는 천원짜리 헌금봉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봉투를 뜯어보니 놀랍게도 만원짜리 지폐가 1백50장을 받은 것이다. 설교 1회에 1백50만원을 받은 것이다. ㅅ목사는 뭐가 잘못된 것 같아 그 교회로 전화를 걸었다. “아니, 내가 뭘 했길래 사례비를 그렇게 많이 줍니까?” 이 전화에 그쪽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목사님, 혹시 사례비가 적기 때문에 전화하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도 많아서….”

 그러자 그쪽 목사는 “아, 그건 우리교회의 평균 사례비입니다” 라고 말하고서 재차 “사례비가 적기 때문에 전화하신 것 아니냐”고 확인하더라는 것이다. ㅅ목사는 그쪽 반응에 다시 놀라 “천만의 말씀입니다” 라고 말하며 끊었는데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아내에게 농담조로 “나도 아예 이 길로 나서?” 라고 말했다.

 부흥회에 초빙된 강사료가 1백50만원…. 몰라둔 일이지만 현재 부흥강사로 1년에 1억 이상소득을 올리고 있는 목사가 상당수 있다고 어느 장로는 주장한다. 부흥강사로 초빙되어 받는 사례비는 최저 50만원, 최고 2백만원 현재 ‘시세’인데 이것은 목사들의 ‘과외수입’이다.

 ㅅ목사는 농담조로 “이 길로 나서?”라고 한 말은 만일 부흥강사로 본격적으로 발벗고 나서기만 하면 엄청난 과외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현실을 개탄하는 목사여서 기도 끝에 재물에 대한 욕심을 뿌리칠 수 있었다.

 

祈福的 헌금이 목사 유혹

 현재 서울에서 신도 5백명쯤 거느리는 교회의 목사는 중상류층 생활을 하고 있다. 신도들의 생활수준 향상과 비례, 교회재정도 좋아졌기 때문인데, 목사들의 소득면세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고액소득자’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목사들은 교회에서 받는 월급(사례비라고 한다) 이외에 주택유지비, 자녀교육비, 도서구입비, 수양회비(휴가비), 2백~4백%의 상여금, 차량유지비 등을 받는다. 여기에 판공비도 있고, 앞에서와 같은 과외소득도 많기 때문에 월급을 1백만원 받는 목사도 실제로는 엄청난 고액소득자일 수 있다.

 과외소득으로는 타교회의 헌신예배 또는 장로나 목사 장립식·위임식에 가서 순서 맡을 때의 사례비, 심방가서 받는 감사헌금과 거마비, 특별기도(누가 아플 때) 사례비 등도 무시할 수 없는 액수이다. 이중 특별기도 사례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득에 대해 세금 한푼 안내고 있다. 교회는 비영리단체이고, 목사는 비영리단체에 종사하는 종교인이기 때문에 개인소득에 대해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를 부패시키고, 나아가서 목사들을 타락시킨 요인은 신도수 급증(현재 1천만명추산)과 신도들의 祈福的 헌금자세, 여기에 교회재정관리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나오고 있다. 헌금에는 기본적인 ‘주일헌금’이외에도 수입의 10분의1을 내는 십일조헌금·감사헌금·목적헌금(교회건축비 같은 것) 등이 있는데, 이중에서도 감사헌금이 ‘符籍같은 주술적 헌금’이라고 비판받고 있다.

 이 감사헌금에는 취직갈망, 병자치유, 승진, 합격, 새집 마련, 자동차 구입 등에 대한 것까지도 포함되어 있는데 지난달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어느 교회 주보에는 ‘부부금실’감사헌금이라는 것도 기록돼 있었다. 부부갈등을 해소해달라는 기도 끝에 ‘금실’이 좋아지니까 ‘부부금실 감사헌금’을 냈다는 얘기이다.

 

‘수입 좋은 牧師’되기 위해 뒷거래도

 교회 재정관리는 각 교회 재정위원회에서 맡는다. 헌금 수납, 예산편성·집행을 이 위원회에서 하고 ‘당회’의 의견을 거친 뒤 집사로 구성된 ‘재직회’의 추인을 받는다. 그러나 대체로 이 절차는 무시되고 있고 목사의 의사대로 집행되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재정관리에 대한 외부기관의 감사도 없기 때문에 목사가 한번 한눈을 팔게 되면 ‘죄악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외겠지만 목사가 살인도 하고, 부동산 사기도 하고, 교회를 매도하며 권리금까지 받는 현상이 나오고 있다. 기독교계 주간지에 다음과 같은 교회매도 광고도 있었다. “교회 개척하실 분. 교회 타장소 이전으로 급매. 의자, 강대상, 앰프시설 완비. 현교인50명, 반경 1,500m이내에 다른 교회 없음. ”한마디로 목이 좋다고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은 교육구청의 감독·장학지도도 받지 않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얘기도 있고, 목사 수입이 좋다 보니까 목사·講道師 고시에 뒷거래가 많다는 소문도 있다. 한 신학교수는 “예전에는 가진자들은 목사 앞에서 부끄러워했고, 없는자들은 목사를 보며 위안과 소망을 가졌으니 지금은 위화감을 느낀다”고 개탄하며, “만일 소돔과 고모라처럼 이 도시를 심판하면 제일 먼저 교회부터 시작할 것이다”는 극언까지 했다.

 그러나 韓景職목사처럼 스스로 세무서에 소득신고를 하는 목사도 많으며 ‘하느님 말씀’을 지키는 목사들이 더 많은 것은 물론이다.

 

 

학계

신종 채권입찰 敎授분양?

 몇 달전의 일이다. 조선대의 李敦明총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그 대학의 교수였던 사람에게 폭행을 당해 크게 부상을 입었다. 그때의 보도에 따르면 李총장을 폭행한 吳××씨는 이미 지난 81년에 학력위조 문제로 朴哲雄 前총장에 의해 파면된 인물로, 애꿎은 새총장에게 행패를 부린 것. 흔히 그런 사건이 터지면 “교수가 그럴 수가”하는 ‘여론’이 일게 마련이지만 교수도 사람일진대 밥줄이 걸린 문제에서 ‘법보다 가까운 주먹’을 썼다 해서 특별히 놀랄 것은 없겠다. 오히려 그 폭행사건의 배경을 들여다보면 정작 중요한 문제는 다른 데에 있는 듯하다.

 문제의 그 ‘해직’교수는 고등학교 2년 중퇴학력을 위조해 조선대에 편입학했고 졸업후에는 다시 학위까지 돈으로 사 마침내 조선대 공대에서 교수를 했다는 것이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나 그것이 사실이고 보면 실로 어처구니없다. 학위는 어떻게 땄으며, 어떤 과정을 밟아 교수로 임용됐으며, 그 실력으로 강의는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다른 대학에는 또다른 吳씨가 없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줄’과 ‘돈’에 코꿰인 제자들

 학문에 뜻을 둔 대학원 졸업자가 밟는 수순은 대체로 시간강사,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 명예교수까지. 그러나 시간강사와 전임강사의 차이는 보수나 대우면에서 학생과 교수의 차이와 진배없다. 전임이 돼야 비로소 교수 대접도 받고 큰 잘못이 없는 한 정년까지 이어지는 게 사회적 통념이다. 그러니 시간강사들은 전임자리에 목을 맬 수밖에 없고 수요는 한정되어 있는데 공급이 넘치지 온갖 편법과 비리가 끼어들 소지가 많다.

 교수 임용과 관련된 비리 유형이나 자리값은 말 그대로 천태만상이다. 국립이냐 사립이냐에 따라 다르고, 사립이라면 학과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 그러나 가닥을 추리면 대개 국립은 학연(출신고와 대학을 잊는 줄)이 우선이고 사립은 뭐니뭐니해도 돈이 우선이되 액수는 앞에서 말한 대로 대학과 학과에 따라 크게 차이진다. 당연히 줄과 돈을 다 갖추면 가장 든든할밖에. 물론 실력까지 갖춘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임용된 뒤라면 몰라도, 임용 전에는 ‘실력은 뒷전’이다.

 전임자리와 돈이 거래를 맺는 형태도 천차만별이다. ㅇ대학 출신으로 최근 미국에서 박사를 딴 ㄱ씨는 국내 학계에서 안면도 넓히고 자리도 알아볼 겸해서 귀국을 했는데 전혀 줄이 안닿는 경우 몇억씩 써야 한다는 말을 듣고 “억” 소리를 지르고 다시 물건너가버렸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에서는 ‘믿었던’사람이 3억을 쓰고도 떨어졌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보다 더 많이 써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했더라는 것.

 예외 중의 예외겠지만 이쯤 되면 아파트 채권입찰제 방식이 도입된 셈이다. 명문으로 알려진 또다른 ㅇ대학에서는 일단 뽑아놓고 “학교재정이 어려우니 돈 좀 내놓으라”는 수법을 쓴다. 밑도끝도없는 이야기지만 명색이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말이니 믿을 수밖에. 먹은 놈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고 그 자리에 이미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야 점잖게 “돈이야 부수적인 역할만 했을 뿐”이라고 시치미를 떼기 십상이다. 그러니 줄(또는 빽)도 없고 돈도 없는 대학원 졸업자들이 교수(전임)가 되려고 겪는 고생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특히 국·사립 가릴 것 없이 가장 좋은 방책은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 쉽게 말해 돈 대신에 몸으로 때우는 것이다. 모시고 있는 교수 집안일이라면 관혼상제에서부터 하다못해 사모님 생일까지 훤히 꿰고 있어야 한다. 말이 좋아 도제식 교육이지 전수하는 것은 학문이나 기술이 아니라 고작 약삭빠른 인간관계뿐이다. ㅁ대학에서 ‘보따리장사“를 5년 남짓 하다가 현재 ㅇ대학 영어과 전임으로 있는 ㄱ교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게 수입이 빤한 시간강사들에게 돈을 쓰게 하는 현실“이라고 개탄한다. 학과에서 술판이라도 벌어지면 으레 술값은 교수들 제치고 강사들이 독차지하는 작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게 어니 술값뿐이랴만 특히 그 학교에서 박사과정이라도 밟고 있는 시간강사들에게는 현실이 더 고달플 수밖에. 전임자리에다 논문통과까지 겹쳐,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코 꿰인 제자들‘은 훨씬 더 스승의 눈치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박사논문까지 주문생산

 우리나라 박사 수요는 현재 줄잡아 2만명쯤. 해마다 천명이 넘는 박사들이 생산된다. 아직도 박사는 ‘외교적 차원’에서 주고받는 경향이 짙다. 곧 논문의 학술적 가치보다 논문 지도교수와 학생 사이의 인간관계에 의해서 정해지는 수가 많다. 박사과정에 있는 사람은 실제로는 거개가 교수이거나 시간강사이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치고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하는 이른바 ‘풀 타임 스튜던트’는 극히 드물다. 그러니 좋은 학위 논문이 나올 리 없다. “대학이 썩은 지는 이미 오래입니다. 말이 좋아 상아탑이지 일반기업들보다 더 썩었습니다. 대기업 욕하지만 그래도 기업에서는 인사관리를 엄격히 하기 때문에 적어도 일정한 수준까지는, 예를 들어 부장까지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올라가는데 오히려 대학(교수)사회는 그렇질 못합니다.”

 3년째 시간강사로 있는 전국대학강사협의회의 한 임원 말이다. 그렇지만 이 말을 두고 전임이 아니라서 과정해서 내뱉은 허튼소리라고 반박할 교수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교육계

찌드는 교육, 살찌는 재단

 지난 70년대까지만 해도 학원부조리는 특정대학의 전유물쯤으로 간주되었다. 흔히 학원부조리의 원조라고 불리는 서울의 몇몇 대학 그리고 지방의 ㅈ대 같은 몇몇 대학에만 한정된 문제였다. 그때만 해도 학사관리는 학교 재량에 달려있던 때라 이들 몇몇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올 때에 부정으로 편·입학시키면서 돈을 거둬들였을 뿐만 아니라 나갈 때에도 총·학장들이 마음대로 돈을 받고 학사증을 발급하여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문교부에서 직접 학사관리를 하려고 뽑은 칼이 예비고사제도이다. 다시 말해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예시를 합격한 사람만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고, 또 그 학생들에 한해서만 졸업할 때 문교부에서 학사증 발급을 인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자 ‘판로’가 원천봉쇄된 이들 대학에서는 편법을 썼다. 군입대나 다른 사유로 대학을 떠나거나 잠깐 비운 학생들 자리를 부정 편·입 학생들로 채우는 수법이 그것이다. 지금은 예시가 학력고사로 바뀌었지만 그때만 해도 몇몇 사립대학 때문에 예시가 생겼다는 말이 돌 만큼 부정 편·입학이 주종을 이룬 학원보조리는 이들 특정 대학들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채용기부금 본전 뽑자니…

 그러던 것이 80년대에 들어서는 학원부조리가 모든 교육활동(과정)에서 거의 무차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에 큰 홍역을 치른 고려대 부정입학 사건에서 보든 대학의 일류, 이류를 가리지 않을 뿐더러 대학에서 유치원에 이르기까지 학원의 높낮이를 가리지 않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지난해의 중·고등학교 교사기부금 반환 사태에서 보듯 일단 학원에 들어가려면 학생·선생을 가리지 않고 비싼 ‘입장료’를 물어야 할 만큼 학교는 썩어버렸다.

 지난해 8월 광주진흥중 교사 유양식씨는 동료교사 10명과 함께 ‘양심회복선언’을 한 뒤에 교사로 채용되면서 낸 기부금을 반환하라고 재단쪽에 요구해 몇년전부터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던 교사들의 기부금 조건부 채용 실태를 폭로했다. 그 학교에서는 3년동안 교사 11명을 채용하면서 “야구공을 사려는데 얼마쯤 내겠느냐”는 식으로 교사 한명마다 적게는 2백10만원부터 많으면 6백만원까지 모두 4천8백만원을 거둬들였다. ‘공값’치고는 턱없이 많은 그 돈으로 야구공을 몇개나 샀는지는 모를 일이나 유양식씨 사건 이후 교사들의 기부금 반환 요구가 광주·전남으로 확산되더니 마침내 서울을 비롯한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전교조 집계에 따르면 광주·전남에서만도 26개교 교사 3백42명으로부터 15억9천5백만원을 거둬들였다. 한 학교에 6천1백35만원, 교사 한사람당 4백66만원꼴이다. ‘양심회복’이란 용어에서 나타나듯 교사 스스로 부정에 가담한 책임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사학을 돈벌이 수단으로 간주하는, ‘교직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한 현실을 재단쪽이 교묘히 이용한 결과로 빚어진 교육현실이다.

 국·공립으로 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교사들의 전보에는 급지별 공정가격이 정해져있고 승진에는 ‘장 5 감3’이란 불문율이 있다는 말이 있다. 만일 교감이 되는 데 3천만원을, 교장이 되는 데 5천만원을 써야 한다면 그 엄청난 돈을 갖다 바치고서야 교감·교장이 된 사람은 앉자마자 어떤 방법으로든 본전을 뽑으려 달겨들 것이다.

 그 돈을 결국 학부모들의 지갑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선생들에게 내미는 돈봉투도 따지고보면 그런 구조에서 발생한 것이란 지적도 있다. 오로지 제 주머니를 채우려고 스스로 손을 벌리는 교사들도 드물지 않지만 재단에서 교장-교감-교사로 이어지는 상납체계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일부 고등학교에서는 교장이 손수 학급당 1년에 수백만원씩 할당량을 책정하여 수금을 강요하기도 한다.

 

새로 차린 식단, 寄與입학제

 대학으로 가면 큰 학교답게 돈의 액수가 커질뿐 아니라 돈을 받는 수법도 한결 교묘해진다. 사학비리의 대표적 형태인 부정입학 사례를 보더라도 교직원 자녀에게 점수 얹어주기, 답안지 바꿔치기, 컴퓨터 프로그램 조작 따위의 치밀한 수법을 쓰기 때문에 학교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여간해서 알 수가 없다. 사례를 들어보자.

 ○○대의 경우, 작년과 올해 사이에 교직원 자녀에게 가산점을 부여하여 ‘특혜입학’시켰다. “사립학교에서 교직원 자녀에게 특혜를 주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엄밀히 말해 그것은 특혜가 아니다. 거기에 거액의 돈이 오갔기에 명백한 부정이다. 게다가 어차피 많은 학생에게서 돈을 거두면 그만큼 말썽이 일 소지가 큰데 내부사정을 잘 아는 교직원이라면 그만큼 비밀이 새나갈 위험도 줄 것이란 점에서 더 지능적인 범죄일 수도 있다. 전주우석대에서는 지난 2년새 자그마치 2백23명에게서 어림잡아 두당 천만원씩 셈해서 23억7천3백만원을 챙겼다. 돈도 돈이지만 이쯤 되면 진짜와 가짜가 ‘물반 고기반’일 터이니 학생들조차 헛갈릴 수밖에 없겠다.

 올해 부정입학 사건의 대미를 장식한 동국대의 경우, 45명한테서 19억8천만원을 받았다. 머릿수당 4천4백만원꼴이다. 李智冠총장이 관계자들과 함께 정했다는 ‘공정가격’은 의대는 적어도 1억원, 경상대학과 인기학과는 4천만~5천만원, 그밖의 학과는 3천만원이다. 물론 명목은 기부금인데 다른 대학에서도 가격은 대개 엇비슷하다.

 동국대 사건을 계기로 대학에서는 차제에 기부금 입학제에 식상한 국민들에게 ‘금’자를 빼고 듣기에도 그럴듯한 ‘기여’입학제라는 식단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학교는 가난하고 재단만 살찌는 사학 풍토가 먼저 사라지지 않는 한 국민들이 그 새로 차린 밥상을 얼른 받지는 않을듯싶다. 학교는 돈 많은 사람이 돈을 쓰는 곳이지 치부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장삿속으로 ‘끼어들 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계

寸志에 무너지는 記者정신

 86년 7월16일 오전 11시쯤, 서울 서소문의 대검찰청 공안부장실. 이날 오후 인천지검에서 발표될 ‘부천서 성고문사건’ 수사결과 관련취재를 위해 각 언론사 사회부 법조출입기자 20여명이 좁은 방안에 몰려와 있었다. 기자들의 질문과 전화송고로 주위가 한참 소란할 즈음 과천에 청사가 있는 법무부의 ㅇ대변인이 급한 모습으로 들어왔다.

 그는 곧바로 ㅊ공안부장에게 다가와 무엇인가 귀엣말을 나눈 뒤 두툼한 서류봉투 1개를 건넸다. ㅊ부장 바로 앞에 앉아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출입기자단 간사(대표) 2명이 ‘감’을 잡았다는 듯 “무슨 일이냐”라고 ㅇ대변인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는 빙긋 웃으며 목소리를 낮춰 “이번엔 좀 많습니다”라고 대답한 뒤 “지방판 마감 전에 각사를 다 돌려면 시간이 없다”며 황망히 자리를 떴다.

 이날 각 신문과 방송들은 일제히 “검찰 性적 모욕 없었다”라는 제목으로 당국의 수사결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로부터 3일후 법조출입기자들은 봉투 하나씩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각사별로 공히 1진(수석기자)은 큰것 한장, 2진(중참)과 3진(신참)은 작은 것 4장씩이었다. 이때를 전후하여 각 언론사의 사회부장 이상 관계간부들은 문공부 고위관리의 ‘인솔’아래 ‘간담회’ 명목으로 부산·도고온천 등으로 놀러가 이 사건 보도에 대한 협조의 대가로 향응을 받았음은 물론 거액의 寸志까지 챙겼다.

 

타성에 젖은 언론인 74.3%

 이상은 어느 日刊紙 보도를 인용한 것으로, 그나마 밝혀진 것 중 가장 수치스러운 5공치하 權·言유착의 대표적 사례의 하나이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가. 불행한 일이나 “극히 일부 언론(인)을 제외하고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 현직언론인들의 말이다. 한국언론연구원이 지난9월초 연세대 사회과학연구소에 의뢰, 전국의 일간신문·방송사 언론인 7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2.6%가 “촌지가 수수되고 있다”고 밝힘으로써 사회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더욱 놀라운 결과는 촌지를 “경우에 따라서는 받을 수도 있다”고 응답, 이미 타성에 젖어 촌지의 비윤리성을 아예 생각도 않는 언론인이 74.3%나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촌지가 “인사성 정도에 머물고 기사쓰는 데 영향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먹고 쓰는’ 기사이고 보면 정확한 사실보도와는 뭔가 달라도 다를 것임은 물어보나마나다. 이러한 현실을 알 리 없는 일반독자·시청자들은 이들이 말하는 소위 ‘공정보도’를 바로 오늘도 듣고 보면서 日善一悲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인을 부패케 하여 왜곡보도를 유도시킴으로써 결국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馴致의 마약’, 촌지. 거의 모든 정부기관의 출입처 기자단을 통해 그 ‘마약’은 정례적으로 지급되고 있다. 재벌급 기업체의 홍보실에서도 관련 중요부서의 데스크와 담당기자들에게 예방 차원의 ‘작은 뜻’은 역시 정례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정부에서 주는 돈은 각 부처 공보실, 국장실, 장·차관실의 예산에서 나가는 것으로 곧 국민의 세금이다. 기업체에서 나오는 돈 또한 ‘공금’임이 분명하고 적어도 의당 사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다.

 액수는 담당기자의 경우 대개 10만~20만원이 ‘기본단위’이며 기업체에서 주는 것일수록 뇌물·청탁의 성격을 띨수록 금액이 많아진다. 80년대초 어떤 재벌기업 홍보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어느 해직기자는 당시 회사방침에 따라 “주요 언론사 관련부장들에게 매월00만원 씩 꼬박꼬박 바쳤다.”고 복직 후 폭로, ‘수혜’ 당사자들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또 全斗煥씨가 퇴임 직후 연일 언론에 자신의 일가에 폭로기사가 잇따를 당시 일부 안면있는 기자들을 연희동 집으로 초총, 자제 해달라며 그의 스케일답게 “거액의 촌지를 각각·집어줬다”는 얘기가 흘러나와 가자들마저 ‘까무라칠’만큼 화제가 됐던 일도 있다.

 

“촌지 받지 말자” 목소리 잠잠

 단당기자도 어느 출입처를 갖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인허가권이 많고 관련단체·대학·기관·기업체들이 많은 곳일수록 ‘단가’가 높아진다. 따라서 경제부는 출입처를 막론하고 모두 노른자위를 꼽힌다.

 사회부는 “夏보다 冬문교 사철내무”하는 말이 보여주듯 계절별로 돈이 ‘몰리는’ 차이는 있으나 경제부는 버금가는 ‘물 좋은’곳으로 통한다 정치부의 촌지는 6共 들어와 양상이 조금 바뀌었다 한다. 민정당의 경우 5共시절 출입기자들에게 교통비조로 월 20만원씩 일률적으로 지급하던 관행이 신생언론사 난립과 함께 사라지면서 대신 선별지급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직접 전하는 봉투 외에 권력이 ‘당근’으로 사용하고 있는 ‘유사촌지’도 많다. 가령 급여액이 많은 경우 10만원씩이나 소득세 감면을 받게 하는 기자들에 대한 당국의 갑근세 특혜, 출입처 기자에게 제공되는 비용을 계산하기 어려운 공짜해외유람 등등.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세금 제대로 내고 관폐나 민폐 끼치는 해외여행은 않겠다는 언론인은 극히 일부 언론사와 기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언론노조운동이 활성되면서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목소리만 잠시 높아졌다가 그나마 요즘은 잠잠해진 ‘自淨’운동‘은 결국 한걸음도 더 나가지 못한 상태라고 보아야 한다.

 

 

법조계

辯論과 재물의이중주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랬다는 말은 우리나라 속담이지만 변호사들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소중한 금언이기도 하다. 싸움을 말리면서 흥정은 붙여야 먹고 사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굳이 “싸움을 말리는 척한다”는 익살 섞인 표현을 쓴다. 조금 험하게 말하면 ‘해결사’의 역할과 다를 바 없는데 완력 대신에 정연한 법논리와 조리있는 말솜씨로 상대를 설득한다는 차이가 있다. 어찌 되었건 변호사들이 구문을 챙기려면 싸움이건 흥정이건 많을수록 좋다. 그래서 변호사와 의사는 ‘면허받은 도둑’이라는 속설도 있다.

 

돈을 건네는 징검다리?

 변호사 사무실 문턱을 한번이라도 밟아본 사람들은 대체로 변호사에 대한 불신감을 갖고 있다. 소송과 관련, 변호사의 조력을 얻어 가령 그 소송에서 이겼다라도 괜히 손해 본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그러니 돈을 쓰고도 손해 패소한 의뢰인은 더말할 나위도 없겠다. 구치소 변호인 접견실에서는 재판과 관련하여 변호인과 성깔있는 피고 의뢰인 사이에 멱살잡이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재판 전에는 막말로 돈으로 ‘쇼부’치던 관계가 재판 뒤 패소하거나 실형을 받을 경우 돈 대신 주먹이 오가는 관계로 돌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 거래가 “집행유예로 빼내려면 5백은 써야 판사에게 얼마, 아무개한테 얼마” 하는 식으로 오갔는데 재판 돼가는 꼴이 심상치 않을 때는 주먹다짐이기 십상이다. 이런 꼴을 보거나 겪은 사람들에게 변호사라는 직업은 돈을 건네주고 구문을 챙기는 브로커로 비칠 수밖에. 죄인(피고인) 주제에 법복을 입은 지엄한 판·검사께 섣불리 돈봉투를 들이밀 수 없는 노릇이고 보면 法界와俗界에 양다리를 걸친 변호사는 그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에 안성만춤인 셈이다.

 어느 변호사 사무실이건 수임요율표(보수기준표) 라는 게 있다. 복덕방으로 치면 복비 협정 가격표인 셈이다. 이는 지난 83년 대한변호사 협회(변협)에서 정한 ‘변호사 보수기준에 관한 규칙’에 근거한 것. 그 규칙은 지금도 유효할뿐더러 각 지방변호사회에서는 그 규칙의 범위 안에서 지역실정에 맞는 보수 기준표를 만들어 소속변호사들에게 돌려왔다. 그러나 그 규정대로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는 거의 없다. 해묵은 (그러나 그런 통계로서는 가장 최근의 것인) 통계이긴 한 변호사들 스스로도“ 협회에서 정한 변호사 보수기준대로 사건을 수임하고 있느냐“ 는 설문에 고작 15%만 ”그렇다“ 고 답할 뿐, 나머지 절대다수가 대강 참고할 뿐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한다(86년,〈변호사 의식 설문조사 결과분석〉)

 그러다 보니 “사건 의뢰인의 재산 정도에 따라 수임료도 달라진다”는 게 변호사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의뢰인의 행색에 따라 기준보다 더 받기도 덜 받기도 한다는 말이다. 이 경우 기준이 요율표 기준이 아니라 변호사 개개인의 자의적 기준임을 물론이다. 그야말로 呼價도 ‘自由로운 業이다. 이런 엿장수 마음대로식 영업행위는 부자들을 봉으로 삼아 法聿救助로써 활빈하는 의적 행세는 아니지만 이쯤은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대가로 누리는 ’특권‘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과다한 수임료를 요구하거나 약자의 등까지 치는 정도가 되면 문제가 심각하다.

 

“엄지·검지는 변호사몫”

 산재를 입은 노동자나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들과 임의계약을 맺고 폭리를 취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사건브로커를 고용하여 교통사고 전문병원이나 광산촌을 돌게 하면서 사고를 입은 사람들을 주고객으로 확보하는 이른바 ‘앰뷸런스 변호사’들은 거의 사라졌다지만 이들이 복잡한 까막눈인 것을 이용하여 수임료를 기준보다 곱절이 넘게 챙기는 사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산재를 입은 노동자들이 재판에 이기고도 실질적인 배상을 못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노동현장에서는 “손가락 다섯 개를 몽땅 잘려 보상받아도 엄지와 검지는 변호사몫, 중지와 약지는 의사몫이고 정작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새끼손가락값뿐이다”는 자조의 말도 들린다.

 사례를 들어보자. 金顯秀(20·서울 동대문 제기동) 씨는 제재소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걸어 지난달 법원으로부터 배상금 3천만원, 위자료 3백만원 지급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사건을 맡은 변호사가 피고쪽 변호사와 ‘항소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2천5백만원에 합의하는 통에 실수령은 수임료 7백30만원과 신체감정 의사 사례금 70만원을 뗀 1천7백만원. 법원의 지급판결 금액에서 절반만 건진 셈인데 그동안 변호사 대느라고 이리저리 쓴 잡비며 앞으로 2년 남짓 병원 신세를 지는 데 들 비용 5백만원을 빼고 나면 몸 망가진 대가로 받은 배상금은 그나마 당초 판결액의 3분의1도 안되는 천만원 안팎이다.

 국제인권옹호한국연맹 이종목 상임위원에 따르면 인권연맹으로 한달에 너댓건씩 접수되는 변호사비리 고발사건들 대개가 위와같은 유형들이다. 또 변호사들이 법률상담을 맡은 Y시민중계실에도 산재 피해자들이 입은 변호사 횡포 피해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접수되고 있는 형편이다. 한 중견변호사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전에 분쟁을 예방하거나 조정하려 들지 않고 꼭 사건이 터져야 비로소 변호사를 찾기 때문”에 변호사의 봉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미리미리 변호사를 찾으면 상담이나 조정 업무조로 푼돈을 치르면 될 것을 아끼다 보니 그렇다는 말이다. 또 변호사의 양적 증가가 질적 저하를 가져왔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젊은 변호사들의 시각은 다르다. 지난 3월에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개업한, 이른바 民辯 변호사들의 정미화씨는 “신뢰도가 떨어진 것은 변호사가 늘어나서가 아니고 과거의 잘못된 관행탓이며 오히려 직역확대로 사무실 문턱이 낮아지고 법률서비스 혜택이 느는 이점이 있다” 고 말한다. 실제로 80년대 중반부터는 ‘민변’ 같은 단체에 가입해 무료변론을 맡거나 일부러 공단 주변에 사무실을 차려 노동현장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들이 늘고 있는데 이들에게 거는 국민들의 기대는 매우 클 수밖에 없다.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법 제1조) 직업이기 때문이다.

 

 

의료계

속으로 병든 ‘의사선생님’

 회사원 林國振(34·인천시 부평동) 씨는 지금도 ‘병원촌지’만 생각하면 입맛이 쓰다. 지난 10월 중순 안과 수술로 정평이 나있는 강남 ㅅ병원에서 부인이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마로 수술 이틀 전 다른 환자 가족들의 ‘친절한’ 조언과 ‘무어라 딱히 꼬집을 수 없는 주변 분위기’에 눌려 강요당하는 느낌으로 20만원의 봉투를 ‘선생님께 드리고’ 만 것이다.

 비단 林씨뿐만 아니다. 요즈음 일부 대형 종합병원에서는 촌지가 아예 관례화되고 있으며, 그 액수도 고마움의 표시라 보아 넘기기엔 지나치게 커지고 있다. 심지어 병원에 따라서는 ‘청색증 수술에는 얼마’하는 식으로 한 베드(환자)당 가격이 공식적으로 매겨진 곳도 있다.

 70년대에 일부 대학병원에서 시작된 ‘특진’제가 이왕 대학병원을 찾은 이상 전문의에게 진찰을 받고 싶어하는 환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사실상 의료비를 올려놓더니 이제는 아예 한술 더떠서 몇십만원대의 촌지가 환자들의 어깨 위에 슬그머니 얹히고 만 것이다.

 

제약회사 뇌물, 한해에 2천억원

 그러나 환자들이 건네는 촌지는 제약회사들이 뿌리는 ‘뇌물’에 비하면 그 동기나 규모가 차라리 애교스러울 정도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89년 현재 3백55개의 제약회사들이 난립, 과당경쟁을 벌이면서 병원측에 ‘홍보’를 위해 한해에 무려 2천억원을 뿌린다. 쩨약 영업사원 金鎭模(31) 씨의 말마따나 “가장 큰 고객은 병원에 약을 들이미는 것이야말로 회사의 사활이 걸린 문제” 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제약회사들은 어떤 방법으로 ‘검은 돈’을 뿌리는 것일까? ㄱ대 부속병원 전문의 ㅎ씨는 “한마디로 모든 방법과 수단이 동원된다” 고 전제한 뒤 “신약 구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교수들은 개인적으로 상당한 사례금을 받기도 하지만, 임상연구비 지원 같은 간접적인 형채로 지원을 받기 때문에 크게 저항감을 느끼진 않는다”고 털어놓는다. 결국 제약회사는 약 팔아서 좋고 의사들은 기왕에 쓸 약인데 보조를 좀 받으면 어떠냐는 생각에서 ‘누이좋고 매부좋고’의 뒷거래가 생기는 것이다.

 이 뒷거래의 억울한 희생자는 다름아닌, 의사를 믿고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다. ㅅ대병원 노동조합의 한 노조원은 “제약회사의 뇌물은 고스란히 약값에 떠넘겨지고 있다”면서 “얼마  전부터 철저하게 공개입찰을 하기 시작한 강남성모병원이 다른 병원의 절반값으로 약을 구입하게 된 것”을 그 증거로 든다.

 일부 개인병원 의사들이 병원 수입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보험료 지불이 가장 확실한 ‘봉’인 교통사고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보험회사와 결탁하거나 과잉진료를 하는 일도 환자들이 의사들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대목이다.

 서울 동도택시 운전기사 김성현씨가 당한 경우는 병원측의 과잉진료를 말해주는 전형직인 사례이다. 그는 지나 83년 교통사고를 입고 ㄱ대 부속병원에 입원, 수술을 받은 뒤 1년반만에 퇴원을 했는데 청구된 진료비가 무려 9천만원에 이르렀던 것. 결국 5년에 걸친 법정소송 끝에 지난 7월 서울 미사지법으로부터 “병원측이 입원중인 환자에게 항생제와 아미노산 수액을 과다하게 청구했으므로 치료비 1천3백85만원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물론 ‘과잉진료’라는 것 자체가 상당한 의학적 판단을 요구하는데다 진정 사명감있는 의사들의 ‘신중한’ 진료일 가능성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지난 2월 의학협회가 회원 5백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한 의사들의 31.2%가 “과잉진료를 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영리추구 현실 속 ‘신뢰’ 저버려

 우리나라 의사들의 ‘공식적’인 수입은 상상외로 적다. 최근 국세청의 보도자료에는 전체 개업의사들의 월평균 소득이 1백20만원대로 신고된 것으로 나타나 비슷한 수준의 봉급쟁이들을 본노케 했다. 그러나 개업의들만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은 아니다. 중형 종합병원인 ㄷ병원의 曺모(36)의사는 병원으로부터 2백50만원의 봉급을 받고 있지만, 세금은 1백만원분만 내고 있다. 원장이 1백만원만 신고하고 나머지 1백50만원은 稅源이 포착되지 않는 기타수당 따위의 음성소득으로 봉급을 맞춰주기 때문이다.

 이런 의사 자리를 놓고 요즈음에는 ‘돈거래’ 이야기까지 공공연히 오가고 있다. 지난 80년부터 의과대학 졸업생 수가 한해에만도 3천여명으로 대폭 늘어나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대형종합병원에 취직하는 것은 물론 수련의 과정을 밟기조차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대학병원에 남으려면 빽이 있어야 한다” “강남 ㅅ병원, ㅂ병원의 인턴·레지던트는 최소 3천만원, 많으면 1억원까지 든다”는 이야기까지 나돌고 있다.

 전통적인 사회적 존경과 전문성을 인정받아온 의료인들. 그런데 바로 그 전문성을 ‘담보’로 환자들의 신뢰를 배반하는 부패가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사 金定範 (32)씨는 그 원인을 “가장 공식적인 성격을 띠어야 할 의료행위가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영리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젊은 의료인들의 조직적 움직임, 병원 민주화운동도 결국 영리 위주로 치닫는 현실 속에서 최소한 사회적 책임을 떠안으려는 몸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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