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투쟁 불씨 안은 江澤民체제 출범
  • 표완수 편집위원 ()
  • 승인 1989.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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鄧小平의 軍事委 주석 인계 배경과 中國의 앞날

현대 중국 實用主義의 대명사 鄧小平은 바로 그 실용주의적 방식을 통해 중국권력의 핵심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났다. 그는 11월9일 폐막된 중국공산당 제13기 5차중앙위원회 전체회의(5中全會)에서 자신이 지난 82년부터 맡아온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중도파 인물인 黨총서기 江澤民에게 넘겨줌으로써 공식적으로는 일단 중국군 최고 통수권자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로써 鄧의 후계자로 내정돼온 江澤民은 중국 권력의 양대 기둥이랄 수 있는 黨과 軍을 모두 장악하는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鄧의 뒤를 이어 명실상부하게 중국 최고의 지도자로 保·革갈등속의 중국대륙을 강력하게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인지 여부는 여러 가지 점에서 의문을 남기고 있다.

 鄧이 아직도 건재를 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일찌감치 江澤民에게 넘겨준 것은 江의 최고 지도자로서의 위치의 확고성 여부 및 중국의 향후 진로와 관련, 몇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첫째 鄧은 언제 다가올지 모를 자신의 有故에 미리 대비함으로써 권력의 진공상태에서 초래될 중국 권력내부의 급격한 혼란상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생각에서 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江澤民에게 넘겨준 게 분명하다. 올해 85세인 鄧은 아직도 수영을 즐기는 등 건강을 과시하고 있으나 중국 언론매체들의 보도대로 그의 건강상태가 지극히 양호한 것만은 아니다. 최근 들어 그가 수주일씩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이것과 무관치 않은 것이다.

 

정치는 보수. 경제는 개방·개혁 노선 

둘째 鄧은 현재 중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개혁파와 보수파의 격렬한 노선투쟁에서 일단 중도노선을 채택, 양쪽의 장점들을 모두 수용한다는 입장임을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保·革타협의 노선을 중국의 진로로 설정한 것이다. 실무형의 중도파 江澤民에게 黨權과 軍權을 모두 몰아준 데서 그런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또한 향후 중국은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의 틀을 유지하며 경제적으로는 개혁·개방의 노선을 신중하게 추구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보수·강경파로 알려진 국가주석 楊尙昆이 중앙군사위원회 제1부주석 자리를 겸임하게 된 것은 그의 보수주의의 입장을 더욱 강화시키는 발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정치적 보수주의의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경제적으로는 개방·개혁노석의 江澤民과 신중개혁파 李鵬총리의 노선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전반적으로 개방과 개혁노력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鄧小平이 설계한 위와같은 개혁파와 보수파 사이의 교묘한 세력균형 구도에도 불구하고 ‘江澤民체제’는 여전히 잠재적 불안요인을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鄧이 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江에게 넘겨줌으로써 일단 진정된 듯이 보이는 권력투쟁 가능성이 그것이다. 鄧이 모든 공직에서 사퇴했다고는 하나 그는 계속 중국의 최고 실력자로 남아 江의 배후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면서 ‘江澤民체제’ 정착에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자신이 죽기 전에 실무형 중도파 ‘江澤民체제’를 정착시켜 놓아야 한다는 강한 강박관념을 鄧은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패 가능성 안은 또하나의 실험

 그러나 중국문제 전문가들은 楊尙昆이 군사위원회 제1부주석을 겸직하고 그의 동생 楊白氷이 군사위원회 비서장직을 맡게 된 데 대해 우려를 나타낸다. 이 두자리를 확보함으로써 楊尙昆의 군부내에서의 위치는 더없이 강화됐다는 지적이다. 이 점을 감안한 듯 鄧小平은 자신의 사람인 劉華淸을 군사위원회 상무부주석으로 앉혀 江澤民을 보좌토록 함으로써 군사위 내에서도 세력균형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강경보수파의 목소리가 높은 오늘의중국에서 정치적 기반도, 군사적 배경도 없는 실무형 江澤民이 鄧小平의 후광만으로 최고 지도자로 자리를 굳힐수 있을 것인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군부내에서 楊尙昆의 입장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게 鄧小平 이후 중국 권력투쟁의 꺼지지 않는 불씨로 계속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문제 전문가들은 바로 이같은 이유들 때문에 군사위원회의 이번 인사를 두고 鄧小平이 실패의 확률이 높은 또 하나의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즉 鄧은 胡耀邦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아 黨총서기 자리에 앉혔다가 87년 1월 대학생들의 민주화시위의 속죄양으로 희생시킨데 이어, 제2의 후계자 趙紫陽 역시 학생시위로 실각케 하는 등 지금까지의 후계자 승계작업이 모두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현 체제존립의 전제조건이 되고 있는 鄧小平이 건강악화 등으로 유고상황에 처할 때 楊尙昆일파의 도전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들을 감안할 때 향후 ‘江澤民체제’의 중국이 나아갈 방향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즉 鄧小平의 후광아래 江澤民은 총리 李鵬과 함께 경제개방·개혁을 꾸준히 추진해나갈 것이다. 정치적 개혁은 유보되고 이념교육은 계속될 것이다.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후 鄧은 사망하고 보수파와 개혁파의 갈등이 권력투쟁의 양상으로 다시 표면화될 것이다. 江澤民이든 다른 인물이든 중도파를 간판으로 하는 집단지도체제로 갈등은 수렴될 것이다. 절대권력자는 다시 등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중국은 인민의 의사를 따라 경제개혁·개발을 계속 추진해나갈 것이다. 그게 세계사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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