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개혁의 발걸음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89.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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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聯 국내외 정책에 획기적인 변화…東歐 불간섭 거듭 천명, 아프간 派兵 잘못 시인도

 “만약 헝가리가 바르샤바조약 기구를 탈퇴하려 한다면 소련은 이를 반대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헝가리 국민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러한 변화를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헝가리가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 자유롭게 탈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이다. 그러나 당신이 알아두어야 할 것은 아직까지는 헝가리의 지도자들이 바르샤바조약기구에 남아있겠다고 선언한 점이다.”

 바로 몇년전만해도 소련의 고위 관리가 미국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여 이와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그는 아마 제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소련공산당 대변인 니콜라이 시슐린은 분명 그와같은 발언을, 그것도 미국 텔레비전 시청자들 앞에서 했다. 바로 지난 10월29일 ABC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에서였다.

 그는 여기서 그치치 않고 최근 동독의 불안정환 상황과 함께 눈길을 끌고 있는 소련의 對독일 정책에 대해서도 매우 대담한 발언을 했다. 즉 “동·서독의 再통일 가능성에 대해 소련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독일의 再통일 여부는 독일 국민이 선택할 문제이며, 소련은 이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소련의 이익을 저해하거나 유럽을 불안정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그의 발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담한 것이었다.

크렘린의 ‘시내트라 독트린’

 비슷한 시기에 겐나디 게라시모프 소련 외무부 대변인 역시 미국 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시슐린과 비슷한 발언을 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소련의 새로운 동유럽정책을 미국의 인기가수 프랭트 시내트라의 이름을 따 ‘시내트라 독트린’이라 명명, 미국의 시청자들에게 소련의 새로운 정책에 대한 명료한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프랭트 시내트라는 아주 인기있는 노래를 하나 불렀다. ‘마이 웨이(MY WAY)’가 그것이다. 지금 헝가리, 폴란드, 그리고 다른 모든 국가들은 이 노래처럼 자신들의 길을 가고 있다. 그들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한다. 그것은 그들의 길이다. 우리는 그것을 지켜보고 있고, 면밀히 관찰하고 있지만 간섭하지는 않는다.”

 동유럽의 엄청난 격변이 도리어 소련의 개입을 강화시키지 않을까 하며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미국 정책입안자들에게 소련 고위관리들의 일련의 발언은 매우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유럽정책에 대한 소련의 변화된 입장이 최근 두 소련관리의 발언에서 처음 공표된 것은 아니다. 이미 88년 고르바초프는 유고의 베오그라드에서 “모든 공산당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발전노선을 채택할 권리를 가지며 소련은 이에 개입하지 않는다” 고 선언했다. 당시 이 선언은 “사회주의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별 국가의 주권은 제한될 수 있다” 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폐기를 의미하여 소련의 새로운 정책전환을 시사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소련의 對동유럽정책이 다시 관심을 끄는 것은 최근 동유럽의 변화양상이 상상을 추월하는 면이 있고, 이를 고르바초프의 소련이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게 때문이다.

 

브레즈네프 정책에서 탈피 노력

 이에 대해 지난 10월23일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은 소련최고회의에서 새로운 상황을 맞는 소련의 대외정책에 대해 포괄적으로 입장을 밝힌 바 잇다. 셰바르드나제는 소련과 동유럽의 관계가 ‘주권평등, 간섭 불용, 선택의 절대적 자유인정’에 기초할 것임을 밝혀 소련의 기존 정책을 격렬한 상황변화에도 불구하고 틀림없이 견지해 나갈 것임을 밝혔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소련이 바르샤바조약기구와 나토동맹의 해체를 위해 서방측과 교섭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밝혀, 나토동맹의 해체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은 미국과 서유럽측을 곤란하게 했다. 또한 그는 작년에 고르바초프가 밝힌 소련병력 50만명 감축계획의 일환으로, 2000년까지 해외주둔 소련기지를 소련영내로 철수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셰바르드나제의 당시 연설에는 여태까지 소련의 대외정책에서 쟁점으로 제기됐던 문제들에 대한 획기적인 입장의 변화가 엿보여 눈길을 끌었다. 그중의 하나는 트라스노야르스트에 있는 소련의 레이다 기지가 72년 미국과 체결한 요격미사일(ABM) 제한규정을 위반한 것임을 시인한 것이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은 오랫동안 이 레이다 기지가 ABM조약을 위반한 것임을 주장해왔고, 미·소간의 군축협상에서도 이 문제는 늘 쟁점으로 거론됐다. 최근 몇 년 동안 크렘린 당국은 미국과 서방측의 계속적인 압력하에 거대한 이 기지의 가동을 중단시키겠다고 약속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기지가 ABM조약에 위배된 것임을 시인한 것은 셰바르드나제 발언이 최초라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79년 12월의 소련군의 아프간 파병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셰바르드나제는 당시 소련 지도부의 아프간 파병은 소련의 법률과 윤리에 위배되는 것이었다며 이를 격렬하게 비난했다. 아프간 파병결정이 소련 정치국에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그동안 간헐적으로 보도된 바 있지만, 소련 고위관리가 이를 소련의 볍률에 위배되는 행위였다고 공식적으로 언명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셰바르드나제 연설로 대변되는 최근 소련의 외교정책은 가깝게는 고르바초프의 ‘新思考외교’가 각개약진식으로 전진을 계속하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소련의 현지도부가 브레즈네프 시대의 유산을 철저히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브레즈네프시대의 소련의 대외정책은 평화공존노선과 함께 소련 군사력을 미국 군사력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군비증강 노선의 병행, ‘제한주권론’이라고도 불리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통해 동유럽 동맹국의 이탈을 방지한다는 것, 그리고 특히 70년대 중반 이후 제3세계에 대해 소련식 혁명모텔을 수출한다는 것 등으로 정리된다.

 따라서 최근 셰바르드나제의 외교정책 연설에서 동유럽 국가에 선택의 자유를 인정하고, 크라스노야르스트의 레이다 기지를 폐기하겠다고 선언한 점, 떠한 제3세계에 대한 혁명수출 노선의 가장 대표적 사례로 지적됐던 아프간 파병결정을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한 점 등은 새로운 소련의 대외정책이 각 영역별로 브레즈네프 시대의 외교정책을 철저히 극복하고자 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또하나의 10월혁명

 최근에 잇따라 보도되고 있는 소련 외교정책의 뚜렷한 변화양상에 대해 서방언론들은 이를 ‘또하나의 10월혁명’이라 부르며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소련에서는 대외정책상의 이러한 혁명적 자세 변화 못지않게 국내정책에 있어서도 구체제의 두터운 외투를 벗어던지기 위한 혁신적 조치들이 잇따라 취해져 ‘또하나의 10월혁명’이란 말이 단지 빈말이 아님을 실감케 한다.

 국내정책에서의 혁신적 조치 중 하나는 소련공식화폐 루블貨의 가치 현실화 조치를 들 수 있다. 그동안 루블貨위 실질가치가 액면가에 훨씬 못미친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었지만, 최근 크렘린의 가치 현실화 조치는 상당히 파격적인 데가 있다. 1루블의 액면가치를 1달러59센트에서 16센트로 과감하게 평가절하한 것이다. 서방의 경제전문가들은 이 조치를 소련경제를 통합시키려는 소련 지도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소련 권력체제의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공산당과 KGB(국가보안위원회)의 특권폐지 및 권한축소 움직임 등도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0월24일 소련의 입법기구인 최고회의는 이 기구의 母體격인 인민대표자회의에 선거를 거치지 않고 자동 할당되는 공산당과 여타 사회단체들의 의석을 폐지하는 개헌안을 통과 시켰다. 아직 금년말의 인민대표자회의의 결정 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만약 이 개헌안이 최종 확정된다면 공산당은 1백석 가량의 의석을 상실하게 된다. 또한 여태까지 공산당 중앙위의 직접 선출에 의해 당간부들이 자동적으로 인민대표자회의에 참석할 수 있던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앞으로는 설령 고르바초프라 하더라도 선거구민에 의해 선출되지 못하면 참석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KGB에도 부레즈네프 시대의 유산을 청산하기 위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70년대에 반체제 인사의감시, 작가들에 대한 탄압 등으로 악명높던 KGB 의장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는 이번 결정과 함께 “머리속의, 그리고 혼자만의 사상과 신념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범죄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선언, 사상의 영역에서도 민주화와 개방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1917년 레닌이 차르체제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사회주의공화국을 세운 것이 10월혁명이었다면, 이제 70여년이 넘게 굳어온 소련 사회주의의 구각을 깨고 새로운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다시 탄생하고자 하는 최근 소련의 변화과정은 분명 또하나의 10월혁명이라 불러도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페레스트로이카의 전진을 의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페레스트로이카야말로 진정한 혁명을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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