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노벨상받고 피곤해졌다”
  • (카이로= AP통신) ()
  • 승인 1989.11.2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8노벨문학상 수상자 마흐프즈의 지난 1년

8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나집 마흐프즈에게 지난 1년은 일생에서 가장 피곤한 한해였다. 노벨상이 그를 ‘어둠’(無名작가)으로부터 국제적인 ‘명성’(유명작가) 속으로 ‘집어넣었던’ 것이다.

 마흐프즈는 그래서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카밀로 호세 셀라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다. “스웨덴 한림원이 지난 10월19일 수상자를 발표하기 전까지 그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노벨상수상 이후에도 세상의 관심을 피할수록 좋을 것”이라고.

 노벨상수상 이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마흐프즈는 텔레비전 쇼, 인터뷰, 세미나 그리고 수상 축하연 등으로 쉴새없는 소용돌이에 말려들고 말았다. “노벨상수상과 관련된 회합으로 나는 지난 1년을 고스란히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어려운 일이었지요”라고 마흐프즈는 털어놓았다. 일흔여덟이란 고령에 건강마저 좋지 않은 그는 “난 늙었고, 언제나 내성적으로 살아왔어요. 어떤 곳에서든 내가 소개될 때면 당황하게 됩니다”라며 그동안의 고충이 심각했음을 강조했다.

 한차례 세인들의 시선을 받은 후 자신의 삶의 질서를 되돌려 받는 방법으로 마흐프즈는 거의 매일 만나는 그 지방사람들과 수많은 기자들을 1주일에 한번씩만 만나기로 결정했다.

 그런가하면 개인적인 일과들을 예전처럼 계속하려고 애썼다. 매일 아침 걸어서 샘나일강 다리를 건너 카이로의 번잡한 중심가로 들어가, 1시간 가량 단골커피숍에 앉아 설탕없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조간신문들을 읽는 따위였다.

 어느날 아침 카페 알리바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노벨상이 가져다 준 생활의 변화에 관해 잡담을 나누다가, 마흐프즈는 무심결에 자신의 후계자 비슷한 사람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고 말았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올해 일흔셋된 스페인작가 셀라였다.

 “불행하게도 그의 작품은 아직 아랍어로 번역되지 않았어요. 그러나 나는 새로운 작가로서 그를 알게 돼 기쁩니다. 그의 작품이 번역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라고 마흐프즈는 말했다.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 지난 12개월 동안 마흐프즈의 많은 작품들이 세계 각국에서 번역되었고(최근 미국에서만 4작품) 적지 않은 수의 작품들이 다시 발간되고 있다.

 마흐프즈의 책 판매량은 계속 늘고 있으며 그가 받은 상금 39만달러는 4등분해, 그의 아내, 그의 두딸 파트마와 칼툼 그리고 자신이 나눠 가졌다. 자신의 몫은 알 아람에 잇는 자선기관과 그가 수년 동안 일하고 있는 〈카이로신문〉에 기부했다.

 시력과 청력이 떨어지는데다 당뇨병 때문에 여행을 하지 못하는 마흐프즈는 그의 딸들을 스톡홀름으로 보내 스웨덴국왕 칼 구스타브 16세가 수여하는 노벨상을 대신 받게 했다. 지난 해 12월10일, 그날은 작가의 생일 하루 전이었다.

 북아프리카인이 모처럼 받은 노벨상에 대하여 세계적인 갈채가 쏠리는 한편으로 으름장도 있었다. 이슬람교의 신과 성서《코란》을 공격한 1960년대의 마흐프즈 소설에 분노한 모슬렘 과격분자들의 협박이 그것이었다.

 이집트의 영향력 있는 정통 이슬람지도자들은 《게벨라위의아이들》이라는 마흐프즈의 소설이 그의 이슬람 기피증을 증거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일 마흐프즈가 자신의 소설에 대해 회개하지 않는다면, 背敎者로서 이슬람법에 따라 죽음을 면치 못하는 신의 명령을 받을 것이라고 그가 살고 있는 지방의 최고 지도자 오마 압델 라만은 말했다.

 관계당국이 경찰의 보호를 제안했고 마흐프즈의 가족들도 그의 규칙적인 일과를 바꾸라고 요청했다. 그가 너무 쉽게 외부에 노출되는 까닭이었다.

 그러나 그는 둘 다 거부했다.

 “그들(과격분자들)은 아직도 어리석은 짓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떤 보살핌도 바라지 않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