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과 異燮의 대제전 월드컵 60년
  • 이영만(스포츠평론가) ()
  • 승인 1989.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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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 에우제비오, 로시, 마라도나 등 숱한 스타 낳아

둥근 공이 달린다. 각이 없기 때문에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정해진 방향으로 내닫기도 하지만 때론 전혀 엉뚱한 곳으로 빠진다.

 천방지축 튀는 곳이 일정치만은 않은 공처럼 ‘꿈의 축구 祭典’ 월드컵 60년 역시 이변과 파란의 소용돌이 속에 굴러왔고 수많은 별들이 그 그라운드에서 뜨고 졌다.

 월드컵 연속출전의 큰 꿈을 이룬 한국의 본선 목표는 16강 또는 8강. 아시아 무대서 무패가도를 달렸으나 세계의 벽은 여전히 높아 가는 길이 멀고 험하다. 그러나 청소년축구가 ‘멕시코 4강’의 전설을 남겼듯, ‘이상한 나라’북한이 ‘동양의 진주’ 朴斗翼선풍을 일으켰듯 결과를 한마디로 단정지을 수만은 없다.

 

북한 돌풍 몰아친 8회 영국대회

 66년 8회 영국대회. 3회 연속우승으로 지금은 영원히 브라질품 (70년)에 안긴 줄리메컵도난사건으로 벽두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돌던 이 대회에 북한은 소련, 칠레 이탈리아와 함께 예선전을 치렀다.


 평균신장 1m65. 선수 전원이 미혼이라서 색다른 느낌을 갖게 했으나 북한 애당초 관심 밖의 팀이었다. 소련에 0-3으로 진 것은 당연했고 칠레와 1-1로 비긴 것은 의외였다. 하지만 대회 최대의 사건이 매복되어 있는 줄은 아무도 몰랐다. 對이탈리아전. 월드컵 2연패의 ‘로마군단’은 철통수비를 깔고 공격첨병 리베라를 앞세워 우승까지 넘보고 있었다. 6월 25일 휘슬이 올리며 이탈리아는 리베라, 바라손, 마졸라가 맹공세를 펼쳤다. 일격에 불한을 유린, 8강 물결을 타려던 이탈리아는 그러나 박두익에게 충격의 한골을 먹고 자지러졌다. 박두익은 한계단씩 밀어 올리는 ‘사다리식’의 줄기찬 공격선봉에 서서 바람처럼 몸을 흔들며 철웅성 이탈리아의 골네트를 갈랐다.

 8강진출, 그것은 이탈리아의 몫이 아니고 북한의 몫이었다.

 더구나 이탈리아의 복싱영웅 벤베누티가 같은날 서울서 金基洙에게 WBA주니어미들급타이틀을 넘겨 이탈리아는 남·북한의 동네북이 되었다. 남한에 얻어맞고 북한에 걷어채인 격이었다.

 북한의 선풍은 8강전에도 이어진다. 포루투갈은 ‘검은 표범’ 에우제비오 선풍을 일으키며 우승확률 50%로 지목되던 브라질을 격침시킨 팀이지만 황색바람 앞에선 추풍낙엽이었다. 북한은 물밀듯한 공세로 3골을 내리따 3-0. 훌쩍 4강문턱에 올라선 듯 보였다. 침묵을 지키던 에우제비오가 북한진영을 비호처럼 헤집고 다니며 검은바람을 일으켰다. 한골, 또 한골, “어 ! 어 !” 하는 사이에 혼자서 4골을 터뜨렸다. 역전. 월드컵사상최대의 역전승부로 북한은 다잡았던 大魚를 놓치고 말았다.

 

‘월드컵은 역전으로 막을 내린다’

 결승전 역전의 처음은 2회대회 우승국인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명령 한마디에 월드컵을 유치했던 이탈리아는 체코와의 대결서 먼저 1골을 내주었으나 연장서 득점왕 치아비오가 역전골을 터뜨려 2-1로 승리, 파시스트 무솔리니에게 영광을 안겼다.

 축구 종주국 영국이 처음 참가, 예선탈락의 치욕을 감내, ‘종이 호랑이’로 전락했던 4회대회 역시 역전극으로 막을 내렸다. 영국이 승률 90%의 對미국전에서 참담하게 패배(1-5)하며 파란을 예고했던 이 대회에서 우루과이는 우승이 확실시되었던 브라질을 기지아의 역전골로 무너뜨렸다. 결승리그로 최종 승자를 가렸던 이 대회에서 브라질은 對우루과이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줄리메컵을 안을 수 있었으나 첫골을 먼저 터뜨리고도 패해 리오데자네이로를 죽음의 도시로 몰아넣었다. 확신이 절망으로 바뀌며 브라질방송은 틈틈이 광적인 축구팬들이 권총자살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통한 뉴스를 전했다.

 한국이 부푼 꿈을 안고 첫 출전했으나 골키퍼의 가슴에 멍이 들 정도로 헝가리에서 무수히 얻어터진(0-9) 5회 대회(스위스)의 결승전은 역전의 풍랑이 가장 심하게 불었다. 한국을 완파하며 승승장구한 헝가리는 어렵지 않게 결승에 도달 ‘약체’ 서독과 맞섰다. 예선서 2진을 투입하는 여유를 부리면서도 서독을 8-3으로 대피했던 헝가리의 우승은 불을 보듯 뻔했다. 모든 전문가들도 헝가리의 우승을 99%로 높게 점쳤으며 이같은 예상에 걸맞게 헝가리는 17분 선제골을 터뜨린 후 또 한골을 넣어 2-0으로 거침없이 앞서갔다. 이제 남은 것은 경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당연하기도 했다. 50년대초 유럽전역을 초토화했던 헝가리는 3년간 32전 전승의 신화적인 기록을 세우며 ‘마법의 팀’이라는 별명과 함께 무적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첫골’이 불길한 것이었던가. 순한 양처럼 이리저리 끌려다니던 서독이 아연힘을 발휘 1골을 넣으며 그라운드 한 귀퉁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전반전이 끝났을 때는 어느새 2-2동점이 되었고 후반 기어코 역전골이 터졌다. 뜻밖의 결과에 세계는 다시 한번 경악했고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조용히 되새김질했다.

 ‘축구황제’ 펠레의 화려한 탄생을 지켜본 6회(스웨덴)대회도 브라질의 역전극으로 챔피언이 가려졌고, 7회대회 역시 브라질이 역전승하며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브라질은 이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가 ‘축구전쟁’을 일으켰던 9회대회서 이탈리아를 4-1로 꺾고 모진 풍파를 겪었던 줄리메컵을 영원히 가슴에 안았다. 줄리메컵이 가고 황금의 FIFA컵이 등장한 10회대회 이후에도 이변의 격랑은 끊이지 않았다.

 

로마에 쏠리는 10억 축구팬의 눈길

 12회(스페인)는 이탈리아의 화려한 무대였다. 루메니게의 서독을 알제리가 2-1로 누르는 격풍 속에 1차리그서 한번도 이기지 못하고 3無로 근근이 2차리그에 오른 이탈리아는 ‘로시 선풍’을 일으키며 개구리점프를 거듭했다. 지코, 소크라테스가 버티는 브라질에 혈혈단신으로 3골을 먹여 단명을 재촉했던 로시는 폴란드와의 준결승에서도 2골을 혼자 넣더니 결승에서마저 첫골을 터뜨림으로써 이탈리아로 하여금 ‘약체’의 설움을 딛고 일약 월드컵 최고봉에 서도록 했다.

 이변과 파란으로 점철된 월드컵 60년, 연속 본선진출로 로마입성을 앞둔 한국은 인연많은 이탈리아에서 코리아의 높은 파고를 일으킬 수 있을지. 90년 대회의 격랑은 어느 나라가 몰고올지. 10억 세계 축구팬들의 눈길을 벌써부터 로마로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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