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불균형에 시달리는 한국경제
  • 정운찬(서울대교수ㆍ경제학) ()
  • 승인 1989.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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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는 현재 심각한 構造的不均衡에 시달리고 있다. 우선 대내적으로는 산업간, 大中小企業間, 지역간 그리고 貧富間 불균형으로 인한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이에 더하여 대외적으로는 海外依存度가 높아서 외국, 특히 미국의 통상압력에 쉽게 굴복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여기서 불균형의 실상을 상세히 논할 겨를은 없다. 그러나 최근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빈부격차의 예만 몇가지 살펴보더라도 문제의 심각성은 자명해진다.

 

빈부격차가 과격한 爭議 불러

 먼저 所得分配상태는 공식통계숫자를 보더라도 월 5천만원이상 수입을 올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정부설정최저임금이 월15만원을 밑돌 정도로 되듯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격차가 매우 크다. 고소득자일수록 非公式收入이 많다는 한국적 상황을 감안하면 소득격차는 너무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토지소유와 관련한 不平等度는 더욱 심하다. 전체인구의 3%도 안되는 사람들이 전체 民有地의 70%를 소유하고 있으며, 지난 몇 년간의 地價上昇은 해마다 수십조원에 달하여 9백만 근로자의 전체 소득과 거의 맞먹을 정도로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토지소유자가 낸 재산세는 토지가액의 0.1%에도 못미치는 것이다. 토지소유의 집중 및 投機的 不勞所得의 편재는 住宅문제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어 일반봉급자의 내집 마련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이와같은 貧富間 불균형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노동쟁의, 농민의 저항 등 다양한 갈등이 과격한 형태로 표출되는 근본원인이다.

 그러면 불균형은 어디서 연유하는가? 그것은 지난 20여년 동안의 성장의 특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지난날의 성장은 경제적인 합리성보다는 獨裁政權의 정치적 고려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제3공화국, 유신정권, 제5공화국 등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한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가장 긴급한 과제이며 또 그 성과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는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에 따라 어떤 일이 있더라도 經濟成長의 목표는 달성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생겨났다.

 둘째, 지난날의 성장은 物量的인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경제성장이 巨視的 經濟變數의 變化를 가져오는 데 불과하였다. 경제성장이 경제지표, 특히 거시경제지표에 의해 평가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결코 고립된 경제현상만은 아니다. 성장잠재력의 차이에 의해 경제 각부문간에 그리고 경제와 여타 사회부문간에 불균형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보다 높은 차원에서의 균형으로 수렴될 때에만 진정한 의미의 발전이 성취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목표달성 위주의 물량적 성장이 경제 각분야, 더 나아가서는 사회 각분야의 균형적 성장을 저해하고 여러 가지 불균형을 배태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목표달성 위주의 成長추구 지양을

 성장만 할 수 있다면 그 내용 여하를 가리지 않는 開發哲學을 갖고 정부는 大企業集團과 그것에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로 대표되는 ‘가진자’들과 연합하여 부지런하고 교육을 잘 받은 노동자들의 經濟主義 즉 잘 살아보려는 의욕을 고취시키면서 20여년간의 高度成長을 주도해올 수 있었다. 가진자들을 생산과정에서 각종 세제ㆍ금융상의 혜택을 누리는 한편 부동산투기로도 재미를 보아 富를 축적할 수 있었던 반면 노동자들은 低賃金에 시달리면서도 생존한다는 사실 하나에 만족하며 성장과정에서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그 결과 한국경제는 이제 가진자들에 매달려 이들의 영향력, 특히 30대 대기업집단의 영향력이 산업은 물론이려니와 언론ㆍ군부ㆍ대학ㆍ정부 등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되었다. 經濟社會를 어느 특정 그룹이 지배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그것은 경제성장의 궁극적 목표, 즉 대다수 국민의 풍요롭고 자유로운 생활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직접적으로 갈등구조의 심화는 경제의 성장잠재력 자체를 마모시킨다. 왜냐하면 경제는 갈등에 의해서보다는 협력에 의해서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불균형은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 그러면 불균형의 해소책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과거의 목표달성 위주의 成長政策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포기하려면 정치가 민주화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따라서 정치적 민주화는 불균형 해소에 필수불가결하다.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정부와 가진자들은 結者解之의 자세로 굳어질대로 굳어진 불균형 현상을 제거토록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부작용이 좀 있더라도 과감한 제도개혁을 통해 가진자의 소득과 富가 못가진자에게 재분배되도록 유도해야 하며, 가진자들은 쌓아올린 부를 미련없이 던질 각오로 개혁에 적극 호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현재 소유하고 있는 企業集團을 과감히 정리하여야 한다. 이것만이 그들이 살고 또 나라가 발전할 길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정부와 민정당이 大宇造船의 무리한 구제, 韓國重工業의 민영화 결정 등에서 보여주었듯 아직도 과거의 開發哲學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가진자들의 양보는 아무데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앞으로 土地公槪念 도입과 관련하여 정부와 민정당의 개혁의지와 가진자들의 양보태세를 다시 시험해볼 기회가 있겠으나 현재 제안된 최소한의 共槪念마저 空槪念이 되어 버린다면 이 나라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심히 걱정된다.

 

“노사는 공동운명”

  노사분규는 지난 3년간 우리 경제사회에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등장했다. 회사밖에서 보는 노사문제가 아니라 회사 안에서, 회사의 일로서 경영자와 근로자들은 이를 어떻게 보는지, 또 그 미래 모습은 어떤 것인지 한 중견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에 자리잡은 平和프라스틱공업(주)의 비좁은 노조사무실을 李鍾鎬사장이 찾았다.

 마침 다가올 ‘노조단합체육대회’의 준비를 위해 모인 회사 노조 간부들과 李사장 사이에 예정되지 않은 대화의 시간이 마련된 것이다.

 노사갈등의 골이 어느때보다 깊었던 지난 87년 노조가 결성된 平和프라스틱은 파이프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중견 중소기업.

 “勞나 使나 다들 처음 경험했던 것인 만큼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간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만한 産苦를 치렀기 때문에 서로를 신뢰하는 분위기를 쌓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李사장이 말문을 연다.

 “사실 처음에는 싸워야만 얻을 수 있다는 의식이 팽배했습니다. 억지주장을 한 적도 있었고, 마땅히 내주어야 할 부분을 거부하는 회사측의 입장에 좌절도 느꼈습니다.” 노조위원장 池仲玉(32)씨가 말을 받는다. “서로 이해해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불신의 장벽을 쌓고 남의 약점을 노려 그것을 이용하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갈등해소가 매우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간 폐업이다, 직장폐쇄다 하는 극단적인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깝기도 하고, 때로는 두렵기도 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비교적 정리가 되었고, 아직도 해결해야 할 사소한 문제들은 그때그때 해결하도록 노력해야겠죠.” 李사장이 말을 잇는다.

 지난 올림픽 特需를 끝으로 건축경기가 위축되면서 제품판매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회사는 최악의 사태에 대비, 올겨울 조업단축을 고려하고 있다.

 “이같은 회사의 어려움을 어떻게 직원들에게 설득시켜야 할지 고민입니다.” 李사장이 걱정을 털어놓는다.

 “건축경기가 좋지 않다는 것은 우리도 잘 압니다. 결국 회사가 돈을 벌어야 우리도 나눌 몫을 갖게 되는 것이니까 회사경영방침을 따라 열심히 일해, 우리의 몫을 늘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池위원장이 사장을 안심시킨다. “그동안 노사분규의 열풍 속에서 노사갈등의 양상이 투쟁적이고 과격하다는 인상이 많이 심어져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습니다. 회사가 어려울 때 회사를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池씨가 덧붙인다.

 李사장이 좁은 노조사무실을 빠져나오기 전에 던지는 말. “노사는 하나이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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