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한 기대보다 후원하는 자세로
  • 정경변(서독 본對 정치학박사) ()
  • 승인 1989.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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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동구외교의 나아갈 방향

동구세계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동구변화에 대한 서방언론들의 최근의 보도는 그곳의 공산주의체제가 곧 붕괴되고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사회가 도래할 것 같다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현재 급격한 변화의 와중에 있는 이들 동구국가들의 좌표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사회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지향하는 것은 국제 다원화시대에의 적응이며 사회주의의 체질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이 급변하는 사회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의 북방정책의 첫 번째 길목에 위치한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우리에게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對동구정책 추진방향을 점검한다는 관점에서 동구의 변화를 조명해보자.

多元化시대에 적응키 위한 自救策

 우선 동구세계가 겪고 있는 진통의 遠因들을 짚어보자면 첫째 스탈린주의의 산물인 폐쇄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억압정치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과, 둘째 경제침체와 외채에 따른 생활고 등을 들 수 있다.

 원래 칼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의 노동자 착취를 비판하면서 사회주의를 통한 공산주의로써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세계가 공산주의를 추구할 경우 가장 자본주의가 발전되고 민주적인 나라에서부터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공산주의로의 변화는 영국같은 나라에서 발생할 일이지 봉건주의체제 아래 있던 러시아같은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로 간주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1917년 러시아에서 볼셰비키혁명을 통해 共産主義化가 추진되었으며 스탈린은 이 혁명의 완수와 세계프롤레타리아혁명 확산을 위해 2차대전중에 열렸던 얄타회담을 好期로 유럽분단을 성사시켰던 것이다.

 전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戰勝國들은 자본주의체제 옹호정책을 썼는데 특히 미국은 이를 위해 유명한 마샬플랜으로 피폐해진 유럽제국을 부흥시켜 공산화를 막았다. 반면 소련 등은 그들의 중앙통제 계획경제체제의 유지를 위해 COMECON(동구경제상호원조회의)을 창설, 군사안보 외에 경제적 측면에서도 대응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70년대 초반과 중반의 오일쇼크로 인한 무역역조현상과 급속도로 보급된 기술정보시스템에 신속히 대응치 못해 양체제간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작업평등주의 원칙에 의한 완전고용을 실시함에 따라 작업태도가 나태해져 생산성의 저하가 초래됐다. 또한 모든 폐쇄사회가 그렇듯이 새로운 정보에 민감하지 못해 기술은 낙후되고 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는 이러한 경제적 낙후를 극복하기 위한 고육책인 것이다. 또한 동구의 변모는 이들이 국제 다원화시대에 적응키 위한 자구책이다. 이러한 변모의 몸부림은 헝가리ㆍ폴란드ㆍ유고 등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체코ㆍ불가리아 그리고 가장 철저한 폐쇄국인 알바니아 등에서도 혁신개혁 세력들이나 정부ㆍ당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서서히 모색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동독과 루마니아의 경우는 차원이 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동독은 민족분단국가로서 집권층의 체제유지 노력만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고 독일의 국가통일과 美ㆍ蘇를 위시한 주변국가들의 우려라는 함수관계에 따른 국제 평화질서문제와 동독민들의 서독이주 욕구를 무마시켜 사회안정을 도모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루마니아는 공산당독재에 족벌정치까지 가미된 특수 폐쇄체제이다. 따라서 이들의 변모에 대해 섣불리 마르크스주의의 종말과 자유시장경제체제의 추구라는 판단을 내릴 수만은 없다. 이들의 사회주의적 중립화노력의 成敗의 관건은 서방제국들의 보다 활발한 협력을 얻어 파산 직전에 이른 경제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민주화를 이루어야 하는 문제와 외국의 지나친 내정간섭을 배제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戰後 양극체제를 종식시킬 수 있는 대안이며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이 소련최고회의 석상에서 발언한 “냉전시대의 극복과 나토ㆍ바르샤바조약기구 동시해체 협상용의”나 제임스 베이커 美국무장관의 ‘새로운 세계질서’案에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 교류엔 주춤하는 東歐圈

 우리와 같은 분단국인 서독은 60년대말부터 시작된 사민당의 동방정책을 통하여 1970년 소련과 獨ㆍ蘇평화조약, 1972년 동ㆍ서독기본조약을 체결, 1973년 UN에 동시가입하는 과정에서 저 유명한 할슈타인독트린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도 朴正熙대통령 당시 6ㆍ23선언을 통해 북방정책을 천명했으며 7ㆍ4남북공동성명으로 평화통일원칙에 합의했으나 서독이 동독의 안정화정책을 쓴 데 비해 한국은 아직까지 체제우위적 비교논리와 반공이데올로기에 입각한 냉전논리를 간직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동구제국에 대해 경제교류와 국교정상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런 동구제국은 경제교류에는 어느 정도 적극적이나 정치적 교류에는 주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소련의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 연구소의 코발료프 박사가 지난 10월초 한 학술세미나에서 했던 발언이 이를 잘 반영해준다. 그는 “소련은 낡은 논리인 이데올로기적 진영싸움에서 탈피한다. 다만 소련이 한국문제에서 북한을 도외시하고 남한을 인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볼 때 한국은 동구와의 관계에서 상호합의할 수 있는 사항부터 점진적으로 이해증진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의 변화노력에 대해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진지한 후원자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 북한문제를 동구의 변화에 결부시키지 말고, 또 양자택일식의 강요도 없이 의연한 자세로 나아가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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